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자/중국 수련생
【정견망】
당나라 말기 채경(蔡京)이라는 상서가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북송 시대의 유명한 간신 채경과 이름이 같다. 후대 사람들은 채경을 말하기만 하면 북송의 간신 채경을 떠올리는데 사실 당나라 때도 한명의 채경이 있었다. 당나라 때의 채경은 한때 천덕군사(天德軍使)가 되어 오늘 내몽고 파언뇨이음산(巴彥淖爾陰山 바옌나오얼인산) 산맥의 남쪽 기슭을 지키는 책임을 맡고 있었다.
그가 천덕군사로 있는 기간에 관아에 젊은 장수 고언랑(顧彥朗)과 고언휘(顧彥暉)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들은 형제로 풍주(豐州 지금의 내몽골 오원현) 사람이며, 고언랑이 형이고 고언휘가 동생이었다.
기록에 의하면 이 당나라 채경에게는 “사람을 알아보는 거울”이 있어서 사람의 일부 미래를 예지할 수 있었다. 어느 날 그가 자기 아들 채숙향(蔡叔向)에게 산 위의 어느 정자에 가서 술자리를 차려놓고 고언랑 형제를 불러 술을 마시자고 했다. 얼마 후 채경이 직접 연회에 참가했다. 고 씨 형제는 최고 장관이 온 것을 보자 얼른 몸을 일으켜 절을 하려 했다. 채경은 그들에게 그냥 앉아 있어도 된다고 표시하며 일부러 일어나 인사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그들에게 친절히 대했을 뿐 아니라 또 “내가 보기에 자네 형제는 모두 제후가 될 상이니 스스로를 너무 낮추지 말고 잘하시게. 이후 내 후손이 자네들에게 의지해야할 걸세.”라고 알려주었다.
이후 채경은 두 형제를 최대한 발탁했다. 나중에 황소가 난을 일으켜 장안을 점령하자 고언랑은 장안을 수복하는 전투에 참가해 큰 공을 세웠다. 우위(右衛)대장군에 봉해졌고 동천절도사(東川節度使)에 임명되었다. 나아가 채숙향을 그에게 의탁했다. 고언랑은 채경의 도움에 감사하는 뜻으로 채숙향을 절도부사(節度副使 절도사를 보좌하는 직책)에 앉혔다. 채숙향 역시 좋은 계책을 많이 내놓아 고언랑을 도왔다. 나중에 고언랑이 세상을 떠나자 동생인 고언휘가 이어서 동천절도사가 되었다. 그 역시 처음에는 채숙향을 중용했다. 당시 사천은 기본적으로 3개의 큰 땅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검남서천(劍南西川), 검남동천(劍南東川), 산남서도(山南西道)였다. 고 씨 형제는 차례로 동천 절도사가 되었으니 채경이 예측한 대로 제후가 된 셈이다.
하지만 고언휘는 형과는 달리 사람을 대할 때 아주 오만했다. 임용한 관리와 참모들도 대다수 조정 귀족의 자제들을 임용했으며 경박하고 부패하여 진실한 기량이 없었다.
채숙향은 먹고 놀기만 하면서 군무에 소홀히 하는 귀족 자제들과는 완전히 달랐다. 재능이 있었고 일에 책임을 졌으며 놀기도 좋아하지 않았다. 고언휘는 채숙향을 존경하면서도 두려워하며 그가 자기 일에 방해가 될까 싫어했다. 일부 사람들은 기회를 보아 거짓말을 퍼뜨렸고 이간질을 도발했다. 결국 채숙향은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가 은거했다. 얼마 후 고안휘는 전투에 패해 죽었다.
촉군에 주흡(朱洽)이라는 술사가 있었는데 늘 다른 사람에게 말했다. “고언랑과 고언휘가 한쪽을 지키며 관직이 높지만 모두 ‘살아서는 저택이 없고 죽어서도 묘가 없을’ 운명이다.” 사람들은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절대 불가능하다고 했다. 하지만 나중에 그의 말대로 되었다. 알고 보니 고언랑과 고언휘는 본래 천덕군(天德軍) 중의 작은 장수였는데 우연한 기회에 전공을 세워 동천 절도사의 관직을 얻은 것이었다.
그들이 병사로 있을 때는 늘 병영에서 살았고 관리가 된 후에는 관부에서 살았으며 자신의 저택을 지을 기회가 없었다. 그러니 ‘살아서 저택이 없고’ 라는 말이 영험했다. 고언랑은 사천에서 세상을 떠날 때 화장하여 자기의 유골을 고향 풍주(내몽고 오언현)에 안장하라고 유언을 남겼다. 그러나 당시 일이 너무 많고 천하가 혼란하여 일을 성사하지 못하여 그의 유골을 장사지내지 못했다.
또 고언휘는 전투에 패해 전사하여 장례도 치르지 못했으니 묘를 만들 수도 없었다. 이렇게 그들 형제는 ‘죽어서 묘가 없는’ 운명이 되었다. 사정의 발전을 보면 완전히 술사 주흡의 예언이 영험했고 사람들은 그의 신묘한 추산을 믿지 않을 수 없었다.
당나라 때 채경은 그들이 낮은 직책일 때 그들의 미래가 부귀하고 복이 있음을 보아냈다. 술사 주흡은 그들의 관직이 높지만 ‘살아서 저택이 없고 죽어서 묘가 없을’ 운명임을 예언하여 일반인의 예측을 완전히 벗어났다. 그러니 운명은 하늘에서 안배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일부 술수를 아는 사람들은 자기 층차에서만 미래를 예지할 수 있을 뿐이다. 오늘 일부 사람들은 ‘천멸중공’의 예언을 믿지 않는다. 사실 많은 수련에 소양이 있는 고인(高人)들은 중공이 부패하고 악을 너무 많이 지어 그 수명이 다했고 반드시 하늘의 벌을 받아 멸망할 것임을 알고 있다.
이야기 중에 주흡의 예언을 믿지 않는 사람은 고언랑 형제 두 사람이 이렇게 부귀한데 어찌 ‘살아서 저택이 없고 죽어서 묘가 없을’것인가 하였다. 하지만 그들이 믿지 않는 것이 현실이 되었다. 오늘 ‘천멸중공’을 믿지 않는 사람도 오래지 않은 장래에 중공이 복멸할 것을 생각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때가 되면 중공 조직에 퇴출하지 않은 사람은 모두 연루되어 함께 따라 재앙을 당할 것이다. 이 난을 면하려면 오직 얼른 당단대에서 퇴출하는 수밖에 없다. 《북몽쇄언》
자료출처:《북몽쇄언(北夢瑣言)》
원문위치: http://www.zhengjian.org/node/2469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