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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지금의 불경은 이미 원래 모습을 잃었는가?

작자:대륙(戴陸)

【정견망 2008년 8월 1일】

불교는 발전 과정에서 원시(原始)불교가 개량(改良)불교로 변했고 다시 말법(末法)불교로 변하는 과정을 거쳤다. 지금의 불경은 석가모니부처님의 원 말씀과는 아예 함께 거론할 수 없다.

왜 그러한가? 석가모니 부처님 당시에 말씀하신 것은 범어(梵語)였다. 그런데 범어에는 아어(雅語)와 속어(俗語)의 구별이 있었다. 고귀하고 신분이 높은 바라문들은 아어를 말했는데 여기에는 아주 아름다운 규범이 있었다. 반면 낮고 천한 계층에서는 속어를 말했는데 규범이 없고 방언도 사용했다. 양자는 마치 중국의 문언과 백화의 차이와 유사하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법을 전하고 사람을 구도하며, 이미 부패한 바라문교와 구별하기 위해 평민 대중을 상대로 설법하셨다. 이때 사용한 것은 속어였으며 다시 말해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말이었다.

각자(覺者)는 부귀영화에 대한 어떠한 집착도 없는바 여기에는 언어도 포함한다. 사람을 구도하기 위해 석가모니 부처님은 존귀한 왕위를 포기했으며 평범한 사람들 속에서 밥을 빌었고 그들의 언어로 말씀하셨으며 무수한 고생을 겪으셨다.

하지만 속어로 말을 하게 되면 한 가지 문제가 나타나는데 바로 당시에 석가모니 부처님의 원말씀을 충실하게 기록할 적합한 문자가 없었다는 점이다. 범어는 중국의 문언문과 아주 유사해서 아어만을 표현할 수 있을 뿐이다. 중국에서 백화가 나타난 것도 비교적 나중의 일이다. 그렇다고 부득이 범어로 기록하게 되면 부처님의 원말씀을 변경하게 되고 이는 법을 어지럽히는 행위에 해당하기에 용납할 수 없었다.

이에 원시불교에서는 입에서 입으로 전달하는 구전(口傳)의 방식을 선택해 불법을 전승했다. 다시 말해 이를 결집이라 하는데 집법장(集法藏)이라 부르기도 한다. 여기에는 등송(等誦), 합송(合誦), 회송(會誦)의 의미가 있다. 이렇게 오백년을 거치다보니 내용에 착오가 있는 것을 면하기 어려웠다.

그렇다면 불경은 대체 언제쯤 나타났을까? 원시불교의 발전이 극성해짐에 따라 불교는 인도 상류사회에서도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었고 귀족들도 속어를 말하게 되었다. 이때 마침 카로슈티(kharosthi) 문자가 나타나 범어 중의 속어와 방언을 표현할 수 있게 했다. 하지만 이 문자는 이후 발전과정에서 사라져버렸으며 글자를 쓰는 방법 역시 지금의 범문과는 차이가 있다. 마치 한자의 전서(篆書)와 해서(楷書)의 차이와 유사하다.

카로슈티 문자는 불경을 기록할 수 있는 수단이 되었고 여기에 관방의 지지가 더해져 당시 인도의 관방어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불교의 전파에 따라 서역 등 주변 지역에 널리 전해졌다. 중국에 처음 들어온 불경은 바로 카로슈티 문자로 쓴 것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제지술이나 인쇄술이 발달되지 않아 대규모로 불경을 정리한다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었다. 이렇게 서로 베끼고 베끼는 가운데 역시 오류와 누락을 피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사물이 극도에 이르면 쇠퇴하기 마련이라, 이후 불경은 더 이상 카로슈티 문자로 쓰이지 않게 되었다. 도리어 바라문교의 범어를 따라가게 되었다. 카로슈티 문자는 인도에서 먼저 소실되었고 마지막으로 서역에서 자취를 감춰버렸다. 다시 말해 불교의 불경은 이때부터 이미 석가모니 부처님의 원말씀을 있는 그대로 체현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왜 그런가?

이는 원시불교가 변질되고 귀족화 되며, 바라문화 되었기 때문이다. 화상(和尙)들이 법을 어지럽히기 시작했으며 불경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원말씀을 중시하지 않고 화상 자신의 것을 뒤섞어 자신의 방식에 따라 말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바라문교의 것을 들여오기도 했는데 범어는 얼마나 아름답고 또 문화적인가? 이렇게 되자 소위 불경(佛經)이 많으면 많아질수록 사실 아주 많은 것들은 모두 화상들이 창작하고 재창작한 것이다.

개량불교가 중국에 유전되면서 또 반드시 불경을 번역해야 했다. 중국인들이 외래 종교를 받아들이기 편리하게 하기 위해 초기에 불경을 번역하고 정리한 사람들은 또 한바탕 재창작 열풍을 일으켰다. 어떤 사람은 불경을 율시(律詩)로 번역했고 어떤 이는 불경을 장절(章節)로 나눠 새로 편집했으며 동시에 또 한인지역의 많은 단어와 개념들이 차용되었다.

번역자 자신도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게 하기 위해 이런 것을 승인했고 원뜻을 크게 잃어버렸다.

중국에서 불교가 토착화 되면서 또 수많은 한인 지역 화상들이 자신의 책을 쓰고 수많은 것들을 논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자신이 법을 어지럽힘을 인정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도리어 자신이 법을 분명히 하고 법을 널리 알린다고 여겼다. 엄숙하기 그지없는 불경(佛經)이 누구나 막대기를 꽂을 수 있는 불학(佛學)으로 변해버렸다.

중공이 정권을 찬탈한 후 전통문화를 말살하고 정교(正敎) 신앙에 대한 박해를 감행하면서 문언문 불경은 보고 이해할 수 있는 화상이 이미 아주 적어졌고 무신론을 믿는 중공 간부들이 불교계의 부패한 인사들과 함께 불교를 주관하며 승려들에게 “불학”을 주입하고 있다. 이처럼 세간에서 멋대로 어지럽히자 불경은 승려들의 봉행과 존중을 받지 못하게 되었고 이미 유명무실해져버렸다.

발표시간:2008년 8월 1일
정견문장:http://www.zhengjian.org/zj/articles/2008/8/1/5415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