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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악 일념의 보응

【정견망】

음란한 일념이 나와 보응을 받다

많은 사람들이 일념에서 선악이 나옴을 믿는다. 하지만 일념의 차이에 보응이 있음을 당문화에 깊이 독해된 중국인들은 잘 믿지 않는다. 하지만 전통문화에선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여기 몇가지 예를 든다.

귀계(貴溪)에 어떤 선비가 있었는데 매번 과거에 떨어졌다. 원인을 알 수 없어 도사 장진인(張真人)을 찾아가 향을 피우며 엎드려 자신이 과거에 합격할 운명인지 봐달라고 했다. 그러자 신명이 나타나 말했다. “이 선비는 본래 공명을 누릴 운명이 있었으나 숙모를 훔친 까닭에 공명을 삭탈당했다.”

장진인이 선비에게 알려주자그는 그 말을 듣고 말했다. “나는 절대 숙모님을 범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글을 좀 써서 신명에게 호소해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했다. 신명이 다시 나타나서 말했다. “네가 비록 숙모를 범하진 않았지만 숙모를 범할 생각을 품고 있었다!”

그러자 이 사람은 비로소 매우 부끄러워하며 후회막급이었다. 왜냐하면 젊을 때 숙모의 미모를 보고 나쁜 생각을 품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야기다.

명나라 정덕(正德) 년간에 조영정(趙永貞)이란 선비가 있었다. 젊었을 때 한 이인(異人 역주: 비범한 인물)을 만났는데 그가 말했다. “당신은 23세 때 반드시 과거에 붙을 것이요.”

그는 23살이 되던 해에 마침 향시(鄕試)를 치렀다. 답변을 잘 썼기에 시험관은 이미 그의 글을 골라서 며칠간 두었다. 그러나 뜻밖에 나중에 2차 시험에서 잇달아 실수를 범해 시험에 붙지 못했다. 조영정은 마음이 매우 괴로웠다. 때문에 문창제군(文昌帝君 역주: 중국인들이 시험의 神으로 신봉하는 인물)에게 기도하여 원인을 알려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자 문창제군이 말했다. “너는 본래 올해 향시에 붙었어야 했다. 허나 근래 네가 집의 여종을 희롱했고 이웃집 여자를 유혹했다. 비록 별일은 없었지만 네 마음이 이미 거꾸로 되어 음욕이 끊이지 않았으므로 심지가 나날이 어두워졌다. 그래서 너 원래의 공명은 삭제되었다.”

영정은 문창제군의 말을 듣고 눈물을 흘리며 통곡했다. 그래서 고치며 선한 일을 하기로 맹세 했다. 그래서 음행을 끊는 좋은 책을 찍어 세상 사람들을 일깨웠다. 그 결과 다음 과거에 장원으로 붙었고 관직도 얻게 되었다.

선념이 나오자 복을 받다

당고(唐皋)는 어릴 때 글공부를 열심히 했다. 어느 날 밤 그가 등불 아래 열심히 책을 읽고 있을 때의 일이다. 한 아름다운 소녀가 그의 모습에 반해 공부방 창호지에 구멍을 뚫었다. 그러자 당고는 즉시 창호지를 막아놓았고 아울러 시를 써놓았다.

“창호지 구멍 고치기는 쉬우나

사람의 음덕을 손해 보면 가장 고치기 어렵도다.”

훗날 한 출가인이 당고의 집 앞을 지나다 문에 장원의 편액이 걸려있고 좌우 등잔불 위에 두 줄의 시가 적힌 것을 보았다. 바로 당고가 과거 창호지에 썼던 시였다. 출가인이 매우 이상하여 당고에게 원인을 물어보게 된 것이다. 나중에 당고는 과연 장원 급제했다.

왕천여(汪天輿)가 한때 어느 기인을 만난 적이 있다. 기인은 그의 관상을 보고는 “당신의 상은 나한 같아서 아들도 없고 오래 살지 못할 것이요.”

왕천여는 그 말을 듣고 더는 재물을 중시하지 않고 보시하며 선행을 했다. 어느 날 그가 청강포(清江浦)에 손님으로 갔는데 젊고 예쁜 주인의 아내가 그의 풍모에 반해 방문 앞에 왔다. 하지만 왕천여는 문을 꼭 닫고 그녀를 들어오지 못하게 했으며 방문을 사이에 두고 말했다. “내 어찌 당신의 정절을 해칠 수 있겠소?”

부인이 이 말을 듣고는 즉시 부끄러워하며 떠났다. 나중에 왕천여가 관상을 봐주었던 기인을 또 만났는데 그가 말했다. “음덕을 많이 쌓았군! 상이 변했소이다. 내가 보니 귀한 아들을 볼 것이며 80대까지 살겠소.”

나중에 왕천여는 과연 그 관상가의 말대로 귀한 아들을 낳았고 80대까지 살았다.

절강성에 지휘관이 있었는데 어느 선생을 집에 초청하여 아들을 가르치도록 했다. 선생이 한번은 감기에 걸려 땀을 흘려야 나을 수 있었다. 지휘관은 그래서 아들에게 이불을 가져와서 선생에게 덮어주라고 했다. 그런데 이불 속에 잘못하여 부인의 신발짝 하나가 말려 들어갔다. 선생은 병이 나은 후 이불을 돌려보냈는데 이불에 끼어 있던 신이 자리 옆에 떨어졌다. 선생과 지휘관 아들은 발견하지 못했으나 지휘관이 보고는 곧 자기 부인이 선생과 간통을 했다고 의심했다.

하지만 아내가 인정하지 않고 강하게 부인하자 지휘관은 하녀를 보내 아내의 분부인 척하고 선생을 부르게 했다. 그러자 선생은 이 말을 듣고 매우 화를 내고 하녀를 야단치며 돌려보냈다. 지휘관은 그래도 믿지 못해 아내를 억지로 직접 가보라고 하며 자기는 손에 칼을 들고 문 옆에 숨어서 기다렸다. 이 때 선생은 문 열기를 거절하며 부인에게 말했다.

“당신 주인께서 저를 소중히 여기시어 아드님을 가르쳐 달라는 부탁을 받았는데 내 어찌 부도덕한 일을 할 수 있겠소.” 하면서 끝내 문을 열지 않았다.

다음 날 새벽 선생은 일을 핑계로 사직하고 가야하니 더 이상 아들을 가르칠 수 없다고 했다. 지휘관은 선생에게 말했다 “당신은 정말 정인군자요!” 그래서 그 일의 진상을 말하고 사과하며 정성껏 남기를 권유했다. 그 해에 선생은 과거에 붙었다.

개과천선하여 복을 받다

하늘은 호생(好生)의 덕이 있다. 불량한 생각을 하고도 고칠 기회가 없는 것이 아닌데 줄곧 선념을 견지하면 운명을 고칠 수 있다. 이런 사례가 아주 많다.

명나라 때 인물인 여청(呂青)은 평소 음담패설을 즐기고 부녀자를 훔쳐보곤 했다. 그가 30살이 되었을 때 가난이 극에 달했고 두 아들은 잇달아 죽었다.

어느 날 여청이 갑자기 죽어 조부를 만났다. 조부는 그에게 크게 화를 내며 말했다.

“우리 양대(兩代)가 선을 쌓아 네 명 중에 큰 재물이 있어야 했다. 허나 네 색심이 너무 강해 입과 눈으로 죄를 지었으니 복이 거의 다 끊어졌다. 네가 정말 삿되고 음란한 일을 저질러 우리 여씨의 후손이 끊길까 염려된다. 그래서 내 염라대왕께 특별히 부탁하여 너를 저승으로 불러 네가 좀 깨닫도록 해달라고 청했다.”

여청이 말했다. “다른 사람의 여자를 간음하면 후손이 끊어지는 보응이 있다고 하는데 사실 저도 매우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저도 범한 적은 없습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저승관원이 말했다. “어찌 후손이 끊기기만 하겠느냐! 만일 여자가 적극적으로 유혹했다면 이 죄는 단지 후손이 끊기는 보응뿐이다. 만일 자신이 다른 사람을 유혹하거나 사람을 핍박하거나 여러 번 하여 윤리를 파괴하고 낙태하거나 남편을 죽이거나 했다면 그것은 얼마나 큰 죄인가, 어찌 후손이 끊기는데 그치겠는가? 사음(邪淫)의 죄악은 이승의 법률이 너무 관대하다. 그러나 저승의 법률은 매우 엄하다. 무릇 사람이 사음의 생각만 해도 삼시신(三屍神)이 앞장서고 부엌신과 성황신이 있는 대로 하늘에 고할 것이다. 만일 그들이 숨기거나 빠트린다면 그것도 큰 죄이다! 네가 오늘의 처분을 한번 보면 알 것이다.”

잠시 후 귀졸들이 사음의 죄를 범한 많은 사람들을 염라전 앞으로 데려 왔다. 그들은 모두 쇠사슬에 묶여 바닥에 꿇어 앉아있고 염라왕은 무서운 기세로 분부했다.

“모모는 거지로 되어 미치고, 모모는 창기가 되고 애꾸가 되며 모모는 이년간 소가 되고 또 누구누구는 십생에 걸쳐 돼지가 돼라.”

염라대왕이 명령을 내리자 귀졸들은 그들을 끌고 태에 집어넣었다. 여청은 이 장면에 놀라 모골이 송연했다. 염라대왕이 말했다.

“아직 이보다 더한 것이 있다! 너는 절대 잠깐의 즐거움을 위해 몸을 잃어서는 안된다. 마땅히 색을 화살 피하듯이 해야 할 것이니 문장을 잘 써서 세상에 권하도록 하여라!”

잠시 후 염라왕은 그를 세상으로 돌려보냈다.

여청은 저승을 본 것을 일만 장 각인해 세상 사람들을 경계하도록 하고 선행을 극력 행했다. 40세가 되었을 때 두 아들을 계속 낳았고 집안에 재물이 잘 일어났다. 여청은 그래서 속세와 인연을 끊기로 하고 남해로 수도하러 갔다. 이것은 여청의 동향 사람 채청(蔡菁)이 그를 위해 남겨놓은 기록이다.

http://www.zhengjian.org/2015/09/22/148121.一念善惡的報應.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