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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치의 오차도 없는 인과응보(2가지)

작자:고광(古光)

【정견망 2010년 6월 10일】

(1) 잠자는 신선 진단(陳摶)

진단이 산에서 가부좌하고 있는데 산아래 개울에서 어느 젊은 여인이 옷을 씻고 있었다. 그런데 말을 탄 공자가 이곳을 지나다가 말에서 내려 그 부녀에게 걸어갔다. 두 사람이 무슨 말을 했는지 듣지 못했는데 공자가 갑자기 있는 힘을 다해 여인을 때렸다. 진단이 이 일을 보고는 곧 산을 내려가 두 사람을 말렸다. 공자는 아무소리도 하지 않고 말을 타고 떠났으며 여인도 말없이 떠나갔다.

진단이 산 위로 돌아오는 길에 또 어느 젊은 부녀가 큰 아이를 품에 안고 손에는 작은 아이를 데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작은 아이는 잘 걷지 못했지만 엄마가 걸으라고 재촉했다.

진단이 이해할 수 없어 물었다. “왜 이렇게 하십니까?” 그 부녀가 대답했다. “그가 인과응보를 모르고 주제넘고 잘난 체하며 쓸데없는 일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진단에게 물었다. “당신은 그 부녀와 공자의 전생의 인연을 압니까? 그들은 전생에 부부였는데 여자가 그 공자를 해쳐 죽였습니다. 이번 생에 공자가 여자를 때린 것은 전생에 맺은 빚입니다. 하지만 당신이 말렸기 때문에 오히려 그르쳤습니다.”

진단은 이 말을 듣고 꿈에서 깨어나듯이 정신이 들었다. 모자 세 사람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그때 공중에서 이런 말이 들려왔다. “관세음보살이 지나가셨다!”

진단은 이때부터 세상사를 따리지 않고 동굴에 들어가 잠을 잤다. 해가 머리를 비추지 않으면 일어나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어떤 사람은 진단이 80년을 잤다고 하며 어떤 사람은 800 년을 잤다고 한다. 오랜 세월이 지난 후 벼락이 동굴 벽을 내리쳐서 바위가 무너져 내렸고 태양이 동굴 안으로 비쳐들었다. 진단은 일어나 당나귀를 타고 심양(瀋陽) 서북 방향으로 달려갔다. 역사에는 진단에 대한 그 후의 기록이 없다.

진단이 잠을 잤다고 전해지는 동굴은 요녕성 요양(遼陽)현 안평(安平)진 경내에 있으며 깨진 바위는 탕하(湯河) 저수지 벽의 일부라고 한다. 문화혁명 기간에 어떤 사람이 이 동굴에 들어갔는데 동굴의 이름을 노동(老洞)이라고 불렀다.


(2) 개를 묻어주고 참외를 먹다

전에 어떤 스님이 두 제자를 데리고 탁발을 다니다 길에 개가 죽어서 썩은 것을 발견했다. 사부는 제자더러 묻으라고 했다. 큰 제자는 요리조리 피했으나 작은 제자는 군소리 없이 개를 묻어주었다.

18년 후 또 이곳을 지났는데 날씨가 매우 뜨거웠다. 부근에 참외 오두막이 있어 사부는 큰 제자에게 동냥을 좀 해오라고 했다. 오두막에는 16-7살 되는 처녀가 있었다. 그녀의 부친이 밥을 먹으러 간 사이 임시로 참외밭을 돌보고 있었다. 그녀는 마침 정성껏 가사를 깁고 있었다. 큰 제자가 세 번이나 물었으나 처녀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대답하지 않았다. 제자가 돌아와 사부에게 보고했다. “저는 밥을 빌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사부는 둘째 제자에게 동냥해오라고 했다. 처녀는 그에게 참외 세 개를 주었고 또 자기가 기운 가사를 함께 주었다.

이때 큰 제자가 부끄러워하며 물었다. “이는 무슨 연분입니까?” 사부가 말했다. “너희들은 18년 전 이곳을 지날 때 개를 묻은 일을 기억하느냐?”

“오늘 저 처녀는 당시 개가 환생한 것이니라. 그때 네가 묻으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 동냥을 얻지 못했느니라. 하지만 네 사제가 묻어주었기 때문에 참외를 얻었을 뿐만 아니라 또 가사로 은혜를 보답 받은 것이니라. 인과응보는 이처럼 털끝만치도 차이가 없느니라.”

발표시간 : 2010년 6월 10일
정견문장 : http://www.zhengjian.org/zj/articles/2010/6/10/6667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