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자: 육문(陸文)
【정견망】
북송(北宋)의 수도 변량(汴梁 지금의 하남성 개봉시)에 정(鄭)씨 성을 가진 도인이 있었다. 그는 늘 동으로 만든 방울(요령)을 흔들며 탁발했고 이렇게 시주한 물건 중에서 자신이 먹을 만큼만 남기고 나머지는 전부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 주었다.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정요령(鄭搖鈴 정씨 성을 가진 방울 도사란 의미)’이라 불렀다.
그러다 북송 휘종 선화(宣和) 말년에 갑자기 변량을 떠나 양주(揚州 지금의 강소성 양주시)로 내려갔다. 선화(宣和)란 송나라 휘종의 6가지 연호 중 마지막 연호로 1119-1125년을 말한다.
양주에 도착한 후에도 그는 여전히 요령을 흔들며 탁발을 했다. 변량에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저녁이면 여관을 빌려 거주했다. 이렇게 한동안 시간이 지난 후 정요령이 갑자기 여관 주인에게 말했다.
“내가 곧 세상을 떠나려 하니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얇은 관을 하나 구해 내 몸과 내가 지닌 의복, 물건 등을 같이 넣어 화장해 주셨으면 합니다.”
과연 그가 말한 시간이 되자 그는 세상을 떠났다. 여관 주인은 그의 당부대로 시신과 그의 유품들을 관 속에 넣고 관을 메고 성 밖 화장터로 향했다. 관을 들고 나갈 때 갑자기 요령소리가 들렸는데 마치 정요령이 살아있을 때 내던 소리와 꼭 같았다. 요령소리는 가까운 곳에서 들리더니점점 멀어져 잠시 후에는 수십 보 밖에서 들렸다. 소리가 점점 더멀어졌는데, 관을 든 사람은 요령소리가 멀어짐에 따라 관이 갈수록 가벼워졌고 나중에는 마치 빈 관처럼 가벼웠다. 화장터에 도착해 관을 열어보니 그 속에는 대나무 지팡이 하나만 있을 뿐이었다. 사람들은 정요령이 득도한 사람이며 시해의 방법으로 신선이 되어 떠났음을 알았다.
도가에서는 이를 시해선(屍解仙)이라 한다.
고전의 원문은 여기까지다. 내가 이 이야기를 읽다보니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정요령은 왜 하필 선화 말년에 갑자기 변량을 떠났을까?’
중국 역사에 대해 좀 아는 사람이라면 선화기간 동안중국 북방에서는 금(金)나라가 일어나 세력이 날로 커졌음을 알 것이다. 휘종은 이 상황에 대처할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선화 7년(1125년) 12월 스스로 황제의 자리에서 물러났다. 대신 아들인 흠종(欽宗)이 제위를 이어받아 연호를 ‘정강(靖康)’이라했다.
정강 2년(1127년) 북송이 멸망했고 수도인 변량은 성 전체가 큰 겁난을 당했다. 또한 선화 7년 12월부터 정강 2년까지 변량은 기본적으로 금나라 군대에 포위되어 있었고 계속해서 비정상적인 점령상태에 있었다. 때문에 도성 주민들은 귀천을 막론하고 전부 고난을 겪었다. 정요령이 선화 말년에 변량을 떠난 것은 바로 이런 혼란기에 미리 도성을 떠나 재난을 피한 것이다.
어떤 사람은 정요령이 신통을 지닌 도인이라면 왜 남쪽으로 도피해 평안을 지키려했는지 의문을 제기한다. 사실 공자도 “위태로운 나라에는 들어가지 않고 혼란한 나라에는 살지 않는다(危邦不入,亂邦不居)”라고 했다. 정요령이 미리 도성을 떠난 것은 그에게 미래를 예지하는 신통이 있음을 증명한다.
그러므로 정요령이 오늘날의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은 장차 멸망할 곳에서는 미리 떠나야한다는 점이다. 지금 중공은 역사의 전환기에 처해 부정부패가 극심하고독재권력을 유지하기 어려운 처지에 있다. 더욱이 선량하고 무고한 파룬궁수련자들을 박해하고 인간으로서 차마 저지르기 힘든 악행을 저질렀다. 때문에 중공의 멸망은 이미 눈앞에 다가왔다. 중공이 멸망하면 그 관련 조직에 가입한 사람들도 무사하기 힘들다. 그러므로 하루 빨리 중공관련조직을 탈퇴해 생명을 보존하고 평안을 지켜야 한다.
(자료출처:《규거지 권2(睽車志 卷二》)
발표시간: 2014년 7월 27일
정견문장: http://www.zhengjian.org/node/133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