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풍(唐風)
【정견망】
사람과 사람 사이에 다툼이 발생할 때, 대개는 자신에게 도리가 있다고 여긴다. 사실, 이것이 반드시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다. 각자 처한 입장이 다르고 문제를 바라보는 각도가 다르므로, 도출되는 결론 역시 자연스럽게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약 논쟁이 문제를 진정으로 해결하지 못한다면, 서로 버티며 양보하지 않는 것보다 차라리 한 발짝 양보하는 것이 아마도 더 나은 선택일 것이다.
범엽(范曄)의 《후한서(後漢書)》에 이러한 이야기가 있다.
탁무(卓茂)가 어느 날 외출을 했는데, 도중에 어떤 사람이 그가 탄 말이 자기가 잃어버린 말이라고 했다.
탁무가 물었다.
“당신의 말을 잃은 것이 언제입니까?“
그 사람이 대답하였다.
“한 달이 좀 넘었습니다.”
사실 이 말은 탁무가 키운 지 이미 여러 해가 되었기에, 그는 상대방이 착각했다는 것을 마음속으로 환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 사람과 다투지 않고, 묵묵히 말을 상대방에게 건네준 뒤 자신은 수레를 끌고 떠났다. 떠날 때 그는 고개를 돌려 말했다.
“만약 나중에 이 말이 당신 말이 아닌 것을 알게 되거든, 부디 승상부로 찾아와 내게 돌려주기 바라오.“
나중에 그 사람은 과연 자기가 진짜로 잃어버렸던 말을 찾게 되었고, 비로소 전에 확실히 잘못 알아보았음을 알게 되었다. 이에 그는 승상부로 달려가 탁무의 말을 돌려주고, 머리를 조아리며 사죄했다.
범엽은 이야기의 마지막에 이렇게 적었다.
“탁무의 성품이 다투기를 좋아하지 않음이 이와 같았다.”
이는 탁무가 성품상 남과 다투기를 좋아하지 않았기에 이런 정도까지 이를 수 있었음을 이르는 말이다.
탁무의 처신은 일반인이 결코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첫째, 당시 말은 매우 귀중한 재물이었기에 쉽게 포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둘째, 만약 상대방이 자기가 잃어버린 말을 끝내 찾지 못한다면 탁무는 아마도 이 말을 영영 잃어버리게 될 터였다. 설령 그 사람이 나중에 자신의 말을 찾는다 하더라도, 탁무의 말을 기꺼이 돌려주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더 대단한 것은, 탁무는 분명 자신에게 이유가 있고 완전히 증거를 꺼내어 당당하게 맞설 수 있었음에도 자신의 신분과 지위를 내세워 상대방을 억누르지 않고, 오히려 묵묵히 양보하는 길을 택했다는 점이다.
탁무는 당시 승상부에서 관직을 맡고 있었다. 만약 그가 관청의 권력을 믿고 끝까지 말을 붙잡아 두었다 하더라도 상대방은 아마 어찌할 도리가 없었을 것이며, 하물며 그 말은 원래 그의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는 그가 먼저 생각한 것이 자신의 이익이 아니라 어떻게 다툼을 피하고 모순을 해소할 것인가였음을 보여주며, 또한 그가 말 잃은 상대방의 초조한 심정을 헤아려 주었음을 뜻한다.
이러한 양보는 결코 연약한 것이 아니며, 원칙이 없는 것은 더더욱 아닌데, 바로 너그럽고 선량함이다. 그는 마음이 담담했고 결국에는 진실이 드러날 날이 있음을 알았기 때문에, 굳이 일시적으로 다투면서 승부를 가리려고 조급해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대법 사부님께서는 경문 《2003년 정월대보름 설법》에서 말씀하셨다.
“물론 논쟁할 때면 모두 객관적인 이유가 아주 충분히 있다. 당시 처한 환경, 그 장소도 다 같지 않으므로 구체적인 정황도 다 같지 않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대해야 하는 것 역시 당신들이 수련 중에서 잘 해내야 할 바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모순이 발생할 때 누구나 자신의 이유를 찾아낼 수 있으며, 게다가 그러한 이유들은 들어보면 대개 아주 충분해 보인다. 하지만 진정으로 선량한 사람은 자신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만을 생각하지 않으며, 일시적인 명예와 이익을 지키기 위해 남과 끝없이 다투지도 않는다. 그가 먼저 고려하는 것은 문제를 어떻게 원만히 해결할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 않을 것인가이다.
모순을 진정으로 해소하려면 개인의 명과 이(利)를 내려놓는 법을 반드시 배워야 한다. 얻고 잃는 마음에 휘둘리지 않아야만, 이유가 있을 때에도 기세등등하지 않고, 억울함을 당했을 때도 분개하지 않으며, 이익에 손해를 당했을 때에도 여전히 평온함과 선량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말하기는 쉬워도 실제로 해내기는 대단히 어렵다. 절실한 이익 앞에서 탁무처럼 담담하게 내려놓을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자신이 옳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다투거나 변명하지 않고 의연하게 양보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수련인에게 있어서 모순은 바로 심성을 제고할 수 있는 기회이다. 충돌에 부딪혔을 때 참아낼 수 있는지, 내려놓을 수 있는지, 먼저 다른 사람을 위해 생각할 수 있는지는 곧 수련의 경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만약 속세에서의 사소한 명리의 득실조차 버리지 못하고 모순에 부딪힐 때마다 반드시 고저를 다투고 승부를 가리려 든다면, 어찌 진정한 연공인이라 할 수 있겠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