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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주요 예언 탐구 (9)

명오(明奧) 정리

【정견망】

제4편 소강절 매화시(梅花詩)

선천학(先天學)을 깊이 꿰뚫어 깨달으니,
명예를 멀리하고 외물을 잊어 본성이 진(眞)으로 돌아갔도다.
표연히 세상에 왔다 표연히 가니,
세상을 경륜한 매화에 천지는 봄이로다.

洞徹先天學至深
泊名外物性歸真
飄然來世飄然
經世梅花天地春

송사(宋史) – 소강절전

소옹(邵雍)은 자가 요부(堯夫)이며, 사후 시호를 ‘강절(康節)’이라 한다. 때문에 후세 사람들은 모두 그를 소강절(邵康節)이라 불렀다. 송조(宋朝)의 저명한 복사(卜士)이다. 북송 진종(真宗) 대중상부 4년(1011년) 12월 25일(신해년 신축월 갑자일 갑술시) 범양(範陽 지금의 하북 탁주涿州 대소촌大邵村)에서 태어났다.

신종(神宗) 10년(1077년)에 세상을 떠났다. 유년기에 부친 소고(邵古)를 따라 형장(衡漳 지금의 하남 임현林縣 강절촌康節村)으로 옮겨갔고, 다시 공성(共城 지금의 하남 휘현輝縣)으로 옮겼으며, 37세 때 낙양으로 이주하였다.

소강절은 중국 점복(占卜)계를 대표하는 주요 인물이다. 《매화역수(梅花易數)》는 그가 발명한 점복 방법이다. 그러나 이 책은 판본이 매우 많아 이미 가짜가 섞여 들어간 것으로 추정된다. 선천역학(先天易學)은 그의 주요한 대표작이다. 그러나 그의 저작 중 선천역학에 관한 서술은 상세하지 않다. 주희의 《주역본의(周易本義)》에서 선천역학에 대해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소강절은 상수파(象數派) 역학의 대표 인물이다. 우리가 그의 사상을 직접 연구할 수 있는 책으로는 오직 《황극경세서(皇極經世書)》 한 권이 있다. 이는 왕조의 흥망성쇠를 추산한 책이다. 그의 우주관과 방법론은 《황극경세서》의 관물편(觀物篇)에서 엿볼 수 있다.

소강절의 조상은 성이 희(姬) 씨로 주 소공(召公) 계보에서 나왔으니 주문왕의 후손이다. 그는 어릴 때부터 큰 뜻을 품고 일심으로 과거 공부에 전념하였다. 공성에 거주할 때 모친 이(李)씨가 세상을 떠나자 소문산(蘇門山)에 초막을 짓고 거친 옷과 나물밥으로 3년상을 치렀으니 지극한 효자라 할 만하다.

당시 이정지(李挺之)가 공성 현령으로 있었는데 소강절이 학문을 좋아한다는 말을 듣고 직접 초막을 방문했다. 이에 소강절은 그를 사부님으로 모시고 의리(義理)의 학문, 성명(性命)의 학문과 물리학을 배웠다. 몇 년 후 소강절은 학문을 이루었으나 결코 드러내지 않았기에 그를 아는 사람이 매우 적었다. 그때 신향(新鄉) 사람 왕예(王豫)가 소강절과 학문을 논했는데, 그는 자신의 학문이 넉넉히 소강절을 가르칠 만하다고 자부했으나 논의를 마친 후 소강절의 학식에 깊이 탄복하여 경건하게 소강절을 사부로 모셨다.

소강절이 낙양으로 이주한 후 깨달은 선천지학(先天之學)이 더욱 완벽해졌으며, 장민(張岷)을 제자로 받아들여 《선천도(先天圖)》와 선천지학을 전수하였다. 소강절은 40세 때 왕윤수(王允修)의 누이동생을 아내로 맞이해 2년 후 아들 백온(伯溫)을 얻었다. 51세 때(가우 6년), 승상 부필(富弼)이 소강절에게 벼슬길에 나올 것을 권하며 심지어 “벼슬하기 싫다면 한직이라도 이름만 받으라”고 했다. 즉 관직명만 걸어두고 봉급만 받으며 일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그는 정중히 거절하였다.

가우 7년, 왕선휘(王宣徽)가 낙양 천궁사(天宮寺) 천진교(天津橋) 남쪽의 오대 시절 절도사 안심가(安審珂)의 옛 집터에 서른 칸의 집을 지어 소강절이 거주하게 하였고, 부필은 또 그에게 화원(花園)을 사주었다. 희녕(熙寧) 초년, 조정에서 관전(官田)을 매입하는 신법을 시행하자 소강절의 천진 거처와 화원이 관전에 포함되었는데, 사마광(司馬光) 등 20여 가문이 자금을 모아 그를 위해 다시 사주었다. 소강절은 그 화원의 이름을 ‘안락와(安樂窩)’라 하였다.

이때 신종이 조서를 내려 천하의 인재를 천거하게 하니 여공저(呂公著), 오충(吳充), 조용도(祖龍圖) 등이 소강절을 추천하였다. 조정에서 연이어 세 번이나 조서를 내려 소강절을 비서성 교서랑, 영천 단련추관(潁川團練推官)으로 삼으려 하였다. 소강절은 재삼 사양하다 어찌할 수 없어 직책을 받았으나, 병을 핑계로 끝내 부임하지는 않았다.

소강절이 57세 때 부친인 소고(이천장인伊川丈人)가 세상을 떠났다. 소강절은 정호(程顥)와 함께 이천 신음원(神陰原 지금의 이천현 이수 서쪽 자형산 아래)에 묘자리를 잡으면서 장서(葬書)를 온전히 따르지 않았고 음양의 금기설도 믿지 않은 채 묫자리를 선택해 안장하였다. 다시 2년이 지나 소강절의 이복동생 소목(邵睦)이 동쪽 울타리 아래에서 갑자기 죽었다. 그는 이 동생과 우애가 깊어 시 몇 수를 지어 그리운 마음을 표했다.

소강절은 낙양에서 30년 가까이 한가로이 거처했다. 겨울과 여름에는 문을 닫고 독서했으며 봄과 가을이면 유람을 나갔다. 유람할 때는 반드시 도복(道服 도사의 복장)을 입고 작은 수레를 탔다. 성 안의 사대부들은 수레 소리를 들으면 모두 신발을 거꾸로 신은 채 문밖으로 나와 맞이했으며 아이들과 종들도 기쁘게 그를 받들었다. 시간이 흐르자 낙양성 안에는 그가 머물 수 있는 ‘행와(行窩) 12가’가 생겨났다.

그는 천명(天命)을 알고 즐기며 늘 시로 뜻을 전하고 원림의 경치와 술, 차를 즐기며 일생을 보냈다. 그는 늘 “이 몸은 나무꾼이나 낚시꾼으로 늙는 것이 달갑다”거나 “할 일 없는 사람”이라고 말했지만, 한편으로는 일심으로 성인을 본받아 사물을 관찰해 이치를 얻고 천인(天人)의 경계를 탐구하여 후세에 큰 학문을 남기려 했다. 그는 “다만 몸은 한가로운데 마음은 한가롭지 못할까 두렵다(只恐身閒心未閒)”, “만약 기이한 재능을 품었다면 반드시 기이하게 쓰여야지 그렇지 않으면 일생의 한가로움을 저버리게 된다(若蘊奇才必奇用,不然須負一生閒)”는 시구들을 남겼으니 그가 원대한 포부를 지닌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다.

소강절은 비록 왕안석이 추진한 신법을 지지하진 않았으나 공개적으로 반대하지도 않았다.

“신법이 시행된 후로 술잔에 술이 없음을 항상 괴로워하네(自從新法行,常苦樽無酒)“

“술잔을 들매 신법에 제한되니 어찌 능히 기울이겠는가(懷觴限新法,何故便能傾)“

“후문 깊은 곳에서 알기나 하는가 백만 유민이 이슬을 맞고 있음을(侯門深處還知否,百萬流民在露頭)” 등의 시구는 신법에 대한 그의 태도를 반영한다.

하지만 문하생이나 옛 친구 중 관직에 있는 이들이 신법에 반대해 사직하려 하자 그는 이렇게 권했다. “지금은 현자가 마땅히 힘을 다해야 할 때다. 신법이 비록 엄하나 조금이라도 너그럽게 하면 백성이 한 푼의 은혜를 입을 것이니 사직서를 던지는 것이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이정(二程) 형제(정호와 정이)와 소강절은 같은 마을에 30년 가까이 거주하며 세상사 논하지 않는 것이 없었다. 정호는 일찍이 “소요부는 물리(物理)에 대해 모두 말할 수 있으니 천기를 크게 누설했다”라고 말했고, 또한 “요부의 학문은 먼저 이치에서 뜻을 미루어 상수(象數)를 말하고 천하의 이치를 말한다”라고 했다. 그는 ‘내성외왕(內聖外王)의 도’로 소강절의 학문을 평했고 그를 ‘고금의 호걸’로 평가했다.

희녕 10년(서기 1077년) 3월, 소강절은 병으로 누워 100여 일 동안 일어나지 못하다가 7월 4일 병세가 위독해져 5일 새벽 세상을 떠나니 향년 67세였다. 유언으로 장례 절차는 부친의 예에 따라 간소하게 하고 이천의 선영에 모시게 했다.

소강절이 와병중일 때 사마광(司馬光)이 문병을 왔다. 소강절은 그에게 “내 병세가 일어나지 못할 듯하니 시험 삼아 변화를 관찰하는 한 바퀴를 함께 돌아보자”라고 했다.

사마광이 위로하며 “요부께서 이 지경에 이르러서는 안 됩니다”라고 하자 소강절은 “사생(死生)은 늘 있는 일일뿐입니다”라고 답했다.

마침 장재(張載)가 관중에서 왔는데 소강절의 맥을 짚어보고 “선생의 맥과 숨이 줄어들지 않았으니 약을 쓰지 않아도 됩니다”라고 했다. 또 소강절의 길흉 화복을 점치려 하며 “선생께서는 운명을 믿으십니까? 제가 시험 삼아 선생의 명을 추산해 보겠습니다”라고 하자 소강절이 대답했다. “세속에서 말하는 명은 내가 모르나 만약 천명(天命)을 말한다면 나는 알고 있소.”

장재가 “이미 천명이라 말씀하셨으니 더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라고 했다.

소강절은 《한행음(閒行吟)》에서 이렇게 말했다.

점을 쳐 의심을 묻는 것은 의심을 사는 것이요,
병이 깊으니 어떤 약으로 고칠 수 있겠는가.
꿈속에서 꿈을 말하니 겹겹이 망상이요,
침상 위에 침상을 놓으니 첩첩이 잘못이라.
열자가 바람을 타고 다님은 기다림이 있을 뿐이요,
과보가 해를 쫓음인들 어찌 피로함이 없겠는가.
수고로움은 많으나 공을 거둔 곳은 없으니
인간사의 한가로운 갈림길을 다 밟았도다

買蔔稽疑是買疑,病深何藥可能醫。
夢中說夢重重妄,床上安床疊疊非。
列子禦風徒有待,誇夫逐日豈無疲。
勞多未有收功處,踏盡人間閒路歧

이를 통해 그가 세속의 운명을 믿지 않았으며 복서(卜筮 점)로 의심을 따지는 짓을 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정이(程頤)가 문병을 와서 해학적으로 “선생께서 이 지경에 이르셨으니 타인은 힘을 보탤 길이 없고 선생께서 스스로 주관하시길 바랍니다”라고 하자 소강절은 “평생 도를 배운 것이 진실로 여기에 이르렀으나 역시 주관할 바가 없다”라고 했다. 정이가 계속 농을 걸자 소강절 역시 농담으로 “정숙(정의의 자)은 생강나무에서 났다고 할 만하니 반드시 나무에서 났을 것이오”라고 했다.

이때 소강절의 숨소리가 이미 매우 희미해져 두 손을 들어 손짓을 하자 정이가 알아듣지 못하고 물었다. “이제 선생과 작별하게 되었는데 더 들려주실 말씀이 있습니까?”

소강절이 답했다. “앞면의 길은 항상 넓게 트여 있어야 하네. 길이 좁으면 몸 둘 곳이 없는데 하물며 사람이 다니게 할 수 있겠는가!”

소강절은 병중에도 “명을 하늘에 맡기니 마음에 잃을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以命聽於天,於心何所失)”, “오직 하늘의 명을 따를 뿐 그 외에 누가 한가로이 따지겠는가(唯將以命聽於天,此外誰能閒計較)”,

사생이 모두 한결같으니
이익과 손해를 헛되이 찾지 말라.
탕약의 공이 얕지 않으나
고황의 병이 이미 깊었도다.
하지만 여전히 뜸을 뜨는 것은
친구들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함이라

死生都一致,利害漫相尋
湯劑功非淺,膏肓疾已深
然而猶灼艾,用慰友朋心

는 등의 시구를 남겼으니 생사를 대하는 그의 낙천적인 태도를 충분히 알 수 있다.

소강절이 서거한 후 아들 소백온이 정호에게 부친의 묘지명을 부탁했다. 정호는 달밤에 뜰을 거닐며 오랫동안 생각한 끝에 정이에게 말했다. “요부의 묘지명을 이미 생각해 냈네. 요부의 학문은 안성(安且成, 편안하고도 이루어짐)이라 할 만하네.”

이에 《묘지》에 “선생의 학문은 전해짐이 있으며 덕을 이룸을 말하는 자는 예부터 그 경지에 처하기 어려워했다. 선생의 도는 그 도달한 바를 논하자면 편안히 이뤄졌다 할 만하다”라는 구절을 넣었다.

철종 원우 연간에 ‘강절(康節)’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구양수의 아들 구양비(歐陽棐)가 《시의(諡議)》를 짓기를 “소옹은 젊어서 학문에 독실하고 큰 뜻이 있었으며 오랜 시간이 흐른 후 도덕의 귀결점을 알았다. 또한 배우는 자의 근심은 호불호에 있으며 미워함이 먼저 마음에서 이루어져 사사로운 지혜를 끼고 도를 구하면 좋아하는 것에 가려 그 참됨을 얻지 못한다고 여겼다. 그러므로 사방 만 리 먼 곳까지 구하고 천지음양의 굴신소장 변화를 살펴 성인에게 절충하지 않은 바가 없었다. 비록 상수(象數)에 깊었으나 먼저 보고 묵묵히 아는 것을 일찍이 스스로 내세우지 않았다. 그 학문은 순일하여 섞임이 없고 처함에 편안하며 행함에 이룰 수 있었고 평탄하고 온화하여 모난 곳이 없었으니 스스로 얻은 바가 깊다. 시법(諡法)에 따르면 온량하고 즐기기를 좋아하는 것을 ‘강(康)’이라 하고 지키는 바가 굳건한 것을 ‘절(節)’이라 하니 시호를 강절선생이라 한다”라고 했다.

숭녕(崇寧) 초년, 공자의 문묘에 배향되었고 신안백(新安伯)으로 추봉되었다. 명 가정 연간에는 ‘선유 소자(先儒邵子)’로 불리며 제사를 모셨다.

소강절의 저작은 《황극경세》, 《관물편》, 《격양집》, 《어초문대(漁樵問對)》 외에도 정이와 주희에 따르면 《무명공전(無名公傳)》이 더 있다고 한다. 또한 소백온이 소강절의 강학 어록을 정리한 《관물외편》이 있다. 양송(兩宋) 시절 사람 왕식(王湜)은 《역학》에서 “강절선생의 유서는 가문의 초고에서 얻기도 하고 외부에서 들은 것(傳聞)에서 얻기도 했다. 초고는 반드시 삭제하려 했으나 미처 하지 못한 것이고 전언은 오류와 부실함이 있다”라고 했다.

또한 “황극경세절요 서문”에서 “강절 선생은 역을 연역하여 경을 지으니 《황극경세》라 한다. 그 책이 방대하여 총 12책이며 1,300여 판(板 페이지)에 달한다. ‘이원경회(以元經會)’가 2책, ‘이회경운(以會經運)’이 2책, ‘이운경세(以運經世)’가 2책, ‘음성율려양상창화(聲音律呂兩相唱和)’가 4책, 《계사》를 준거로 지은 것이 2책이다”라고 했다.

사실 왕식이 본 12권본 《황극경세서》는 이미 소백온이 소강절 사후 《황극경세》와 《관물편》을 합치고, 조부 소고의 음성율려학과 장민이 소강절의 강의를 들으며 작성한 필기(《관물외편》으로 명명)를 넣어 정리한 것이다. 1권에서 6권은 원·회·운·세이며 7권에서 10권은 율려음성, 11권은 ‘관물내편’, 12권은 ‘관물외편’이다. 이에 대해 청나라 왕식(王植)은 《황극경세서해·예언(例言)》에서 이미 설명한 바 있다.

매화시[매화역수]

송 소강절 저

청계산인(清溪散人) 주

탕탕한 천문이 만고에 열리니
몇 사람이 돌아가고 몇 사람이 오는가
산하가 비록 좋으나 완벽하지 않으니 (송 황실이 남천)
황금이 화근의 태자리임을 믿지 못하도다 (금나라 사람들의 침입)

蕩蕩天門萬古開 
幾人歸去幾人來 
山河雖好非完璧 (宋室偏安)
不信黃金是禍胎 (金人入寇)

호산의 한바탕 꿈에 일이 온통 틀어지니 (임안에 도읍함)
다시 구름 용이 북쪽으로 날아가는 것을 보네 (원군이 임안에 들어와 공종이 북쪽으로 잡혀감)
삼백 년 세월이 결국 하루아침이라 (송의 멸망)
높은 하늘 푸른 물에 넘실거림을 탄식하노라 (송의 마지막 어린 황제가 바다에 빠짐)

湖山一夢事全非 (建都臨安) 
再見雲龍向北飛 (元兵入臨安恭宗北狩) 
三百年來終一日 (宋亡) 
長天碧水嘆瀰瀰 (宋末代幼帝赴海) 

천지가 서로 곱하니 수의 근원이 하나요 (원나라 무릇 10세)
문득 갑자를 만나 다시 원을 흥하게 하네 (원 세조 쿠빌라이)
세월이 이팔(二八)이라 건곤이 바뀌니 (원나라 국운 88년)
진 꽃을 다 보아도 도무지 말이 없도다 (환관 박불화)

天地相乘數一原 (元凡十世) 
忽逢甲子又興元 (元世祖忽必烈) 
年華二八乾坤改 (元祚八十八年) 
看盡殘花總不言 (宦官撲不花) 

필경 영웅은 베옷(布衣)에서 일어나니 (명 태조가 비천한 곳에서 굴기)
붉은 문은 옛 황실의 터가 아니로다 (도읍을 금릉으로 옮김)
날아온 제비는 흔한 일이니 (연왕의 찬탈)
오얏꽃 피어날 때 봄은 이미 아니로다 (이자성의 난으로 명나라 국운이 다함)

畢竟英雄起布衣 (明太祖崛起微賤) 
朱門不是舊皇畿 (改都金陵) 
飛來燕子尋常事 (燕王篡位) 
開到李花春已非 (李自成作亂而明祚亡矣) 

오랑캐 아이 말 타고 장안을 달리니 (청나라 군사의 입관)
중원을 개척하매 바다 경계가 넓도다 (외국인과의 통상)
홍수가 잠깐 가라앉자 홍수가 일어나니 (홍수전과 이원홍)
맑은 빛은 마땅히 한중(漢中)을 보아야 하리 (신해년 8월 무창 봉기)

胡兒騎馬走長安 (清兵入關)
開闢中原海境寬 (夷人通商)
洪水乍平洪水起 (洪秀全黎元洪)
清光宜向漢中看 (辛亥八月武昌起義)

하늘 가득 하얗게 한강의 가을이 오니 (무창 봉기 민군이 흰색을 숭상함)
초췌한 황화(黃花)는 늘 시름을 띠었도다 (황흥, 황화강)
길한 별이 반쯤 오르자 기두(箕鬥)가 숨으니 (원세개가 부름을 받아 남북 화의를 함)
금오(金烏)가 바다 산 머리에서 일어나고 지네 (금오는 해니 일본이고 해산은 섬이다)

漫天一白漢江秋 (武昌起義民軍尚白)
憔悴黃花總帶愁 (黃興)[黃花崗]
吉曜半升箕鬥隱 (袁世凱應召南北講和)
金烏起滅海山頭 [金烏者日也 海山者島也]

구름 안개 창망하여 각기 한 하늘이니
가련하게도 서북에서 봉화가 일어나네
동쪽에서 온 난폭한 손님과 서쪽에서 온 도둑
거기에 오랑캐 아이까지 눈앞에 있도다

雲霧蒼茫各一天 
可憐西北起烽煙 
東來暴客西來盜 
還有胡兒在眼前 

바둑 같은 세상사 국면이 처음으로 기우니
마음을 합해 함께 건너려 하나 오히려 큰 난관이라
표범은 죽어 오히려 가죽 한 벌을 남기니
가장 좋은 가을빛은 장안에 있도다

如棋世事局初殘 
共濟和衷卻大難 
豹死猶留皮一襲 
最佳秋色在長安 

화룡(火龍)이 잠깨어 일어나니 연문(燕門)의 가을이라 (연문은 북경의 문이다)
본래의 구슬은 조(趙) 씨가 거두기 어렵도다 (본래의 구슬이 조 아무개에게 돌아가기 어렵다)
한 마당의 기이한 꽃에 봄은 주인이 있으니
밤새 비바람 몰아쳐도 시름할 필요 없도다 (어둠이 지나면 광명이 온다)

火龍蟄起燕門秋 [燕門者北京某門也]
原璧應難趙氏收 [原璧難歸趙某也]
一院奇花春有主 
連宵風雨不須愁 [柳暗花明又一村也]

몇 송이 매화에 천지에 봄이 오니 (겨울이 가고 봄이 오니 대길함)
박(剝)과 복(復)으로 전생의 인연을 묻고자 하네
천하(寰中)에 스스로 태평성대가 오리니
온 세상이 한 집인데 누가 주인이고 손님인가 (환(寰)은 환(環)과 통함)

數點梅花天地春 [冬去春來大吉也]
欲將剝復問前因 
寰中自有承平日 [寰通環]
四海為家孰主賓 

안(按): 원본에는 주석이 없으나, 이미 지나온 일에 대하여 매 구절 아래 간략히 주석을 달았다. [ ]안에 있는 것이 주석이다. 아직 오지 않은 일은 감히 억측하지 않으니 독자들께서는 양해 바란다. 청계산인 기록.

편저자 주: 글을 쓰면서 청계산인의 주석을 약간 수정했다.

매화시 시해(試解)

매화시는 북송의 대예언가 소강절이 세인에게 남긴 예언으로 총 10수이며, 사후 중국의 거대한 역사적 변천을 예언했다. 물론 모든 예언과 마찬가지로 매우 은유적인 언어를 사용하여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대부분은 이미 풀렸으나 마지막 몇 수는 역사적 사실과 대응시키지 못한 채 남아 있는데, 이것이 이미 발생한 일인가 아니면 아직 발생하지 않은 일인가? 이는 우리 세대에게 남겨진 생각할 거리다. 여기서 그 대의를 풀어보고자 하니 지혜로운 이들은 숙고해 보길 바라며, 고견이 있는 분들은 부적절한 곳에 대해 가르침을 주기 바란다.

(1)

탕탕한 천문이 만고에 열리니
몇 사람이 돌아가고 몇 사람이 오는가
산하가 비록 좋으나 완벽하지 않으니
황금이 화근의 태자리임을 믿지 못하도다

蕩蕩天門萬古開 
幾人歸去幾人來 
山河雖好非完璧 
不信黃金是禍胎 

“탕탕한 천문이 만고에 열리니
몇 사람이 돌아가고 몇 사람이 오는가”

넓고 넓은 천문(天門)은 만고 이래로 늘 열려 있었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이 세상에 왔으며 또 얼마나 많은 사람이 돌아갈 수 있었는가? 이 두 구절은 사실 시 전체의 기조를 꽉 잡고 있으며 시작으로서 최종 주제를 이끌어낸다. 천기를 꿰뚫어 본 사람은 즉시 알 수 있으나 일반인은 보아도 명확히 알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깊은 생각에 잠기게 할 수 있다.

“산하가 비록 좋으나 완벽하지 않으니
황금이 화근의 태자리임을 믿지 못하도다”

송조는 조정이 연약하고 무능한 조대였다. 사회 전체가 위아래 할 것 없이 가무와 태평성대에 빠져 있었다. 특히 남송에 이르러서는 강남의 반쪽 강산에서 구차하게 안일을 취했고, 사회 풍조는 남녀 간의 사랑과 쾌락에 빠져 송사(宋詞) 만 수의 대부분은 문인과 나그네의 연정이나 슬픔을 읊었다. 결국 중국 역사상 드문 ‘정강의 치욕’을 겪으며 북송의 황제, 비빈, 친왕, 조정 대신 등 3,000여 명이 모두 금나라의 노예로 끌려갔다. 마지막에는 남송 황제가 바다에 몸을 던져 죽기에 이르렀다. 그러니 산하가 비록 좋아도 완벽하지 않은 것이다. ‘금(金)’은 북방 여진족이 세운 대금국을 가리킨다. ‘황(黃)’은 황룡부로 금의 수도다. 남송의 반쪽 강산이 강남에서 구차하게 지낸 것과 금나라의 침입 역사를 예언했다. “황금이 화근의 태자리임을 믿지 못하도다”는 금나라가 북송을 멸망시키고 남송을 거듭 침범한 역사를 비유한다. ‘황금’은 중의법으로 금나라 사람이 중원을 침략한 것이 모두 황금 때문이었으며, 세상 사람들의 화근은 모두 황금을 쫓는 데서 비롯됨을 뜻한다.

(2)

호산의 한바탕 꿈에 일이 온통 틀어지니
다시 구름 용이 북쪽으로 날아가는 것을 보네
삼백 년 세월이 결국 하루아침이라
높은 하늘 푸른 물에 넘실거림을 탄식하노라

湖山一夢事全非
再見雲龍向北飛
三百年來終一日
長天碧水嘆瀰瀰

“호산의 한바탕 꿈에 일이 온통 틀어지니
다시 구름 용이 북쪽으로 날아가는 것을 보네”

남송이 임안(지금의 항주)에 도읍을 정했는데 서호 근처였고, 남송 황제가 종일 황음과 술에 빠져 지냈기에 ‘호산의 한바탕 꿈’이라 했다. “다시 구름 용이 북쪽으로 날아가는 것을 보네”는 정강의 치욕 때 두 황제가 북방 금나라에 끌려간 비극에 이어, 몽골 원나라 군사가 임안을 침입해 공제가 포로가 되어 다시 북쪽으로 끌려간 것을 뜻한다.

“삼백 년 세월이 결국 하루아침이라”은 북송과 남송이 300여 년(서기 960년~1279년)을 경과한 후 마침내 멸망했음을 뜻한다. “높은 하늘 푸른 물에 넘실거림을 탄식하노라”는 1279년 송군 잔여 부대가 패전한 후 막다른 길에 다다르자, 육수부(陸秀夫)가 남송의 어린 황제 조병(趙昺)을 등에 업고 바다에 투신해 죽고 다른 장수와 궁비들도 거센 바람과 파도에 휩쓸려 바다에 잠긴 것을 비유한다.

(3)

천지가 서로 곱하니 수의 근원이 하나요
문득 갑자를 만나 다시 원을 흥하게 하네
세월이 이팔(二八)이라 건곤이 바뀌니
진 꽃을 다 보아도 도무지 말이 없도다

天地相乘數一原
忽逢甲子又興元
年華二八乾坤改
看盡殘花總不言

“천지가 서로 곱하니 수의 근원이 하나요
문득 갑자를 만나 다시 원을 흥하게 하네”은 천간지지가 서로 곱해지는 연대가 다시 근원으로 돌아와 원나라가 흥성하기 시작했음을 뜻한다. ‘홀(忽)’ 자는 원 세조 쿠빌라이(忽必烈)를 은유하며, ‘흥원(興元)’은 원나라가 건국됨을 뜻한다.

쿠빌라이는 1260년 대칸의 자리에 올랐고 1264년(갑자년) 등극하여 원조(元朝)를 세우고 연호를 지원(至元) 원년으로 정하며 연경(燕京 북경)으로 천도했다. 1271년 쿠빌라이는 유병충의 건의에 따라 《역경》의 ‘건원(乾元)’의 뜻을 취해 국호를 ‘대원’으로 고치고 중국을 통치했다.

“세월이 이팔(二八)이라 건곤이 바뀌니
진 꽃을 다 보아도 도무지 말이 없도다”은 원조가 원 세조부터 원 순제까지 총 10세를 거쳤음을 뜻한다. 1279년 송이 완전히 멸망한 시점부터 1368년 원이 멸망할 때까지 총 88년이니 “세월이 이팔(二八 88)이라 건곤이 바뀌니”라는 뜻에 부합한다. 원 순제 때 환관 박불화가 각지의 반원 의병 경보를 압수하고 황제에게 보고하지 않았으니 진정 ‘진 꽃’이 ‘말이 없는’ 꼴이라 하겠다.

(4)

필경 영웅은 베옷(布衣)에서 일어나니
붉은 문은 옛 황실의 터가 아니로다
날아온 제비는 흔한 일이니
오얏꽃 피어날 때 봄은 이미 아니로다

畢竟英雄起布衣
朱門不是舊皇畿
飛來燕子尋常事
開到李花春已非

“필경 영웅은 베옷(布衣)에서 일어나니 붉은 문은 옛 황실의 터가 아니로다”는 명 태조 주원장을 묘사한 것이다. 비록 비천한 신분(베옷) 출신으로 한때 승려 생활을 하기도 했으나, 이후 농민 봉기군인 홍건적에 가담하여 마침내 영웅의 본색을 드러냈다. 일반 병사에서 지도자로 도약하여 1368년 남경에서 황제로 즉위했다. 따라서 ‘붉은 문(朱門)’은 더 이상 옛 황실의 터가 아니다.

“날아온 제비는 흔한 일이니”는 연경을 거점으로 하던 주원장의 넷째 아들 연왕 주체가 부득이하게 ‘정난의 변’을 일으켜 남경을 공격하고 제위를 찬탈한 것을 뜻하니 진정 ‘날아온 제비’라 할 만하다. 태조 주원장은 황위를 손자인 혜제에게 물려주었다. 당시 10여 명의 황자들이 번왕으로 봉해져 변방을 지키고 있었는데 그중 연왕 주체는 실력이 가장 강하고 위망이 높았다. 혜제가 삭번(削藩 번왕의 권력을 깎음)을 강행하며 연왕 등을 파면하려 하자 연왕은 미친 척 연기해도 피할 수 없음을 알고 건문 원년에 군사를 일으켰다. 연왕 주체는 재덕(才德)이 출중하고 지용(智勇)이 뛰어났기에 결국 4년 후 승리하여 태종[나중에 성조(成祖)로 고침]이 되었고 연호를 영락이라 했다.

연왕이 천하를 얻은 것은 깊이 생각해보면 확실히 ‘흔한 일’이며 이치에 맞으니, 마치 당 태종 이세민의 ‘현무문의 변’과 흡사하다.

“오얏꽃 피어날 때 봄은 이미 아니로다”는 1644년 봄 틈왕(闖王) 이자성(오얏꽃)이 반란군을 이끌고 경사를 함락시키자 숭정제가 경산에서 목을 매 자결하고 명조가 멸망(‘봄은 이미 아니로다’)한 것을 가리킨다.

(5)

오랑캐 아이 말 타고 장안을 달리니
중원을 개척하매 바다 경계가 넓도다
홍수가 잠깐 가라앉자 홍수가 일어나니
맑은 빛은 마땅히 한중(漢中)을 보아야 하리

胡兒騎馬走長安
開闢中原海境寬
洪水乍平洪水起
清光宜向漢中看

“오랑캐 아이 말 타고 장안을 달리니” 중국은 예부터 ‘북호남만(北胡南蠻)’이라 했다. 따라서 여기서는 동북의 만주족 청나라가 중원의 주인이 된 것을 뜻한다. 오삼계가 청군을 이끌고 입관하여 명말의 잔국을 통일하고 1644년 북경에 도읍을 정해 대청제국이 되었다. ‘장안’은 중국을 가리킨다.

“중원을 개척하매 바다 경계가 넓도다”는 청조 전반부 국세가 크게 일어나 문치와 무공이 모두 강성했으니 100여 년의 ‘강건성세’가 있었다. 특히 강희제는 각종 내란과 외침을 평정하여 중국 판도를 전대미문으로 확장했다. 또한 청대부터 대규모로 해외와 통상하고 항구를 개척했으니 진정 ‘바다 경계가 넓다’고 할 수 있다.

“홍수가 잠깐 가라앉자 홍수가 일어나니
맑은 빛은 마땅히 한중(漢中)을 향해 보아야 하리”

첫 번째 ‘홍수’는 서기 1851년 홍수전이 이끈 태평천국의 난을 뜻하며, 홍수처럼 중국의 절반을 휩쓸었고 13년이나 지속되어 청나라 통치를 심하게 흔들었다. 태평천국이 평정된 후(‘사평’) 청은 내우외환이 끊이지 않았고 혁명당의 세력이 계속 굴기하고 장대해졌다. 마침내 무창 봉기가 성공하여 여원홍(黎元洪)이 중화민국 군정부 도독으로 추대되었고 원세개 사후 또 총통이 되면서 청조는 철저히 멸망했다. 그러므로 청조의 마지막 전망(‘청광’)은 마땅히 무한(‘한중’)을 보아야 한다

(6)

하늘 가득 하얗게 한강의 가을이 오니
초췌한 황화(黃花)는 늘 시름을 띠었도다
길한 별이 반쯤 오르자 기두(箕鬥)가 숨으니
금오(金烏)가 바다 산 머리에서 일어나고 지네

漫天一白漢江秋 
憔悴黃花總帶愁 
吉曜半升箕鬥隱 
金烏起滅海山頭

“하늘 가득 하얗게 한강의 가을이 오니”는 만청(滿淸 만주족의 청)의 부패와 몰락을 겪은 중국에 드디어 새로운 희망(‘漢天一白’)이 생겨 새로운 시대(‘漢江秋’)로 진입했음을 말하니, 1911년 10월 10일(가을) 무창 봉기로 중화민국이 건립되었다.

“초췌한 황화(黃花)는 늘 시름을 띠었도다”는 민국의 혁명은 성공했으나 뿌리가 매우 불안정하여 ‘초췌한 황화’처럼 위기가 가득함을 뜻한다.

“길한 별이 반쯤 오르자 기두(箕鬥)가 숨으니”에서 ‘길한 별’은 국민당의 청천백일만지홍기(青天白日滿地紅旗)를 비유하며, ‘반쯤 오름’은 국민당 통치 초기 중국 군벌이 할거하고 내전이 연달아 일어나 통일과 안정을 이루지 못한 상태에서 장개석이 이끈 북벌 성공으로 국민당의 지위가 초보적으로 다져진 것을 뜻한다. ‘기두(箕鬥)’란 중국 고대 성상학(星象學)의 28수 중 하나로 여기서는 공산당 세력이 어둠 속에서 발전하는 것을 뜻하는 듯하다.

“금오(金烏)가 바다 산 머리에서 일어나고 지네”는 고대에 ‘금오’는 태양의 별칭이었으며 여기서는 일본을 암시한다. 문장 전체는 2차 대전 중 일본의 발흥과 최종 패망의 운명을 가리킨다. ‘기멸(起滅)’은 일어났다가 멸망한 것이다.

(7)

구름 안개 창망하여 각기 한 하늘이니
가련하게도 서북에서 봉화가 일어나네
동쪽에서 온 난폭한 손님과 서쪽에서 온 도둑
거기에 오랑캐 아이까지 눈앞에 있도다

雲霧蒼茫各一天 
可憐西北起烽煙 
東來暴客西來盜 
還有胡兒在眼前 

“구름 안개 창망하여 각기 한 하늘이니”는 중국 대륙과 대만이 각기 나뉘어 대립하는 국면을 말한다.

“가련하게도 서북에서 봉화가 일어나네”은 공산군이 신강(新疆)의 반란을 평정하고 티베트에 들어가 티베트 독립을 진압한 것을 뜻하는 듯하다.

“동쪽에서 온 난폭한 손님과 서쪽에서 온 도둑”은 동쪽 조선에서 미국과 교전하고 서쪽에서 인도와 국경 전쟁을 벌인 것을 뜻한다.

“거기에 오랑캐 아이까지 눈앞에 있도다”는 북방의 소련이 줄곧 중국을 위협하여 중소 간 진보도(珍寶島) 전쟁이 발발하고 수십 년간 국경에 중병을 배치했던 상황을 말한다.

(8)

바둑 같은 세상사 국면이 처음으로 기우니
마음을 합해 함께 건너려 하나 오히려 큰 난관이라
표범은 죽어 오히려 가죽 한 벌을 남기니
가장 좋은 가을빛은 장안에 있도다

如棋世事局初殘 
共濟和衷卻大難 
豹死猶留皮一襲 
最佳秋色在長安 

“바둑 같은 세상사 국면이 처음으로 기우니
마음을 합해 함께 건너려 하나 오히려 큰 난관이라”

세계 정세는 예부터 바둑판 같았는데 여기서는 냉전 시기 공산 진영과 서구 자유민주 체제의 대국을 뜻한다. 90년대 이후 공산 국가들이 잇따라 변하면서 공산주의 진영 전체로 보아서는 이미 한 판의 잔국(殘局)이 되었다. 공산 국가들의 연맹은 철저히 해체되었고 대다수 국가가 공산 제도를 포기했으니 공산당에게는 그야말로 커다란 재난이라 할 수 있다.

“표범은 죽어 오히려 가죽 한 벌을 남기니” 공산 국가의 우두머리인 소련이 와해된 후 공산당 체계는 실제 이미 해체되었으나 다만 일부 형식이 중국 집권자에 의해 계승되었으니, 이는 마치 표범은 죽었으나 가죽 한 벌이 남은 것과 같다. 지금의 중국은 공산당 집권자를 포함해 그 누구도 공산주의를 믿지 않으며, 그들은 다만 공산당이라는 형식을 이용해 자신의 통치를 유지할 뿐이다.

“가장 좋은 가을빛은 장안에 있도다” 현재 중공 집권자는 자신의 정권 형식에 합리성을 부여하기 위해 소위 대호황이라는 거짓 형세를 극력 꾸미고 대량의 재력을 집중해 토목 공사를 벌이며 수도를 장식한다. ‘장안’은 중국의 경성이자 넓게는 중국을 가리킨다. 그러나 가을빛이 아무리 좋아도 오래갈 수는 없다.

(9)

화룡(火龍)이 잠깨어 일어나니 연문(燕門)의 가을이라
본래의 구슬은 조(趙) 씨가 거두기 어렵도다
한 마당의 기이한 꽃에 봄은 주인이 있으니
밤새 비바람 몰아쳐도 시름할 필요 없도다

火龍蟄起燕門秋 
原璧應難趙氏收
一院奇花春有主 
連宵風雨不須愁 

“화룡(火龍)이 잠깨어 일어나니 연문(燕門)의 가을이라” ‘화룡’은 붉은 악룡인 중국 공산당을 가리킨다. 이 구절은 6.4 사건을 은유하는데, 1989년 중국 학생과 민중이 천안문에서 청원하다 잔혹하게 학살당한 일을 말한다.

“본래의 구슬은 조(趙) 씨가 거두기 어렵도다” ‘원래 구슬’이란 5,000년 연속된 역사를 지닌 중국을 대칭하며 이 재난을 당했음을 뜻한다. ‘조씨’는 조자양을 가리키는데 6.4 사건으로 인해 탄압받았다.

이 이하의 구절들은 시 전체의 주체를 종관하고 수련의 일을 통달하지 않으면 합리적으로 설명하기 매우 어렵다. 사실 아래 구절들은 이 예언의 주제를 분명히 밝히고 있다.

시의 첫 구절인 “만고에 천문이 열리다”부터 아래의 “천하(寰中)에 스스로 태평성대가 오리니”까지 보면 그 참뜻이 분명해진다.

“한 마당의 기이한 꽃에 봄은 주인이 있으니” 1999년 7월 20일 이전 파룬궁은 중국 대륙 전역에 퍼져 있었고 어디서나 파룬궁 배지를 단 대법제자들을 볼 수 있었으며 어디서나 파룬 도형을 볼 수 있었으니 소위 ‘한 마당의 기이한 꽃’이라 하겠다. ‘춘유주(봄은 주인이 있다)’에서 봄은 파룬따파의 진상이 천하에 명백히 드러날 때를 비유하며, 박해받던 파룬궁 제자들이 당당하게 사부님과 상봉하게 됨을 뜻한다.

“밤새 비바람 몰아쳐도 시름할 필요 없도다” 중공은 파룬궁 제자들에게 문화대혁명 시기의 수단을 써서 이해할 수 없는 대규모 박해를 가했으니 소위 ‘밤새 몰아치는 비바람’이다. 그러나 파룬궁이 보여준 비상한 견정함과 지속적인 정신적 저항은 진정 역사상 보기 드문 것이다. 이러한 정신만으로도 그들이 최종 승리를 거둘 것임을 믿는다. 역사의 안목으로 볼 때 사악이 아무리 창궐하고 엄동설한이 아무리 혹독해도 결국 지나가기 마련이니 ‘시름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10)

몇 송이 매화에 천지에 봄이 오니
박(剝)과 복(復)으로 전생의 인연을 묻고자 하네
천하(寰中)에 스스로 태평성대가 오리니
온 세상이 한 집인데 누가 주인이고 손님인가

數點梅花天地春
欲將剝復問前因 
寰中自有承平日
四海為家孰主賓 

“몇 송이 매화에 천지에 봄이 오니” 이 구절은 화룡점정의 필치로 시 전체의 제목이 여기서 나왔기에 《매화시》라 부른다. 엄동설한의 시련을 겪은 파룬궁 제자들이 세계 전역과 중국 대륙에 퍼져 있어 마치 서리와 눈을 업신여기는 매화처럼 봄이 왔음을 보여준다. 그것은 바로 법이 인간 세상을 바로잡는(法正人間) 시각이다. 만물이 봄을 맞이하고 혼란을 잠재워 바른 길로 돌아간다. 이 구절은 첫 부분의 “몇 사람이 와서 몇 사람이나 돌아가는가” 와 멀리서 서로 호응하며 얼마나 많은 사람이 원만하여 돌아갈 수 있겠는가를 묻는다.

“박(剝)과 복(復)으로 전생의 인연을 묻고자 하네”: 박(剝)과 복(復)은 주역의 두 괘다. 깎임이 극에 달하면 반드시 회복되니 물극필반(物極必反)을 뜻한다. 역사는 바퀴와 같아 전생의 인연이 있으면 반드시 후세의 결과가 있다. 인류의 역사는 모두 이번 정법(正法)을 위해 안배된 것이다.

“천하(寰中)에 스스로 태평성대가 오리니”: 이 비할 바 없이 광활한 우주는 자연히 태평성대를 맞이할 것이다.

“온 세상이 한 집인데 누가 주인이고 손님인가” 1992년 파룬궁 창시인 리훙쯔(李洪志) 선생께서 나오셔서 법을 전하실 때 기본적으로 도처로 법을 전하시며 온 세상을 집으로 삼으셨다(사해위가). 하반구의 “누가 주인이고 손님인가”는 누가 주인이고 누가 손님인지, 역사의 무대에서 누가 조연이고 누가 주연인지 이미 정해져 있음을 암시한다. 이번 인류 문명은 모두 대법을 위해 조성되고 대법을 위해 개창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예언 전체의 핵심이다.

 

원문위치: http://big5.zhengjian.org/node/424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