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자:용흔(容欣)
【정견망 2010년 5월 28일】
단오절은 중국의 오래된 전통명절이다. 춘추전국 시대에 기원해 지금까지 2000여 년의 역사가 있다. 단오절을 말하자면 중국 고대의 애국시인 굴원(屈原)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사기》 “굴원가생열전(屈原賈生列傳)”에 따르면 굴원은 춘추시기 초나라 회왕(懷王)의 충신이다. 그는 진(秦)나라에 대항할 것을 주장했고 현인을 천거해 쓰고 부국강병을 주장했으나 귀족들의 강렬한 반대에 부딪혔다. 결국 굴원은 관직을 박탈당하고 도성에서 쫓겨나 지금의 호남성에 해당하는 원(沅), 상(湘) 지역으로 유배되었다.
그는 유배 중에도 나라와 백성을 걱정해 《이소(離騷)》, 《천문(天問)》, 《구가(九歌)》등의 시편을 남겼다. 그의 시들은 독특한 풍모로 영향이 아주 컸다. 그러던 중 초나라 간신이 권력을 장악한 후 조정을 혼란케 했으며 기원전 278년 드디어 진나라 군대가 초나라 수도를 공격했다. 굴원은 조국이 침략당하는 것을 보고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았으며 초나라를 버릴 수 없어 5월 5일 《회사(懷沙)》라는 마지막 작품을 쓴 후 돌을 끌어안고 멱라(汨羅)강에 뛰어들어 자살했다.
전설에 따르면 굴원이 투신한 후 초나라 사람은 그를 구조하러 앞뒤를 다투며 배를 몰아 동정호까지 추적했다고 한다. 그러나 초나라 백성 또 이 배를 저어 물고기를 흩어지게 하여 물고기가 굴원의 시신을 먹지 못하게 했다. 그 후 매년 5월 5일이 되면 용(龍)으로 뱃머리를 장식한 용선을 젓는 것이 기념활동 중 하나가 되었다.
이후 강을 경쟁적으로 건너는 풍습은 오(吳), 월(越), 초(楚)에서 성행했다. 용선 경주 대회는 단오절의 주요 풍속이다.
기록에 따르면 “용주경도(龍舟競渡 용주를 타고 하는 경주)”는 전국시대에 이미 있었다고 한다. 급하게 북소리를 내면서 물을 저어 용 모양을 그리고 배로 경주를 하며 신과 사람을 즐겁게 한다. 이것이 제사에서 신을 존경하는 내용 중 하나이다. 이후에 용선을 젓는 것이 이웃 나라 일본, 월남 심지어 영국 등으로 전해져서 사람들의 환영을 받았다.
단오절의 또 다른 풍속은 종자(粽子-송편처럼 만든 떡)를 먹는 것이다. 전설에 따르면 굴원이 죽은 후 초나라 백성들이 너무 슬퍼서 분분히 멱라강변으로 달려가 굴원을 추모했다고 한다.
어떤 어부는 굴원을 위해 준비한 주먹밥, 계란 등의 음식을 꺼내 “첨벙, 첨벙” 물속에 던져 넣으면서 물고기, 용, 새우, 자라 등이 배불리 먹고 굴원의 신체를 물어뜯지 말도록 했다. 사람들이 이를 보고 분분히 따라했다. 어느 노의사는 웅황술을 강속에 쏟아 부으면서 냄새 때문에 물속의 고기들이 냄새에 취해서 굴원을 다치지 않도록 했다. 나중에 주먹밥은 교룡이 먹어버릴까 봐 염려한 사람들이 생각해낸 것이 오동나무 잎으로 밥을 싸고 겉에는 비단을 감았는데 이것이 발전해 종자가 되었다.
종자는 각서(角黍), 통종(筒粽)이라고도 하는데 유래가 오래되었고 모습이 다양하다. 기록에 따르면 춘추시기에 줄 풀(菰葉)을 이용해 기장(黍)을 소뿔 모양으로 만들었는데 그것을 각서(角黍)라고 불렀다. 대나무 통에 쌀을 넣고 밀봉하여 삶은 것을 통종(筒粽)이라 했다.
지금도 매년 5월 5일이 되면 중국 사람들은 집집마다 찹쌀을 담그고 종자 잎을 씻어 종자를 만드는데 그 무늬와 빛깔이 매우 다양하다. 그 속에 넣는 소를 볼 때 북방에는 대추를 싸는 북경조종, 남방에는 콩, 날고기, 절인 돼지고기 등을 소로 이용하는데 이중 절강의 가흥(嘉興)종자가 대표적이다. 종자를 먹는 풍속은 수천년래 중국에서 성행해 쇠퇴하지 않았으며 이것이 한국, 일본 및 동남아에 흘러가 널리퍼졌다.
그 외에도 단오절에 어린이들이 향주머니를 차 사악한 기운을 피하고 온역을 물리치는 풍습이 있다.
향낭 안에는 주사, 웅황, 향기나는 약들이 있어 외포는 비단으로 싸서 맑은 향이 넘치며 다시 오색 명주실로 줄을 달았다. 각종 다양한 모양이 있는데 한 줄로 엮어 형형색색 예쁘다.
발표시간 : 2010년 5월 28일
정견문장 : http://www.zhengjian.org/zj/articles/2010/5/28/6647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