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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모니부처님이 범어로 부처의 말을 표현하지 못하게 한 이유

작자﹕ 대법제자

정견망에서 “왜 지금의 불경은 이미 원래 모습을 잃었는가”라는 문장을 보고 나는 불교 《미사새부화초오분율(弥沙塞部和醯五分律)》, 《사분율(四分律)》, 《십송율(十颂律)》에 기재된 한 가지 이야기가 떠올랐다.

석가모니 부처님 시대에 야미로체구라(耶弥卢谛拘罗)라는 성을 지닌 두 명의 형제 비구가 있었다. 이들은 원래 바라문 가문 출신으로 목소리가 아주 좋았으며 말도 잘했다. 어느 날 이들이 석가모니 부처님이 계신 곳으로 찾아와 공경하게 예를 올린 후 이렇게 말했다. “지금 비구는 성이나 이름, 가문이나 출신을 따지지 않고 모두 출가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방언(方言)과 속어(俗語)로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을 파괴하고 있습니다. 청컨대 저희가 범어(梵文 산스크리트어)로 부처님의 말씀을 표현할 수 있도록 허락해주시기 바랍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그들의 말을 들은 후 크게 질책했다. “자네들 같이 이런 멍청이들이 어찌 감히 “범어로 부처의 말을 표현할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청한단 말인가. 어리석구나! 이렇게 하면 부처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부처를 믿도록 유도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부처를 믿는 사람들의 신앙을 강화할 수도 없다. 단지 부처를 믿지 않는 자들을 도와 이미 믿고 있는 사람들의 신념을 바꾸게 할 뿐이다.”

질책을 마치신 후 또 그들에게 설법하시고 “범어로는 부처의 말을 표현할 수 없다! 이를 어기는 자는 계율을 어기고 악행을 저지르는 것이다.”라고 엄중하게 알려주셨다.

이 일화를 통해 우리는 초기 불교가 범어로 불법(佛法)을 전파하는 것을 반대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에 대한 개인의 견해를 말해보고자 한다.

우선 고대 인도의 언어를 개괄해보자. 중국인들은 종래로 고대 인도어 하면 범어(梵文)를 떠올린다. 왜냐하면 인도인들이 전하는 말에 따르면 이 문자는 바라문의 천신인 부라흐마(Brahma)가 창조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대 인도 대륙에서 이 언어가 광범위하게 사용된 것은 아니다. 다만 고대 인도의 일부 역사시 속에서 일찍부터 범문(brahmivac)이란 이 단어는 부라흐마가 창조한 신성한 언어란 의미가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 역시 일종의 별명 또는 미칭에 불과할 뿐이다.

그렇다면 고대 인도인들은 자신들의 문자를 무엇이라 불렀을까? 그들은 산스크리트(Sanskrit)라 불렀는데 이 말의 의미는 문장을 수식하고 수정하며 정제한다는 것이다. 대략적으로 “아어(雅語 고상한 언어)”로 번역할 수 있는바 중국 고대의 문언문(文言文)에 해당한다.

대략 아주 초기부터 범어(산스크리트)는 고대 인도 상류층의 전유물이 되어 버렸다. 나중에 기원전 5세기 무렵이 되자 파니니(Panini)라는 사람이 나타나 문법을 만들었다.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약 2천여 년 동안 무릇 산스크리트를 사용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파니니문법을 따라야 했다. 파니니 문법의 규범에 따라 산스크리트 어는 세계에서 가장 복잡한 언어가 되었다.

명사에는 8개의 격이 있는데 근대 유럽언어에서 사용하는 전치사와 단어의 관계를 표현하는데 있어서도 범어는 모두 서로 다른 격을 사용해 표시한다. 수에도 단수, 복수 외에 또 쌍수(雙數)가 있으며, 동사의 과거형만 해도 여러 종류가 있다.

아울러 다른 언어와 비교해볼 때 산스크리트어에는 두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는 긴 복합어(compound) 사용을 좋아하고, 연음변화법칙이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자모와 자모를 하나로 연결할 때 발음이 변한다는 것이다.

고대 인도에서는 사회의 상류층들이 산스크리트 어를 사용한 외에 또 구어(口語)가 있었는데 바로 속어(俗語)이다. 일반인들이 사용한 것은 아주 통속적인 언어(大白话)였다. 이들 구어들의 총칭이 바로 프라크리트(Prakrit)이다. 이 단어의 원뜻은 자연발생적이고 본질적이며 원료라는 것으로 산스크리트와는 반대이다.

고대 인도의 희극에서 바라문 역할을 맡은 사람은 반드시 산스크리트 어를 사용해 자신의 신분을 드러냈다. 노예나 상인 등은 모두 구어체를 사용했다. 산스크리트의 복잡한 규칙은 속어인 프라크리트 중에서 많이 간소화되었고 심지어 아예 사라져버렸다.

전문가들의 고증에 따르면 석가모니 부처님이 법을 전할 때 사용한 언어가 어느 지역 사람들의 속어인지는 확인하기 어렵지만 분명 평민들이 쓰는 방언과 속어를 사용했다고 한다. 즉, 귀족화되고 바라문화된 산스크리트어는 절대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필자가 개인적으로 이해하기에 석가모니 부처님이 제자들에게 고도로 규범화된 산스크리트어로 법을 전하는 것을 금지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당시 인도에서 산스크리트를 사용하는 상류층 인사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평민적인 속어를 사용했다. 이는 마치 중국 고대에 서생들이 문어체로 문장을 짓는 것을 제외하고 다른 일반 사람들이 백화와 구어를 사용한 것과 같다. 또 사회의 하층 인사들이 꼭 산스크리트어를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불법(佛法)을 전하는 목적은 중생들로 하여금 수련하여 되돌아가게 하는 것이지 불법을 사람이 정한 규범에 맞춰 우아하고 아름다운 문법으로 장식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때문에 산스크리트로 불법을 전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둘째, 만약 산스크리트로 불법을 전하려면 석가모니 부처님의 원래 말씀을 바꿔야 한다. 가령 단어와 단어를 연결하는 관계사를 모두 없애버려야 하고 서로 다른 격을 표시하기 위해 단어를 바꿔야 하며 간단한 말도 길고 복잡한 합성어로 바꿔야 하는 등 석가모니 부처님의 원래 말씀에 담긴 불법의 풍부한 내포가 변경될 수 있다. 때문에 산스크리트로는 불법을 전하지 못하게 한 것이다.

그렇다면 나중에 산스크리트로 된 불경은 또 어떻게 나온 것인가? 원시불교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원래 말씀을 기록할 적당한 문자가 없었기 때문에 구전(口傳)의 방식으로 불법을 전승했다. 나중에 “카로슈티(kharosthi)” 문자가 출현해 불교에 기록매체를 제공해주었지만 이때는 이미 석가모니 시대와는 거리가 아주 멀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열반한 후 수백 년이 지난 후에야 불교 경서는 비로소 체계적으로 출현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역사과정 중에 대량의 오류와 와전이 나타났고 불교는 인도에서 전성기를 지나 쇠퇴하기 시작했다. 대신 바라문교가 점차 새로 흥성하기 시작했다. 수많은 승려들이 바라문교와 경쟁하는 원인 등으로 인해 불경을 산스크리트로 새로 기록했고 이렇게 새로 기록하는 과정 중에 또 원래의 카로슈티 불경에 다시 한 번 변동이 있었다. 아울러 역사발전에 따라 수많은 승려들이 끊임없이 불경에 대한 창작과 재창작을 진행했다.

이렇게 끊임없이 새로운 불경 판본이 나타남에 따라 거의 모든 판본마다 새로운 것이 가미되었고 석가모니 부처님이 남겨놓은 원래의 것들은 갈수록 적어졌다. 불교 역시 바로 이런 원인들에 의해 최후에 인도에서 소실된 것이다.

지금 대승불교에서 사용하는 대부분의 경서는 모두 산스크리트 불경에서 한자로 번역한 것이다. 게다가 불경을 번역하는 과정 중에 또 한 차례 재창작을 거쳤다. 이렇게 2천여 년의 역사를 거치면서 오늘날 우리가 보는 불경은 석가모니부처님이 당시에 전하신 법과 비교하면 진작에 원래 모습을 상실해버렸다.

──정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