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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로 화를 부르지 말라

작자 : 흑룡강성 신명(辛明)


[정견망]

사천성(四川省) 성도시(成都市) 쌍류현(雙流縣) 합림향(合林鄉) 고봉촌(高峰村)에 절이 하나 있는데 사람들은 이 절을 “고산사(高山寺)”라 부른다. 고산사는 산 중턱에 위치해 있는데 길이가 1,200미터에 달하며 50여 존의 불보살(佛菩薩)과 나한상을 모시고 있다. 또 어떤 사람이 18층 지옥에 떨어져 업의 빚을 갚고 고생하는 장면이 있다. 중공이 정권을 잡기 전에는 주위 10리에서 8개 향(鄕)의 사람들이 모두 와서 향을 피우며 신명의 보우를 기도했다.

1950년 중공(중국공산당)이 지주를 없애는 운동을 할 때였다. 어느 날 촌장(村長) 고지운(高志雲)과 무장부장(武裝部長) 왕청운(汪清雲)이 한 무리 마을 사람들을 이끌고 쳐들어와서 곡괭이, 호미 등 연장을 들고 이유도 말하지 않고 그 절을 마구 부수기 시작했다. 삼층 높이의 불상이 순식간에 다 부서졌고 절간 내의 모든 것들을 전부 밖으로 내팽개쳐졌다. 산허리에는 온통 신상의 파편, 끊어진 팔, 다리 등이 널려 있어서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었다. 촌장 고지운은 불상의 도금을 탐욕스럽게 긁어 자기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이후 사악한 정부의 촌사무소는 신성한 성지를 점령해 버렸다.

대략 2년 후 촌장 고지운은 알 수 없는 괴질에 걸려 개처럼 기어 다니기만 했고 일어설 수 없었는데 오래지 않아 사망했다. 무장부장 왕청운 역시 괴질에 걸렸는데 고칠 수 없었다. 매일 오후가 되면 그때부터 그는 늘 혼자 있기를 두려워했다. 매우 무서운 표정이었고 밤이면 많은 사람이 자기를 잡으러 온다고 했다. 매일 밤 잠들지 못하고 고통이 극심하여 감당할 수 없었다. 어떤 사람이 점쟁이를 찾아가보라고 하여 가서 점을 치니 점쟁이가 “그가 불상을 부셔서 그렇게 된 것이다.”고 했다. 그래서 왕청운은 집 뒤의 못 옆에 집을 하나 짓고 다섯 존(尊)의 불상을 모시고 매일 불공을 드렸다. 이름을 “왕가묘(汪家廟 왕씨 집안의 사찰)”라 하고 많은 향불을 피우게 했다. 나중에 그의 괴상한 병은 저절로 나았다.

이것은 정말 신상(神像)을 훼손해 악보(惡報)를 받았으며 다시 신을 모셔와 복을 받은 것이다.

발표시간 : 2011년 11월 9일
정견문장 : http://www.zhengjian.org/zj/articles/2011/11/9/7850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