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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고대 도량형 발전을 통한 미래과학의 방향 모색

2005년 대만미래과학문화세미나논문:

글: 천젠위안(陳建源)

【정견망 2005년 6월 25일】 중국 고대 도량형은 중화민족의 오랜 문명 토대 중의 하나이며 과학상의 공헌은 더욱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예를 들면, 공예, 수학, 건축, 화학 등의 분야와 모두 밀접한 관련이 있다. 전설에 따르면 여와(女媧)는 “규(規)”를 들고 하늘이 뚫린 것을 보고 오색의 돌을 불려 하늘을 메웠고 거북의 집게발을 잘라 네 기둥을 세워 천지를 창조했다. 복희(伏羲)는 “구(矩)”를 들고 팔괘를 그리며 신명(神明)의 덕에 통하여 만물의 정을 풀었다. 규(規)로는 원(圓)을 그리고 구(矩)로는 방(方 네모)을 그렸으며 규구(規矩)를 함께하여 방원(方圓)을 그려낼 수 있었다. 그러므로 끊임없는 세대교체 가운데에서도 규구(規矩)가 우주의 표준을 결정했고, 인류에 경중(敬重)을 가늠하는 지혜를 부여했으며 더욱이 5천년 문화 중에서 인류행위의 처세 법칙이 되었다.

규구로 사방을 정하니 우주는 원래 모든 선과 악 및 좋음과 나쁨을 상호 제어하는 표준이 있었다. 도(度)이든 량(量)이든 혹은 형(衡)이든 그 한도가 있다. 신은 규구방원(規矩方圓)의 지혜를 인류에게 가르쳐 주었다. 실제로는 인류에게 우주의 운행에는 분명한 규칙이 있음을 알린 것으로, 인간의 행위도 규구와 마찬가지로 우주의 표준을 넘어설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이다.

이 글은 세상 기풍이 날로 떨어져 내려가고 도덕표준이 미끄러져 내려가는 이 사회에서 도덕 표준을 틀어쥐고 자신을 단속할 수 있게 되길 희망한다. 만약 매 사람마다 자(尺)로 자신의 씬씽(心性)을 가늠할 수 있고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찾아 시정하는 동시에 상화(祥和)한 마음을 유지하고 다른 사람들과 지나치게 따지지 않는다면, 도덕이 상승함에 따라 인류 환경, 과학 및 정신문명 등에 틀림없이 장족의 발전이 있을 것임을 나는 믿는다.

그림 1 복희와 여와를 그린 비단 그림(신장 아스다나 당나라 묘) 및 저울을 잡고 있는 그림(돈황 벽화)

1. 서론

먼 옛날에 인류의 최초 상품 교역은 간단한 물물교환이었으며, 결코 상품의 가치가 많고 적음을 생각하지 않고 생활의 필요를 만족시켰다. 이러한 교환이 어느 정도 발전했을 때 사물에 대한 가치척도가 변했고 교역의 공정성을 지키기 위해 사람들은 도량형이 필요해졌다. 그래서 도량형이 출현했으며 점차 발전할 수 있었다. 도량형은 주로 전문적으로 길이, 부피, 질량을 측적하는데 쓰이는 단위와 기구로 세 개의 계량 기준으로 나뉜다.

어떤 때는 측량 자체를 가리키는 경우도 있는데, 《사기 하본기(夏本紀)》에는 “왼쪽에 먹줄(準繩) 규구가 있다.” 라고 실려 있다. 우(禹)임금이 구주를 나누고, 홍수를 다스릴 때 자신의 신장과 체중으로 길이와 질량의 표준을 정하고, 동시에 규구준승 등 측량 도구를 사용했다. 이외에 《주비산경(周髀算經)》에 따르면, “고로 우 임금이 천하를 다스릴 수 있었던 것은, 수(數)가 생겨났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다시 말해서 그가 천하를 다스릴 때, 홍수 측량에 계량표준을 사용했을 뿐만 아니라 더욱 높은 표준으로 자신의 심성을 다스렸다는 말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평안히 살면서 즐겁게 일하며, 밤에도 대문을 잠그지 않았다. 그러나 역대 통치자들은 계량 표준을 통치 권력을 행사하는 상징으로 대한 것은, 도량형이 가지고 있는 진실한 내포를 제대로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옛 사람들의 논술에 관해 말하자면, 정말이지 비교적 완전한 도량형 기원학설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바로 악율루서설(樂律累黍說)이다. 《상서 순전(尚書·舜典)》에 “協時月正日,同律度量衡”이란 구절이 나오고 이후의 문헌 중에서도 “동율도량형(同律度量衡)” 이라는 명칭을 자주 볼 수 있다. 그 의미는 영륜(伶倫)이 대나무를 구해 만든 정종(定鐘)을 도량형 측량의 표준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서한(西漢) 말년에 이르러, 율력(律歷) 학자 유흠(劉歆)이 한 무리의 학자들을 모아 새로 악율루서 문제를 토론하고, 《한서 율력지(漢書·律歷志)>》 수록했다. 악율루서설의 제기는 옛 사람들의 통일된 도량형 기준을 수립하기 위한 노력을 반영한 것이다.

중국 고대 도량형의 발전은 수많은 시기에 걸쳐 다양한 변화를 겪어왔다. 단위량 가치, 방법 혹은 제도에 관계없이 비록 서로 다른 시기의 변화지만 인류역사가 전승한 것은 단지 따를 만한 그 표준의 전달궤적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남겨진 문명은 신이 인간에게 사람, 사건, 사물에 대한 판단의 표준화된 근거를 전해준 것이다. 이 글은 세상의 도덕 기준이 날로 붕괴되어 가고 있는 사회에 도덕 표준을 가져다 사람들이 스스로 단속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른바 머리 위에 신명(神明)이 있다고 하는 것처럼 대자연은 고유의 규율법칙을 가지고 모든 것을 가늠하기에 인간이 자연에 순종하며 우주법칙을 존중하고 항상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개선한다면 미래 인류는 환경, 과학 및 정신문명 등에서 반드시 커다란 진보가 있을 것이다.

2. 자연물을 표준으로 삼다

초기에 측량을 하는 중에, 옛 사람들은 자신의 신체 일부 부위를 측량 도구로 삼았다. 예를 들면 인체의 손가락, 손바닥, 발 길이 등이다. 그리고 로마인들은 인체에서 발견한 수의 비례를 가장 완벽하다고 생각했다. 이 완벽한 황금비는 15세기 유럽 르네상스 회화 중에 나타나는 것과 관계가 있는데 다빈치의 손은 인체비율도의 대표이다. 이외에 고대 그리스의 학자들은 “인간은 만물의 척도”라고 말하며 지구상의 모든 것은 인류를 위해 존재한다고 보았다. 왜냐하면 인체는 신의 형상을 따라 빚어졌기 때문이다.

천인합일(天人合一)을 강조하는 동양 민족들은 인체를 소우주라고 생각하며 인체의 어떤 부위를 도량형의 측량 도구로 삼았다. 예를 들면 《공자가어 왕언해(孔子家語•王言解)》에서는 “무릇 손가락으로 치를 알고, 손으로는 척을 알며, 팔꿈치로 심(尋)을 안다. 이는 먼 것이 아니다.(夫布指知寸,布手知尺,舒肘知尋,斯不遠之則也)” 라고 지적했다. 그 가운데 옛날 사람들은 결코 현대인들처럼 아주 사소한 하찮을 일까지도 꼼꼼하게 따지지 않았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이외에 “신장을 장(丈:길이의 단위)으로 한다”, “만보를 묘(畝:토지의 면적 단위)로 한다” 등에서 인류의 초기에 사람 신체의 각 부위를 표준으로 세운 것을 알 수 있다.

옛 사람들은 인체 외에도 자연물을 도량형의 기준으로 삼았다. 중세 유럽에서는 보리, 기장 등 농작물을 길이와 질량의 표준으로 선택했다. 영국 고대 법규에서는 1 penny는 밀 32알의 질량이고, 1 grain은 보리 한 알의 질량이었다.

《손자산경(孫子算經)》에서는 “도(度)의 시작은 홀(忽)에서 시작된다……. 누에가 뱉어낸 실이 홀이며 10홀은 1초(秒), 10초가 1호(毫), 10호가 1리(厘), 10리가 1분(分)이다.”라고 했다.

《회남자 천문훈(淮南子•天文訓)》에서는 “조 12알의 길이가 1촌(寸)이다” 등등의 기재가 있다.

그러나 신체 부위와 기타 자연물을 기준으로 할 경우 비록 측량이 편리하긴 하지만, 보편성을 갖지 못한다. 모든 자연물의 외형, 질량 등에 약간씩 차이가 있기 때문인데 이런 문제는 통일적으로 규정한 자연물을 표준으로 해야만 해결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우 임금이 물을 다스릴 때, “몸을 도(度)로, 출(出)이라고 칭한다”고 한 것은 통일성의 문제를 고려한 것으로 신장으로 표준치수를 정했다.

영국의 헨리 1세는 자신의 팔을 앞으로 쭉 뻗어 코끝에서 손끝에 이르는 거리를 “1야드”로 정했다. 영국의 리차드 대왕은 자신의 발 길이를 기준으로 하여 그것을 “피트”로 정했다. 중국 자금성의 건축은 인체를 기준으로 한 척도 시스템이며, 아울러 십진법을 기초로 하여 이른바 “천척(千尺)을 세(勢)로 하고, 백척(百尺)을 형(形)으로 한다”는 척도 규정을 건축 외부 공간 설계로 삼았다.

우리는 이를 통해 고대인들이 자연물을 표준으로 하여 도량형 측량에 공헌했음을 알 수 있다. 이 시기 사람들은 사용하기 가장 편리한 자연물을 이용하여 일상에서 필요로 하는 도량형의 문제를 해결하였다. 이는 이러한 측량기준이 우주 특성 및 인류의 자연본성에 부합하기 때문인데 고려해야 할 공급과 수요를 지나치게 자세히 따지지는 않았다.

현대 기계식의 과학정의는 비록 표면적으로는 이런 우주 공간의 보편적인 표준에 부합하는 것 같지만, 결코 공정한 거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로 야기된 분쟁이 날로 늘어나고 있다. 보건대 측량 방법이 발전하려면 인류의 도덕 수준을 더 끌어올려야 한다. 만약 단지 기계적인 측량 기술을 향해 발전한다면 궁극적으로 교역의 근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고대인들이 자신의 신체 부위를 측량 도구로 사용한 것을 표현한 그림
3. 고대의 도량형 표준기기

인류 원시 문명이 진보하기 시작할 때, 생활환경에서 공용성, 편리성 및 보편성의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도구 제조 등을 통일해야 했고 상호간에 물물 교환의 수요도 점차 변화하여 공정한 거래, 등가 거래 등을 원칙으로 요구하였다. 그래서 도, 량, 형 단위와 기기를 표준화 하기로 결정했다. 역사적인 기록에 따르면,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도량형 표준은 황종(黃鐘)의 율(律)에서 시작되었는데, 도(度)는 본래 황종의 길이에서 비롯되었고, 량(量)은 본래 겸종(兼鐘)의 약(龠)이며, 저울[權衡]은 본래 황종의 질량이다. 그런 까닭에 황종이란 기기는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도량형의 표준 원기(原器)이다.

진시황(秦始皇)은 전국을 통일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도량형을 통일해야 한다고 여겨 당시 상앙(商鞅)이 만든 표준기기를 채택했다. 그 표준기기의 제작과 검정은 상당히 정확해서 후세에 남아있던 양기에 대해 테스트를 한 결과 1%내의 오차 범위를 발견했다. 서한시대의 율역학자 유흠은 적서(積黍)와 황종율관(黃鐘律管)을 상호 비교, 조사하여 도량형 세 개 단위를 표준하는 방법을 만들어냈다.

왕망(王莽)이 건립한 신(新)나라 건국 원년 서원년(西元年)에 시작한 새로운 망동가량(莽銅嘉量)은 유흠의 원리에 따라 설계, 제작한 것이다. 기구의 형태는 완전한 원형 기둥에 양측에 귀가 있다. 이것은 도량형의 세 개 단위 표준을 하나의 기물에 조합한 것으로 상당히 복잡한 기술을 요한다. 기기 정면에는 81자가 새겨져 있는데, 모든 용량기에는 치수와 용적이 명기되어 있다. 역대 수학자, 율력학자 들은 그것을 표준으로 하여 진한 시대 도량형의 단위를 비교 조사했다.

사진은 신의 망동가량(新莽銅嘉量)이다
중국 역대의 도량형 변천은 비록 조대(朝代)마다 그 기준이 달랐으나 모든 조대에는 국가가 제정한 표준을 따랐다. 모든 조대의 변화가 서로 다른 천국 세계의 환생과 인연을 맺기 위한 것임을 차치하더라도, 표준과 규구의 제정에 대해서는 사람들로 하여금 법을 따르고 규구를 따르게 했다.

“교활한 천칭(天平)은 여호와도 증오하고 공평한 저울추(砝碼)는 모두가 좋아한다.”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중국 전통 문화에는 아주 사소한 것에도 깊은 내포가 담겨 있다.

4. 고대측량기술

도량형은 “규구(規矩)”와 “표준”을 중시하며 또 “측량” 기술을 대표한다. 이러한 측량 방법과 기술은 표준계량의 정확성에 부합하기 위한 길이, 용량, 질량 등 기본 단위이다. 고대 중국에서도 많은 측량 원칙과 방법을 발명하여 당시 세계적으로 선두에 올랐다.

길이 측량은 맨 처음 수문측량(水文測量), 천문측량(天文測量)에 사용되었다. 《상서, 순전》에 “동률도량형”이 기재되어 있고, 수(垂)를 백 명의 근로자를 관리하는 관직에 임명했다. 수(垂)의 주요 업무는 바로 측량 표준화 계량으로 하나라 우 임금이 물을 다스릴 때 규구, 먹줄 도구를 사용하게 한 것은 우 임금이 산천의 형세와 지세, 강, 하천 등을 측량할 때 많은 도움을 주었고, 현재 측량 기구에 기초를 마련했다. 그러나 옛날 사람들은 기술적으로 결코 많은 치수의 측량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예를 들면, 돈황(敦煌)석굴 안에 수많은 커다란 불상, 심지어 불경 안에는 각종 특수한 경관을 새겼다. 이외에도 파리의 루브르 궁 안에는 과거 서양인들이 그린 수많은 예수의 천국 세계가 전시되어 있다.

이렇게 동일한 비례치수는 정말이지 많은 측량(丈量)도구를 필요로 하는데, 게다가 당시 사람들은 어떻게 불도신(佛道神)의 장엄한 외관을 알았을까? 원래 사람들은 제3의 눈을 가지고 있다. 지금 해부학자들도 우리의 머리 속에 사실상 송과체라는 구조가 있는데 눈과 똑 같은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들이 그림을 그릴 때, 제3의 눈으로 다른 공간의 사물을 관찰하였고, 그래서 머리 속에 형상이 생긴 것이다. 이렇게 관찰한 측량기술은 어떤 차원에서 말하자면 현재의 과학기술보다 훨씬 선진적이다.

부피 측량 기술에 관해서, 유물에 출토된 청동기, 철기를 보면 당시 용기에는 이미 도량형의 세 가지 기본 단위인 치수, 부피와 질량을 교묘하게 하나의 표준 기구에 집합시켰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전국 시대 《고공기(考工記)》에 제국표준량기율씨량(齊國標準量器栗氏量)의 기술 조건을 기술하였다. 청동합금으로 주조한 공예는 현대 과학 기술 수준에도 부합한다.

질량을 측량하는 기술에 관해서, 작은 저울인- 목형간(木衡桿), 천칭(天平), 동 저울추(銅砝碼)는 초(楚)나라 당시에 이미 보편적으로 사용되었다. 이외에 같은 각도의 동형간(銅衡桿)이 있었다. 연구에 따르면 양쪽 팔이 비대칭적인 천칭(不等臂天平)을 사용했다고 하는데, 매단 중물(重物)과 저울추를 서로 다른 위치로 조절하면서, 지렛대 원리에 따라 모든 물건의 질량을 계산해 낼 수 있었다. 동한 시기 큰 저울의 출현은 옛 사람들이 지렛대 원리 운용을 더욱 발전시켰고, 큰 저울의 가장 뚜렷한 특징은 질량의 측량을 상응하는 저울추 벽 길이의 측량으로 전환시킬 수 있었다는 것이다. 칭의 사용 면적이 확대되고 보급됨에 따라 기술적으로 끊임없이 개선되었고 저울의 질량측량은 상대적으로 정확성이 높아졌다.

그림은 순서대로 고대 도, 량, 형 측량 기구이다
5. 과학기술은 씬씽(心性)에서 비롯

중국 고대 도량형 계량 분야의 공헌은 탁월한 것으로, 측량 방식의 정밀도도 아주 세밀하다. 게다가 일찍부터 음율(音律)과 연계하여, 황종율관(黃鐘律管)으로 길이를 정하고, 자연계 물리량을 정음의 규율(規律)로 삼아 점차 도량형의 표준기준량의 근거로 삼고, 중국의 물리, 철학, 의학 및 수학의 발전의 길을 열었다.

프랑스 파리 국제 계량국의 전문가 알리 모웨이는 그의 권위 있는 논술 가운데 “빛의 파장을 길이 단위로 채택한 것은, 기원전 2700년 중국 고대에서 제정한 계량 원기 중에 이미 기록되어 있다.”고 했다. 영국의 저명한 과학 사학자 조셉 니담(Joseph. Needham)은 중국 고대 과학 기술의 위대한 성과를 높이 찬양한 적이 있는데, 당시의 과학기술 발전이 확실히 오늘날 과학자들에게도 칭찬이 자자하다.

그러나 중국 고대 과학기술의 발전이 현대과학사상의 중시를 받는 이유는, 현대과학이 유발한 위기현상 때문이다. 현대과학은 비록 표면적으로 인류에게 진보를 가져다주었지만, 인류로 하여금 현대화 기술의 편리함을 누리게 한 반면, 무형 중에 정신과 심령의 많은 위기와 공허감을 가져와 어떤 측면에서 오히려 다른 문제를 발생시켰다. 예를 들면, 전쟁, 사회문제, 질병, 기근, 천재 인변 및 환경 오명 등등의 문제 등이다.

식견 있는 과학자들도 점차 현대과학 자체에 존재하는 문제를 생각하게 되었고, 옛 사람들의 “천인합일” 관념을 사색하며 정신과 물질문명의 관계를 중시하기 시작했다. 일본의 양자역학(量子力學) 전문가 에모토 마사루(江本勝)는, 1994년부터 고속촬영기술로 물의 결정을 관찰하여, “선량, 감사, 신성(神聖)” 등의 좋은 정보를 투과하면, 물 결정이 아름다운 원형으로 형성된다는 것을 증명하여, 현재 실증과학에 또 다른 사유방식을 개척하였다.

중국 고대과학이 발달했던 것은 그들의 연구 방향이 직접적으로 인체, 생명과 우주 간의 관계를 겨냥한 것으로, 심성에도 일정한 도덕적 규범이 있다는 것이다. 사서(四書) 중에 《맹자(孟子) 이루편(離婁篇)》, “이루의 밝음과. 공수자의 교묘함으로도 규구로 하지 않으면, 방원(方圓)이 되지 않는다.”라고 했다. 노반(魯班)은 과학기술을 발명한 인물로, 2천여 년 동안 줄곧 장인들에 의해 “시조”라고 떠받들어지고, 아울러 중국 고대 건축업, 공장(工匠)업, 과학계의 선구자가 되었다. 그의 창조 발명은 과학연구에서 현대과학자들에게 뒤지지 않을 뿐 아니라, 어떤 일을 하는지 모든 일을 심성 기준에 따라 하며 명리를 추구하지 않았다. 사전(史前) 시대 문명의 여러 가지 예를 들지 않더라도 사라진 고대 문명 중에도 과학이 아무리 발달하고 진보했을 지라도, 만약 인간의 도덕이 붕괴한다면 결국 모두 다 파괴되고 소멸될 것임을 경고한다.

6. 결론

2천여 년 전의 법가 사상가들은 이미 법은 규범으로 인간의 행위를 가늠하는 객관적이고 공정한 준칙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법을 도량형에 비유한다면, “척(尺)과 치(寸), 먹줄, 규구, 저울, 말, 각량(角量) 이 법이다.” 역대 군주들은 국가를 다스릴 때, 반드시 먼저 도량형을 통일시키고 법률을 제정하여 국민의 안정적인 생활을 보장했다. 그러나 법률이 아무리 건전할지라도 혹은 통치자가 아무리 가혹한 법률을 사용한다 할지라도, 겉으로는 사람의 마음이 두려워하며 감히 감옥에 들어가기를 원치 않는 것 같지만 실제로 어떤 사람들은 법률의 허점을 파고든다. 위정자들은 법률을 장악하고 전제를 실행해 자신이나 정권의 이익을 보호하려 하며, 함부로 백성의 사상을 금지하여 정의가 신장할 수 없게 한다. 역사적으로 너무나 많은 권력자들이 자신의 정권을 공고히 하기 위해 법률을 통해 함부로 종족, 신앙 단체를 배척했다.

예를 들면, 로마제국에서는 기독교를 박해했고 많은 법률을 이용해 기독교도를 체포하고 학살했다. 예수도 이른바 “공정”한 심판에 의해 십자가에 못 박혀 처형당했다. 그리고 장xx와 중국 공산사당(邪黨)은 자신의 욕심을 위해 죄를 뒤집어씌우고, 죄를 전가하고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등 국가 정치 자원을 이용해 진선인(真善忍)을 추구하는 파룬궁 수련자들을 박해하였다. 그래서 보기에는 공정한 법률조문때문에 하룻밤 사이에 만인이 비난하는 반란자가 되었다. 저울(역주: 법률)이 천칭을 본받는 것은 우주의 이치를 상징하는데 어찌 한 사람의 이기적 욕심만을 채우는 것으로 변할 수 있단 말인가?

《구약성경 레위기》에는 “너희는 재판할 때나 길이나 무게나 양을 잴 때 불의를 행하지 말고.”라고 했다.

여와는 “규”를 들고 하늘이 뚫린 것을 보고 오색의 돌을 불려서 하늘을 메웠고, 복희(伏羲)는 “구”를 들고 팔괘를 그리며 신명한 덕에 통해 만물의 정을 해결했으며, “규” 와 “구” 두 글자의 문화적 내포를 인류에게 전했다. 우주는 모든 선과 악 및 좋고 나쁨을 상호 제어하는 표준이 있어, 도(度)이건 량(量)이건 형(衡)이든 관계없이 그 한도가 있다. 옛 사람들의 “천인합일”의 우주관은 인간이 자연스레 우주의 법과 이치에 부합되어야 함을 설명해준다. 그런 까닭에 그 행위를 준칙으로 하여 법도표준이 있는 것으로, 널리 보급하면 인류의 도덕윤리관념이 점차 배태되어 생겨나게 된다. 문화의 단속과 도덕이 제고 된 후에, 사람들은 “선과 악은 항상 보응이 있다”는 것을 믿게 될 것이다. 그래서 항상 좋은 일을 하며,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을 도덕의 규범으로 준수하고, 진실, 선량, 포용의 전제하에 과학기술의 진보는 분명 커다란 발전이 있게 될 것이다.

참고 문헌

1. 《상서(尚書)》, 취완리(屈萬里) 주편, 타이베이, 타이완 상무인서관(台灣商務印書館), 민국 82년, p.11
2. 측량자문 사이트 http://www.measuring.org.tw/
3. 대기원 시리즈 사설, 《구평공산당》, 2004년 11월
4. 국립과학공예박물관, http://www.nstm.gov.tw/
5. 《성경-레위기》 제19장 35절.

원문위치 : http://zhengjian.org/zj/articles/2005/6/25/3286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