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자: 당풍(唐風) 정리
【정견망】
전에 양곡현(陽谷縣)의 몇 명 동수가 임풍자(任瘋子 임씨 성을 가진 미치광이)에 관한 일부 사적을 말해준 적이 있다. 대체로 제공이야기와 유사한 점이 많다. 인터넷과 다소 차이가 있으나 그리 크지 않다. 대개 유전된 판본이 같지 않아서다.
임풍자는 이리 저리 떠돌아다니며 무수한 백성들의 병을 고쳤다. 그는 돈 한푼 받지 않았으며 환자가 부르지 않아도 스스로 찾아갔다. 그가 병이 있는 곳을 손으로 만지고 입으로 후 불면 병은 곧 나았다.
어느 날 임풍자는 한무리의 대오가 하얀 관을 들고 앞으로 가는 것을 보았다. 많은 사람들이 울면서 몹시 슬퍼했다. 임풍자는 관에서 선혈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얼른 쫓아가서 소리쳤다 “잠깐 서시오, 관 속의 사람이 아직 죽지 않았소!”
사람들이 이 말을 듣고 놀라서 관을 열었다. 임풍자가 보니 어느 임산부가 옷이 가지런하지 않은 채 그 속에 누워 있는데 알고 보니 난산으로 죽은 사람이었다. 임풍자가 은침을 잡고 혈위를 몇 번 찔렀다. 잠시 후 임산부는 목구멍에서 신음소리를 내었다. 임풍자는 “좋소, 얼른 치마를 벗기시오.” 몇 명의 부녀가 서로 쳐다보았다. 그러나 목숨은 하늘에 달린 것인데 하며 사람들이 임산부의 치마를 벗기고 보니 남자 아이가 태어났다. 여러 사람들이 아이를 잘 감쌌고 관을 든 사람들은 돌아갔다. 그러나 목숨을 구해준 은인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임풍자가 사람을 기사회생 시킨 소식은 날개 달린 듯이 온 동네에 퍼져 매일 그를 찾아 병을 고치려는 사람이 부지기수였다. 그러나 임풍자는 사방을 떠돌아다니며 종적이 일정치 않아 그를 만나는 사람이 극히 적었다. 그를 찾아가 스승으로 모시고 제가가 되겠다는 사람이 적지 않았으나 그는 모두 거절했다. 나머지 십여 명은 의술을 배우기로 굳게 결심하고 아무리 해도 돌아가지 않았다.
그러자 임풍자가 말했다.
“의술을 배우려면 고생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고 말을 들어야 한다!”
그들은 전부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임풍자는 땅에 커다란 원을 그렸다.
“너희들은 내 뒤를 따르되 힘든 것을 피하지 말아야 한다!” 원을 그린 것은 그들이 방향을 잃을까 염려해서였다. 시작에는 처음에는 임풍자가 천천히 걸었으며 뒤의 사람들은 으쓱거리면서 따를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나자 점점 임풍자의 걸음이 빨라졌고 뒤의 사람들은 종종 걸음을 해야만 따를 수 있었다. 처음에는 평지였으나 점점 울퉁불퉁한 길이 나타나고 조심하지 않으면 곧 넘어졌다. 그래서 다리를 다친 사람들이 나타났다.
나중에 임풍자는 정말 나는 듯이 달렸다. 사람들은 눈앞에 그림자가 흔들거리는 것만 보았는데 아무리 해도 따라잡을 수 없었다. 남은 몇 사람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계속 앞으로 달렸다. 임풍자는 신선의 몸이어서 지치지도 먹지도 않았다. 그러나 제자들은 모두가 보통 사람인지라 낭패하고 지쳤으며 배가 고팠다.
이틀 밤낮이 지나 제자들은 도무지 움직이지도 기지도 못했다. 임풍자는 그래서 멈추었다. 제자들은 지키고 배고팠으나 임풍자만 생생한 것을 눈을 똑똑히 뜨고 보았다. 문득 임풍자가 어느 바위 앞으로 가는데 “팍” 하는 소리가 나더니 어찌된 일인지 바위에서 하얀 죽같은 것이 흘러나왔다.
임풍자는 “밥이 바위 위에 있으니 먹으면 배고프거나 피곤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했다. 제자들이 다다가가서 보니 마치 변 같아서 누구도 먹으려 하지 않았고 말을 하지 않으며 그저 바위 옆에서 배회하고 있었다. 한 시진이 지나자 임풍자는 “자네들이 먹지 않으면 내가 먹어야 겠다.” 하고는 느긋하게 그 죽을 다 깨끗이 먹어치웠다.
최후에 제자 중에 왕삼기(王三奇)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손가락으로 바위를 찍어서 입에 맛보았다. “맛있군! 매우 달아!” 그가 더 먹고 싶었으나 이미 다 없어져 버렸다.
임풍자는 “자네들은 고생을 겪을 수 없고 말을 듣지 않으니 각자 갈 길을 가게!”라고 했다. 제자들은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하고 흩어져 가는 수밖에 없었다. 사실 임풍자가 그들에게 먹으라고 한 것은 선약(仙藥)이었지만 그들은 인연이 없었던 것이다. 오직 왕삼기만 선약을 손가락 끝으로 찍었을 수 있었는데 그는 사람의 어디에 병이 있으면 손가락으로 만지기만 하면 나았다.
부록: 임풍자의 묘
임풍자의 휘(諱)는 산(山)이고 어릴 때 이름은 희비(喜悲)였다. 호는 청령도사(清靈道士)이며 조부의 본적은 범현(範縣)이다. 명나라 성화(成化) 홍치(弘治) 년간의 도사로 나중에 장추운하(張秋運河) 동쪽의 무기산(戊已山) 현혜묘(顯惠廟)에서 시해(屍解)했다. 하늘로 올라가 신선이 되었다고 하는데 “탈선(蛻仙)”이라고 하기 때문에 민간에서는 “임대선(任大仙)”이라 한다.
산동성 양곡현 장추진(張秋鎮)에서 임풍자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다 아는 도사다. 그는 제공처럼 많은 일이 전해져 온다. 최근에 그를 기념하는 임풍자 사당을 민간 자본으로 지었다고 한다. 임풍자의 묘는 장추운하의 동쪽 언덕에 있다. 현존하는 묘는 직경 2.5 미터 높이 1미터이다. 묘 앞에는 바위가 하나 있는데 높이 2미터 폭 80센티 크기이고 정면에 음각으로 행서가 적혀있다 “명 탈선 임풍자 묘(明蛻仙任瘋子墓 역주: 명나라 시대의 탈선 임풍자의 묘)” 뒷면에는 500 작은 글자로 “탈선임풍자 소전(小傳)”이 적혀있는데 그의 가계보 업적을 상세히 소개해 놓았다.
발표시간: 2014년 5월 24일
정견문장: http://www.zhengjian.org/node/1308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