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대법제자
[정견망 2008년 1월 20일]
적인걸(狄仁杰)은 당나라 병주 태원(并州 太原) 사람인데 지금의 산서 태원(山西太原)이다. 자는 회영(懷英)이며 당(唐) 정관(贞观) 4년(630년)에 출생하여 측천무후 구시(久视) 원년(700년)에 죽었으며 무후시기의 명재상이었다. 적인걸은 청렴하고 엄격하여 스스로 실천하고 백성의 이익을 위해 진언하며 시종 백성을 아끼고 권세를 두려워하지 않아 후세에 “당실의 기둥(唐室砥柱)”이라고 불렸다.
나는 여기서 여러분에게 적인걸의 청년시절의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적인걸은 소년 시절에 문학적 재능이 뛰어나고 용모도 출중했다.
한번은 그가 경성(京城)에 가서 과거를 보느라고 여관에 투숙해 깊은 밤에 정신을 집중하고 등불 아래에서 책을 읽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문을 두드리며 들어왔다. 알고 보니 여관 주인의 미모의 며느리였다. 그녀는 젊어서 과부가 되었는데 낮에 적인걸의 우아하고 고상한 기질을 보고 사모하는 마음이 싹터 기회를 보아 가까이 하려 한 것이었다.
적인걸은 젊은 여자가 머뭇거리며 떠나기 싫어하는 것을 보자 온화하게 말했다. “당신같이 이렇게 젊고 용모가 아름다운 사람이 깊은 밤 조용할 때 나에게 장황하게 심사(心事)를 호소하니 사람의 마음을 들뜨게 하는군요. 다행히 이전에 어떤 노스님이 색을 탐하지 말라고 깨우쳐주셨소! 나는 그 말을 단단히 기억하고 수시로 마음에 새겨두고 있소! 당신이 아무리 아름답더라도 예절을 지켜야 하며 규범을 넘을 수 없소이다!
젊은 부인은 호기심에 물었다: “그 노스님이 무슨 말을 했기에 이런 순간에도 자기를 억제할 수 있는가요?”
적인걸이 대답했다:”그 노스님이 말씀하시길, 나의 용모로 추단컨대 부귀가 있고 관직에 높이 올라갈 사람인데 장래에 명관이 될 것이라 하셨오, 그러나 절대 색을 금할 것을 지켜야 한다고 했소이다. 이왕 노스님이 말씀하셨으니 내가 어찌 모험하여 일생의 전도를 순간적인 남녀의 욕망에 못 이겨 망치게 하겠소? 그러나 일반인은 대다수 미인관을 넘길 수 없습니다. 당시 내가 스님에게 가르침을 청했소: “미색을 좋아하는 것은 속인의 정입니다. 색욕의 일은 사전(事前)에는 사람마다 좋아하지만 사후(事後)에는 후회합니다. 그러나 색욕심이 활활 타오를 때 일체의 결과는 뒤로 던져버리고 이따금 해롭지 않는 것으로 여기고 이번만은 괜찮겠지 하는데 매번 이같이 생각합니다. 이렇게 빠져 들어가는 것이니 모름지기 어떤 방법으로 색욕의 불을 끄고 더 타지 않게 할 수 있습니까?”
스님은 이렇게 알려 주셨소이다. 매번 어떤 사람이 당신의 색욕지심을 불러일으킬 때 이렇게 생각하시오. 만가지 악(惡) 중에 색이 으뜸이다. 이것은 색마가 그녀를 이용하여 나로 하여금 사음(邪淫)의 큰 죄를 짓게 하는 것이고 동시에 색마가 나를 이용하여 그녀에게 큰 사음의 죄를 짓게 하는 것이다. 그녀의 미모가 아름다울수록 내 마음을 침식하며 빠져나올 수 없게 하는데 그것 색마는 그것의 목적을 달성한다. 일단 심지가 미혹되어 덕(德)을 잃고 업(業)을 지으면 당신은 이 때문에 오랫동안 고통을 받을 것이다.
나는 이 노스님의 가르침에 탄복하여 준수하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에 조금도 위배할 수 없소.”
젊은 부인은 적인걸의 말을 듣더니 묵묵히 생각하다가 얼굴에 부끄러운 표정을 드러내며 적인걸에게 감사해했다. “저에게 정절을 지키게 해주신 당신의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 금후로는 이러한 어리석은 마음과 헛된 생각을 다 없에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이 되어서야 비로소 제 자신의 산란한 마음을 억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공부를 해야겠습니다.”
적인걸은 나중에도 노승이 말한 것처럼 색욕을 탐하지 않고 천하의 명관이 되고 당대의 명재상이 되었다. 적인걸의 생각은 지혜로와 어찌 사소한 순간적인 즐거움을 위해 일생의 광명의 길을 망치겠는가? 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늘 말하기를 “영웅은 미인관을 넘기 어렵다.” 라고 한다. 사실은 색욕관을 넘겨야 진정한 영웅이다.
(자료: 적인걸 이야기)
발표시간:2008년 1월 20일
정견문장 : http://zhengjian.org/zj/articles/2008/1/20/5055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