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고사(神仙故事): 힘써 악행을 저지하다
작가: 주월명(朱月明) 정리
【정견망 2002년 7월 17일】허손(許遜, 許眞君)은 진(晋) 나라 시대의 유명한 도사로 자(字)는 경지(敬之)이고 남창(南昌)사람이다. 그가 굳게 수도하려는 마음을 먹은 것은 소년 시절의 일화에서 기인한다. 허손은 소년시절 산에 올라가 사슴을 사냥한 적이 있었다. 이때 사슴이 새끼를 낳았는데 어미는 자신이 화살에 맞아 상처를 입은 것은 돌보지 않고 새끼가 죽은 것을 상심하며 핥고 있었다. 허손은 이에 활연히 깨닫고 마침내 활을 꺽고 화살을 버렸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그는 일찍이 심모(諶母)를 스승으로 모셨다고 하는데, 도법(道法)이 높고 오묘하여 예장(豫章 역주: 중국 절강성에 있는 지명) 각지에 허손이 교룡과 싸우고 뱀을 베고, 사람을 위해 해악을 없앤 신기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효무(孝武)제 영강(寧江) 2년, 허손은 이미 136세가 되었다. 8월 초하루에 하늘에서 선인(仙人)이 내려와 말했다. “옥황상제의 조서를 받들어 구주(九州) 도선태사(都仙太史) 고명대사(高明大師)로 제수하노라”라고 했다. 8월 15일 이전 온 가족 42인이 같은 날 집에서 승천했으니 한 사람 덕분에 온 가족이 도를 얻은 경우이다. 나중에 정명도파(淨明道派)의 조사로 추존되었다. 허손은 80세 때 용모가 여전히 삼사십 대 청장년과 같아 도처에서 그 도행(道行)이 높다는 칭송이 끊이지 않았다. 수행이 오래될수록 속세 백성에 대한 자비와 연민이 더해졌다.
진명제(晋明帝) 태녕(太寧) 2년(서기 324년) 왕돈(王敦)이 병사를 일으켜 동진(東晋) 조정에 반란을 일으켰다. 허손은 많은 백성들이 전쟁에 유린당하는 것을 차마 볼 수 없어 왕돈의 군대가 자호(慈湖) 지방에 왔을 때 오맹(吳猛)과 곽박(郭璞 역시 득도한 사람이다)과 약속해 점쟁이로 가장했다. 이들은 함께 왕돈을 만나 그의 군사행동을 저지시키기로 했다.
이날 밤 마침 왕돈이 꿈을 꾸었는데 한 그루 나무위의 하늘이 부서졌으니 보고 길조라고 여겼다. 하늘이 자신에게 중책을 맡기는 것으로 반드시 거사에 성공할 희망이 있다고 생각했다. 때문에 그는 자신이 진나라의 황제가 될 복을 받았다고 생각했다. 다음날 동틀 무렵 세 명의 점쟁이가 오는 것을 보고는 기쁨을 참지 못하고 그들을 불러 해몽을 청했다.
허손은 왕돈의 꿈 이야기를 듣고는 엄숙하게 말했다. “장군님, 이 꿈은 길조가 아닙니다!” 오맹이 이어서 말했다. “나무 위의 하늘이 부서졌으니 이는 “未” 자로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예시하니 경거망동하면 안 됩니다.” 라고 했다. 그는 눈을 한번 돌리더니 또 직접 장군의 몽상을 깨버렸다. “진명제의 운수는 아직 다하지 않았습니다!”
왕돈은 심기가 거북했지만 화를 내지 않았다. 다시 곽박에게 점괘를 보도록 명했는데 뜻밖에도 나온 점괘가 바로 “무성(無成 성공할 수 없다는 의미)” 두 글자였다. 그래도 아직 확실하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 어떻게 이번 전투에서 반드시 성공하지 못한단 말인가? 이에 왕돈은 분노를 꾹 참고 또 자신의 수명이 어떠한지 물었다.
곽박이 말했다. “군사를 쉬게 하지 않고 계속 일을 벌이면 큰 재앙이 닥칩니다. 군대가 무창(武昌)에 간다면 수명은 예측할 수 없습니다!” 마침내 왕돈은 그들이 고의적으로 자신을 놀리려 한다고 여겨 더 이상 노기를 참지 못하고 버럭 소리를 지르며 우선 곽박부터 끌어내 목을 베라고 했다.
허손 등은 왕돈이 충고를 듣지 않고 오로지 제멋대로 하자 이곳에 있어봐야 아무런 쓸모도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잔을 허공으로 던지니 신기하게도 그 술잔이 맴돌며 춤을 추는 것이었다. 왕돈이 놀라 잔을 바라보다 정신을 차려보니, 세 사람은 이미 몸을 숨겨 사라진 후였다.
발표시간:2002년 7월 17일
정견문장 : http://zhengjian.org/zj/articles/2002/7/17/1681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