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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주요 예언 탐구 (8-하)

명오(明奧) 정리

【정견망】

제3편 이순풍 원천강의 《추배도(推背圖)》

제43상 병오(丙午)

참(讖)에 이르길

임금은 임금이 아니고
신하는 신하가 아니로다.
처음에는 어렵고 위태로우나
결국은 평정된다.

君非君 臣非臣
始艱危 終克定

송(頌)에 이르길

검은 토끼가 청룡의 굴로 들어가니,
끝내려 하나 끝내지 못함은 가히 말할 수 없도다.
오직 밖의 뿌리 나무 위에는,
삼십 년 중에 자손이 맺히도다.

黑兔走入青龍穴
欲盡不盡不可說
惟有外邊根樹上
三十年中子孫結

김성탄:

“이 상은 앞의 상에서 여자가 나라를 어지럽힌 일이 끝나지 않아 군신이 사냥을 나가고, 한 걸출한 인물이 나타나 이를 안정시키나 반드시 삼십 년 후의 일일 것이다.”

이 상은 중공 ‘장쩌민-후진타오 체제’를 말한다. 참으로 “임금은 임금이 아니고 신하는 신하가 아닌” 국면이다. 물론 결말이 예언대로 될지는 세상 사람들이 지켜볼 일이다.

후진타오와 장쩌민의 다툼에서 후진타오가 바로 “처음의 위태로움”이 아닌가? 결국 “평정”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현재 그렇게 되어가는 추세인 듯하다.

“검은 토끼가 청룡의 굴로 들어가니(黑兔走入青龍穴)”은 작은 것이 큰 자리를 차지한다는 뜻이거나 시간에 관한 수수께끼 같지만 현재로서는 확실히 풀 수 없다.

“끝내려 하나 끝내지 못함은 가히 말할 수 없도다(欲盡不盡不可說)” 이 구절이 가장 묘하다. 사실 후 아무개의 마음속에는 공산 사악주의에 대해 이미 명확히 알고 있어 공산 악당을 끝내고 싶어 했으나 용기가 부족하거나 시기가 부적절하다고 여겨졌고, 또한 이 일은 남에게 말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끝내려 하나 끝내지 못함은 가히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오직 밖의 뿌리 나무 위에는, 삼십 년 중에 자손이 맺히도다(惟有外邊根樹上, 三十年中子孫結)”은 현재 ‘청룡혈’에 몸이 매여 움직일 수 없으나, 30년 동안 외부에서 많은 ‘자손’이 열매처럼 맺혀 결국 결과를 낼 것임을 뜻한다.

또한 어떤 이는 다음과 같이 본다. 중공이 1927년(토끼해)에 군사를 일으켜 1976년(용의 해)에 마오쩌둥이 죽을 때 본래 기운이 다했어야 했으나 “끝내려 하나 끝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불가설”은 예언가가 이 모든 것이 하늘의 뜻이며 그 천기를 쉽게 누설할 수 없음을 말하는 것이다. 중공은 경제 개방에 의지해 서구의 자금과 기술을 이용해 기사회생했다. 그러나 이것은 오래갈 수 없으며 30년 후(1976년부터 기산) 중공은 여전히 “장쩌민-후진타오” 두 인물의 투쟁 과정에서 매장될 것이다. 이러한 해석은 매우 일리가 있다.

그림에는 어른과 아이 두 사람이 있다. 나이 든 이는 평민의 옷을 입었으니 분명히 신하이고, 어린 이는 관복을 입었으니 분명히 임금이다. 나이 든 이가 손을 들자 어린 이도 따라 손을 드는데, 이는 “임금은 임금이 아니고 신하는 신하가 아니다”라는 참의 글을 반영하는데 신하가 군주를 협박하는 뜻이 있다.

제45상 무신(戊申)

참(讖)에 이르길

손님이 서쪽에서 와서
동쪽에서 멈춘다.
목화금수(木火金水)로
이 커다란 치욕을 씻는다.

有客西來 至東而止
木火金水 洗此大恥

송(頌)에 이르길

염운(炎運)이 넓게 열려 세계가 같아지니,
금까마귀(金烏)가 하얀 바닷속으로 숨는다.
이제부터는 감히 영웅이라 칭하지 못하리니,
병사들의 기운이 다 소멸하고 운수가 이미 다했도다.

炎運宏開世界同
金烏隱匿白洋中
從此不敢稱雄長
兵氣全銷運已終

김성탄:

“이 상은 태평성대에 다시 병란(兵亂)을 보게 되는데 마땅히 해상에 있을 것이며, 이로부터 더욱 성세에 이를 것이다.”

이 상은 동방에서 발생하는 전쟁, 즉 서양인이 동양인을 토벌하는 것을 예언한다. 그림의 뜻도 명확한데 서양인 두 명이 총을 들고 태양이 있는 동방을 향해 오고 있다.

“손님이 서쪽에서 와서 동쪽에서 멈춘다.(有客西來, 至東而止)” 역시 이 뜻이다.

“목화금수로 이 커다란 치욕을 씻는다.(木火金水, 洗此大恥)”는 오행 중 토(土)가 빠져 있는데, “목화금수”는 사방을 뜻하고 “이 커다란 치욕을 씻는다”는 “중토(중국)”의 치욕을 씻는 것을 뜻한다. 어떤 치욕인가? 바로 우주 법리를 탄압한 최대의 치욕이다.

“염운(炎運)이 넓게 열려 세계가 같아지니,
금까마귀(金烏)가 하얀 바닷속으로 숨는다.
이제부터는 감히 영웅이라 칭하지 못하리니,
병사들의 기운이 다 소멸하고 운수가 이미 다했도다.”

는 염운이 크게 열릴 때 세계가 대동으로 나아가지만, 그전에 동방의 사악한 세력(금까마귀)을 토벌하는 전쟁이 발생하여 결국 금까마귀의 철저한 패배로 끝남을 뜻한다. 이 전쟁은 조물주가 안배한 이번 차례 대기(大紀)에서 인류의 마지막 전쟁이며 이 후에는 “병사들의 기운이 다 소멸하고 운수가 이미 다했다.”

하지만 이 전쟁은 아마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9평》의 출간과 더불어 사악한 중공을 평화적으로 해체하는 탈당 열풍이 거세게 일고 있으니, 어떤 무력도 필요 없이 공산 사악 세력을 철저히 해체할 수 있게 된 것으로 보인다. 파룬따파 창시인께서도 무력을 쓰지 않고도 중공 악당을 완전히 해체할 수 있다고 하셨으니 “불법무변(佛法無邊)”이다.

제57상 경신(庚申)

참(讖)에 이르길

물건이 극에 달하면 반드시 반전되니
독으로써 독을 제압한다.
삼척동자가
사방의 오랑캐를 모두 복종시킨다.

物極必反 以毒制毒
三尺童子 四夷(皆)服

송(頌)에 이르길

감(坎)과 리(離)가 서로 극하니 하늘의 끝을 보리라.
하늘이 이 사람을 보내어 살기를 잠재운다.
기이한 인재가 오월(吳越)에서 난 것을 믿지 못하겠지만,
먼 바다로부터 이제 군대를 거두도다.

坎離相克見天倪
天使斯人弭殺機
不信奇才產吳越
重洋從此戢兵師

김성탄:

“이 상은 오와 월 사이에 한 동자가 있어 기이한 책략으로 승리하여 타오르는 불길을 완전히 끄니, 액운이 이로부터 끝나고 다시 한 번 다스려질 것이다.”

이 상은 서양에서 동방을 토벌하러 온 전쟁의 종결을 가리킨다.

“물건이 극에 달하면 반드시 반전되니 독으로써 독을 제압한다. 삼척동자가 사방의 오랑캐를 모두 복종시킨다.”는 전쟁 중에 한 “삼척동자”가 나타나 전란을 평정하고 외국을 굴복시킴을 뜻한다.

“감(坎)과 리(離)가 서로 극하니 하늘의 끝을 보리라(坎離相克見天倪)” 역시 독으로써 독을 제압한다는 뜻이며,

“하늘이 이 사람을 보내어 살기를 잠재운다(天使斯人弭殺機)”는 그가 천명을 받아 전란을 평정함을 뜻한다.

“기이한 인재가 오월(吳越)에서 난 것을 믿지 못하겠지만,(不信奇才產吳越)”은 이 능력이 있는 사람이 오월 일대에서 나올 것임을 뜻한다.

“먼 바다로부터 이제 군대를 거두도다.(重洋從此戢兵師)”는 앞의 “병사들의 기운이 다 소멸하고 운수가 이미 다했도다””와 일치한다. 이 상은 제45상과 관련이 있으며 아마도 전쟁의 종결을 말하는 듯하다. 만약 전쟁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이 상 역시 의미가 없어진다.

제53상 병진(丙辰)

참(讖)에 이르길

대궐 안의 천자가
어진 이를 예우하고 선비에게 몸을 굽힌다.
하늘에 순응하여 명을 보존하니
반로(半老)에게 아들이 있도다.

闕中天子 禮賢下士
順天休命 半老有子

송(頌)에 이르길

한 효자가 서쪽에서 오니,
손에 건강(乾綱)을 쥐어 천하가 평안하도다.
나라 안에 두 번이나 아름다운 깃발을 보니,
앞사람이 뒷사람의 재주에 미치지 못한다.

一個孝子自西來
手握乾綱天下安
域中兩見旌旗美
前人不及後人才

김성탄:

“이 상은 성이 진(秦) 씨이고 이름이 효(孝)인 자가 관중에서 등극하여 남북을 통제하거나, 혹은 국호를 진으로 할 것이니 이것이 한 번의 다스려짐이다.”

이 상은 중국의 미래 집권자를 예언한다.

“대궐 안의 천자가 어진 이를 예우하고 선비에게 몸을 굽힌다. 하늘에 순응하여 명을 보존하니 반로(半老)에게 아들이 있도다.”에 대해 김성탄은 “관중(關中)” 혹은 “진(秦)”과 관련이 있다고 보았으며, “효(孝)” 자가 숨어 있음은 누구나 알 수 있다.

“한 효자가 서쪽에서 오니(一個孝子自西來)”는 ‘효’란 자가 있어 서쪽에서 온다는 뜻이다.

“손에 건강(乾綱)을 쥐어 천하가 평안하도다(手握乾綱天下安)”은 그가 나라를 맡아 천하를 안정시킴을 뜻한다.

“나라 안에 두 번이나 아름다운 깃발을 보니, 앞사람이 뒷사람의 재주에 미치지 못한다.(域中兩見旌旗美, 前人不及後人才)”는 깃발을 크게 펼치는 일이 두 번 있는데 뒤의 것이 더 훌륭함을 뜻한다. 미래의 중국 집권자는 어진 이를 예우하고 하늘에 순응할 것이니 이는 창생의 복이다.

제44상 정미(丁未)

참(讖)에 이르길

해와 달이 하늘을 아름답게 비추니
모든 음(陰)한 것들이 두려워 굴복한다.
수많은 신령이 조회하러 오니
두 날개와 네 발이로다.

日月麗天 群陰懾服
百靈來朝 雙羽四足

송(頌)에 이르길

중국에 이제 성인이 있으니,
비록 호걸은 아니나 두루 성취하도다.
사방의 오랑캐가 거듭 번역하며 천자라 칭송하니,
불행이 극에 달해 복이 오니 온 나라가 봄이로다.

中國而今有聖人
雖非豪傑也周成
四夷重譯稱天子
否極泰來九國春

김성탄:

“이 상은 성인이 다시 태어나 사방 오랑캐들이 조공하러 올 징조니 큰 다스려짐이다.”

이 상은 중국에 성인이 나타날 것을 말한다.

“해와 달이 하늘을 아름답게 비추니 모든 음(陰)한 것들이 두려워 굴복한다(日月麗天, 群陰懾服)”는 성인이 출세하여 소인과 악인들이 두려워 굴복하고 감히 함부로 행동하지 못함을 뜻한다.

“수많은 신령이 조회하러 오니 두 날개와 네 발이로다.(百靈來朝, 雙羽四足)”은 인간뿐만 아니라 온갖 생물까지 조회하러 오니 성인의 도덕이 높음을 알 수 있다.

“중국에 이제 성인이 있으니, 비록 호걸은 아니나 두루 성취하도다.(中國而今有聖人, 雖非豪傑也周成)”는 이 성인이 사람들 마음속의 호걸처럼 요란하지는 않지만 만물과 만사를 두루 이룸을 뜻한다.

“사방의 오랑캐가 거듭 번역하며 천자라 칭송하니(四夷重譯稱天子)”는 모든 외국인이 거듭 번역하며 중국 성인을 “천자”라 칭송함을 뜻한다.

“불행이 극에 달해 복이 오니 온 나라가 봄이로다(否極泰來九國春)”는 성인과 온 나라가 커다란 시련을 겪은 후 비로소 구름이 걷히고 해가 나듯 온 세상이 함께 경축하며 봄을 맞이함을 뜻한다.

파룬따파가 세계에 널리 전해지고 중생을 복되게 함에 따라, 중국에 나타난 성인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점점 의문의 여지가 없게 될 것이다. 파룬따파는 중공의 이 가장 사악한 박해를 겪은 후 반드시 밝은 봄을 맞이할 것이며, 파룬따파 창시인께서 정정당당하게 중국으로 돌아가실 것이니 그때야말로 진정으로 “중국에 이제 성인이 있는” 때가 될 것이다. 동시에 파룬따파의 세계적 전파와 더불어 중국은 반드시 만국이 조회하는 정경이 펼쳐질 것이며 성인 또한 최고의 공경을 받으실 것이다.

제59상 임술(壬戌)

참(讖)에 이르길

성도 없고 정부도 없으며,
너도 없고 나도 없도다.
천하가 한 가족이니
다스림이 크게 화(化)함에 이르렀도다.

無城無府 無爾無我
天下一家 治臻大化

송(頌)에 이르길

한 사람이 큼(大)이 되니 세계의 복이요,
손에 든 산통에서 대나무를 뽑아버린다.
적황흑백이 분명하지 않으니,
동서남북이 모두 화목하도다.

一人爲大世界福
手執簽筒拔去竹
紅黃黑白不分明
東南西北盡和睦

김성탄:

“이것은 대동(大同)의 형상이다. 그 즈음의 사람은 조화로운 덕을 먹고 마시니 그 유쾌함이 어떠할지 알 수 없다. 아쉽게도 그 운수가 이미 다했으니, 아마 근본으로 돌아가 혼돈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 상은 세계의 미래인 대동(大同)을 말한다. “한 사람이 큼(大)이 되니”에서 대(大) 자가 나오고, “손에 든 산통에서 대나무를 뽑아버린다.(手執簽筒拔去竹)”에서 통(筒) 자의 머리를 빼면 동(同)이 된다.

송의 시작 두 구절에 이미 “대동세계”란 네 글자가 함축되어 있으니, 이는 중국의 고금 모든 이들이 갈망하던 최고의 시대다.

“성도 없고 정부도 없으며, 너도 없고 나도 없도다. 천하가 한 가족이니 다스림이 크게 화(化)함에 이르렀도다.”와 “적황흑백이 분명하지 않으니, 동서남북이 모두 화목하도다.(紅黃黑白不分明, 東南西北盡和睦)”는 대도(大道)가 밝게 드러나 풍화가 유행하는 시대임을 나타낸다. 그러나 우리는 이 시대의 도래가 수많은 곡절을 겪은 후에야 온 것임을 보며 인류가 진정으로 이를 소중히 여겨야 함을 알 수 있다.

사실 여기서 가리키는 것은 장차 파룬따파(法輪大法)의 전성기를 가리킨다. 그림 속 인물이 산통을 들고 있는 것은 중생에게 미래를 선택할 기회를 주는 것을 암시하며, 리훙쯔 선생님이 우주 진리 “진·선·인” 대법을 널리 전하시니 중생이 그 안에서 자신의 미래를 선택할 수 있게 됨을 뜻한다. 대법은 사람에게 전해졌으나 믿고 안 믿고, 수련하고 안 하고, 정진하고 안 하고는 개인에게 달렸다. 사부가 문으로 인도하나 수행은 개인에게 달린 것으로 자신의 미래는 스스로 선택에 달렸다.

“성도 없고 정부도 없으며 너도 없고 나도 없도다.”는 파룬따파가 형식을 따지지 않으며 종교가 아님을 뜻하고, 사람으로 하여금 무사무아(無私無我)와 선타후아(先他後我)의 정각(正覺)을 닦게 함을 뜻한다.

“천하가 한 가족이니 다스림이 크게 화(化)함에 이르렀도다.”와 “적황흑백이 분명하지 않으니”s는 가르침에 차별이 없고 인종을 가리지 않음을 뜻하며, 파룬따파가 국적을 불문하고 전 인류를 교화함을 뜻한다.

“한 사람이 큼(大)이 되니 세계의 복이요”는 대법의 덕이 세계를 덮고 전 지구를 복되게 함을 뜻하며, “동서남북이 모두 화목하도다”는 난세의 은원(恩怨)을 선해(善解)해 세상 사람들이 화목해짐을 뜻한다.

제60상 계해(癸亥)

참(讖)에 이르길
한번 음 되고 한번 양 되니
끝도 없고 시작도 없네
끝나는 날이 끝나면
시작이 저절로 시작되네

一陰一陽 無終無始
終者日終 始者自始

송(頌)에 이르길

아득한 천수를 이 안에서 구하니,
세상의 흥망성쇠가 자유롭지 못하도다.
만만천천 말로 다 할 수 없으니,
등을 밀어 돌아가 쉬는 것만 못하구나.

茫茫天數此中求
世道興衰不自由
萬萬千千說不盡
不如推背去歸休

김성탄:

“한 사람은 앞에 있고 한 사람은 뒤에 있어 가기만 하고 옴이 없으며, 홀로 있지 않고 짝이 있으니, 이것으로 그림을 끝내니 담긴 뜻이 지극히 심원하다. 상이 없는 상(象)이 상이 있는 것보다 낫다. 나는 이해하지 못하는 것으로써 이를 풀이하니 저자가 알았어도 아마 허락했을 것이다.”

“한번 음 되고 한번 양 되니
끝도 없고 시작도 없네
끝나는 날이 끝나면
시작이 저절로 시작되네”

이 구절은 세계의 운동과 발전이 일어났다 떨어졌다 함을 설명한다. 큰 방면에서 보면 시작과 끝이 없으나 과정 중의 구체적인 사물과 단계에 있어서는 시작과 끝이 있으니 “끝나는 날이 끝나면 시작이 저절로 시작되네”라고 한 것이다. 역사는 시작도 끝도 없으나 모든 것에는 스스로의 법칙, 즉 저 “아득한 천수(天數)”가 있다.

저자는 아마도 예언을 통해 역사에는 안배가 있으며 “세상의 흥망성쇠” 역시 인위적인 것이 아님을 알리고자 했을 것이다. 이는 또한 각자 자신의 선악(善惡) 조화에 따라 각기 갈 곳을 얻음을 뜻한다. 즉, 구세계는 끝나고 새 세계가 시작된다는 것이다.

“아득한 천수를 이 안에서 구하니(茫茫天數此中求)”는 모든 천수가 이 예언 속에 함축되어 있으니 후세 사람들이 찾아보라는 뜻이다.

“세상의 흥망성쇠가 자유롭지 못하도다(世道興衰不自由)”는 세상의 흥망성쇠에 천의가 있어 사람이 스스로 말하는 대로 되지 않음을 뜻한다. 사람이 어떤 일을 하고자 할 때 천의에 순응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

이는 또한 지극히 큰 세계 운동의 주기, 혹은 전혀 새로운 세계와 관련되기에 그 운동 과정이 원래의 세계와 반드시 같지는 않을 것이니 진정으로 “만만천천 말로 다 할 수 없는” 것이다. 예언가는 천만 마디 말이 있겠으나 오직 여기까지 말할 수 있을 뿐이다.

“등을 밀어 돌아가 쉬는 것만 못하구나(不如推背去歸休)”는 서로 손 잡고 세속 밖으로 표연히 떠나 반본귀진(返本歸眞)하여 쉬는 것이 좋다는 뜻이다. 이는 예언가 자신에게 하는 말이자 후세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우리는 예언 속에서 어떤 계시를 얻어야 하는가?

여기서 가장 관건적인 문제에 이르게 된다. 만약 예언이 정말로 정확하다면—우리는 어쩔 수 없이 이런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는데, 너무나 많은 예언이 응험되어 더 이상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만약 정말로 예언할 수 있다면, 왜 정확하게 예언할 수 있는가?

세계의 발전은 정말로 그 법칙이 일찌감치 정해져서 가는 것인가?

아니면 세계의 발전이 정말로 하늘이나 조물주에 의해 안배되고 제어되는 것인가?

세계의 발전이 정말로 한 편의 연극처럼 대본이 이미 쓰여 있고 다만 끊임없이 상연되는 것인가? 그리고 예언가는 다만 유리한 조건으로 이 대본의 내용을 엿본 것인가?

참고자료

《추배도》 전집 김성탄 비주본.

김성탄이 추배도에 쓴 짧은 말이 있다.

“당조 신하 원천강, 이순풍이 지은 ‘추배도’가 노인들 사이에 전해졌으나 아직 본 적이 없었다. 임술년 여름에 사본 하나를 얻어 펼쳐 읽어보니 지나간 일들이 부절(符節)을 맞춘 듯이 합치했다… 그 글을 음미하고 뜻을 참고하니 오랑캐의 운수가 길지 않아 곧 기다릴 수 있을 것이니 하늘의 교자(驕子 총애하는 아들)로 자처하지 말라.”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423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