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자:막구
【정견망 2009년 7월 20일】 도가의 고인(高人) 왕중양(王重陽)에게는 이름이 구처기(丘處機 자는 밀통, 도호는 장춘자)라는 제자가 있었다. 무협소설 탓인지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그를 알고 있다. 하지만 그는 결코 무협소설 중에 묘사된 것과 같은 협객이 아니며 고대의 수도인이었다.
오늘 여러분에게 그가 수련하던 이야기를 들려주겠다. 구처기가 득도한 후 행각하며 길을 가다가 섬서 보계 반계(磻溪)에 도착했다. 그는 그곳에 동굴을 파서 자신이 거처할 곳으로 삼고 이름을 장춘동(長春洞)이라 했다. 그는 이 동굴에서 고요히 수련했는데 밤낮 가부좌했다.
일용품이 거의 없어 배가 고프면 나와서 음식을 구걸해야 했다. 겨울에 늘 추위와 배고픔이 교차했다. 그가 반계에서 6년을 고행하는 동안 한 벌의 새 옷도 보태지 않았으며 춘하추동 내내 풀로 만든 헤진 도롱이만 입었으므로 사람들은 그를 사의(蓑衣-도롱이)선생이라 불렀다.
당시 구처기는 대부분의 시간을 모두 장춘동에서 혼자 지내며 수련하는데 보냈으므로 적막한 고독과 맞서야 했다. 마침내 그는 이 장애를 이겨내었고 견지하여 반계에서 머문 지 6년이 되었다. 나중에 용문동이 반계에 비해 더욱 외진 곳이고 더욱 세속에서 멀었기 때문에 구처기는 이 기회에 더욱 먼 그곳으로 옮겨갔다. 그는 용문동에 도착한 후 여전히 반계에 있을 때처럼 고생스럽게 수도하고 밤낮 가부좌 수련하며 하루에 한 끼만 먹었다.
용문동 앞에 한그루 천년 묵은 노송이 있는데 이 노송은 구처기와 밤낮으로 동무가 되었다. 이때 구처기는 이런 고생스런 수련상태 중에 이미 신통력이 있었다. 어느 봄날, 구처기는 신통으로 이 노송이 장차 베어질 겁난을 당할 것을 알았다. 그래서 이 노송을 보호하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매일 고송 아래에 가부좌를 틀었다.
마침 당시 용주의 유현령이 청명절에 돌아가신지 몇 년 되는 부친의 묘를 이장하려고 관을 만들려고 했다. 그는 하급관리 십여 명을 보내 인근 산림에 가서 목재를 찾아오라고 했다. 사람들 중 어떤 사람이 용문동 앞에 천년 묵은 나무가 있음을 알고 사람들을 안내하여 그 앞으로 갔다. 그들은 용문동을 찾았을 때 구처기가 몸을 일으켜 예의를 갖췄다. 그러면서 그들이 온 뜻을 알아본 후 온정을 베풀어 이 나무를 놔두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일꾼들은 기어코 이 나무를 자르려 했고 구처기는 그들이 나무를 자르지 못하도록 버텼으므로 쌍방이 다투기 시작했다. 사실 옛날의 일꾼들도 도리를 알았으므로 억지로 자르지 못하자 결국 관아에 가서 한번 따져보기로 했다.
관아에 도착하니 유현령이 구처기에게 왜 공무를 방해하냐고 물었다. 구처기가 답했다. “잠시 제 말을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대인께서 사람을 보내 나무를 잘라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용문의 오래된 그 나무를 자르라고 하셨습니까?” 하면서 경과를 한 바탕 이야기 했다. 유현령은 듣고 나서 관리에게 소리를 질렀다. “본관은 너희들에게 인근 산에서 목재를 찾아오라고 했지 누가 감히 신령스런 귀한 산에 가서 오래된 나무를 자르라고 했느냐?” 하면서 친히 구처기에게 사과했다.
그후 유현령은 구처기를 집으로 청하여 머물게 하면서 좋은 글씨를 남겨달라고 부탁했다. 구처기는 붓을 찾아 이렇게 시를 썼다.
清夢軒中清士居
士居清境養真如
真如養就清無夢
無夢清歡樂有餘。
청몽헌에 깨끗한 선비가 거하니
선비가 거하는 맑은 경지는 진리(真如)를 배양하네
진여는 맑은 꿈이 없음(無夢)을 키우고
무몽(無夢)이 맑으니 남음이 있어 즐겁다
이 시는 다섯 글자의 맑을 청 “清”자를 써서 유현령이 청빈한 관리가 되기를 뜻한 것이었다. 유현령은 하늘이 이미 어두워진 것을 보고 구처기에게 자기 집에서 하루 밤 묵어갈 것을 청했다. 구처기는 이참에 유현령의 집에서 가부좌하여 밤을 지내기로 했다. 새벽이 되자 갑자기 어느 크고 희끗한 노인이 나타나더니 그에게 인사를 올리며 말했다. “돌봐주신 덕분에 오늘 제가 장차 사람으로 세상으로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삼십년 이후 십팔자(十八子)자를 성으로 하여 당신의 제자가 되겠습니다.”
구처기가 물었다. “선생은 뉘시오?” 그 노인이 말했다. “저는 十八公입니다.” 말을 마치자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구처기가 속으로 생각했다. “十八公 이면 松자가 되는구먼.” 생각해보더니 속으로 외쳤다. “좋지 않군! 고송(古松)이 겁난을 당해 목숨을 잃을 것을 생각해보지 않았구나.”
구처기는 바삐 몸을 일으켜 현령을 작별하고 용문동으로 돌아갔다. 그가 막 산어귀에 도착하여 멀리서 보니 그 소나무가 보이지 않았다. 주위를 보니 어느 촌부가 이미 잘려 넘어진 고송을 베고 있었다. 구처기가 그에게 나무를 어디에 쓸 것이냐고 물어보니 그는 들보로 쓴다고 했다.
구처기는 이 말을 듣고 탄식했다. “보아하니 일체 일은 모두 정해진 것이구나. 내가 이 나무를 관리들이 베는 것을 막을 수 있었지만 뜻밖에 그것은 나무꾼의 손에 목숨을 잃고 말았구나.”
이 이야기를 보고 많은 점이 사람을 감탄하게 한다. 구처기는 속세에서 멀리 떨어져 고생스럽게 수행했는데 이는 과거에 사람이 수련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웠는지 알게 한다. 유현령이 부하에게 도리를 말한 것을 보면 고대 사회는 절대 중공이 말하는 것처럼 그런 암흑시대가 아니었다. 사실 공산당의 통치야말로 바로 암흑이다. 그것이 옛사람을 뭉갠 것은 완전히 백성을 속이기 위한 것이다.
또한 오랜 소나무가 잘린 후 그 원신은 장차 사람으로 전생할 예정이었으니 윤회가 정말 있음을 알 수 있고 무신론은 진정으로 잘못된 것이다.
하지만 가장 감탄할 것은 오히려 이런 것이다. 구처기가 노송이 장차 질릴 것을 안후에 큰 애를 썼지만 마침내 그 정해진 운명을 바꾸지 못했으니 정말로 운명이란 위배할 수 없는 것이다! 이것으로부터 나는 나도 모르게 이때 중국인민의 생사에 관계되는 커다란 운명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천멸(天滅) 중공사당” 하지만 지금은 안 믿는 사람들이 매우 많다.
여러분 생각해보라. 중공사당은 수십 년 이래 8천만의 중국인을 박해해 죽였고 부패가 도처에 널려있다. 환경은 악화되었고 날림공사가 만연하며 모두 인민을 해치는 시한폭탄이 되었다. 지금 심지어 장기를 적출해 수많은 파룬궁 수련자를 박해해 죽이고 있다.
때가 되면 일체 당, 단, 대를 퇴출하지 않은 사람들은 사당을 위해 일체를 희생하겠다고 한 맹세를 실현해 사당의 순장품이 될 것이다. 사람의 맹세는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데 사람이 자신의 맹세를 중시하지 않아도 신은 잊지 않는다.
또 다른 각도에서 말하면 사람이 당, 단, 대를 가입하기로 선택하면 그는 바로 중공 사당을 지탱하고 강화하기 위해 선택한 것이다. 그럼 그가 만약 탈퇴하지 않는다면 중공 사당의 죄에는 또 그의 한 몫이 있게 된다. 그는 최종적으로 사당을 멸망시키는 큰 악보(惡報) 중에서 재난을 당할 것이다.
신은 자비롭다. 하늘은 진작 중공 사당이 반드시 멸망할 운명임을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다. 2002년 귀주에서 발견된 “장자석(藏字石)”에는 500년 전 붕괴된 거대한 돌의 단면에 뚜렷하고 가지런한 여섯 글자가 있다. 바로 “中國共產黨亡”인데 그중 “亡”자가 특히 크다.
현재 파룬궁 수련자들은 사람을 구하기 위해, 사당의 박해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중공사당 조직을 탈퇴하라고 권하고 있으며 2009년 7월 중순까지 탈퇴한 사람은 이미 5,700만 명이 넘는다.
여기서 나는 한때 당, 단, 대에 가입했던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권한다. 빨리 일체 사당 조직을 탈퇴한다는 성명을 하라!(가명도 됨) 하늘이 중공을 멸하는 것은 절대 어길 수 없는 하늘의 뜻이며 사당조직을 탈퇴하지 않으면 바로 사당과 존망을 함께하기로 선택한 것이며 바로 중공 사당의 순장품이 되기로 선택한 것이다. 빨리 사당조직을 탈퇴해 밝은 미래를 맞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발표시간:2009년 7월 20일
정견문장 : http://www.zhengjian.org/zj/articles/2009/7/20/6062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