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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를 찾고 도를 구하니 공능이 나오다 (상)

작자: 자열(紫悦)

【정견망】 박대정심(博大精深)한 중국의 신전문화(神傳文化)는 비록 매우 다채롭고 가지가 많지만 모두 한 글자를 벗어나지 못하는데 그것이 바로 도(道)이다. 천명관과 도덕관은 고대인들의 마음 속에 덕을 숭상하고 몸을 닦는 지표가 되었다. 사회 구조와 관리, 사람의 행위규범의 준칙은 모두 도덕을 핵심으로 했다. 때문에 사람들이 신과 부처를 찾아 도를 구하는 정신을 추구하게 되었다. 천리를 알고 그대로 따라하는 사람은 호인이고 덕을 쌓고 선을 행하는 사람 하늘의 비호를 얻을 수 있고 이렇게 해이하지 않게 견지해나가며 날마다 쌓이면 사상은 승화되고 경지가 제고되어 득도하는 표준에 도달하게 되며 이같이 수련문화를 다지고 많은 사람들이 반본귀진하는 하늘로 돌아가는 길을 깔았다.

또 이 때문에 자고이래로 불도(佛道)를 찾는 사람은 강을 건너는 물고기처럼 많았는데 깊은 산속에서 혼자 수련하던, 속세에서 인간세상에서 놀던 그들 많은 사람들은 모두 범속을 벗어난 능력을 구비했고 특이 공능이 나왔으며 미혹 중에 있는 대중을 점화하기 위해 나타내었다.

사실 사람을 깜짝 놀라게 하는 이런 신통은 사람마다 구비하고 있다. 다만 인류의 사상이 갈수록 나쁘게 복잡하게 변하고 현대화된 도구에 의지해 다 상실되었을 뿐이다. 그러나 수련을 통하여 능히 회복할 수 있으며 수련을 통해 즉시 찾아올 수 있다. 이런 역사흔적은 옛날에 이미 많이 기록되어 있고 정사에도 적지 않게 언급했다. 패관들이 민간에 떠도는 이야기를 기록한 것들이 많다. 이중 몇 가지를 번역하여 독자들과 나눈다.

1. 단(單)도사

한공자는 마을에서 유명한 세도가였다. 집안에 어느 도사가 밥을 빌러왔는데 일을 열심히 했고 때로는 가끔씩 약간의 술법을 운용하였다. 한공자는 그의 술법을 매우 좋아하여 그를 높은 귀빈으로 대접했다.

단도사는 때로는 사람들과 같은 자리에 앉아 동행하다가 늘 갑자기 보이지 않았다. 공자는 일심으로 그 법술을 전수받고 싶어했으나 도사는 전해주지 않아 공자는 늘 뻔뻔스럽게 간절히 구해마지 않았다. 단도사가 말했다. “내가 법술(法術)을 결코 숨기거나 아까워하는 것이 아니오. 다만 내가 수련한 도술을 파괴할까 두려운 것이오. 만일 전한 사람이 군자라면 괜찮지만 그렇지 않으면 이 법술을 빌려 물건을 훔칠 것이요, 공자는 당연히 이런 현상을 고려할 필요가 없지요. 하지만 혹시 미색을 보아 마음이 움직이거나 자기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면 이 도술을 빌려 은신술로 규방에 들어 갈수도 있는데 그러면 당신의 음행을 돕는 꼴이 되니 저는 감히 시키는 대로 할 수 없소이다!”

공자가 듣고 억지로 할 수 없음을 알았다. 그러나 속으로 매우 화가 나고 미웠다. 그래서 몰래 노복들과 상의하여 채찍으로 그를 모욕을 주기로 했다. 도사가 술법으로 도망치거나 숨을까 봐 염려하여 몰래 마당에 먼지를 가득 뿌렸다. 그러면서 생각해보았다. 비록 좌도(左道)가 몸을 숨길 수 있다 하더라도 발자국은 남을 것이니 그것만 따라가면 그를 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를 유혹하여 밀마당에 오게 한 후 사람을 시켜 채찍으로 미친 듯이 때리라고 했다. 단도사는 갑자기 보이지 않았다. 보니 먼지 위에 신발흔적이 보였고 이어서 노복은 있는 힘을 다해 채찍을 마구 휘둘렀다. 그는 순식간에 혼미해 바닥에 쓰러졌다.

이 모든 과정을 공자는 숨어 있으면서 똑똑히 보았고 마음속의 한을 다 풀고 집으로 돌아갔다. 이때 도사도 돌아와 그 노복들에게 말했다. “나는 더 이상 머물 수 없소. 요 며칠간 줄곧 여러분들에게 폐만 끼쳤으니 미안하고 고마웠습니다. 오늘 작별하는데 마땅히 적당한 보답을 해야겠소.” 하고는 소매에서 술을 꺼내고 또 손을 소매에 뻗자 맛있는 안주가 나왔다. 또 탁자를 설치하여 잘 차린 후 또 소매를 더듬었다. 이렇게 몇 번이나 상이 가득 찼다. 많은 사람을 불러 같이 마시고 사람들은 크게 취했다.

술이 거나해진 후 단도사는 탁자 위의 것을 모두 소매 속으로 넣었다. 한공자가 이 일을 듣고 다시 한번 해보라고 했다. 단도사는 벽에 하나의 성을 그리더니 손으로 몇번 밀자 그 성문이 열렸으며 자기의 주머니, 의복, 책 등의 신변 용품을 전부 문안에 던져 넣고 사람들에게 읍을 하며 작별했다. “전 갑니다!” 몸을 성문 안으로 훌쩍 날리자 성문은 곧 닫혔고 단 도사는 갑자기 종적이 없어졌다.

나중에 어떤 사람이 보니 그를 청주 시장에서 보았는데 아이들에게 자기 손에 검은 원을 그리게 하고는 사람을 만나면 장난하듯이 그에게 던지라고 했다. 그러면 던지는 곳을 따라 그의 얼굴이던 의복이던 검은 원은 손바닥을 벗어나 그 위에 떨어져 도장이 찍혔고 모두들 웃었다.


2. 양련선생과 도사

양련선생은 대홍사람인데 젊었을 때 호남의 유학자로서 스스로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과거 시험 후 밖에서 높은 목소리로 시험 본 사람 중 우수한 사람의 명단을 부르는데 당시 그가 마침 식사를 하고 있었으므로 입속에 넣고 있던 밥을 뱉아내고 입을 열어 양모가 있느냐고 물었다. 대답은 없다고 했다. 낙담한 표정으로 상심하여 그 밥을 목에 삼키다 걸려 잘못하여 병이 되었다. 늘 목이 막혀 고생이 심했다.

사람들이 그가 시험에 떨어진 것을 알고 위로 하며 그에게 유재록에 참가하라고 했다(과거 시험에 열외의 일종의 선발 절차) 공은 쓴웃음을 지으며 자기는 여비가 부족하다고 했다. 친척들은 불쌍히 여겨 주머니를 털어 돈을 모아서 가도록 했다. 그는 성의를 거절하기 어려워 할 수 없이 억지로 시험길에 올랐다.

밤이 늦었는데 꿈속에서 어떤 사람이 말했다. “길가는 도중 어떤 사람이 너의 병을 고칠 수 있다. 너는 경건하게 그에게 부탁해야할 것이다.” 하며 떠나갈 때 시를 읊어주었다.

“강변에 버드나무 아래에 피리 세 개가 있어,
강물속에 던지니 탄식하지 말지니.”

다음날 여행 중에 과연 어떤 도사가 버드나무 아래 앉은 것을 보았다. 이 때문에 그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도움을 청했다.

도사가 말했다. “당신은 잘못 알았소, 내가 어떻게 당신의 병을 고칠 수 있겠소? 다만 당신에게 피리 세 곡을 들려주겠소이다.” 하면서 피리를 들고 불기 시작했다. 공은 이때 어젯밤의 꿈을 생각했다. 그래서 더욱 간절히 부탁했다. 또 가진 모든 것을 그에게 주었다. 도사는 돈을 받더니 제멋대로 강물 속에 던져버리는 것이 아닌가. 공은 이런 돈을 얻기가 쉽지 않았는데 이처럼 허무하게 흐르는 물에 던져버리니 마음속으로 아연실색했다. 또 아까웠다. 도사가 말했다. “당신은 아직도 내려놓지 못했소, 돈이 강변에 있으니 도로 가져오시오.” 공이 달려가 보니 과연 그대로였다. 마음속으로 더욱 신기하여 그를 신선으로 불렀다.

도사는 아무데나 가리키면서 말했다: “나는 신선이 아니오, 하지만 저쪽에 신선이 오는군요!” 이 말을 따라 양공이 고개를 돌리는 순간 도사는 힘을 주어 그의 목을 치면서 말했다. “속되도다! 어리석은 사람!” 공은 갑자기 얻어맞자 놀라서 어 소리를 질렀으며 목구멍에서 한 물건을 토해냈는데 둥근 물건이 땅에 떨어졌다. 그가 몸을 구부려 밝아 부수어 보니 피가 좀 섞인 가운데 밥 한 덩어리가 그대로 있었고 병은 갑자기 없어졌다. 다시 고개를 들어보니 그 도사는 이미 사라졌다.

발표시간:2010년 7월 6일
정견문장 : http://www.zhengjian.org/zj/articles/2010/7/6/6713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