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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풍유유: 장효기가 의롭게 재산을 돌려주다

고운(古韻)

【정견망】

송대(宋代) 방작(方勺)이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기록했다.

허창(許昌)에 장효기(張孝基)라는 선비가 있었는데, 같은 마을 부유한 집안의 딸에게 장가를 들었다. 부자에게 외동 아들이 있었으나 불초(不肖)하여, 아버지가 꾸짖고 집에서 쫓아냈다. 나중에 부자가 병이 심해져 임종하기 전에 모든 가산(家産)을 장효기에게 맡겼다. 부자가 세상을 떠나자 장효기는 예절에 따라 그의 장례를 잘 치러 주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 장효기는 집을 나간 부자의 아들(처남)이 길거리에서 구걸하는 것을 보고 불쌍히 여겨 그에게 물었다.

“네가 밭에 물을 줄 수 있겠느냐?“

부자의 아들이 대답했다.

“밭에 물을 주어 한 끼 밥이라도 얻어먹을 수 있다면 참으로 다행이겠습니다!”

장효기는 이에 그를 밭에 가서 일하게 했다. 점차 이 젊은이는 부지런히 스스로 일하기 시작했다.

장효기는 그의 변화를 보고 다시 물었다.

“네가 창고를 관리할 수 있겠느냐?“

그가 대답했다.

“밭에 물을 주는 것만으로도 이미 기대 밖인데, 하물며 창고를 관리하는 것이겠습니까? 참으로 다행입니다!”

장효기는 곧 그에게 창고를 관리하게 했다. 그는 일을 할 때 공순하고 신중하며 마음을 다해 책임을 졌고 아무런 허물이 없었다. 얼마 동안 관찰을 거쳐 장효기는 그가 진정으로 개과천선할 수 있음을 확신하고, 장인이 맡겼던 가산을 모두 그에게 돌려주었다.

이 이야기에서 소중한 대목은 장효기가 재산을 돌려주었다는 것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가 어떻게 길을 잘못 든 사람을 도와 다시 바른길로 들어서게 했는가에 있다.

부자가 임종할 때 그에게 가산을 모두 맡긴 것은 한편으로는 아들이 불초하여 가업을 감당하기 어려웠기 때문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사위의 인품을 신뢰했기 때문이다. 나중에 사위가 가산을 돌려주기를 기대했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이야기에서 명확히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장효기의 최종 선택은 명백히 가업을 지키는 그 자체를 넘어선 것이었다. 그는 재산을 잘 관리했을 뿐만 아니라, 장인의 아들에게 개과천선할 기회를 주었다.

손에 들어온 재물을 두고 장효기는 자기 것으로 여기고 차지하지 않았고, 초라해진 친족을 두고도 냉정하게 방관하지 않았다. 그는 우선 상대방이 노동을 통해 편안히 살 수 있게 한 뒤, 차츰 그에게 더 많은 책임을 맡겼으며, 그가 스스로 자립하고 가업을 지키기에 충분하다는 것을 확신한 후에야 비로소 재산을 돌려주었다.

여기서 우리는 《삼국연의》 속의 제갈량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유비가 임종할 때 어린 아들을 맡기며 제갈량에게 말하기를, 만약 유선(劉禪)이 보좌를 감당하지 못하면 스스로 그 자리를 대신해도 좋다고 했다. 만약 단지 권력과 능력이라는 각도로만 저울질한다면 이러한 생각이 들기 쉽다. ‘제갈량이 더욱 능력이 있으니 그가 황제가 되어 사업을 성취하는 것이 어떠한가?’

그러나 ‘능력이 있다’는 것이 도의의 경계를 넘어설 수 있다는 뜻은 아니며, 더욱이 이를 바탕으로 대신 들어앉는 것이 반드시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제갈량은 탁고의 말을 자기 권력을 도모할 기회로 삼지 않고, 마음을 다해 보좌하며 약속을 실천했다. 이것이 바로 ‘의(義)’가 사람의 마음과 이익 사이에서 보여주는 무게감이다.

대법 사부님께서는 《북미순회설법》에서 말씀하셨다.

“여러분은 『삼국연의(三國演義)』를 알 것이다. 『삼국연의』는 하나의 ‘의(義)’를 말하였다. 한 조대(朝代)를 지나면서 세 개의 세력이 서로 겨루는 중에서 충분히 ‘의(義)’의 내포를 표현해 냈다. 더욱이 한 조대(朝代)라는 이렇게 기나긴 세월을 경과하면서 이 ‘의(義)’의 심층문화를 표현해 냈지만, 오늘날 법을 전하게 되어서야 인류는 비로소 ‘의(義)’에 대해 깊은 인식이 있게 되었는데, 무엇이 의(義)이고, 의(義)의 표면 뜻과 내포에서 파생된 상호관계와 심층에 반영된 뜻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층차에서 볼 때 고대로부터 전해 내려온 이야기와 문화에는 사람이 되는 이치가 담겨 있으며, 또한 사람이 더욱 깊은 법리를 인식할 기초를 다져주고 있다.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은 신전문화가 사람에게 남겨준 도덕적 준칙이다. 많은 역사 속 이야기는 바로 구체적인 인물과 선택을 통해 이러한 이치를 체감할 수 있고 알 수 있게 만든다. 한 사람이 이익 앞에서 어떻게 취하고 버리는지, 부탁을 받은 후 어떻게 행동하는지, 타인이 난관에 처했을 때 어떻게 대하는지 모두 그 품성을 드러낼 수 있다.

장효기가 재산을 돌려준 이야기는 《삼국연의》에서 보여준 정신과 통하며, 모두 하나의 ‘의(義)’ 자를 보여준다.

대법 수련인에게 있어 신전문화는 더욱 깊은 층차의 의의가 있다. 우주가 정법할 때 법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은 더없는 영광이자 복분(福分)이다. 그리고 한 사람이 만약 인의(仁義)를 소중히 여기고 선량을 존중하며, 전통적인 도덕 준칙으로 스스로를 단속하기를 원한다면, 대법이 가르치는 선(善)을 향하는 이치를 더욱 쉽게 이해할 수 있고, 법을 얻는 기연(機緣)을 더욱 소중히 여길 줄 알게 된다.

이로 보아 신전문화는 사람이 어떻게 세상에 바로 서고 처세해야 하는지 가르쳐 줄 뿐만 아니라, 사람이 향후 대법을 인식하고 기연을 소중히 여기는데 사상적·도덕적 기초를 남겨주었다.

장효기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단지 ‘재산을 돌려주었다’는 행동뿐만 아니라, 이 행동을 받쳐주는 그 마음이다. 사람이 곤경에 처한 것을 보고 불쌍히 여길 수 있고, 타인의 부탁을 받아 책임을 다할 수 있으며, 재물에 직면해 도의를 지킬 수 있고, 타인을 도우면서도 장기적인 안목을 고려할 수 있는 마음이다.

이 의(義)는 구체적인 취사선택 속에 드러나며, 또한 타인을 배려하는 매 한 걸음 속에서도 체현된다.

[부록 원문]

許昌士人張孝基,娶同裏富人女。富人惟一子,不肖,斥逐去。富人病且死,盡以家財付孝基。孝基與治後事如禮。久之,其子丐於途,孝基見之,惻然謂曰:“汝能灌園乎?”答曰:“如得灌園以就食,何幸!”孝基使灌園。其子稍自力,孝基怪之,複謂曰:“汝能管庫乎?”答曰:“得灌園,已出望外,況管庫乎?又何幸也。”孝基使管庫。其子頗馴謹,無他過。孝基徐察之,知其能自新,遂以其父所委財產歸之。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47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