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대법제자
【정견망】
존경하는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동수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나는 2008년에 법을 얻은 제자다. 사존의 자비하신 구도와 보호 속에서 우여곡절을 겪으며 오늘까지 걸어왔다. 지난 세월 동안 수련에서 깊이 깨달았던 부분을 여러분과 함께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어 매우 영광스럽다.
1. 전화위복
2007년 5월 어느 날 퇴근길에 교통 사고를 당해 왼쪽 대퇴골이 부러졌다. 응급실로 이송된 후 의사는 수술을 통해 인공관절로 교체해야 한다고 했다. 시아버지는 의사에게 “내 며느리가 이제 겨우 서른이 넘었는데, 그렇게 젊은 나이에 어떻게 인공관절을 끼우느냐”며, 가오슝에 인공관절을 끼우지 않고 치료할 수 있다는 정형외과 의사가 있다는 말을 듣고 그날 밤 나를 가오슝으로 보내 수술을 받게 했다. 퇴원 후 나는 휠체어와 목발에 의지해 반년 이상을 지냈다. 상체 한쪽으로 오랫동안 목발을 짚다 보니 척추와 견갑골이 변형되었고 왼쪽 다리는 위축되어 내 인생은 흑백으로 바뀌었다. 한의사는 내 체질이 대퇴골두 괴사를 일으키기 쉬운 데다, 재진 후에도 부러진 부위가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점차 나는 더욱 우울해졌고 스스로 움직일 수도, 회사로 복직할 수도 없었다.
2008년 봄, 아이들이 다니는 보습학원 원장님이 내 회복 상태를 걱정하며 기공을 배워볼 생각이 있느냐고 물었다. 수강료가 많이 드냐고 묻자 무료라고 했고, 나는 좋다고 했다. 약속한 날짜와 시간에 나를 9일 학습반으로 데려갔고, 두 아이도 나와 함께 갔다. 그날 나와 두 아이는 함께 대법 수련에 들어섰다.
9일 학습반 첫날 나는 목발을 짚고 도착했다. 장소는 2층이었는데, 계단을 바라보고 손에 쥔 목발을 다시 보며 어떻게 올라가야 할지 막막했다. 사고 이후에는 남편이 매일 나를 업고 계단을 오르내렸기 때문이다. ‘내가 평생 목발을 짚어야 하는 걸까?’ 나는 목발을 아이에게 맡기고 난간에 몸을 기대어 두 손으로 난간을 위로 잡아당기며 계단을 한 칸씩 올라갔다. 차 사고 이후 내 힘으로 계단을 올라간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목발 없이 서 있으니 몸이 흔들렸지만, 연공 동작을 따라 배울 수는 있었다. 제5장 공법을 배울 때 왼쪽 무릎이 굽혀지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오른쪽 다리만 접고 왼쪽 다리는 앞으로 편 채 바닥에 앉아 제5장 공법을 배웠다.
9일반이 끝난 어느 날, 딸아이가 목욕을 도와주다가 내 어깨와 척추가 이전처럼 굽지 않았다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마음속으로 크게 감동하여 매일 연공을 하기로 결심했다. 얼마 후 나는 두 번째 9일반에 참가했는데, 그때는 이미 목발 없이 천천히 2층으로 걸어 올라갈 수 있었다. 9일반 동수들은 내 변화를 보고 매우 기뻐하며 책을 많이 읽으라고 권했다. 책꽂이에 있는 책은 모두 빌려 가서 읽고 다 읽은 뒤에 빌려주면 된다고 했다. 그렇게 나는 《각지 설법 1》을 집으로 빌려왔다. 당시에는 내용을 잘 이해하지 못했지만 계속 읽고 싶었고, 한 권을 다 읽으면 또 한 권을 빌려 읽었다. 몇 권의 책을 읽은 후 나는 동수에게 부탁해 대법 서적 세 세트를 구매하기로 결정했다.
두 번째 9일반을 마친 후 어느 날 아침, 집에서 제5장 공법을 연공할 때였다. 당시 왼쪽 다리는 이미 굽혀져 반가부좌를 할 수 있었다. 사부님께서 결가부좌를 해야 한다고 하신 말씀이 떠올랐지만, 내 왼쪽 다리는 부상을 입어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고 뼈 속에 철심까지 박혀 있는데 결가부좌가 가능할까 싶었다. 연공을 하면서 ‘결가부좌를 해야 해, 결가부좌를 해야 해’ 하고 생각했다. 자신에게 ‘한번 시도해 봐야지! 안 되면 다시 부러지는 것밖에 더 있겠어?’라고 마음먹었다. 그러자 왼쪽 종아리가 스스로 천천히 오른쪽 대벅지 위로 올라가 얹히면서 결가부좌가 되가 되는 것을 보았다. 그 순간 나는 대단히 놀라웠고 사부님의 가지에 감사드렸다.
2. 신사신법(信師信法)
어느 날 아침, 스쿠터를 타고 연공하러 가던 길이었다. 아직 날이 밝지 않았고 연공장에 서둘러 가느라 속도를 조금 내고 있었는데, 오른쪽 농가에서 후진으로 나오는 농기계 차량을 보지 못했다. 희미한 후미등을 발견했을 때는 이미 브레이크를 세게 눌러도 늦어 차에 충돌하고 말았다. 오른손에 극심한 통증이 밀려왔고 충격이 너무 크다 보니 몸이 위로 튕겨 나가 농기계 차량을 넘어 왼쪽의 큰 도랑으로 떨어졌다. 차에 부딪히는 순간 나는 목이 터져라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를 외쳤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이미 큰 도랑 안에 앉아 있었다. 얼이 빠진 채 멍하니 있는데, 농기계 운전자가 허둥지둥 나를 향해 달려오며 “괜찮으세요? 구급차 부를까요”라고 물었다. 나는 괜찮으니 구급차를 부를 필요가 없다고 했다. 그분은 남편과 동수에게 전화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로터리 연공장에 가서 동수들에게 도움을 요청해 주기도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몇몇 동수들과 남편이 연이어 달려왔다.
날이 밝자 운전자는 경찰에 신고했고 구급차가 도착했다. 구급대원이 어느 병원으로 가겠느냐고 물었지만 나는 병원에 갈 필요가 없으며 괜찮다고 말했다. 운전자에게 나는 파룬궁을 연마하는 수련인이라 당신을 귀찮게 하지 않겠노라고 말한 뒤, 도랑에서 천천히 기어 나와 남편의 오토바이 뒷자리에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은 마침 딸이 면접을 보기 위해 산에 가는 비행기를 타야 하는 날이었다. 집에 도착하자 딸은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괜찮냐고 물었다. 나는 괜찮다고 답했다. 나는 함께 온 동수들에게 거실에서 발정념을 해달라고 부탁하고 씻으러 들어갔다. 씻는 과정에서 여러 곳이 찢어지고 피가 나는 것을 발견했지만 자세히 볼 시간도,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마음속으로 아이의 비행기 시간을 지체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뿐이었다.
동수들은 발정념을 마친 뒤 연공장으로 돌아갔고, A 동수 한 분이 끝까지 남아 우리와 함께 공항으로 향했다. 차 안에서 A 동수는 공항에 다녀온 뒤 병원에 가볼 것인지 조용히 물었다. 나는 필요 없다고 했다. 동수가 정말 안 가도 되겠냐고 다시 묻길래, 나는 살짝 쓸린 것뿐이니 안 가도 된다고 답했다. 당시 나는 정말 내 상태가 어떤지 깨닫지 못했고, 오직 아이를 공항에 배웅하는 일에만 온 신경이 쏠려 있었다.
공항에 도착하자 몸과 오른손 바닥, 팔에 갈수록 통증이 심해졌다. 나는 아이에게 영향을 주지 않으려고 참았다. 잠시 후 아들과 학교 친구들도 동생을 배웅하겠다며 공항에 나타났다. 아들은 내가 이상한 것을 눈치채고 “엄마, 괜찮아요?”라고 물었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괜찮다고 했고, 아들은 나를 바라보며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딸과 반 친구들이 출국하고 아들과 그의 친구들도 학교로 돌아가는 차에 탑승하자 우리도 집으로 향했다.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딸과의 이별에 아쉬움이 컸고, 몸은 점점 더 아파와 견디기 힘들 지경이었다. 겨우 집에 도착하자 A 동수는 아이 걱정은 하지 말라며, 내가 잘 보살펴줄 테니 걱정 말라고 아이에게 말해두었다고 전해주었다. 나 역시 웃으며 연공을 하겠다고 말했다.
집에 돌아와 연공을 할 때, 제1장 공법의 ‘신(伸)’ 동작을 할 때마다 너무나 아팠다. 제2장 포륜(抱輪)을 할 때는 참지 못하고 대성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연공을 하며 울면서 마음속의 그 아쉬운 감정을 울어내고 싶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정육친정(親情)에 집착함은, 기필코 그로 인해 지치고 얽매이며 마에 사로잡히게 됨이라, 그 정사(情絲)를 잡아 쥐어 일생토록 방해받으니, 나이가 들면 후회해도 이미 늦은 것이다.”(《정진요지》〈수련자 금기〉)
딸에 대한 정으로 인해 구세력의 박해를 초래했음을 깨달았다. 연공을 마치고 저녁에 지역 단체 법학습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몸이 이렇게 아픈데 가야 할까 고민이 되었다. ‘가야 한다!’ 남편이 스쿠터로 나를 법공부 장소까지 태워다 주었지만, 몸이 아파서 말을 듣지 않았고 앉아서 법을 공부하는 것조차 너무나 힘들었다. 나는 동수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하지 않았다. 밤이 되자 몸이 너무 아파 잠을 이룰 수 없었고 사부님의 설법을 듣고 싶었으나, 남편이 누워서 법을 듣는 것은 법에 대한 불경이라고 해서 거의 밤을 지새웠다.
이튿날 A 동수에게서 전화가 와서 자신의 가게로 와서 법공부를 하자고 했다. 가서 보니 다른 동수들도 와 있었고, 다 함께 법공부를 하자 몸이 별로 아프지 않으면서 파룬이 몸을 조정해 주는 것이 느껴졌다. 셋째 날에는 다시 A 동수의 집으로 가서 법을 공부했는데, 평소 법을 공부할 때와 달리 몸이 따뜻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나중에 A 동수가 말하기를, 차 사고 당일 도랑에 앉아 있던 나를 보았을 때 이미 내 오른쪽 팔이 밖으로 꺾여 변형되어 있었고 오른손 바닥과 손가락도 변형되어 있었다고 했다. 내가 자기 상태를 잘 모르는 것 같아 집에 돌아간 뒤에야 비로소 목놓아 울었다고 했다. 함께 법을 공부하는 동안 그녀는 계속 나를 지켜보았는데, 꺾여 있던 팔이 천천히 제자리를 찾고 손가락도 곧아지는 것을 보며 매우 놀라웠다고 했다.
당시 나는 내가 얼마나 심하게 다쳤었는지 정말 알지 못했다. 사부님께서 나를 막아주셨음을 깨달았다. 이후로도 나는 매일 연공장에 나갔다. 오른 손바닥이 부어올라 운전대를 잡을 수 없었기에, 오른 팔뚝을 운전대 위에 올리고 왼손과 함께 운전대를 돌려가며 연공장까지 차를 몰고 갔다. 차 사고가 났던 지점을 지나가다 보니, 당시 내가 전신주 하나를 넘어 도랑으로 떨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아찔한 생각이 들었다. 사부님의 보호에 감사드렸다! 이 일은 나로 하여금 수련 중에 누락이 있거나 부주의한 부분이 있다면 바로 구세력의 안배를 걷게 된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3. 법을 외우다(背法)
여러 번 법을 외우려고 시도했지만 몇 페이지를 외우다 포기하곤 했다. 당시에는 책 전체를 외워야 한다고 생각해서 첫 페이지부터 외우기 시작했고, 매일 첫 페이지부터 다시 시작했다. 이번 단락을 외우면 이전 단락을 잊어버리곤 해서, 《전법륜》 〈제1강〉 ‘진장히게 고층차로 사람을 이끌다’ 단락을 몇 번이나 외우다 포기하고, 다시 외우다 포기하기를 반복하며 너무 어렵다고 느꼈다. 그러다 2021년 산에 올라갔을 때 비로소 다시 결심을 하고 법을 외우기 시작했다. 매일 작은 한 단락씩 외웠고, 그렇게 4년 반이 걸려 비로소 《전법륜》을 첫 번째로 다 외울 수 있었다.
나 개인에게 있어 법을 외우는 것은 그냥 통독하는 것보다 법의 내함(內涵)을 이해하기가 더 쉬웠다. 먼저 표면적인 글자 뜻을 이해한 뒤에 외웠다. 가장 어려운 것은 매일 꾸준히 외우는 일이었다. 며칠을 외우지 않으면 이어서 외우기가 어려웠고, 법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해도 잘 외워지지 않았다. 때로는 외워지지 않아 가슴을 치며 답답해하기도 했고, 화를 내고 싶거나 마음이 쓰리고 매우 괴롭기도 했다. 한번은 한 단락을 한 달 동안 외우지 못해 거의 포기할 뻔한 적이 있었다. 나중에 명혜 라디오 법 외우기 교류 문장을 듣게 되었는데, 작성자는 법을 외우면서 자신을 대조해 보고 그 단락 법의 내함을 이해한다고 교류했다. 그제야 나는 ‘아! 내가 자신을 대조해 보지 않았구나’라는 점을 깨달았다.
심성 고험이 닥쳐올 때 외웠던 법이 잘 떠올랐다. 때로는 며칠 전에 외웠던 법이 직접 대조되기도 했고, 때로는 방금 외운 직후에 심성 고험이 오기도 했다. 예를 들어 한번은 《전법륜》 〈제9강〉의 ‘깨달음(悟)’을 막 외우고 이어서 ‘덕을 지키다(守德)’를 외웠는데, 며칠 동안 ‘덕을 지키다’라는 구절이 머릿속에 계속 떠오르며 내 행동을 대조해 보도록 일깨워주었다. 또 방금 ‘질투심’ 단락을 외운 뒤에는 내가 어제 했던 어떤 행동이 바로 ‘질투심’의 표현이었음을 즉시 인식하게 되는 등, 이러한 상황이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4. 안으로 찾다(向內找)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어떠한 문제에 부딪혔더라도 첫 생각에 우선 자신을 돌아봐야 하는바, 이것을 “안으로 찾는다.”고 한다.”(《각지 설법 11》〈무엇이 대법제자인가〉)
많은 동수들이 때로는 어떻게 안으로 찾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것을 듣는다. 수련 초기 몇 년 동안 나의 오성(悟性)이 매우 낮았고, 나 역시 안으로 찾을 줄 모른다고 생각했다. 동수들이 심성을 제고한 교류를 들으면 안으로 자신의 부족함을 찾아내는 동수들이 부러웠고, ‘나도 안으로 찾을 줄 알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했다. 사실은 스스로 ‘나는 안으로 찾을 줄 몰라’라는 관념에 가로막혀 있었던 것이다.
대법을 통독할 때 마음을 쓰지 않고 그냥 읽고 지나쳤기에 법의 내함을 이해할 수 없었고, 따라서 점화도 없었으며 스스로 머리를 써서 생각해보려 하지도 않았다. 법을 외운 후, 사부님께서 《전법륜》 및 각지 설법에서 “여러분 생각해 보라”라는 말씀을 수없이 하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매번 이 구절을 외울 때마다 나는 스스로에게 ‘생각해 보고 더 깨달아 보아야 한다’고 일깨웠다. 그렇게 점차 내 행동이 법에 부합하는지 생각하기 시작했고, 천천히 안으로 찾는 기제가 형성되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법은 이 한 층까지만 말할 수 있을 뿐이며, 더욱 높은 것은 당신 자신에 의거해 수련해야만 얻을 수 있다. 어떤 사람은 문제 제기에서 제기하면 할수록 더욱 구체적인데, 만약 생활 중의 문제를 모두 나에게 해답하라고 한다면, 당신 자신은 또 무엇을 수련하겠는가!”(《전법륜》)
명혜망 문장을 볼 때도 동수들이 어떻게 안으로 찾았는지 보게 되면서, 비로소 ‘내가 이것이 안으로 찾는 것임을 인식하지 못했고, 진정으로 안으로 자신의 마음을 찾아보려 하지 않았으며, 안으로 찾을 줄 모르는 상태를 돌파하려 하지 않고 그저 나에게 그런 능력이 없다고만 여겼었구나’ 하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5. 맺음말
십수 년 동안의 수련 속에서 사부님의 보살핌에 감사드린다. 관을 겪거나 모순이 생길 때마다 언제나 동수들이 찾아와 교류하며 내가 법 위에서 향상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사부님께서는 《파룬궁》 〈제3장 씬씽(心性) 수련〉에서 말씀하셨다.
“연공은 안으로 찾도록 하여 스스로 자신을 많이 수련하고 자신의 몸에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 자신이 어느 면에서 부족하면 스스로 제고하기에 노력해야 하며, 안으로 힘을 써야 한다.”
동수가 법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할 때 듣기 싫어하며 저항하던 상태에서, 동수의 교류를 가만히 끝까지 들으려 노력하게 되고, 나아가 완전히 자신에게 안으로 찾을 것을 요구하기까지 참으로 긴 길을 걸어왔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나의 법신은 무엇이나 다 알고 있다. 당신이 무엇을 생각하는지 그는 다 알고 있으며, 무엇이나 그는 다 할 수 있다. 당신이 수련하지 않으면 그는 당신을 상관하지 않으며, 당신이 수련하면 끝까지 돕는다.”(《전법륜》)
우리에게 수련하고자 하는 이 마음만 있다면 사부님께서는 반드시 끝까지 도와주실 것이다.
마지막으로 《홍음 2》의 〈정진정오(精進正悟)〉로 마무리하며, 동수들과 함께 비학비수하고자 한다.
법 공부 태만하지 않으니
변화가 그중에 있도다
확고하게 믿고 움직이지 아니하니
과위가 올발라 연꽃으로 피어나네
이상은 현재 층차에서의 이해이므로, 법에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부디 시정해 주기 바란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동수들 감사합니다.
(2026년 대만 파룬따파 수련심득교류회 원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