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简体 | 正體 | English | Vietnamese

도가 수련이야기: 이(李) 도인

작자: 대법수련생

【정견망 2010년 4월 7일】

섬서 누관대(樓觀台)는 종남산(終南山) 북쪽 산기슭에 있다. 전설에 의하면 춘추시기 함곡관령인 윤희(尹喜)가 이곳에 건물을 지었다고 한다. 그는 밤에 천상에서 자색기운(紫氣)이 동쪽에서 오는 것을 보고 진인(眞人)이 이곳을 지날 것을 알았다. 후에 과연 노자가 서쪽으로 관을 나가다가 윤희가 맞이하여 루에 들어오게 되었고 윤희의 공양을 받았다.

노자는 여기서 후세에 길이 남을 <도덕경>을 썼으며 남쪽 언덕에 축대를 쌓고 매우 엄숙하게 <도덕경>을 윤희에게 전수해주었다. 윤희는 그것을 극히 공손하게 받았다. 그렇게 하여 후세에 누관대는 유명한 도교의 성지가 되었으며 천하제일의 복지라는 칭송을 받고 있다.

청나라 중후기 누관대 부근에 이(李)씨 성을 가진 도인이 왔다. 사람들은 그가 어느 지역 사람인지 알지 못했고 나이가 얼마나 되었는 지도 알 수 없었다. 이 도인은 평소 늘 긴소매의 도포를 입고 다녔는데 추우나 더우나 늘 맨발이었다. 또 그가 옷을 바꿔 입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러나 그 옷은 조금도 더럽지 않았다. 이 도인은 낮이면 늘 시장에 가서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구걸했으나 돈이나 재물을 구하지는 않았다. 매일 밤 그는 밤새도록 돌단 위에 앉아 입정(入定)에 들었으며 사람들은 그가 잠자는 것을 본적이 없었다.

이 도인은 평소개 명나라 말, 청나라 초기의 일을 언급했으며 이따금 각지의 풍습, 인정, 명승지 등을 이야기하기도 했는데 마치 직접 가본 것처럼 상세히 말했다. 그곳에 살던 90이 넘은 노인들은 어려서부터 이 노도인의 늘 같은 모습을 보았다고 했다. 정말로 그의 나이가 얼마나 많은지 몰랐다.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존경하여 “맨발의 이반선(李半仙)”이라고 불렀다.

어느 날 강소(江蘇)의 어떤 사람이 이곳을 지나다 이 도인을 만나자 도인이 말했다. “당신 기색이 좋지 않으니 빨리 집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주야로 쉬지 않고 달려야 겨우 갈수 있습니다.” 헤어질 때 노인은 주머니 하나를 주며 말했다. “당신이 강북에 이르러 가족을 만날 때 이 주머니를 열어보시오.”

그는 도인의 말을 믿고 즉시 되돌아갔다. 강북에 도착했을 때 과연 그의 둘째 아들을 만나 비로소 모친의 병이 위독하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때 그는 노인이 준 주머니가 생각났고 열어보니 그 속에는 어느 의원의 이름, 주소가 적혀 있었다. 그는 둘째 아들에게 얼른 그곳으로 가서 의원을 청해오라고 하고 자기는 급히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 도착하니 그의 모친은 이미 정신이 없었고 성내의 많은 의원들이 왔다 갔으나 모두 속수무책이었다. 그는 크게 슬퍼했으나 바로 이때 아들이 그 의원을 데리고 들어왔다. 그 의원은 약을 세 번 썼고 모친은 깨어났다.

그녀는 간호하고 있던 아들에게 말했다. “아들아 네가 과연 돌아왔구나. 나는 방금 혼미한 중에 원신(元神)이 몸을 떠나 맨발의 신선을 만났는데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다. “당신 아들이 부모를 공경하고 사람됨이 선량하니 당신의 수명을 12년 연장해주겠소. 빨리 돌아가시오.” 그래서 원신이 돌아왔단다.”

그 사람은 모친의 말을 듣고 나서 비로소 도인이 진짜 신선임을 알았고 그래서 누관대를 향해 감사의 절을 올렸다. 나중에 사람들이 이 일을 듣고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신선은 착한 사람과 효자를 돕는구나. 선악의 정말 보응이 있으며 자녀가 되어 마땅히 부모를 공경해야 한다.

또 누관대에 이 씨 성을 가진 도인과 관계가 매우 좋은 한 공자(公子)가 있었다. 그는 늘 도인과 도가의 일을 이야기했다. 어느 날 아침 노인이 그를 서재로 따로 불러 가보니 도인은 그에게 책 한권을 보라고 했다. 그가 읽어보았지만 그중에 한마디만 기억할 수 있었다. “이 마음의 장애가 없으면 그만이지, 하필 세상 밖의 봉래(蓬萊)를 찾을 필요가 있는가” 노인은 “자네가 이 한마디를 기억하면 충분하네.” 하고는 책을 거두어 갔다.

노인은 이어서 가부좌 하고 앉더니 입정에 들어갔다. 이번에 입정하자 진시부터 유시까지 다시 말해 아침 7시부터 저녁 7시까지 꼼짝도 하지 않았다. 공자는 그가 출정할 때 까지 줄곧 기다렸다. 도인은 출정한 후 말했다. “자네 내일 새벽 이곳에 와서 이야기 좀 하면 어떠한가.”

공자가 대답했다. “부모님의 명령이 없으면 집을 떠날 수 없습니다.” 다음날도 그는 가지 않았으며 그저 하인을 보내어 오늘도 못 온다고 전했다. 노인의 하인의 말을 듣더니 매우 애석해 하며 말했다. “이것 또한 정해진 운명인가, 앞으론 인연이 있어야 만날 걸세.”

그날 밤 노도인은 동굴 속에 앉은 채로 좌화(坐化)했다. 공자가 이 소식을 들은 후 기회를 놓친 것을 알고 수일 동안 후회했다. 그곳 사람들은 노도인이 좌화했다는 소식을 들은 후 분분히 달려와서 분향했다. 몇년 후 어떤 사람이 사천에서 왔는데 그는 이씨 도사를 보았다고 하는데 옷 입은 차림새나 모자, 용모가 옛날과 똑 같았고 다만 걷는 것이 나는 듯이 빨라 말을 붙여볼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때서야 사람들은 그가 정말 죽은 것이 아니라 시해선이 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료출처:《지문록(咫聞錄)》)

발표시간:2010년 4월 7일
정견문장 : http://zhengjian.org/zj/articles/2010/4/7/6539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