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제자 한매(寒梅)
【정견망】
제갈량은 삼국시대 촉나라의 승상이자 걸출한 대신(大臣), 군사가, 서예가였다. 살아생전 무향후(武鄉侯)에 봉해졌고, 사후 충무후(忠武侯)라는 시호를 받았다. 동진(東晉) 시기에는 그의 군사적 재능을 높이 평가해 특별히 무흥왕(武興王)으로 추봉하기도 했다. 그의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출사표(出師表)》, 《계자서(誡子書)》 등이 있다. 또한 목우유마(木牛流馬), 공명등(孔明燈) 등을 발명했고 연노(連弩)를 개량해 한 번에 화살 열 발을 동시에 쏠 수 있는 ‘제갈연노’를 만들었다. 그는 건흥 12년(234년) 오장원(지금의 보계寶雞 기산 경내)에서 세상을 떠났다.
《마전과(馬前課)》는 제갈량이 한가한 때에 창작했다고 전해진다. 《마전과》는 총 14괘(掛)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 괘마다 하나의 왕조를 대표한다. 제갈량은 매번 출병하기 전 스스로 점을 쳤는데 그 결과가 매우 영험했다. 출병 직전 사용했기에 이름을 ‘마전과’라 지었다. 후대에 《마전과》를 사용한 사람도 매우 많았고 정확도 또한 높았기에, 덕분에 《마전과》가 온전하게 전해 내려올 수 있었다. 명조 《삼언양박(三言兩拍)》 중 〈백승이 찻집에서 인종을 만나다〉 편에서도 묘(苗) 태감이 《마전과》를 사용해 어떻게 조욱을 만날지 알아내는 장면이 나온다. 이 역시 아름다운 일화이니 관심 있는 분들은 한 번 찾아보길 권한다.
아주 특이한 점은 《마전과》가 점서임에도 불구하고 제갈량 이후 각 조대를 묘사하고 있어, 사실상의 예언서라는 것이다. 사실 점술은 세상에 전해지기 위한 방편일 뿐, 예언이야말로 《마전과》가 존재하는 진정한 목적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아마 벌써 내용이 바뀌거나 실전(失傳)되었을 것이다. 당나라의 《추배도(推背圖)》가 한 예인데, 《추배도》 역시 상당히 정확하다고 전해지나 그 정확함 때문에 도리어 사람들이 고의로 각 단락의 순서를 바꾸어 놓았다. 이로 인해 후대 사람들이 《추배도》를 통해 미래를 예측하기란 매우 어렵게 되었다.
《마전과》를 제갈량이 한가할 때 지었다는 말은 조금 견강부회적인 면이 있다. 이토록 정확한 것은 누군가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주 문왕의 팔괘(八卦)와 마찬가지로 이것 역시 사전(史前) 문명의 산물이며, 제갈량은 단지 그것을 발견하여 세상 사람들에게 전해준 것뿐이다. 제갈량이 발명한 목우유마, 공명등, 연노 등도 모두 사전 문명의 산물일 것이며, 어쩌면 제갈량이 자신의 이전 생의 기억을 떠올려 사람들에게 전해준 것일지도 모른다. 석가모니가 보리수 아래 49일 동안 앉아 있었다고 해서 갑자기 모든 것을 깨달은 것이 아니라 사실은 자신의 이전 기억을 되살린 것과 같은 이치다. 제갈량 또한 그러했다.
제갈량의 총명함은 점괘의 형식을 빌려 자신의 예언이 민간에서 대대로 정확하게 전승되도록 한 데 있다. 《마전과》의 앞 10괘는 각 조대를 썼으나, 뒤의 4괘야말로 진정한 목적이다. 그것은 바로 오늘날 파룬따파(法輪大法)가 널리 전파될 것을 예언하고 있다. 역사상의 수많은 문화는 자세히 음미해 보면 모두 오늘날의 파룬따파와 연관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다만 우리가 소위 유물주의(唯物主義)의 영향으로 믿으려 하지 않을 뿐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1288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