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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주요 예언 탐구 (1)

——제1편 강자아 《만년가(萬年歌)》

명오(明奧) 정리

【정견망】

當年磨劍在崑崙 그해에 곤륜산에서 칼을 갈다가
天鉤直釣渭水濱 위수 가에서 바늘 없이 낚시했네
成就帝師千古業 제왕의 스승이 되어 천고의 위업 이루고
覆殷興周更封神 은을 멸하고 주를 일으켜 봉신(封神)했다네

백가종사(百家宗師) 강자아

여기서 말하는 강자아(姜子牙)는 바로 강태공(姜太公)으로 서주의 문왕과 무왕을 도와 상(商)을 무너뜨린 최고의 책사이자 개국공신이며 또한 제(齊) 문화를 창시했다. 역대 전적에서는 모두 강자아야말로 도가, 유가, 법가, 병가, 종횡가 모두 그를 근본으로 삼으며 그를 ‘백가종사(百家宗師)’라 부른다. 동시에 또 대예언가이기도 한다. 《건곤만년가(乾坤萬年歌)》는 바로 그가 후세에 남긴 것이다.

강태공의 생애

강태공은 성이 강(姜)씨 또는 여(呂)씨이고 이름은 망(望) 또는 상(尙)이며 자가 자아(子我)다. 호는 비웅(飛熊)이며 염제 신농씨의 51세손이자 백이(伯夷)의 36세손이다. 주(周) 문왕, 무왕, 성왕, 강왕 4대에 걸쳐 태사를 지냈고 제나라 왕이었다. 부인의 이음은 신강(申姜)이며 모두 13명의 아들을 두었다. 이름은 각각 정(丁), 임(壬), 연(年), 기(奇), 방(枋), 소(紹), 낙(駱), 명(銘), 청(青), 이(易), 상(尚), 기(其), 좌(佐)이다. 딸인 읍강(邑姜)이 무왕(武王)의 비로 황후가 되었다.

역사 기록에 따르면 강태공은 은나라 무정 8년 기유년 8월 3일 지금의 산동성 일조(日照)시에서 태어나 강왕 6년(무진년)에 주나라 수도인 호경에서 사망했다. 향년 139세. 태공이 사망한 후 주나라로 돌아와 장례를 지냈고 묘지는 문왕의 능에서 1킬로미터 떨어진 섬서성 함양시 주릉향에 있다. 산동성 치박시 임치(臨淄)의 강태공사(姜太公祠)에 있는 무덤은 의관총이다.

강태공 인생의 절반은 한미(寒微)했다. 주인을 제대로 만나지 못해 여기저기 떠돌았지만 그는 차분한 마음으로 인내심을 갖고 풍운(風雲)을 관찰하며 시기를 기다렸고 마침내 밝은 주인을 만났다. 희창(姬昌)을 보좌해 덕을 닦고 무(武)를 일으켜 주(周)를 흥성하게 했다. 무왕이 주(紂)를 토벌할 때 태공은 군사(軍師)가 되어 목야 전투에서 상나라를 멸망시켜 가장 큰 공을 세웠다. 서주 초기 분봉할 때 강태공은 제나라 군주로 봉해졌다. 그는 나라를 다스리는 방략이 있어 강대한 나라를 만들었고 여러 세대에 걸쳐 유풍을 남겼고 나중에 제환공(齊桓公)이 9차례 제후들을 회합해 천하를 바로잡는 오패(五霸)의 으뜸이 되는 기초를 다져놓았다.

강태공 관련 일화들

강자아는 중국 고대 역사에서 아주 유명한 인물로 도교 및 민간에서 상당히 높은 지위를 차지한다. 그는 귀족 출신으로 조상의 봉지가 여(呂)였기 때문에 여상(呂尙)이라 불렸다. 강자아는 산동성 연해 지역에서 태어났으며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지혜로웠다. 당송(唐宋) 이전에 강태공은 역대 황제로부터 ‘무성(武聖)’으로 봉해졌고 당 숙종 때는 무성왕(武成王)에 봉해졌다. 송 진종 때는 또 강태공을 ‘소열무성왕(昭烈武成王)’에 봉했다. 원조(元朝)에 들어와 민간에서 강태공에 대한 일부 신화와 전설이 더해졌다. 명 만력(萬曆) 연간에 들어와 허중림(許仲琳)이 창작한 《봉신연의(封神演義)》란 소설이 나온 후부터는 사람에서 신(神)이 되었고 민간에서 널리 신봉되었다.

강자아에 관한 이야기는 역사적으로 여러 가지 일화가 전해지는데 그중 하나는 강태공의 곧은 낚시에도 원하는 자는 걸려든다는 것이다.

전설에 따르면 강태공이 곧은 낚시를 한 것은 물고기를 잡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미끼로 삼아 원하는 사람을 얻으려는 것이다. 그는 문왕의 중용을 받기 전에는 위수 강가에 은거해 살았다. 그곳은 주족(周族)의 지도자 희창(주 문왕)이 통치하던 지역이다. 그는 희창의 관심을 끌어 공업(功業)을 세우고자 한 것이다.

태공은 늘 반계(磻溪)에서 낚시를 했다. 일반인들은 낚시할 때 바늘을 구부려 갈고리로 만들고 위에 맛있는 미끼를 건 후에 물속에 담가 물고기를 유인한다. 하지만 태공의 낚시 바늘은 곧고 또 미끼도 없어서 물속으로 가라앉지 않았고 수면에서 석 자 높이에 있었다. 그는 낚시대를 높이 걸어두고는 혼잣말을 했다.

“살고 싶지 않은 물고기들아 너희가 원한다면 스스로 낚이거라!”

어느 날 한 나뭇꾼이 근처에 왔다가 태공이 미끼도 없는 곧은 낚싯대로 낚시하는 것을 보고는 물어보았다.

“어르신, 이렇게 낚시를 하시면 100년이 지나도 한 마리도 낚을 수 없습니다.”

그러자 태공이 낚싯대를 들고는 말했다.

“자네 말이 맞네! 나는 물고기를 낚으려는 것이 아니라 왕(王)이나 후(侯)를 낚으려는 것이라네!”

태공의 이런 특이한 낚시법이 마침내 희창의 귀에 들어갔다. 희창은 이 사실을 알고는 곧 병사를 한 명 파견해 그를 불러오게 했다. 하지만 태공은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낚시에만 열중하면서 이렇게 혼잣말을 했다.

“낚시를 하는데 물고기는 걸리지 않고 새우가 와서 시끄럽게 구는구나!”(파견된 병사를 새우로 비유한 것)

희창이 이 병사의 보고를 들은 후 곧 한 관원을 파견해 태공을 초청하게 했다. 그러나 태공은 여전히 아무런 대꾸도 없이 낚시를 하면서 “낚시를 하는데 큰 물고기는 걸리지 않고 작은 물고기만 시끄럽게 구는구나!”(관원을 작은 물고기에 비유)라고 했다.

희창이 이에 비로소 그가 현재(賢才)임을 알아보고 자신이 직접 그를 초청하는 것이 옳다고 여겼다. 이에 3일간 소식(素食)하고 목욕재계한 후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두터운 예를 갖춰 반계로 직접 가서 태공을 초빙했다. 태공은 그가 진심으로 자신을 초빙하러 온 것을 보고는 곧 그를 위해 일하겠다고 대답했다. 나중에 강상은 문왕을 도와 나라를 중흥시켰고 또 아들인 무왕 희발(姬發)을 도와 상을 멸망시켰다. 이렇게 자신의 공업을 세우는 소원을 이뤘기 때문에 강태공의 곧은 낚시에도 원하는 자는 걸려든다는 고사성어가 생겨났다.

민간의 전설에 따르면 당시 문왕이 태공을 만날 때 태공의 도덕이 아주 높은 것을 알고는 태공을 수레에 태우고 자신이 밀었다고 한다. 그곳이 마침 모래밭이었는데 문왕이 8백 걸음을 간 후 움직이지 않았다. 이에 태공은 문왕에게 “장차 8백년 강산을 누리실 겁니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민간 전설에 따르면 당시 강자아가 있던 상의 군주는 주왕(紂王)이었는데 아주 잔혹한 사람이었다. 그의 통치 기간에 전쟁이 끊이지 않았고 강자아는 전란을 피하기 위해 중국 북방의 요녕(遼寧) 지역에 40년을 은거했다고 한다. 나중에 섬서성 종남산(終南山)으로 왔다. 이곳에서 그는 늘 위하(渭河)에 나가 낚시를 했다. 그러나 3년간 단 한 마리도 낚지 못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곧은 낚시를 했다.

그러자 사람들이 모두 그를 비웃었지만 그는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신기한 것은 나중에 정말 한 마리 물고기가 걸렸는데 물고기 뱃속에서 한 권의 병법서가 나왔다고 한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이날 밤 주 문왕이 꿈을 꾸었고 꿈속에 한 고인(高人)을 만났다. 그리고는 다음날 강자아를 만난 것이다. 강자아가 문왕에게 자신의 상황을 알려주자 문왕은 마침 적을 물리치고 왕조를 세우기 위해 찾던 인재임을 알아보고 이렇게 말했다.

“제 선조이신 태공(太公)께서 진작에 당신에게 희망을 걸었습니다.”

이에 후인들이 그를 가리켜 태공망(太公望)이라고 했고 민간에서는 일반적으로 강태공이라고 불렀다. 문왕은 그에게 아주 높은 지위를 주었고 또한 그의 도움을 받아 상조(商朝)를 소멸시켰다. 이후 중국 역대 왕조마다 그를 위한 사당을 만들어주었고 도가(道家)에서는 그가 하늘에 올라가 신선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강태공에 대한 또 다른 이야기로는 “강태공이 이곳에 계신다”는 일화가 있다. 무왕이 천하를 통일한 후 제후둘을 분봉할 때 태공을 관단령(灌壇令)으로 삼아 특별한 명령을 내려 태산(泰山) 지역 신선들을 기강을 바로 잡고 이 지역의 구름과 비를 다스리게 했다. 이후 수년간 태산 주위의 기후가 고르고 오곡이 풍성해지자 만백성이 경축했고 무왕도 아주 기뻐했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밤 무왕이 아주 이상한 꿈을 꾸었다. 꿈속에 그가 어느 지역을 순행하는데 아주 예쁜 부인이 길을 막고 곡을 했다. 무왕이 이유를 묻자 그 부인이 말했다. “저는 동악 태산 산신의 딸입니다. 지금 혼기가 차자 부친께서 저를 동해로 시집보내려 하십니다. 저는 동해로 가고 싶지만 관단령이 직무를 지켜 함부로 큰 바람과 비를 내릴 수 없어 동해로 갈 방법이 없습니다. 만약 큰 바람과 비를 내린다면 백성들의 농사와 집을 망치게 되는데 강태공의 명성이 하루아침에 훼손되지 않겠습니까? 때문에 제가 우는 것입니다.”

무왕이 정신을 차린 후 이 꿈을 생각해 급히 태공을 불러 물어보았다. 태공이 무왕을 만나러 오던 그날 태산 지역에 큰 바람과 폭우가 내렸고 태산 산신의 딸은 태공이 없는 틈을 타서 비바람을 일으켜 동해로 간 것이다. 무왕은 태공이 봉지를 잘 다스리고 정치적인 업적이 뛰어난 것을 알고 그를 대사마(大司馬)로 승진시켰다.

그러므로 민간에 전해진 이런 이야기들을 통해 태공의 위엄이 제신(諸神)과 귀괴(鬼怪)들마저 누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가 있는 것만으로도 귀신들이 함부로 비바람을 일으킬 수 없었던 것이다.

때문에 당대(唐代) 이래 태성(泰城 지금의 산동성 태안시)의 거리 곳곳 요지마다 모두 “강태공이 이곳에 계시니 제신(諸神)들은 귀위(歸位)하라”고 새긴 벽돌로 벽을 쌓아 요괴들을 항복시켰는데 상당히 효험이 있었다고 한다.

이상에서 볼 수 있다시피 강태공과 관련된 많은 전고들이 있으며 중국 역사와 문화 속에서 강태공이 아주 중요한 인물임을 알 수 있다. 그가 남긴 예언 역시 우리가 진지하게 연구하고 검토해 볼 가치가 있다.

《건곤만년가(乾坤萬年歌)》

간단한 소개

중국 예언 중에서 상말주초(商末周初 상나라 말기에서 주나라 초기) 강자아의 《건곤만년가》는 다른 예언들처럼 유명하지도 않고 그래서 아는 사람도 얼마 없다. 하지만 중국 최초로 사회의 흥망성쇠를 예언한 큰 예언이자 지금까지도 많은 부분들이 다 해독되지 못했다. 때문에 이곳에서 특별히 이 예언을 첫 자리에 놓고 시험 삼아 해독해보고자 한다. 《건곤만년가》 시해는 삼국시대 이전 부분을 중점으로 하는데 왜냐하면 삼국 이후는 제갈량의 《마전과(馬前課)》가 있기 때문이다. 흥미가 있는 독자들은 이 속에 담긴 비밀을 파헤쳐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건곤만년가(乾坤萬年歌)

太極未判昏已過 風后女媧石上坐 
三皇五帝已相承 宗派源流應不錯 

而今天下一統周 禮樂文章八百秋 
串去中直傳天下 卻是春禾換日頭 

天下由來不固久 二十年間不能守 
卯坐金頭帶直刀 削盡天下木羊首 

一土臨朝更不祥 改年換國篡平床 
泉中湧出光華主 興復江山又久長 

四百年來更世界 日上一曲懷毒害 
一枝流落去西川 三分社稷傳兩代 

四十年來又一變 相傳馬上同無半 
兩頭點火上長安 委鬼山河通一占 

山河既屬普無頭 離亂中分數十秋 
子中一朱不能保 江東復立作皇州 

相傳一百五十載 釗到兔兒平四海 
天命當頭六十年 肅頭蓋草生好歹 

都無真主管江山 一百年前擾幾番 
耳東入國人離亂 南隔長安北隔關 

水龍木易承天命 方得江山歸一定 
五六年來又不祥 此時天下又紛爭 

木下男兒火年起 一掃煙塵木易已 
高祖世界百餘年 雖見干戈不傷體 [高祖를 太祖로 쓴 곳도 있다]

子繼孫承三百春 又遭離亂似瓜分 
五十年來二三往 不真不假亂為君 

金豬此木為皇帝 未經十載遭更易 
肖郎走出在金猴 穩穩清平傳幾世 

一汴二杭事不巧 卻被胡人通占了 

三百年來棉木終 三閭海內去潛蹤 

一兀為君八十載 淮南忽見紅光起 

八隻牛來力量大 日月同行照天下 
土猴一兀自消除 四海衣冠新彩畫 

三百年來事不順 虎頭帶土何須問 
十八孩兒跳出來 蒼生方得蘇危困 

相繼春秋二百餘 五湖雲擾又風顛 
人丁口取江南地 京國重新又一遷 [人丁口는 石이다]

兩分疆界各保守 更得相安一百九

那時走出草田來 手執金龍步玉階 
清平海內中華定 南北同歸一統排 [田을 面으로 한 판본도 있다][排를 非로 한 판본도 있다]

誰知不許乾坤久 一百年來天上口 [天上口는 吳다]
木邊一兔走將來 自在為君不動手 

又為棉木定山河 四海無波二百九 

王上有人雞上火 一番更變不須說 

此時建國又一兀 君正臣賢垂黼黻 [君順臣順垂黻黻로 된 판본도 있다]
平定四海息干戈 二百年來為社稷 [兀이 人으로 된 판본도 있다]

二百五十年中好 江南走出釗頭卯 
一兀山河又二分 幸不全亡莫嫌小 [一兀이 어떤 판본에는 大好로 되어 있다]

兩人相和百忙中 治世能人一ㄙ弓 [人이 主로 된 판본도 있다] [能人이 天子로 된 판본도 있다]
江南江北各平定 一統山河四海同 

二百年來為正主 一渡顛危猴上水 
別枝開花果兒紅 復取江山如舊許 

二百年來衰氣運 任君保重成何濟 
水邊田上米郎來 直入長安為皇帝 [為皇帝가 加整頓으로 된 판본도 있다]

行仁行義立乾坤 子子孫孫三十世 

我今只算萬年終 再復循環理無窮 
知音君子詳此數 今古存亡一貫通 [貫이 變으로 된 판본도 있다]

건곤만년가 주석 : 한나라 엄광(嚴光)

1. 太極未判昏已過 風后女媧石上坐

태극이 아직 갈라지기 전에 혼돈이 점차 사라지고
풍후(風后 복희)와 여와가 돌 위에 앉아 있네

설명: 유형은 무형에서 생기니 무형이 무극이 되고 유형은 태극이 된다.
상고 시기 풍후(풍은 성이고 후는 제후란 의미)인 복희와 여와가 중화민족의 시조가 되었다는 뜻이다.

2. 三皇五帝已相承 宗派源流應不錯

삼황과 오제가 서로 이으니 이러한 종파(宗派)의 원류는 마땅히 착오가 있어선 안 된다.

설명: 삼황(三皇)은 복희(伏羲), 여와(女媧), 신농(神農)을 가리키는 경우도 있고 복희, 신농, 수인을 가리키기도 한다. 오제는 헌원황제(軒轅黃帝), 전욱(顓頊), 제곡(帝嚳), 당요(唐堯)와 우순(虞舜)을 말하는데 삼황오제시대는 대도(大道)가 아주 밝았던 시대로 8분의 신성한 군주가 천하를 다스려 만국이 서로 협력했고 중국 오천 년 문명의 튼튼한 기초를 다졌다.

3. 而今天下一統周 禮樂文章八百秋 

지금 천하는 주나라가 통일했으니 예악과 문장이 발달해 800년을 가리라

설명: 태공(太公) 강자아(姜子牙)는 상나라 말기에서 주나라 초기의 인물이다. 주나라는 서주(西周)와 동주(東周)를 합해 모두 874년을 유지했기 때문에 흔히 800년이라고 말한다. 여기서는 대략적인 숫자만을 말했을 뿐이다.

4. 串去中直傳天下 卻是春禾換日頭 

여(呂)씨에 천하를 전하니 진(秦)이 된다

해설: 관(串)에서 가운데 직선을 없애면 여(呂)가 되는데 이는 진시황의 친부로 알려진 여불위(呂不韋)를 지칭한다. 춘(春)에서 아랫부분의 日을 禾로 바꾸면 진(秦)이 된다.

즉, 두 주나라를 잇는 왕조는 바로 여씨의 진나라란 뜻이다.

5. 天下由來不固久 二十年間不能守

천하의 유래가 굳고 오래지 못하여 20년을 지킬 수 없다

설명: 진시황이 동주를 멸하고 천하를 통일한 후 제위에 12년을 있었고 진이세가 3년, 자영(子嬰)이 46일 재위에 있었으니 이를 다 합해도 15년에 불과하다. 여기서 20년이라고 한 것은 대략적인 수를 말한 것이다.

6. 卯坐金頭帶直刀 削盡天下木羊首 

유[劉 卯+金+刀]씨가 천하를 차지해 목양(木羊 을미년)의 해에 왕이 된다

설명: 劉를 파자하면 묘(卯)가 금(金)위에 앉고 수직으로 세운 칼이 있다. 즉 한고조 유방을 가리킨. 고조 유방은 BC 206년 을미년에 한나라를 세워 한왕(漢王)에 등극하는데 전통 간지법에 따르면 을미는 목양(木羊)에 해당한다. 즉 206년 한나라가 건립되고 이후 천하를 통일한다는 뜻이다.

7. 一土臨朝更不祥 改年換國篡平床

왕(王 一土 왕망)이 조정에 임하니 더욱 상서롭지 못하니 연호와 국명을 바꾸고 평왕(平王)을 침대(床)에서 독살한다.

설명: 한을 찬탈하는 자는 왕망이며 한조(漢朝)를 신(新)으로 바꾸고 스스로 신황제를 자칭한다.

8. 泉中湧出光華主 興復江山又久長 

샘 속에서 빛의 주인이 나오니 강산을 부흥시켜 또 오래간다

설명: 샘(泉)을 파자하면 백수(白水)가 되는데 남양 백수향 출신의 광무제 유수(劉秀)가 왕망을 멸망시키고 한실을 부흥하니 광명하고 위대한 군주가 되어 강산을 오래 유지한다.

동한은 25년 을유(乙酉)~220년 경자(庚子)까지 약 200년을 유지한다.

9. 四百年來更世界 日上一曲懷毒害 

400년 만에 세계가 바뀌니 해(日)위에 곡(曲)이 독해를 품는다

서한과 동한을 합하면 양한(兩漢)은 모두 410년이니 이를 4백년이라 한 것이다. 日上一曲은 조(曹)가 되니 것은 조조(曹操)가 독해를 품는다는 것은 조씨가 한을 찬탈한다는 뜻이다.

10. 一枝流落去西川 三分社稷傳兩代

한 가지가 서천에 가니 사직이 3분되어 2대를 간다

설명: 한 가닥 가지란 원래 한실의 종친인 유비(劉備)가 사천지방으로 가서 촉(蜀)을 세우고 삼국의 하나가 되지만 소열제(昭烈帝) 유비와 후주(後主) 유선(劉禪) 2대만에 끝난다.

11. 四十年來又一變 相傳馬上同無半
兩頭點火上長安 委鬼山河通一占 

40년만에 또 한 번 변하니 사마(司馬)씨에게 전해지고
(사마)염이 권력을 잡아 위(委鬼)나라 강산을 통째로 차지한다.

설명: 40년이란 유비와 유선이 재위한 43년(AD 221~263년)을 말하고 한을 찬탈한 것이 위고 위를 찬탈하는 것은 사마염이다. 조위나라 정권에 변고가 발생한다. 同無半(=同에서 반쪽이 없다는 의미이므로 즉 司를 말함)을 馬앞에 놓으면 司馬씨가 된다. 즉 사마씨가 정권을 탈취한다는 뜻이다. 뒷문장에서 더 구체적으로 火를 두 개 겹쳐 정권을 찬탈하는 자의 이름이 염(炎) 임을 밝혔다.

12. 山河既屬普無頭 離亂中分數十秋 

산하가 이미 보무두(普無頭=晉 보에서 머리가 없다는 말)에 속하니 혼란 중에 갈라져 수십년이라.

설명: 普에서 머리를 없애면 진(晉)이 된다. 비록 265년 사마씨가 권력을 잡아 천하를 다시 통일하지만 혼란이 지속되다 318년 남쪽으로 천도해 동진(東晋)이 되고 전후로 18개 나라가 난립한다.

13. 子中一朱不能保 江東復立作皇州 

자식 중 하나도 남지 못하고 강동에 다시 나라를 세운다

설명: 진무제(晉武帝)에게는 아들이 둘이 있었는데 큰아들이 혜제(惠帝 사마충)이고 둘째 아들이 회제(懷帝 사마치)다. 313년 회제가 영가에서 피살된 후 무제의 손자인 민제(愍帝 사마업)가 뒤를 이으나 그 역시 318년 피살되어 서진(西晉)이 멸망한다. 동진을 세운 원제(元帝) 사마예(司馬睿)는 원래 안동장군(安東將軍)으로 있다가 민제가 살해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후 강동(江東)에서 황제를 선언하고 건강(建康)에 도읍을 정한다. 이를 보통 동진(東晋)이라고 한다.

14. 相傳一百五十載 釗到兔兒平四海 

150년을 전하다 “釗到兔兒(釗가 兎=卯 아래에 있으니 바로 劉를 말한다)” 유씨 성을 가진 사람이 사해를 평정한다.

설명: 서진이 52년 동이 103년을 존속하니 합하면 약 155년이라 150년이라고 했다. 진조를 계승한 이는 남조(南朝) 남송(南宋)의 무제(武帝) 유유(劉裕)이다.

15. 天命當頭六十年 肅頭蓋草生好歹 

천명으로 전(前) 오대(五代)의 첫 번째 왕조가 되어 60년을 가나 소씨가 나쁜 짓을 하네

설명: 유씨의 송조는 전 오대의 첫 번째 왕조가 되는데 8 황제가 60년을 통치했다. 한편 유송을 이은 사람은 남제(南齊)의 고제(高帝)인데 성이 소(蕭)씨이고 이름은 도성(道成)이다. 숙(肅의 머리에 풀을 더하면 소(蕭)가 된다.

16. 都無真主管江山 一百年來擾幾番
耳東入國人離亂 南隔長安北隔關 

모두 강산을 주관할 진짜 주인이 아니니 백여 년 동안 몇 번이나 어지러웠나
耳東(陳 진패선)이 들어서니 더욱 혼란해 장안에서 관문까지로 영토가 축소되는구나

설명: 남제(南齊)를 이어 소연(蕭衍)이 남량(南梁)을 만들고, 남량을 이어 진패선(陳霸先)이 남진(南陳)을 만든다. 남제는 다섯 임금 23년, 남량은 네 임금 55년, 남진은 다섯 임금이 33년을 갔다. 제양진 세 왕조를 합하면 모두 111년이다. 이 백여 년 동안 사회는 분열과 혼란에 처했고 조대가 여러 차례 개변되었다.

17. 水龍木易承天命 方得江山歸一定
五六年來又不祥 此時天下又紛爭 

水龍(임진년)에 木易(=楊)씨가 천명을 받아 강산이 다시 통일되며
30년 만에 또 상서롭지 못해 이때 천하가 다시 분쟁에 빠진다

설명: 진의 천하를 계승한 자는 수문제 양견이다. 목역(木易)을 합하면 양(楊)이 된다. 양견이 천하를 다시 통일한다는 뜻이다. 5×6은 30을 가리키는데 수나라는 세 임금 29년 만에 당에 의해 멸망 당했다.

18. 木下男兒火年起 一掃煙塵木易已

이(李)씨가 불의 해에 일어나 먼지를 소탕하니 양씨의 수조가 사라진다

설명: 수를 멸하는 이는 이연이며 목하남아란 木+子(남아)=李가 된다. 이연이 불의 해인 정축년에 기의해 양씨의 수조를 멸망시킨다.

19. 高祖世界百餘年 雖見干戈不傷體
子繼孫承三百春 又遭離亂似瓜分 

고조 이연이 창립한 당이 100여년을 가는데 비록 전쟁은 있지만 큰 손상은 없다가
자자손손 300년을 잇다가 다시 난을 만나 분열된다.

설명: 고조가 당을 세운 뒤 처음 100년간은 돌궐이나 토욕혼 등과의 전쟁은 있었지만 비교적 태평성대였고 21임금 288년을 간다(618~907). 당이 망하고 분열되어 오대가 된다.

20. 五十年來二三往 不真不假亂為君

오십년 동안 2+3=5개의 왕조가 오니 진짜도 아니고 가짜도 아니되 어지럽게 임금이 된다

설명: 이와 삼을 합하면 5가 되고 오대십국시대(907~960)는 짧은 기간에 다섯 왕조가 들어선 아주 혼란했던 시기로 심지어 제위를 전하는 데도 양자에게 전하거나 처조카에게 전하는 등 정통적인 방식이 아니라 진정한 의미의 황제라 할 수 없다.

21. 金豬此木為皇帝 未經十載遭更易 

금돼지(金豬 신해년)해에 “此木=柴” 즉 시 씨가 황제가 되나 10년을 못가 경질된다.

설명: 후주(後周)를 창립한 황제 곽위(郭威)가 신해년에 천하를 얻었지만 죽을 때 자식이 없어 처조카인 시영(柴榮)에게 제위를 잇게 했다. 차목(此木)을 합하면 시(柴)가 된다. 곽위는 6년 재위했고 시영과 그 아들이 3년 반을 재위했으니 세 임금을 합해도 10년을 채우지 못하고 송에 선양한다. 후주를 대신한 왕조가 송이다.

22. 肖郎走出在金猴 穩穩清平傳幾世  

“肖郎走出(초랑이 걸어나온다는 말은 趙를 파자한 것)” 조씨가 금 원숭이해(경신년)에 나와 조용히 천하를 통일하고 여러 세대를 전한다.

설명: 후주를 대신한 인물은 송태조 조광윤이다. 趙를 파자하면 肖+走이 된다. 태조가 경신년(금원숭이 해)에 천하를 얻었기 때문에 금후(金猴)가 된다.

23. 一汴二杭事不巧 卻被胡人通佔了
三百年來棉木終 三閭海內去潛蹤  

일변이항(一汴二杭)의 일이 공교롭게 오랑캐에게 점유당하니
300년에 면목(棉木 송)이 망하고 삼려가 해내에서 자취를 감춘다.

설명: 북송의 도성은 변(汴)이고 남송의 도성이 항주(임안)다. 그래서 북송과 남송을 합쳐 일변이항이라고 했다. 오랑캐란 원조를 가리키고 북송 9황제 167년, 남송 9황제 153년을 더하면 양송이 320년을 갔다. 면목(棉木)의 면(棉)은 면(宀)으로 宀+木=宋이 된다. 송의 마지막 황제가 원군의 핍박을 받아 바다에서 익사했다. 삼려가 해내에서 자취를 감춘다는 말은 송이 멸망한다는 의미.

24. 一兀為君八十載 淮南忽見紅光起
八隻牛來力量大 日月同行照天下
土猴一兀自消除 四海衣冠新彩畫

일올(一兀=元)이 임금이 되어 80년을 통치하는데 회남에서 갑자기 붉은 빛이 일어나
8마리 소[八+牛=朱]는 힘이 크고 日月(=明)이 함께 해 천하를 비추네
흙원숭이 해(1368년 무신년)에 원이 망하고 사해 의관이 새롭게 빛을 내네

설명: 원나라는 1280~1368년까지 89년을 가고 명태조 주원장이 회남(淮南)에서 홍건군紅巾軍을 일으킨다. 또 다른 해석은 주원장이 태어날 때 붉은 빛이 하늘에 비추고 기이한 향이 흩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홍광은 주원장을 의미한다. 힘이 크다는 말은 주원장의 군대가 힘이 세다는 의미도 되고 또는 주원장의 연호가 홍무(洪武)이기 때문이다. 일월(日月)이 함께한다는 것은 명(明)나라를 말한다. 흙원숭이는 홍무 원년인 무신년을 가리키는데 이해에 원조가 멸망하고 명(明)이 천하를 일신한다

25. 三百年來事不順 虎頭帶土何須問

삼백년간 일이 순조롭지 않으니 흙호랑이 해(무인년)를 어찌 물으랴

설명: 명(明)은 17 황제가 270년을 가는데 흙호랑이는 무인년을 말한다. 즉 숭정 11년 무인년을 가리키는데 이 해에 경기, 산동, 하남에 큰 가뭄이 들고 황충 피해가 컸고 9월에 청병이 세 갈래 길로 남하하니 이때부터 천하의 혼란이 극심했다.

26. 十八孩兒跳出來 蒼生方得蘇危困 

“十八孩兒(이자성)”가 도망가니 창생이 비로소 위험과 곤란에서 벗어나네

설명: 十八孩=十八子로 더하면 李가 된다. 즉 이자성을 가리킨다. 뛰쳐나온다(跳出)는 것은 도망간다(逃走)는 뜻이다. 숭정 3월 17일 이자성이 북경을 함락시키자 숭정제가 목을 매 자살한다. 5월에 관문을 지키던 오삼계가 청나라 군대를 끌어들여 이자성을 몰아내나 온 백성들이 위험에 직면한다. 결국 청병이 들어와 나라를 안정시킨 후에야 백성들이 편안해진다. 명조 말기에 천재인화가 빈번히 발생했고 이자성은 도적 장수로 산서 하남 등 여러 곳을 노략질해서 약탈과 겁탈이 극히 비참했다.

27. 相繼春秋二百餘 五湖雲擾又風顛 

200여 년을 이은 후 오호(중국)에 다시 풍운이 인다.

설명: 이백여 년은 청이 개국한 지 약 200년이 되는 1840년대 이후를 가리킨다. 오호(五湖)란 중국을 가리키며 이후 다시 풍운이 일어난다는 의미. 이후 일들은 다른 예언을 참조할 것.

 

원문위치: http://zhengjian.org/node/421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