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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 역시 전세(前世)의 집착이 이생에 반영된 것

Dolly

【정견망 2026년 10월 18일】

나는 자신을 드러내기 싫어하는 편이라, 사람을 대할 때 가급적 온화하고 예의 바르게 대하려 노력하며 누군가와 충돌이 생길 것 같으면 감히 말하지 못한다. 이를테면 동수(同修)의 집착을 보아도 감히 말해주지 못한다. 하지만 나는 줄곧 나름대로 안으로 찾음(向內找)을 잘해온 데다 근기(根基)도 괜찮은 편이어서, 수련을 시작한 초기 몇 년 동안은 내 자신이 매우 빠르게 향상된다고 느꼈다. 그러나 뒤로 갈수록 향상되는 속도가 느려졌는데, 그 전에 소홀히 여겨 제거하지 않았던 집착심이 뒤로 가면서 축적되어 매우 커졌기 때문이다.

나는 어떤 순간에 내가 집착심에 조종당하고 있거나, 혹은 나의 집착심이 높은 계층의 존재나 마(魔)에게 이용당해 그들이 원하는 일을 하게 되는 것을 발견했다. 예컨대 안일심(安逸心)을 버리지 못해 너무 많이 자고 싶지 않은데도 처음 깼을 때 ‘조금만 더 누워 있자’라는 생각이 들고, 다시 누우면 금세 정신을 잃고 잠들어 버린다. 나는 내가 스스로 잠든 것이 아니라 ‘잠들게 당한’ 것이라고 느꼈다. 또 깨끗함을 좋아하는 마음을 버리지 못해 이전에 많은 시간을 집안일에 쏟았는데, 조금이라도 더러운 것을 보면 당장 앉아 있지 못하고 반드시 깨끗이 치워야만 했다. 나중에 보니 이 역시 집착심에 조종당한 것이었고, 결과적으로 오히려 많은 가구의 표면 보호 코팅이 나에 의해 벗겨지고 말았다. 소홀히 여겨 버리지 않은 마음은 원만(圓滿)에 가까워질 때 높은 계층의 생명이나 마가 우리의 원만을 방해하는 난(難)으로 변하여, 스승님께서 우리의 원만을 위해 만들어 주신 배치를 파괴하게 된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안으로 찾음을 중시하여 집착심을 버리려 애쓰다 보니, 뜻밖에도 과시심(顯示心)까지 생겨났다. 예를 들어 다른 사람이 크게 말하거나 매우 흥분하고 열정적인 모습을 볼 때, 혹은 집착심에 조종되어 나오는 행동을 볼 때, 나는 속으로 은근히 업신여기는 심리가 생기곤 했다. 하지만 나는 매우 자책했다. 내가 본래 선한 사람인데 이런 심리 상태가 나타나니 매우 좌절감을 느꼈으나, 도대체 이것이 어떤 마음인지 깨닫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답답한 마음에 “이게 도대체 무슨 마음이란 말인가?”라고 물었더니, 어떤 목소리가 “이것은 과시심이다”라고 답해 주었다.

알고 보니 나는 자신을 감히 드러내지 못하면서도 스스로 열심히 수련한다고 여겨, 자신은 집착심이 적다고 생각하며 남을 바라볼 때 항상 자신을 은근히 비교 대상에 놓았던 것이다. 예컨대 어떤 동수는 꾸미는 데 집착하고, 어떤 동수는 쇼핑이나 음식에 집착하며, 어떤 동수는 세상 사람들의 화제를 나누길 좋아하는 등 다양한 집착이 있는데, 나는 늘 별다른 행동 없이 조용히 남들이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바라보면서 마음속으로 평가하고 남을 업신여기고 있었다.

게다가 나는 별다른 성과도 없으면서 나와 조건이 비슷한데 능력이 뛰어난 사람을 질투하기까지 했다.

수련의 마지막 단계에 이르러 스승님께서 나에게 미혹을 조금 깨어 주셨고, 나는 내가 높은 계층에서 누구였는지,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지 알게 되었다. 내가 천상에 있을 때 저지른 커다란 잘못 중 하나는 질투심이 매우 강했다는 점이다. 남편의 다른 아내들을 질투하고, 남편의 심성(心性)과 능력을 질투했으며, 남들과 남편을 업신여겼다. 그리고 남편의 다른 아내들을 질투했기 때문에 남편에 대해서도 원망하는 마음을 품게 되었다. (이것은 내가 대략 깨달은 정황이다.)

이생의 내 삶의 궤적을 돌아보면, 많은 잘못이 천상에서의 이러한 집착심들이 내려와 형성된 것이었다. 그것들은 나의 사상과 몸속에 업력(業力)으로 형성되었다. 나는 대법(大法)을 매우 늦게 얻었기에 젊었을 때는 업력의 배치에 끌려다녔고, 이제 와서 과거에 놓쳤던 것들을 회상하면 마음이 아프다.

남편의 아내들을 질투했던 그 집착 때문에, 이생에서 나는 마음속으로 타인의 외모와 차림새를 평가하곤 했다. 예를 들어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사람을 만나면 그의 얼굴, 머리 모양, 체형, 옷차림을 세밀하게 살피고, 손짓 하나 발짓 하나까지 자세히 관찰했다. 언젠가 한 동수를 만났을 때는 속으로 ‘아, 저 사람 많이 늙었네. 얼굴에 주름도 늘었고 머리도 노랗게 변했구나. 수련을 그다지 정진하지 않나 보네’ 하고 생각했다. 어쩌다 한두 번 생각하는 것이야 괜찮겠으나, 나는 사람을 만날 때마다 거의 매번 이렇게 생각했다.

천상에서 지은 업은 나의 가정 속에도 배치되어 들어왔다. 나의 친척 중 한 명은 늘 내 앞에서 다른 사람, 심지어 길가는 사람까지 놀려대곤 했다. 놀리는 내용은 주로 표면적인 것들이었는데,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내 마음 한구석은 이상하게 흥분되며 입꼬리가 올라갔다. 올바른 사람이거나 이런 방면에 문제가 없는 사람이라면 그런 말을 들었을 때 지루하게 느끼거나 엄숙해졌을 것이다.

만약 현대 사회가 일부일처제가 아니고 우리 모두가 수련인이라면, 그 속에서 수련해야 할 부분이 얼마나 많을지 생각해 본다. 중국古代의 궁중 비극이나 부유한 집안의 본처와 첩 사이의 갈등을 읽다 보면 참으로 안타까울 때가 많다. 하지만 결국 이러한 집착심들(정, 사랑, 사심, 질투 등)을 버리기 어렵다 보니 업력에 의해 배치되어 일어난 일 아니겠는가. 마음을 닫아버리고 피하는 것은 도피일 뿐 수련이 아니다. 그런 환경 속에서도 진심으로 남편을 대하고, 남편의 다른 아내들도 진심으로 대하며, 질투하지도 슬퍼하지도 않는다면 그것이야말로 참된 수련일 것이다.

개인의 경지가 한정되어 있으므로 부당한 부분이 있다면 자비로이 지적해 주기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47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