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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판 밖의 지혜

비홍(飛虹)

【정견망】

두 사람이 바둑을 두기에 나는 곁에서 구경을 했다. 양측이 팽팽히 맞선 상황에서, 나는 한쪽이 몇 수만 더 두면 승리할 수 있음을 보았다. 바둑 친구가 나더러 앉으라고 하여 대국에 들어가자, 나는 다시 주저하고 망설이며 조심스러워졌다. 급히 일어나 그들이 계속 대국을 이어가도록 했다. 내가 밖에서 관전할 때는 또다시 묘수가 끊임없이 보였다.

왜 내가 그 자리에 앉기만 하면 원래의 지혜가 사라지는 것일까? 그것은 명리(名利) 때문이며, 지면 남들이 비웃을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진아(真我)가 명리에 속박되면 지혜가 사라진다. 사람의 심경이 그 속에 있지 않고 승패의 밖에 초탈해 있으면 사고가 맑아져, 판 밖에서는 흔히 그 속에서 알아차리기 힘든 세부 사항을 볼 수 있게 된다.

수련인이 서로 교류할 때 늘 다른 사람의 몇몇 집착과 사람마음(人心)이 어디에 있는지 쉽게 말하곤 한다. 그러나 자신의 부족함에 대해서는 흔히 알아차리기 어려운데, 이는 자신이 당시에 판 속에 있어 스스로를 똑바로 보지 못하고 ‘가아(假我)’에 가려져 지혜가 없기 때문이다. 이 가아를 깨뜨리려면 우선 그것을 똑똑히 보아야 한다. 예전에 한 친구가 예를 들어 말하기를, 이는 마치 네가 어떤 방 안에서 이 방을 불태우고 파괴하려 하는데, 진아가 여전히 그 안에 있다면 어떻게 불태우겠는가? 만약 밖으로 뛰쳐나와 ‘국외자(局外者)’의 각도로 관찰한다면 문제의 소재를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것과 같다.

인생은 한 판의 바둑과 같아서, 우리가 바둑판 위에 첫 번째 바둑돌을 놓는 순간부터 전투는 이미 시작되며, 이 바둑판이 다채로울지 여부는 우리가 그 속의 역할을 잘 연기할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 우리의 시간과 정력, 그것은 곧 각자의 손에 들린 바둑돌이며, 어디에 투입하느냐는 곧 어디에 돌을 놓느냐와 같다. 일단 돌을 놓으면 무를 수 없는데, 하물며 사람의 이 한 생의 시간과 정력은 매우 한정되어 있다. 고수(高手)란 바로 가장 적은 바둑돌로 자신을 위해 가장 큰 공간을 개척해 낼 수 있는 사람이다. 어떻게 한정된 시간과 정력을 이용하여 자신을 위해 더 큰 공간을 개척해 낼 것인가 하는 것은 일종의 수행(修行)이다.

신(神)은 사람에게 공평하여, 각자에게 매일 배정해 주는 시간은 모두 24시간이다. 이 얼마 되지 않는 24시간 속에서 일, 수면, 식사 등 필수적인 시간을 제외하면, 사실 각자 자유롭게 지배할 수 있는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격차를 벌려 놓는 것은 흔히 이 자신에게 속한 몇 시간 속에서 결정된다. 이 얼마 되지 않는 몇 시간 동안 어떤 사람은 세속의 크고 작은 번거로운 일에 바쁘고, 어떤 사람은 수련하고 제고하는 데 사용한다. 하는 일이 다르면 성취하는 결과도 다르다.

초보자(新手)는 흔히 좁고 작은 영역 내에 너무 많은 바둑돌을 투입하기를 좋아하며, 싸우지 말아야 할 곳에서 경솔하게 전투에 뛰어든다. 고수는 절대로 이와 같이 하지 않으며, 싸우지 말아야 할 때에는 흔히 전투를 벌이기보다 차라리 돌을 버릴지언정 싸우려 하지 않는다.

삶 속에는 어디나 모순이 가득하여, 어떤 사람은 모순을 만나기만 하면 싸움을 벌이지만, 어떤 사람은 오직 필요한 때에만 싸움을 벌인다. 고대의 대장군 한신(韓信)은 당시에 저잣거리 깡패와 싸우기보다 차라리 가랑이 밑을 기어가는 치욕을 당하고자 했다. 깡패 불량배를 이겨봤자 잘해야 골목대장에 불과하지만, 무적의 초패왕(楚霸王 항우)을 싸워 이기면 그는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제왕(齊王)이 되기 때문이다.

제갈량(諸葛亮)이 융중(隆中)에 은거할 때 《위기가(圍棋歌)》를 지어 세속을 초탈한 지자(智者)의 풍모를 드러냈다.

“푸른 하늘은 둥근 덮개 같고,
육지는 바둑판 같으니,
세상 사람은 흑백으로 나뉘어
왕래하며 영화와 치욕을 다투네.
영예로운 자는 스스로 안락하고,
치욕스러운 자는 스스로 분주하네.
남양에 은거하는 이 있어,
높은 베개 베고 자느라 잠이 부족하네“

신(神)의 길을 걷는 수련인은 더더욱 속인과 무언가를 다툴 필요가 없고 원망할 필요가 없으며, 속인이 우리에게 만들어 주는 모순이야말로 심성을 제고할 좋은 기회이니 진심으로 감사해야 마땅하다. 모순에서 뛰쳐나와 그 속에 있지 않고, 그 속에 집착하지 않으며, 후천적인 관념에 흔들리지 않아야 비로소 그 속의 진리를 똑똑히 볼 수 있다. 몸은 세속에 있을지라도 마음은 티끌 세상 밖에 있어, 마치 연꽃이 진흙에서 나왔으나 물들지 않는 것과 같다.

사람의 한 생은 매우 짧으니, 수련자에게 있어서 삶 속에서 어디서나 마주칠 수 있는 저 무익한 다툼에 쓸 시간과 정력은 참으로 그리 많지 않다. 세상은 한 판의 큰 바둑과 같고 오늘날 이 바둑판은 이미 끝내기 단계에 이르렀다. 백돌은 최초의 방어로부터 마침내 역전승을 거두는 데 이르렀으니 모든 것이 창세주(創世主)의 장악 속에 있다. 바둑판의 형세가 점차 명확해지니, 세상 사람이 흑백을 분별해 정의로운 편을 선택할 수 있는지 여부 역시 자신의 인생이라는 이 바둑판에 결정적인 한 수를 놓는 것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48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