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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서에 나타난 소인에 관한 기록(세 가지)

글 : 모구(莫求)

[정견망 2009년 7월 9일] 중국의 여러 시기의 고서에는, 약속이나 한 듯 키가 한 척이 안 되는 소인에 대한 기록이 있다.(사실 서방문화에도 마찬가지로 이런 소인들에 대한 기록이 있다) 오늘 여러분에게 그중 세 가지를 소개한다.

1. 북송의 유부(劉斧)가 지은 “청쇄고의(青瑣高議)” 중에 고언(高言)이라는 사람의 말이 기록되어 있다. 그는 자기가 페르시아 남쪽의 임명국에서 바닷길로 중국으로 돌아올 때 소인을 본적이 있다고 했다.

“중간에 어떤 나라가 있는데 그 이름은 모르나 사람의 키가 몇촌이고 나갈때는 반드시 연락한다. 짐승의 크기는 수척이며 때로 그 사람을 잡아먹는다. 따라서 나갈때는 반드시 연락한다. 뱃사공이 소인 몇 명을 싣고 돌아왔는데, 중도에 죽었다.”

이 기록중에서 우리는 몇촌 크기의 소인을 볼 수 있으며 외출할 때는 반드시 서로 연락을 하여 단체행동을 했음을 알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몇 척 크기의 짐승에게 잡아먹히기 때문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태평광기”에도 역시 이런 기록이 있다는 것이다. 서북해에 학민국(鹤民国)이 있는데, 그 사람들도 키가 몇촌 밖에 되지 않으며, 역시 학에게 잡아 먹힌다. (이에 관해서는 “중국고서 소인에 관한 기록 (2)”를 참조하라)

사실 고대 그리스 문화 중에도 마찬가지로 이러한 기록이 있다. 고대 희랍인들은 늘 이렇게 묘사했다. 일종의 난쟁이가 있는데 키가 사람의 작은 팔 정도이며 키가 작기에 늘 기러기 등 새들에게 잡아먹힌다.

예를 들면 “호머의 서사시”에서는 “야생 기러기, 빨리 나는 황새같은 학,….” 등이 퍼그마이아(Pugmaians) 사람을 유혈 소멸시켰다. 여기에서 퍼그마이아인이란 바로 그 키가 팔만한 난쟁이를 가리킨다. 대개 30센티미터 정도로서 중국의 고서적에서 말하는 길이가 수촌인 사람들임을 알 수 있다.

동서방의 사료에 무엇 때문에 키가 몇촌 밖에 안 되는 이런 소인이 나타나는가? 또한 큰 새들에게 잡아먹힌다는 이야기까지 놀랍도록 일치한다. 여기에는 단 한 가지 해석만이 가능하다. 바로 이런 몇촌 크기의 소인들이 진실하게 존재했을 것이라는 점이다.

동서방의 고대 인류는 모두 보았던 것이다. 현재는 왜 보이지 않는가? 아마도 체형이 너무나 작은 까닭에 지표에서 생존하기가 너무 부적합하여 쫓겨났거나 도태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2. 명나라 “객좌췌어(客座赘語)”에 이런 기록이 있다 : 명나라 융경연간(1567—1572년)에 고기원(顾起元-명나라 때 이부좌랑 겸 한림원시독을 지낸 사람으로 “객좌췌어”, “금릉고금석고(金陵古金石考)”, “설약(說略)” 등의 저서가 있다 – 역주)이라는 사람과 같은 고향 사람인 김한천(金漢泉)은 한때 바다에서 떠다니던 소인 두 명을 얻은 적이 있었다.

그는 그들을 네모난 조롱에서 키웠다. 두 소인들은 하나는 노부인이었고 다른 하나는 남자였는데 그들의 관계는 모자인 듯 했다.

그들의 키는 겨우 한 척이 약간 넘었으며(여기의 한 척은 명나라 시대의 한 척으로서 명대의 한 척은 지금보다 짧다. 명나라의 민간에서 사용하는 1척은 길이가 약 23센티미터이다), 이 두명의 소인이 말하는 음성은 마치 제비 같았다.

나중에 소인중 남자가 죽었는데 그 모친이 슬피 울었으며 흰포로 머리를 둘러 마치 상복같은 모습을 했다. 나중에 이 노부인 역시 죽었다. 김한천의 딸은 액기원의 둘째 처남 왕효렴의 아내였다. 때문에 그는 여러 차례 이 두 소인을 보았고 결코 남에게 주워들은 말이 아닌 것이다.

3. 명나라 서부조(徐复祚)가 지은 “화당각총담(花當閣叢談)”의 기록을 보면 이런 것이 있다 : 구중(衢中) 상인 호수(胡秀)라는 사람이 소인 하나를 가지고 군대에 들어왔는데 키가 한 척으로 남자이며 눈과 수염, 머리카락 등이 다 갖추어져 있었다. 주홍색 조롱에 넣고 풀로 자리를 깔아 물과 쌀로 키웠다. 입으로는 지지하는 소리를 가끔 냈으며 말을 할 줄 몰랐다. 침대를 만들어주었더니 피곤하면 잠을 잤다.

발표시간 : 2009년 7월 9일
정견문장 : http://www.zhengjian.org/zj/articles/2009/7/9/6043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