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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해지미(未解之謎)】 말법말겁은 언제인가?

안녕하세요, 부요입니다. [미해지미]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눈물 흘리는 성모상

2020년 8월, 이탈리아 남부의 작은 마을 카르미아노(Carmiano)가 밤새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다. 이유는 이 마을 광장에 있는 성모상이 눈물을 흘렸는데 그것도 갈색의 피눈물(Blood Tears)이 나왔기 때문이다.

이 조각상은 1943년에 세워졌다. 당시 마을 광장에 폭탄이 떨어졌지만 뜻밖에도 폭발하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은 성모 마리아가 자신들을 보호했다고 생각하고 그녀를 위해 이 아름다운 조각상을 세웠던 것이다. 지난 77년 동안 성모의 보살핌 아래 마을은 줄곧 평안했다. 그런데 오늘에 와서 대체 누구를 위해 눈물을 흘린 것일까?

사실 이 사건이 세계적으로 성모상이 눈물을 흘린 최초는 아니다. 얼마 전 러시아의 외딴 마을 우루소보(Urusovo)에서도 성상(聖像)이 눈물을 흘린 적이 있다. 2020년 2월 8일, 성 미카엘 성당(Church of St. Michael the Archangel)에 18세기에 그려진 ‘신의 어머니’가 기적적으로 “눈물”을 흘린 적이 있다. 당시 눈물이 성상(聖像)의 수려한 얼굴을 가렸고, 큰 눈이 우울과 슬픔으로 가득했다. 그 후로 이 성상은 이틀에 한 번꼴로 오랫동안 계속 울었다.

그렇다면 성상의 눈물은 대체 어디에서 왔을까? 과학자들이 눈물에 대해 화학 분석을 해보니 결과는 오히려 더욱 놀라웠다. 눈물의 주성분은 성상의 재료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몰약(沒藥)이라는 약재였기 때문이다.

몰약은 전에 예수가 태어날 때 동방박사가 가져온 3가지 선물 중 하나이기 때문에 기독교 신앙에서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나머지 두 가지는 금과 유향이다. 몰약은 예수가 세상 사람들을 위해 죽은 것이 소중함을 의미한다. 몰약은 일부 기독교 의식에서 종종 귀한 향으로 사용되는데 또한 성유(聖油)를 만드는 원료의 하나다.

그러므로 눈물에서 몰약이 발견된 것은 이는 신적(神跡 신의 자취)이라고 여기는 신도들의 신념을 더욱 확고히 했다. 그들은 성상이 눈물을 흘린 것은 세계적으로 중대한 변화 내지는 위험한 사건이 나타날 전조로 여겼다. 예를 들면 자연재해나 전쟁 등이다. 또 핏빛 눈물은 엄청난 시련을 예고한다. 나중에 되돌아보면 정말 그런 일이 발생한 것은 아닐까?

실제로 1991년 이후 러시아에서는 성상이 눈물을 흘리는 현상이 여러 곳에서 나타났다. 21세기에 들어와서는 전 세계적으로 더욱 빈번하게 등장했다. 가령 2004년 필리핀 남부 작은 어촌마을의 아기예수상, 2007년 미국 텍사스의 한 교회의 아기예수상, 2018년 아르헨티나 북서부 한 교회의 성모 마리아상 등이다.

이런 현상은 기독교 신앙권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중국의 유명한 낙산대불(樂山大佛)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났다.

낙산대불이 눈을 감고 눈물 흘리다

낙산대불은 사천(四川)성 낙산(樂山)시 성동쪽에 세 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있는 미륵좌상(彌勒坐像)이다. 높이가 71m로 산 자체가 하나의 부처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대불은 건립된 지 1200여 년이 지난 세계에서 가장 큰 석각대불이다.

최근 수십 년간 이 미륵불상은 여러 차례 눈을 감거나 눈물을 흘렸다.

처음 눈을 감은 현상은 1962년에 발생했다. 당시 중국에서는 인위적인 이유로 대기근이 발생했고 아사자가 도처에 널려 있었다. 강가에 앉은 대불(大佛)은 매일 셀 수 없이 많은 시신이 강물로 흘러가는 것을 보고 눈을 감았다. 현지인들은 대불이 차마 더는 눈 뜨고 볼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대불이 눈을 감는 것은 불길한 일로 여겨졌다. 그래서 정부에서는 즉각 대불의 눈을 다시 새겼다.

그러나 눈을 다시 뜨게 된 뒤로도 재해 상황이 호전되지 않았다. 대불은 곧 다시 눈을 감았다. 이번엔 또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1963년이었다. 정부에서는 또 4천만 위안을 동원해 대불을 씻었지만 대불 눈가의 슬픔과 선명한 눈물 자국을 지울 수는 없었다.

그러다, 1976년 7월 당산(唐山)에서 규모 7.8의 대지진이 발생해 수십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지진 후 사천성 사람들은 낙산 대불이 얼굴에 노기를 띠며 다시 눈을 감고 눈물을 흘리는 것을 발견했다.

대불이 가장 최근에 눈물을 흘린 것은 1994년이다. 6월 7일 유람선 한 척이 대불 앞에서 떠내려가자 많은 관광객들이 대불을 보고 눈물을 펑펑 쏟았다. 이번에는 대불이 또 누구 때문에 슬퍼했을까?

흥미로운 것은 대불이 눈을 감은 이 일에 관해 정부에서 이례적으로 유언비어라며 반박하지 않았다. 또 사진이 선명했고 또 실제로 가서 본 사람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대불이 눈을 감는 현상은 그저 환경오염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다량의 산성비가 불상을 씻어내면서 상층 눈꺼풀의 멜라닌 색소 농도가 진해져서 마치 낙산대불이 눈을 감은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이 해석에 관하여 모두가 어진 사람은 어진 사람을 보고 지혜로운 사람은 지혜를 본다. 그러나 민간에서는 대불이 영험함을 나타냈다(大佛顯靈)는 설을 지지하는 이들이 많다. 역사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인간 세상에 나타난 기이한 현상은 바로 하늘의 경고라는 것을 아는데 예로부터 늘 그랬다.

과거 남북조 시기에 낙양(洛陽)은 북위(北魏)의 도읍이었다. 성 안에 평등사(平等寺)가 있었고 사찰 안에 아주 장엄한 큰 불상이 있었다. 북위 말년 이 불상은 4년 동안 세 번 눈물을 흘렸고, 매번 눈물을 흘린 후 낙양성이 큰 재난을 겪었다. 불상이 처음 눈물을 흘리자 낙양 사람들이 모두 모여 구경을 나갔다. 얼마 후 반군(反軍)이 성에 들어와 수많은 사상자를 냈다.

불상이 두 번째로 눈물을 흘리자 반신반의했는데, 두 달 후 낙양성이 다시 약탈당했다.

불상이 세 번째 눈물을 흘리자 모두들 분주히 서로 알리면서 걱정했다. 과연 얼마 후 반군이 다시 입성했다.

“역사를 거울로 삼으면 흥망을 알 수 있다”고 한다. 그러므로 지금 세상에 또 불상이 눈물을 흘리는 일이 생겨나고 그것도 전 세계적으로 생겨날 때면 세상의 도가 변하는 것이 아닐까 하고 걱정하는 사람이 있을 수밖에 없다.

말법시기(末法時期)

대승불교에서는 석가모니가 전한 불법(佛法)이 세간에서 유전되는데 세 시기가 있다고들 한다. 즉, 정법(正法)시기, 상법(像法)시기 및 말법(末法)시기가 그것이다. 말법시기에 이르면 사람들은 불법을 벗어나기 시작한다. 최후에 이르면 석가모니가 전한 법이 더는 세인을 구도하는 작용을 하지 못하고 하나씩 소멸되는데 이것이 바로 말법시기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말법시기로 진입하는가에 대해 불경에서도 서로 다른 설법이 있는데 어떤 경서는 천년 전부터라고 하고 어떤 경서는 5백년 전부터라고 한다. 어쨌든 21세기가 된 오늘날은 말법시기의 범주에 속한다. 아울러 최후 말법시기일 가능성이 아주 크다. 왜 이렇게 말하는가? 당시 불타가 말법말겁(末法末劫)시기에 대한 예언으로 지금 사회를 되돌아보면 분명히 알 수 있을 것이다.

대장경에서 《불설법멸진경(佛說法滅盡經)》은 석가모니부처가 세상을 열반할 때 장래를 예언한 것이다. 당시 그는 말법말겁의 때에 자신이 전한 불법이 장차 괴멸(壞滅)된다고 했다. 그는 이 때 인류사회를 ‘오역탁세(五逆濁世)’로 ‘마도(魔道)가 흥성’한다고 했다.

이때 사찰의 승려는 화려한 옷을 입을 뿐만 아니라 술을 마시고 고기를 먹는다. 또 살생하면서 맛있는 것을 탐하니 자비심이 없고 더욱이 서로가 미워한다. 경건하게 부처를 수련하는 이들은 오히려 이들의 질투와 비방을 받아 사찰에서 쫓겨난다. 만약 이 말이 2500년 전 석가모니가 한 말이라고 알려주지 않는다면 당신은 아마 지금 어느 사찰에서 정말로 발생한 일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이때 인류 사회에는 또 수많은 비정상적인 현상들이 나타난다. 우선 기상이변과 천재지변이 빈번해지는데 “홍수와 가뭄으로 곡식이 익지 않고 역병이 유행해 사망자가 많아진다.” 최근 몇 년간 역병이 사라지지 않은 것을 보면 석가모니불의 예언은 그야말로 신기한 예언이 아닌가!

둘째, 사회도덕이 보편적으로 추락해 “탐관오리가 멋대로 날뛰고 악인이 제 세상을 만나는데 모두들 혼란(亂)속에서 즐거움을 얻고 더는 선(善)을 아름답게 여기지 않는다.” 이 역시 현재의 장면이 아닌가?

더 신기한 것은 석가모니는 심지어 시간이 빨라진다고 언급했다. “해가 짧아지고, 사람의 목숨이 짧아져서 사십이면 백발이 된다.” 최근 몇 년간 시간이 빨라졌다는 것은 여러분 모두 공감하지 않는가? 마치 아무 일도 하지 않은 것 같은데 날이 벌써 저물고, 또 눈 깜짝할 사이에 백발이 되는데 한평생이 이렇게 지나간다.

이쯤 되면 아마 어떤 이들은 말할 것이다. 불법(佛法)은 금강처럼 파괴되지 않는다고 하는데 왜 천 년 후에 사람이 불법에서 벗어나거나, 아니면 법이 더 이상 영통하지 않게 되는가? 여기서 우리 불교 중의 작은 일화를 하나 들어보자.

석가모니가 열반한 후 대가섭(大迦葉)이 그의 의발을 이어받았다. 대가섭이 열반한 후 그의 뒤를 이은 사람은 석가모니의 또 다른 대제자 아난(阿難)이었다. 아난이 120세가 되던 해, 어느 날 한 우연히 한 젊은 승려가 경건하게 뭔가를 외는 소리가 들렸다.

“만약 인생 백년에 물가의 학을 보지 못하면 차라리 하루를 살더라도 볼 수 있는 것만 못하다.”

대체 이 학은 어느 곳의 신조(神鳥)인가? 왜 사람이 평생 한 번은 보아야 한단 말인가?

아난이 다시 곰곰이 생각해 보다가 자신도 모르게 실소를 터뜨렸다. 원래 이 젊은이가 외운 구절은 “만약 인생 백년에 생멸법(生滅法)을 이해하지 못하면 하루를 살더라도 이해하는 것만 못하다.”는 것이다. 대체 왜 생멸법이 물가의 학으로 변했는지는 알 수 없다.

아난은 이에 이 젊은 승려를 바로잡도록 정성껏 도와주었다. 젊은 스님이 돌아가서 자기 사부에게 알렸다. 그러자 그 사부가 듣고는 오히려 기분 나빠 하면서 그에게 아난은 이제 나이가 많아서 기억력이 감퇴했으니 그의 충고를 따르지 말라고 했다. 자신이 가르친 것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젊은 승려는 사부의 말을 듣고 다시 아난에게 알려주었다. 아난은 한숨을 크게 내쉬며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가 원문을 그대로 외워 들려주었지만, 남은 여전히 제멋대로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방법이 없을까? 석가모니 부처가 열반한 지 몇십 년밖에 안 됐는데, 이렇게 불법을 잘못 해석하는 사람이 있었다. 아난은 마음이 울적해졌고 사부님과 이미 열반한 여러 대제자(大弟子)들을 그리워하면서 이 세상에 대한 미련이 더더욱 사라져 머지않아 열반했다.

사실 석가모니가 세상에서 법을 전할 때 그의 법은 문자로 기록되지 않았다. 때문에 승려들은 자신이 기억하고 이해한 것에 의지해 불법(佛法)을 배웠다. 석가모니 살아계실 때는 제자들이 확실하지 않거나 모르는 것이 있으면 사존께 가르침을 청할 수 있었지만, 석가모니가 열반한 후 여러 승려들이 모여 단지 단체 결집밖에 없었다. 즉, 단체로 암송하고 토론하는 방법을 통해 석가모니부처가 살아 있을 때 말씀을 수집하고 정리했는데 이 과정에 수백 년이 걸렸다.

또한 석가모니 본인이 교정에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류를 피할 수 없었다. 당시의 그의 원래 말은 대부분 완전히 기록되지 못했다. 그렇다면 2천여 년이 지난 지금 불경을 번역하고 해석하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왜곡과 변조가 있었겠는가?

불법은 아직 남아 있지만 진정으로 불법을 이해하는 사람이 갈수록 줄어드는 것이 아마도 석가모니가 말한 말법시기에 그의 법이 사람을 제도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아난의 이야기가 전해진 것을 보면 아마 옛 승려들이 말법시기 일부 현상을 보고 이 이야기를 빌려서 불법이 괴멸(壞滅)의 시기에 접어들어 만약 어떤 사람이 함부로 불법을 해석한다면 경솔히 이에 미혹되지 않도록 일깨워 주려 했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말법말겁 이후에는 어떻게 될까?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갈라지면서 인류가 사라지게 될까? 석가모니는 그렇지 않다고 했는데 때가 되면 미래불(未來佛)인 미륵이 나타나 세상을 접수한다고 했다. 말겁의 시기를 지난 인류는 아름다운 시기로 들어설 것이다. 도가의 말에 따르면 바로 “비극태래(否極泰來 역주: 어려움이 다하면 복이 온다는 뜻. 여기서 비와 태는 모두 주역의 괘상으로 비괘는 불운 태괘는 형통한 운을 상징한다.)”이다.

그렇다면 미래불인 미륵은 언제 나타날까? 우리가 금생에 만날 수 있을까?

미해지미(未解之謎) 저는 부요입니다, 다음에 뵙겠습니다.

(중문 대기원에서 전재)

 

원문위치: https://www.epochtimes.com/gb/22/7/25/n1378832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