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가수련이야기: 견정하게 수련해야만 수련 성취할 수 있다
작가: 유신우(劉新宇)
【정견망 2002년 8월 26일】《태평광기(太平廣記)》 제 17권에 깊이 생각해보게 하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배심(裴諶), 왕경백(王敬伯), 양방(梁芳) 이 세 사람은 세속을 초탈하기로 결의한 친구들이다. 수나라 양제(煬帝) 대업(大業) 연간에, 세 친구가 함께 백록산(白鹿山)에 들어가 도를 배웠다. 그들은 불로장생의 선약을 반드시 구할 수 있으며, 구름과 안개를 타고 우화등선(羽化登仙)하는 신선 공부도 고된 수련만 하면 조만간 반드시 성공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들이 십여 년 동안 내공(內功) 수련과 선약(仙藥)을 채집하는 등 손발이 닳아 굳은살이 배길 때까지 온갖 고생을 겪으며 노력했지만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나중에 양방이 죽자 왕경백은 배심에게 말했다. “우리는 고향을 떠나 세간의 호화롭고 부귀한 생활도 버리고 이 심산에 들어와 아름다운 음악도 듣지 않고 맛있는 요리도 먹지 않고 여색도 마다해왔네. 향락을 수치로 여기고 화려한 저택을 떠나 초가집에 들어와 스스로 적막하고 고생스러운 생활을 달갑게 여겼는데 이 일체는 모두 득도하여 신선이 되어, 어느 날 학을 타고 봉래(蓬萊)선궁(仙宮)에 가 신선 생활을 하려는 것이었네.
설령 선인이 못되더라도 불로장생하여 천지와 같이 오래 살고 싶었다네. 하지만 오늘 선경(仙境)이 어디 있는지 망망하여 알지 못하니, 장생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가 만약 이대로 여기서 고생하다가는 단지 산속에서 죽는 것 밖에 더 하겠나. 나는 즉각 하산하여 다시 호화로운 생활을 하며 말을 타고 좋은 옷에 음악을 들으며 미녀를 가까이 하고 싶네. 경성의 명승지나 유람하며 공명을 구하고 세간에서 이름을 내고 싶네. 고관이 되어 자색 두루마기를 입고 금띠를 두르며 매일 귀한 사람과 함께 하면서 나의 초상을 천자가 공신을 위해 건립한 “능연각(凌烟閣)”에 걸게 하여 영화를 누릴 것이네. 우리 돌아가지 않겠나? 구태여 이 산속에서 헛되이 죽어야 하겠는가!”
배심은 “나는 이미 속세와 인간의 부귀영화는 눈앞에 지나가는 연기 같다는 것을 알았네. 큰 꿈에서 깬 사람이 어찌 다시 꿈속으로 돌아갈 수 있겠는가?”
이리하여 왕경백은 배심의 만류도 듣지 않고 혼자 하산했다. 당시는 당 태종 정관 초년인데 왕경백은 원래의 관직을 회복했을 뿐만 아니라 옛 직책에 좌무위기(左武衛騎) 조참군(曹參軍)이라는 직책이 더해졌다. 대장군 조비(趙朏)는 자신의 딸을 그에게 주었고 몇 년 지나지 않아 대리시(大理寺) 정평(廷評)으로 승진하여 홍포(紅袍)를 입었다. 한번은 명을 받들어 회남(淮南)에 가는데 배를 타고 고우(高邮)에 도착했다. 그 때 배의 호위병은 삼엄했고 위풍당당하여 백성들의 배는 피하면서 감히 가지 못했다.
이 때 보슬비가 오는데 홀연히 작은 고깃배가 관선 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배 위에는 머리에 삿갓을 쓰고 도롱이를 입은 어부가 타고 있었으며 노를 저으며 지나가는데 마치 질풍 같았다. 왕경백은 불쾌하여 마음속으로, “나는 조정에서 파견한 사신이라 누구라도 나를 경외(敬畏)하며 피하는데 이 어부는 어찌 이리 방자한가?” 하며 자세히 보니 그 어부는 당시 자기와 함께 수도하던 배심이었다. 그래서 그 배를 쫓아가게 하여 배심을 따라잡았다. 왕경백은 배심을 큰 배로 올라오게 하여 배심의 손을 잡고 말했다. “노형은 당시 내가 함께 출산하자는 데도 세상의 명리를 포기하고 일심으로 수도했는데 오늘날 얻은 것이 무엇이요? 그저 어부 아니요? 그러니 내가 보기에 수도(修道)란 허망한 것이라 사람을 썩히는 것이오.
고인은 인생이 고생스럽고 짧으니 향락을 즐기고 밤에는 등불을 밝혀 허송세월 하지 않는데 하물며 청춘의 젊은이가 헛되이 세월을 버리는가? 나는 출산하여 몇 년 만에 정위평사(廷尉評事)가 되었고 일 처리를 공정하게 하여 조정의 상을 받아 천자께서 특별히 홍포와 금대를 하사하셨네. 최근에 회남에 의심스런 일이 있어 황상께서 노련한 관원을 회남에 파견하여 이 일을 살피라고 하셨고 내가 선발되어 회남으로 가는 길이라네. 내 비록 벼락출세를 하지 않았지만 산중의 노옹에 비하면 훨씬 얻은 것이 많소. 배형은 아직도 종전처럼 산속에 파묻혀 있기를 좋아하니 내 이해할 수 없소. 필요한 것이 있다면 뭔지 모르지만 내 반드시 배 형의 요구를 들어주리라.”
배심은 “나는 비록 산속에 사는 평민이지만 마음은 일찍이 아무런 구속이 없이 자유자재로 떠돌아 다닌다네. 나는 고기처럼 강에서 헤엄치고 자네는 새처럼 하늘을 날아 각자 취향이 다른데 하필이면 그 뜬구름 같은 명리를 가지고 내게 자랑하는가? 세간에서 필요로 하는 것은 충분한데 내게 무얼 준다는 건가? 나와 산속 친구들은 광릉(廣陵)에 가서 약을 파는데 또한 쉬어가는 곳이기도 하다네. 청원루(靑園樓) 동쪽에 넓이가 몇 리가량 되는 큰 도원(桃園)이 있는데 그 도원을 따라 북쪽으로 가면 사람이 다니는 문이 있으니 그곳이 내 집일세. 공무 중에 틈이 나시면 나를 찾아주시게.” 말을 마치고 노를 급히 저어 떠났다.
십여 일 후 왕경백이 광릉에 갔다가 한가할 때 배심의 말이 생각났다. 그래서 도원을 찾아갔더니 과연 문이 있었고 두드리니 배 씨의 집이었다. 왕경백은 안내를 받아 들어갔는데 처음에는 주변이 황량했으나 갈수록 경치가 좋아졌다. 몇 백 걸음 걸어가자 또 한 대문으로 들어가는데 문 안에는 누각이 층층이 있었고 화초가 만발하여 마치 보통 사람이 사는 집 같지 않았다. 안개가 자욱하고 경치는 비할 데 없이 아름다워 형용할 방법이 없었다. 향기로운 바람이 간간이 불어오고 기분이 상쾌하여 마치 구름 위에 떠 있는 것 같았다. 이 때 왕경백은 마음이 크게 변하여 관리가 되는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되었고 자기의 육체는 마치 죽은 한 마리 쥐 모양 비천하게 느껴졌다. 자기 일행을 보니 마치 개미 한 마리 같이 미미하였다. 얼마 안 있어 패검(佩劍)이 가볍게 부딪치는 소리가 나더니 두 명의 청의(靑衣)여자가 나와서 “배랑께서 오십니다.”라고 했다. 위풍당당한 의관(衣冠)을 갖춘 부귀한 사람이 눈앞에 도달해 왕경백이 급히 절을 하고 머리를 들어보니 뜻밖에도 배심이었다.
배심은 왕경백을 위로하며 말했다. “자네는 장기간 인간에서 관리가 되어 오랫동안 비린 고기를 먹고 마음에 탐욕과 사심(私心)이 많으니 등에 무거운 짐을 진 것 같아 걷기가 힘들 것이네.” 배심은 왕경백을 객청에 청하여 오르게 했다. 보니 창문, 집, 기둥은 모두 진귀한 보옥으로 되어 있고 병풍과 장막에도 모두 선학(仙鶴)이 그려져 있었다.
얼마 안 있어 네 명의 청의 여자가 벽옥(碧玉) 쟁반을 들고 들어오는데 그 위의 그릇은 광채를 비추는 것이 도무지 인간의 물건이 아니었으며 차려놓은 술과 안주는 종래 먹어보지 못한 것이었다. 해가 막 지려고 할 때 배심은 왕경백을 자리에 들게 했고 실내에는 여러 빛깔이 나는 등이 켜져 실내를 희미하게 비추었다. 또한 이십 명의 주악을 하는 여자들을 불러 왔는데 하나하나 모두 절세가인(絶世佳人)으로 왕경백 앞에 줄지어 앉았다. 배심이 말했다. “왕경백은 나의 산중 도우인데 수도의지가 굳세지 못해 나를 두고 하산한지 10년이 되었다. 그는 조정의 관리가 되었고 마음은 완전히 속세로 돌아갔다.” 그리고는 배심은 그녀들에게 음악을 연주하게 했다. 음악은 비록 황제(黃帝)의 『운문대권(雲門大卷)』 이나 요임금의 『운악(韻樂)』 같진 않았지만 이런 고대명곡과 같이 연주하면 봉황을 불러올 것처럼 선율이 매우 청량하고 감동적이어서 손님과 주인이 주거니 받거니 하며 매우 즐겁게 지냈다.
날이 밝아올 무렵 배심은 집사를 불러 그를 돌려보냈다. 그러면서 말하기를 “이곳은 구천화당(九天畵堂)이라 보통 사람은 들어오지 못하네. 하지만 우리는 과거 수련할 때 친구이며 왕경백이 세상의 영화에 미혹되어 끓는 물과 타는 불에 달갑게 들어가며 총명이 어두워지고 계략 갇혀 자신을 해치며 이 때문에 생생세세 고해에 빠져 피안의 세계를 보지 못하니 내 그대를 가련히 여겨 일부러 오게 하여 깨닫게 하려는 것이네. 오늘 이후 나중에 다시 만나긴 어려울 것이네.
배심은 또 왕경백에게 말했다. “자네는 공무가 있어 여기서 하루를 머물렀지만 당신의 수하들과 관원들은 당신을 찾지 못해 당황할 터이니 먼저 역관으로 가시게. 이번에 경성에 돌아가 복명하기 전에 다시 나를 볼 수 있을 걸세. 속세의 길은 느리고 요원하며 사람은 세상에서 항상 걱정거리가 많은데 신중하기 바라네.” 왕경백은 절을 하고 배심과 이별했다. 5일 후 왕경백이 공무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가는데 시간을 내어 배심을 찾아가 그에게 작별 인사를 하려고 생각했다. 그러나 도원에 가보니 문 안에 있던 배심의 부귀한 저택은 더 이상 없었으며 단지 잡초가 무성한 들판만 있어 크게 낙담하여 돌아갔다.
신선의 술법은 능히 이 정도에 도달할 수 있다. 환상적인 풍경을 만들어 사람을 유혹하려는 것인가 ? 당연히 그런 것이 아니다. 이는 사람이 수련하려는 의지를 북돋우려는 것으로 보통 사람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것은 비록 과거 소도(小道) 수련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그래도 하나의 진리를 말해준다. 즉, 수련인은 수련의 길에서 끝까지 확고해야만 공을 이루고 원만할 수 있으며 중도에 그만두거나 성공을 눈앞에 두고 그만둔다면 후회해도 이미 늦는다.
발표시간:2002년 8월 26일
정견문장 : http://zhengjian.org/zj/articles/2002/8/26/1829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