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자: 탁진(濯塵)
【정견망 2010년 5월 4일】 내가 12살 되던 해, 즉 1947년의 일이다. 우리 마을에 갑자기 많은 병사들이 들어왔다. 사람들은 그들을 현대대(縣大隊 역주: 중공이 조직한 민병대)라고 불렀다. 우리 마을은 아주 구석진 곳에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많은 병사를 본 적이 없었다.
소위 현대대는 바로 현에서 새로 징병된 민병(民兵)으로 농촌에서 선발해 이곳에 주둔한 사람들이었다. 아이의 눈에는 이것도 신기한 일이어서 늘 접근하고 싶어했다. 하나둘씩 멀리서 보다가 점점 그들에게 가까이 갔고 심지어 그들의 숙사까지 들어가기도 했다. 나는 그들이 대다수 매우 선량하다고 느꼈다. 다만 몇몇 사람은 좀 흉악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들은 결코 자원하여 병사가 된 것이 아니었고 강제로 잡혀 어쩔 수 없이 온 사람이었다.
한번은 그들이 대회를 열어 전체 병사들은 모두 운동장에 앉아 있고 위에서 교도원이 훈화를 했는데 대체적인 뜻은 때가 되면 전선으로 나가 싸울 준비를 해야하니 태도를 표명하라는 것이었다. 교도원이 물었다. “너희들은 전선으로 가서 싸우겠는가? 아니면 후방에 남아 지키겠는가?” 그러자 절대 다수가 대답했다. “후방에 남아 지키겠습니다.”
단 한사람만이 “전방이나 후방이나 마찬가지니 분부에 따르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많은 사병들은 그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며 거짓 열성이라고 했다. 당시 나는 이 전선이 어디 있는지 몰랐는데 나중에 보니 중화민국 정부 군대와 싸우는 것으로 바로 내전이었다.
평소에 그들은 백성들과 왕래가 있었는데 백성들에게 가축을 빌린다던지 맷돌을 빌린다던지 하는 일이 있었다. 한번은 그들이 일부러 작은 당나귀를 빌려간 후 일을 너무 많이 시켜 당나귀가 쓰러졌다. 당나귀가 오래살기 힘들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그들은 당나귀 주인과 상의해 당나귀를 잡아 사병들의 생활을 좀 개선하고자 했다.
입으로는 “3대규율이니 주의할 8가지” 등을 외치지만 사실은 백성들을 괴롭히는 수작이었다. 또 한번은 어느 농민을 잡아 들보에 매달아 놓고 그 집의 가축이 대대의 농작물을 먹었다고 했다. 이것이 바로 내가 어렸을 때 우리 마을의 팔로군(八路軍)의 규율이었다.
이제 본론을 말하자. 어릴 때 내가 살던 곳에 지성묘(至聖廟)가 있었다. 사당 내에는 많은 동으로 된 불상이 있었고, 공자와 그의 제자들도 있었다. 또 관우(關帝라고 한다) 그의 사자인 주창(周昌), 지장왕, 현무대제, 태상노군, 팔선 등등 많은 분들이 모셔져 있었다.
현대대가 오기 전까지 이곳에는 마을 사람들이 올리는 분향이 끊이지 않았지만 대대가 온 후 사당을 부수기 시작했다. 조각상은 전부 철거한 후 농가의 마차를 징발해 모두 실어서 현성으로 보냈다. 이때 2개의 불상은 수레에 싣지 못해 사찰밖에 버려졌다. 두 병사가 상의하더니 이 불상을 폭파하기로 했는데 나머지 사병은 참여하지 않았지만 제지하지도 않았다.
이 두 사병은 하나씩 맡아 폭파하기로 했다. 그들은 두개의 수류탄을 묶어 빈 동상 속에 던져 넣고 수류탄의 뇌관에 긴 끈을 묶어 다른 한쪽은 손으로 불상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끌고 와서 준비! 하고 소리쳤다. 곧 폭발음이 들렸고 화약 냄새가 온통 퍼졌다. 방금까지 건재하던 불상은 파편으로 사분오열이 되었다.
당시 우리 어린이들은 무슨 일인지 이해하지 못해 멀리서 신나게 보고 있었다. 그러나 어른들은 뒤에서 걱정했다. “나쁜 짓을 하면 벌을 받게 된다.”
역시나 예상대로였다. 밤이 되자 그 두 병사는 모두 괴상한 병에 걸렸다. 온몸에 붉은 반점이 나고 아파서 떼굴떼굴 굴렀다. 손발이 다 가렵고 가슴이 찢어지는 듯했으며 멈추지 않았다. 어떤 병사가 바깥에 나가서 무당한데 물어보니 불상을 폭파한 때문이라고 했다. 결국 두 병사는 해가 밝기도 전에 비명횡사했다.
이런 종류의 현세현보(現世現報)는 내가 어렸을 때 인근 마을에서 늘 나타났었다. 하지만 모두 내가 직접 본 것이 아니다. 유독 이 사건만 내 주위에 일어난 것이며 지금까지 눈에 역력하다.
1949년 이후 절이 모두 다 파괴되었기 때문에 과거에 늘 동냥하던 노스님이나 도사들은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때로는 아직도 종교에 관한 일이나 인과응보의 일을 듣는 사람은 큰일을 만난 것처럼 전전긍긍한다. 백성들에게 신앙자유와 인과를 믿지 않도록 한 현실은 이렇게 조성된 것이다. 유구한 신전문화읮 전통을 지닌 중화민족의 큰 비애가 아닐 수 없다.
발표시간:2010년 5월 4일
정견문장: http://www.zhengjian.org/zj/articles/2010/5/4/6592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