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견망】
까마득히 먼 타향에 갇힌 채 머물며,
애틋한 마음으로 화사한 봄 경치만 바라보네.
혹한 속에 피어나는 저 매화가 가장 원망스러운 것은
늘 작년 꽃으로 여겨지는 것이라네.
定定住天涯,依依向物華。
寒梅最堪恨,常作去年花。
이상은(李商隱)은 자가 의산(義山), 호는 옥계생(玉谿生), 또는 반남생(樊南生)이고. 본적은 회주(懷州) 하내(河內 현재의 하남 심양沁陽)이며, 나중에 조부모를 따라 형양(滎陽 지금의 하남 정주)으로 이주했다.
이상은은 만당(晩唐)의 유명한 시인으로, 시가 창작에 뛰어날 뿐만 아니라 그의 변문(騈文) 역시 매우 높은 문학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는 두목(杜牧)과 함께 ‘소리두(小李杜 작은 이백과 두보)’로 병칭되며, 또 온정균(溫庭筠)과 함께 ‘온리(溫李)’로 불리며 만당에서 가장 뛰어난 시인 중 하나로 꼽힌다. 우·리 당쟁(牛李黨爭)의 틈바구니에 처했던 탓에 그의 관운은 거듭 좌절을 겪었고, 평생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의 시가는 후인들에 의해 《이의산시집(李義山詩集)》으로 엮였다.
이 시 《억매(憶梅)–매화를 회상하며》는 시인이 타향에 떠돌며 관직의 길에서 곤경에 처해 있을 때 지은 것으로 여겨진다. 비록 온전한 시가 단 네 줄에 불과하지만, 고향을 떠난 고독, 더 나은 미래에 대한 동경, 그리고 재능을 알아주지 않는 세상에 대한 비애를 하나로 녹여내어 함축적이면서도 깊이 있다.
“까마득히 먼 타향에 갇힌 채 머물며,
애틋한 마음으로 화사한 봄 경치만 바라보네.”
시인은 오랫동안 하늘끝처럼 먼 타향에 머문 채 고향을 멀리 떠나 있으면서도, 마음으로는 아쉬움을 품은 채 봄날의 아름다운 풍경을 간절히 향하고 있다. ‘정정(定定)’은 오랫동안 갇힌 것처럼 머문다는 뜻으로, 마치 시인이 운명에 의해 타향에 갇혀 돌아가려 해도 돌아가지 못하는 어쩔 수 없음을 표현한다. ‘물화(物華)’는 자연계의 아름다운 경치를 가리키며, 시 속에서는 특히 화사한 봄을 연상시키고, 시인의 따뜻함, 밝음, 그리고 아름다운 미래에 대한 동경을 깃들게 한다.
사람이 고향을 떠나 타향에 있으면 종종 말로 다 할 수 없는 고독감을 느끼곤 한다. 중국인들은 흔히 “일방의 수토가 일방의 사람을 기른다(一方水土養一方人)”고 말한다. 사람이 어떤 곳에서 태어나 자라면 그곳의 산천초목과 풍토 및 인정에 이미 익숙해지기 마련이며, 일단 고향을 멀리 떠나 낯선 환경에 놓이게 되면 의지할 곳이 없다고 느끼기 쉽고 심지어 이른바 뭔가 풍토가 맞지 않는 느낌까지 받게 된다.
그러므로 시인이 그리워하는 것은 비단 고향의 경치뿐만이 아니라, 바로 고향이 상징하는 따뜻함, 평안함, 그리고 귀속감이다. 이상은 본래 감정이 예민하고 감수성이 풍부한 시인이었으나, 일생 동안 끊이지 않고 이어진 곤경과 실의는 그의 시구에 늘 지워지지 않는 애수의 층을 드리우게 했다.
“혹한 속에 피어나는 저 매화가 가장 원망스러운 것은
늘 작년 꽃으로 여겨지는 것이라네.”
겨울 매화는 원래 고결하고 아름다운 상징이며, 사람들에게 봄이 멀지 않았음을 가장 먼저 전해주는 소식꾼이다. 하지만 시인은 겨울 매화가 “가장 원망스럽다”고 말한다. 이는 겨울 매화가 너무 일찍 피어나 종종 엄동설한에 이미 꽃망울을 터뜨리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진정한 봄이 찾아오고 온갖 꽃들이 다투어 피어날 무렵에는 이미 시들어버려, 사람들의 눈에는 오직 ‘작년 꽃’으로 여겨질 뿐이기 때문이다.
시인이 매화를 쓴 것은 사실 곧 자기 자신을 쓴 것이다. 겨울 매화가 서리를 맞으며 눈보라를 꿋꿋이 견뎌내며 무리에 앞서 꽃을 피우듯, 이는 마치 시인의 재능이 일찍 드러나고 품격이 고결한 것과 같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 일찍 피어난 탓에 도리어 진정한 봄을 맞이하지 못했다. 시인 역시 헛되이 재능과 포부를 품었으면서도 끝내 그것을 펼칠 기회를 얻지 못했다. 인생의 ‘봄’이 마침내 찾아온 것만 같을 때에도 그는 여전히 먼 타향에 갇힌 채 운명의 전환을 맞이할 희망을 찾지 못했다.
그러므로 이 두 구절이 표현하는 것은 철저한 절망이라기보다는 차라리 깊은 실의와 비애에 가깝다. 봄기운이 눈앞에 다가와 있는데 자신은 마치 이미 ‘작년 꽃’이 된 것만 같고, 세상 만물은 모두 새로운 생기를 맞이하고 있는데 자신은 여전히 고독과 곤경 속에서 배회하고 있는 것이다.
머나먼 이국 타향에 있는 사람이라면 아마도 이러한 감정을 더욱 절실히 느낄 수 있을지 모른다. 세속의 관점에서 보자면 고향을 떠나는 것이 곧 타향에 있는 것이고 조국을 떠나는 것이 곧 해외에 표류하는 것이지만, 수련의 각도에서 바라보면 생명의 진정한 고향은 인간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천상에 있다. 생명에게 있어서 인간 세상이란 단지 잠시 머무는 타향에 지나지 않는다.
아마도 바로 이런 이유때문에 우리는 때때로 영문 모를 낯섦, 고독, 그리고 무력감을 느끼는지 모른다. 비록 세상의 명예, 이익, 재물, 그리고 감정을 가졌을지라도 마음 깊은 곳에서는 여전히 공허함을 느낄 수 있다. 이곳의 모든 것은 애초에 진정한 자신의 것이 아니며, 생명의 영원한 귀숙이 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이상은이 먼 타향에 머물며 아쉽게도 화사한 봄을 동경했던 것처럼, 사람이 번잡한 홍진 속에 처해 있는 것 역시 어찌 먼 타향에서 표류하며 진정한 귀환의 길을 힘겹게 찾아 헤매는 것이 아니겠는가?
오늘날 대법이 널리 전해짐에 따라, 중생은 생명의 진상을 깨닫고 반본귀진할(返本歸真) 기연을 얻게 되었다. 돌아가는 길이 이미 눈앞에 펼쳐져 있는데, 어찌 계속 홍진 속에 미혹되어 흐릿하게 주저하면서 만고에 만나기 힘든 이 기연을 놓쳐버릴 수 있겠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