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자/ 중국 대법제자
【정견망】
오대산 태회진(台懷鎮) 남서쪽에 동진 초년(317년)에 창건된 수상사(殊像寺)가 있다. 이 절에는 오대산 최대의 문수보살조각상을 모시고 있다. 이 문수보살상에 “메밀머리(蕎面頭) 문수보살”이란 이름이 있는데 그 내력은 진실한 이야기이다.
고대에 이 문수보살상을 조각할 때의 일이다. 보살이 탄 신수인 산예(狻猊-전설에 용이 낳은 아홉 아들 중 5째 속칭 녹모사자라 함)는 이미 완성했는데 보살상은 아직 머리 부분도 못 깎았다. 장인들은 난처해졌다. 보살의 얼굴 자태가 도대체 어떤 모습인지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사람은 이렇게 깎아야 한다하고 저 사람은 또 저렇게 깎아야 한다며 말들이 많아서 서로 일치하지 않았다. 장인들이 이 때문에 고뇌하고 있을 때 밥을 짓던 인부가 부엌에서 국수를 만들다 사람들이 마당에서 떠들썩한 소리를 듣고는 사람들에게 원인을 물었다. 시끄러운 원인을 알고 난 후 그는 큰소리로 말했다. “보살의 얼굴을 멋대로 빚으면 안됩니다. 당신들이 아무리 시끄러워도 소용이 없소!” 이 한마디에 많은 사람들은 입을 다물었다.
밥 짓는 사람(화부)은 주방으로 돌아가서 국수(챠오면-메밀국수)를 준비하고 있었다. 갑자기 마당 내에 금빛이 환히 비치어 화부는 창문을 열고 보았다. 알고 보니 바로 문수보살이 반 허공에서 그를 향해 금광을 사방으로 쏘면서 자비로운 얼굴을 드러낸 것이다! 이때 그림을 그리는 화공이 미처 오지 못했는데 그는 급한 가운데 지혜를 냈다. 광주리 속의 메밀면을 꺼내어 보살의 진짜 얼굴에 따라 빚기 시작했다. 이윽고 머리 부분이 다 만들어 지자 문수보살은 사라졌다. 장인들이 온 후 얼른 메밀로 빚은 머리 부분을 올리고 바깥에 금을 붙였다. 사람들은 이 보살상은 메밀머리 문수보살이라고 했다.
이 메밀머리 문수보살상을 대문수전(大文殊殿) 안에 모시고 문수상의 뒤로 후문을 향해 관음보살상을 모셨다. 대다수 절에 관음은 원래 모두 얼굴을 남쪽으로 향해 앉는데 수상사의 관음은 오히려 북쪽을 향하고 있다. 이 때문에 거꾸로 앉은 관음이라고 불린다. 재미있는 일은 후문 밖의 담벼락에 한 폭의 복호나한도가 그려져 있고 그 옆에 대련이 있다. “관음에게 어찌 거꾸로 앉았는지 물어보니 범부가 말을 듣지 않아 미워서 그런다네.” 그 뜻은 엄숙하고 심원하다. 신과 부처가 중생을 제도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바로 범부 속인들이 집착을 버리지 않으려 하는 것이다. 이 외에 대전 벽에도 또 500 나한을 조각해놓아 온 대전이 장엄하고 신성하다.
강희제가 5차례나 오대산에 예배하러 갔고 수상사에 “서상천연(瑞相天然)”이라는 편액을 내렸다. 그 뜻은 문수보살의 조각은 하늘에서 온 것과 같다는 뜻이다. 또 건륭제는 6차례 오대산에 왔으며 수상사에 “대원경지(大圓鏡智)”라는 편액을 써주었다. 또 승덕방(承德仿)에 수상사를 짓고 가묘로 모셨다. 또 기억에 따라 메밀머리 문수보살상을 모방해 새기고 향산 보상사(寶相寺)에 모시게 했다. 이를 통해 건륭제가 수상사와 문수보살상에 대한 공경과 중시를 알 수 있다.
무엇 때문에 밥 짓는 화부가 보살의 현시를 볼 수 있었는가? 내 생각에 바로 그가 말한 “보살의 얼굴을 마음대로 빚으면 안됩니다.”라는 말 때문이다. 그 속에 보살에 대한 존경의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신을 믿지 않고 말한다. “내게 신을 보여주면 믿지.” 사실 신은 절대 사람 마음대로 나타나지 않는다. 특히 신을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특수한 인연이 없으면 절대 나타나지 않는다. 오늘날 많은 수련인들이 신과 부처를 믿고 존경하고 있으며 도덕 수준이 제고될 뿐 아니라 끊임없이 좋은 사람이 되고 있다. 그로부터 신적을 체험할 수 있고 심지어 직접 신을 볼 수 있어서 직접 신불의 진실한 존재를 증명할 수 있고 불법 수련의 위대함을 실증할 수 있다.
원문위치: http://www.zhengjian.org/node/2450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