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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벽에 몸을 던진 이야기

작자: 산명

【정견망2008년02월09일】태산에는 사신애(舍身崖)라는 절벽이 있는데, 이 명칭의 유래로 각각 다른 설이 있지만, 민간에서는 이런 설이 전해져 내려온다. 산 아래 마을 어느 집에는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의지하며 단란하게 살고 있었다. 아버지와 아들 모두 본분에 충실하면서 소박하고 후덕한 됨됨이를 가진 선량한 사람이었다. 다만 아들이 고집이 매우 센 편이었는데 가난한 살림살이라 아내를 맞지 못하고 있었다.

그 해 연말이 가까워져 두 부자는 설빔을 사려고 시장에 가다가 홀연 눈앞에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게 보였고 이어 탄식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들이 가까이 다가가 보니 빼어난 외모를 지닌 청순한 처녀가 눈물을 흘리며 땅에 꿇어앉아 있었고, 앞에는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 몸을 판다”는 내용의 몇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추운 겨울임에도 단촐하게 옷을 입은 처녀는 추위에 벌벌 떨고 있었다.

그 상황을 보고 연민의 정을 느낀 두 부자는, 자신들의 가족이 세상을 떠날 때도 찢어질 듯 가난했는데 인심 좋은 사람의 도움으로 겨우 장례를 치렀던 기억이 났다. 부자는 저축한지 얼마 안 되는 돈을 꺼내 처녀 앞에 놓고는 되돌아갔다. 처녀가 일어나서 두 부자를 따라갔지만 이미 그들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마침 그 두 부자를 알아보았던 사람이 있어서 처녀에게 알려 주었고, 처녀는 그들의 이름을 마음에 새기고 집으로 돌아가 모친의 장례를 치렀다.

하루는 처녀가 마을 사람의 도움으로 그들을 찾아와 은혜에 감사드리면서 몸을 팔겠다는 약속을 지키려고 했다. 하지만 부자는 원하지 않았는데 마을의 나이 많은 사람이 그 이야기를 전해 듣고는 감격해서 그들 사이에서 중매를 서 가연을 맺어주었다. 마침내 젊은이는 처녀와 함께 천지신명에게 절을 한 뒤 부부가 되었다.

그 해 농사가 잘 되지 않아 마을 사람들은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일자리를 찾아 고향을 떠났고, 젊은이 역시 고향을 떠나게 되었다. 1년이 금방 지나 또 추운 겨울이 되었다. 평소 찬바람이 들던 아버지의 다리가 금년에는 더욱 심하게 찬바람이 났다. 며느리가 그런 시아버지의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고는 자신이 먼저 들어가 이부자리를 따뜻하게 한 다음 시아버지를 잠자리에 들게 해 시아버지는 감격을 이기지 못했다.

그러나 뜻하지 않게 마을에 사는 심술궂은 사람이 며느리가 정숙하지 못하다는 요언을 퍼트렸고, 그 소문은 재빨리 마을에 퍼져 나갔다. 얼마 되지 않아 젊은이에게까지 거짓소문이 전해졌고, 그는 더럽혀진 명예를 참을 수 없다는 생각에 불문곡직하고 아내를 내쫓기로 결심했다.

이 날 고향에 먼저 돌아온 사람이 아버지를 찾아가서는 아들이 내일 온다고 알려주면서 암암리에 아들이 며느리를 쫓으려 한다고 알려주었다. 며느리도 옆에서 그 말을 엿들었다.

좋은 인연에는 굴곡이 많다고 했던가, 시아버지는 아들이 이번 혼사의 인연으로 복을 받지 못하는 걸 보고는 매우 상심하고는 오열했다.

며느리는 갑자기 어려움이 닥치자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방황하다가 마음을 정했다. 그녀는 시아버지에게 너무 괴로워하지 말라고 위로하면서, 내일 남편이 돌아온 후 남편이 자신의 결백을 믿는다면 해가 떨어지기 전에 어느 절벽으로 찾아오라고 말했다.

다음날 도착한 아들은 아내를 문책하려 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며느리가 산에 갔다며 며느리를 찾아서 돌아오라고 독촉했다. 그러나 아들은 며느리가 책임을 면하기 위해 도망간 것이라 생각하고는 화가 나서 아버지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아 아버지를 상심시켰다.

그러다 얼마 후 아들은 완강한 태도를 누그러뜨려 처음에는 걱정했고, 나중에서야 급하게 아내를 찾으러 산으로 달려갔다. 해는 조금씩 산머리에 가까워져 오고, 젊은이는 급히 험악한 산새를 따라 올라 산모퉁이를 돌아갔을 때 이미 해는 산 너머로 넘어가는 중이었다. 그때 한 그림자가 절벽에서 떨어지는 게 보였다. 젊은이는 큰 소리로 아내를 불렀으나 이미 너무 늦은 뒤였다.

아내의 그림자가 허공으로 떨어질 때 홀연히 선학이 나타나 며느리를 받자, 오색구름이 그들 위로 떠오르면서 선학은 며느리를 태우고 곧장 구름위로 올라 점점 멀리 사라져 갔다.

나중에 며느리가 몸을 던져 의를 취한 일을 기념하기 위해 사람들은 이 절벽의 이름을 사신애(舍身崖)라고 불렀다고 한다.

문장발표:2008年02月09日
문장위치:http://zhengjian.org/zj/articles/2008/2/9/5089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