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자/덕혜(德惠)
【정견망】
주방(周訪, 260~320년)은 자가 사달(士達)이며 동진(東晉)의 명장이다. 서진이 멸망한 후 조정은 남쪽으로 천도했기 때문에 사서에서는 동진이라 부른다. 주방은 이 단락 역사 중에 반란을 평정하고 동진 조정을 위해 남방에서 안정시킨 공로가 꽤 컸다. 나중에 관직은 안남장군(安南將軍), 양주자사(梁州刺史)에 이르렀고 심양현후(尋陽縣侯)에 봉해졌다.
주방은 원래 안양현의 공조(功曹, 하급 지방관)로 있었다. 당시 여강군(廬江郡)의 관리로 있던 도간(陶侃, 서기 259년-334년)을 만났다. 주방은 그와 친구가 되었고 도간을 군의 주부(主簿)로 추천했다. 주방은 또 딸을 도간의 아들에게 시집보내 서로 사돈이 되었다. 어느 날 주방이 도간과 함께 외출했는데 진훈(陳訓)이라는 관상가를 만났다. 진훈은 그들에게 말했다. “당신들 둘은 장차 지위가 방악(方岳, 지방의 최고위직 가령 자사)에 이르고 공명은 거의 같을 것입니다. 다만 도간이 더 오래 살고 주방은 좀 덜 살 것이며 두 사람의 우열은 수명이 결정합니다.”라고 했다.
나중에 주방과 도간 모두 동진의 명장이 되어 동진 조정에 반란을 토벌하는 큰 공을 세웠다. 과연 두 사람의 공이 거의 같았다. 관직으로 말하면 주방과 도간은 한 주의 자사를 지냈으니 과연 “지위가 방악에 이른다”는 말이 실제로 영험했다. 수명으로 말하면 주방이 도간보다 한 살 적은데 나중에 도간보다 14년 일찍 세상을 떠났다. 진훈의 예언은 과연 영험했다.
하지만 나중에 도간은 임형주와 강이주의 자사가 되었고 8주의 여러 군사, 장사군의 공으로 봉해졌다. 어떤 사람은 말하길 주방과 도간은 한 사람은 현의 후(縣侯)로서 한 주의 자사가 되었고 다른 사람은 군공(郡公)으로 봉해져 두 주의 자사, 8주 군사 도독을 맡았으니 분명 도간이 주방보다 더 높으니 결코 “공명은 거의 같다”는 아니며 도간의 부귀가 진훈의 예언을 벗어났다고 한다.
나는 이같이 인식한다. 도간은 역사상 명장일 뿐 아니라 또 인품이 고상한 사람이었다. 그의 모친은 평소 매우 엄격하여 아들에 대한 도덕적 요구가 매우 높았고 스스로 솔선수범하여 중화 역사의 유명한 현모 중의 하나다. 이 때문에 도간은 공적인 일을 할 때 사사로움이 없었으며 공적인 것을 이용해 사익을 추구하지 않았다. 또 남의이익을 점유하지 않았으며 조정의 모든 상은 부하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바로 도간이 잘했기 때문에 신이 원래 정한 안배를 벗어나 더 큰 복을 주어 더 높은 작위를 주었고 그래서 공명이 주방보다 한층 더 높다.
암암리에 정해져 있지만 또 변수가 있다. 신은 사람의 인연과 좋고 나쁨 일체를 본다. 좋은 일을 하면 장려하고 복을 더해주며 영광을 내려준다. 나쁜 짓을 하면 복분을 잃으며 생명에도 미친다. 만일 이렇게 보면 생명 중에 매번 선과 악의 선택은 당신 명 중의 변수가 될 수 있다. 충심으로 희망컨대 사람마다 선량을 선택하고 자기의 운명에 좋은 면으로 개변이 일어나도록 하기 바란다. 그러면 복이 늘어나고 수명이 더해지며 영광을 얻을 것이다.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오늘 날을 돌아보면 중공이 중국을 통치하는 이 몇 년간에 각종 운동을 발동시켜 수많은 중국인들을 해치거나 죽였고 무신론을 고취해 사람이 도덕을 말하지 못하게 하고 더욱 많은 사람의 운명에 나쁜 변화가 일어나게 했다. 현재 일심으로 수련하는 파룬궁 수련생을 박해하므로 이것이 그들 생명의 최대의 겁수를 구성하거나 부정적인 변수가 된다. 만약 최후에도 여전히 공산당을 탈퇴하지 않는다면 직면하는 것은 생명의 일체 복분이 모두 사라질 것이며 중공을 따라서 큰 악보를 받고 그것과 함께 도태될 것이다. 중공을 탈퇴해야만 미래가 있고 중공을 추종하면 반드시 겁난에 부딪칠 것이다. 모든 중국인들이 중공의 일체 조직을 탈퇴하는 선택을 하여 겁난에 빠지지 않게 되길 희망한다.
자료출처:《진서(晉書) 주방전》
원문위치: http://www.zhengjian.org/node/2493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