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물을 다스려 신주를 만든 우임금
공공 공임(孔壬)은 “제방으로 하천을 막고 산을 무너뜨리고 웅덩이를 메우는 방식”의 치수대책을 채택해 오랜 시간 큰돈을 소비했음에도 성공하지 못했다. 게다가 공임은 “편안한 즐거움에 빠져 지나치게 음란한 생활”을 했고 끝내 치수에 실패해 공이 없어서 관직을 잃게 된다.
요임금이 사악에게 의견을 구하고 치수를 위해 누구를 등용해야 할 지 문의하자 사악은 곤(鯀)을 추천했다. 요임금은 “곤은 성격이 제멋대로고 교만한데다 늘 명령에 복종하지 않으며 또 동족의 이익을 망쳤으니 이 일을 맡길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사악이 “지금으로선 곤보다 더 적합한 인물이 없으니 일단 시험 삼아 맡겨보십시오.”라고 권했다. 이에 요임금은 사악의 건의를 받아들여 곤을 등용했다.
곤은 원래 건축에 재능이 있었고 특히 성을 쌓는데 뛰어났다. 곤은 제방을 쌓아 물을 가두는 방법으로 물의 세력을 단속하고자 했다. 처음에는 꽤 효과가 있었지만 수위가 올라감에 따라 제방이 홍수를 막을 수 없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끊임없이 둑이 터졌다. 결국 제방이 붕괴되어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곤은 9년간 치수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이에 순임금은 곤에게 책임을 물어 우산(羽山)으로 유배시켰다.
순은 곤의 아들 문명(文命, 훗날의 우)이 어질고 덕이 있을 뿐 아니라 치수에 뛰어나다는 것을 알고는 요임금에게 홍수를 다스릴 인물로 그를 천거했다.
1. 신우(神禹)가 세상에 내려오다
우(禹)는 성이 사(姒)씨로 이름은 문명(文命)이다. 부친은 곤으로 황제 씨족의 후예다.
《죽서기년》에 따르면 우임금은 하후씨로 모친은 수기(修己)다. 길을 나섰다 유성이 묘(昴)성을 관통하는 것을 보고 꿈에 기이한 느낌을 받아 신주(神珠)를 삼켰다. 수기의 등을 가르자 석뉴(石紐)에서 우가 태어났다. 호랑이 코에 큰 입을 지녔고 두 귀에는 장식을 달고 머리에 방울을 달았으며 가슴에는 옥으로 만든 국자가 있고 발에는 무늬를 밟고 있었다. 그래서 문명이라 불렀다. 자라서는 성스런 덕이 있었고 키가 9척 9촌에 이르렀다.
곤은 유신씨(有莘氏)의 딸을 아내로 맞았는데 이름은 여희(女嬉) 또는 수기(修己)라고 했다. 제지가 사망한 후 곤은 더 이상 관직에 나가지 않고 처자식과 함께 문산(汶山) 광유(廣柔)지방에 있는 석뉴촌(石紐村)에서 살았다. 지금의 사천성 문천현(汶川縣) 경계에 해당한다.
그런데 여희는 서른이 넘도록 자식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해질 무렵 산 밑에서 물을 긷다가 물가에서 한 알의 밝은 구슬을 발견한다. 크기는 계란 정도였는데 손에 들고 보니 볼수록 애착이 갔다. 산을 올라가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어보니 바로 큰 유성 하나가 반대편 산위에서 곧장 날아오더니 몸을 스치고는 곧장 하늘로 올라가더니 묘수(昴宿 28수의 하나)의 궁(宮)으로 들어갔다. 여희는 깜짝 놀라 입속에 신주를 넣어둔 사실을 잠시 잊어버렸다. 어느 순간 신주가 입에서 식도를 타고 뱃속으로 들어갔다. 이 순간 여희는 뜨거운 기운이 단전에 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이날 밤 꿈에 호랑이 코에 큰 입, 강 같은 눈에 새 같은 입을 지닌 건장한 남자가 나타나서 말했다. “나는 천상 금성백제(金星白帝)의 정화인데 일찍이 세상에 내려가 여와씨의 19대 손자로 이름은 신우(神禹)라 했으며 수명은 360살이었소. 나중에 구의산에 찾아가 도를 배우고 신선이 되어 하늘로 날아가 전처럼 별의 정화로 변했소. 지금 천하에 홍수가 범람하니 이를 다스리라는 명을 받았기에 하나의 돌로 변화해 인연 있는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소. 어제 당신이 나를 삼켰으니 당신은 나와 인연이 있소. 내가 당신의 아들이 되겠소.”라고 했다.
여희가 깨어나 어제 산에서 있었던 일과 꿈속의 일을 곤에게 전부 말했다. 그러자 곤은 보아하니 아들이 나올 모양인데 상당한 내력이 있고 반드시 아주 비범할 거라고 했다.
여희가 임신한 지 10개월이 지났지만 아이는 나오지 않았다. 13개월이 지나도 여전히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 여희 등이 마치 찢어지는 것처럼 통증이 있더니 등에 둥근 물건이 하나 나와서 정수리 쪽으로 계속 올라갔다.
이에 곤이 칼로 아내의 등을 가볍게 긋자 태아가 출생했는데 남자아이였다.
우는 귀에 3개의 구멍이 있었고 긴 목, 새와 같은 입, 호랑이 코, 강과 같은 눈, 큰 입을 지녀 여희가 꿈에서 보았던 장면과 차이가 없었다. 또 두 귀에는 장식을 하고 있었고 머리에 방울을 달았으며 가슴에는 옥, 발에는 글이 새겨진 신을 신고 있어 이름을 문명 자는 고밀(高密)이라 했다. 자라면서 성스런 덕을 갖췄고 신장은 9척 9촌에 달했다.
문명은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지혜로웠으며 공손하고 예의가 있었다. 곤 부부는 그를 몹시 사랑했고 직접 가르쳤다. 곤은 본래 박학다식하고 재능이 많은 인물이라 자신의 모든 학문을 문명에게 가르쳐주었다. 문명은 비록 나이는 어렸지만 이해력이 좋았고 특히 수리(水利)와 지리(地理)를 좋아했다.
문명이 10세가 되기 전에 공임이 치수에 실패하자 곤이 대신 치수의 사명을 맡았다.
곤이 집을 떠난 후 어느 날 문명은 집밖에서 자칭 울화자(鬱華子)라는 백발의 노인을 만났다. 울화자는 수도(修道)하는 사람으로 천문과 지리에 밝아 모르는 게 없었으며 과거와 미래를 알 수 있었다. 문명은 울화자를 스승으로 모셨고 울화자는 문명의 집에 거주하면서 제자를 가르쳤다. 울화자는 문명에게 이번 물난리는 전 세계적인 재난으로 천지를 두루 통하는 능력과 신과 귀신을 부리는 수단이 없다면 다스리기 어렵다고 했다.
울화자는 천하의 명산과 대천을 두루 다니며 노정의 길이 높이나 폭 난이도 등 지형지세의 특징은 물론 다양한 치수방법을 모두 문명에게 전수해주었다. 그의 치수 요점은 한마디로 “오직 물의 성질에 따라야만 하며 물과 세력을 다툴 수는 없다(只可順水之性,不可與水爭勢)”는 것이다. 문명은 이를 마음속에 되새겼다.
3년 후 울화자는 문명 모자와 작별했다. 떠나기 전 울화자는 문명에게 훗날 그의 조수가 될 4사람을 추천했다.
오래지 않아 울화자는 진규(真窺), 횡혁(橫革) 두 사람을 문명에게 보내 조수로 삼게 했다. 두 사람은 문명에게 한통의 서신을 전달했다. 서신에서 울화자는 서왕국(西王國) 선생과 대성지(大成摯)를 추천하면서 문명에게 두 사람을 스승으로 모시라고 건의했다. “이 두 분은 둘 다 제왕의 스승으로 불세출의 기재(奇才)다.”
2. 물난리를 살피며 신적을 드러내다
나중에 모친이 사망하자 문명은 부친인 곤을 찾아가기로 결심했다. 가는 도중에 우는 서왕국 선생을 찾아가 인사를 드렸다. 그의 학문은 울화자와는 달라서 정심(正心), 수신(修身), 나라를 다스리는 도에 관한 것으로 문명에게 적지 않은 수익을 주었다.
노정 중에 문명 일행은 물을 다스리기 위해 쌓은 수백 리에 달하는 거대한 제방을 보았다. 그는 이 방법이 울화자 스승이 가르쳐준 것과는 다름을 느꼈다.
문명은 곤을 찾아간 후 부친의 곁에 머물렀다. 그는 도처를 살펴보며 점차 경험을 쌓기 시작했다. 그는 여러 산들에 둘러싸인 이 많은 물들의 출로를 만들어주면 물의 성질에 따라 자연스럽게 바다로 흘러들어갈 것임을 깨달았다. 하지만 산속의 물을 내보내려면 반드시 산을 뚫어야 했고 지상의 물도 반드시 땅을 파서 물길을 파야만 했다. 이 일은 당연히 거대하고 비할 바 없이 힘든 공정이었다.
그는 부친에게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그는 “높은 것은 뚫어서 통하게 하고 얕은 것은 소통시켜 내보내야 한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곤은 산을 뚫고 땅을 파는 이 두 가지 일을 하려면 아주 많은 인력과 물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문명은 두 조수를 데리고 여러 지역을 다니며 지세와 홍수의 세력 및 그 근원을 살펴보았다. 그는 이 홍수는 오직 신의 보우와 도움이 있어야만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회수(淮水) 유역에서 그는 대성지를 만나 스승으로 모셨다. 대성지는 문명에게 “이번 홍수는 천지의 큰 변화”라 사람의 힘으로는 만회할 수 없다면서 그에게 아주 좋은 제안을 했다.
문명은 항산(桓山)에서 우연히 항산의 신, 하봉산(河逢山) 신 및 포독산(抱犢山) 신을 만났다. 이들은 그에게 남방에 가서 치수의 방법과 도구 및 인재를 구하라고 알려주었다.
《오월춘추》에는 “구의산(九疑山) 동남쪽에 천주산(天柱山)이 있는데 완위산(宛委山)이라고도 불린다. (산꼭대기에 책이 한권 있는데) 옥으로 받쳐져 있고 큰 바위로 덮여 있다. 이 책은 황금 간찰로 되어 있고 글자는 푸른 옥이며 백은으로 엮었다. 문장은 전부 전서체로 되어 있다. 우가 동쪽으로 순행하다 형산에 올라가 책을 구했다. 붉은 무늬의 옷을 입은 남자가 나타나 자칭 현리창수(玄夷倉水)의 사자라면서 우를 찾아와서는 지금 재계하고 3월에 와서 다시 구하라고 했다. 우가 3일을 목욕재계하고 완위산에 올라가 책을 얻었는데 물을 통하게 하는 이치를 얻어 마침내 천하를 두루 다녔다.”는 기록이 있다.
이들이 남쪽으로 가서 한수(漢水) 유역에 이르렀을 때 울화자의 편지를 갖고 온 사람을 만났다. 편지에서는 완위산[절강성 소흥시 동남쪽에 있는 옥사산(玉笥山)]에 가서 경건하게 목욕재계한 후 적벽이규(赤碧二圭)와 12책의 장서를 찾게 했는데 수맥지리, 산천도로에 대해 아주 상세한 책이다. 여기서 적규와 벽규는 지하 깊은 곳을 비춰볼 수 있었기 때문에 치수에 있어 뛰어난 보배였다.
또 무산(巫山) 부근을 지날 때 서왕모가 파견한 운화부인(雲華夫人)이 문명을 보러 왔다. 그녀는 문명에게 상청(上淸)의 보문(寶文, 보귀한 문서) 2부를 주었는데 하나는 천신을 소환하고 하나는 지지(地祗)를 소환할 수 있었다. 또 육지에서 호랑이나 표범을 몰아내고 물에서는 교룡을 제압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해 물과 불을 마음대로 드나들고 오랫동안 장생할 수 있었다. 그녀는 또 휘하의 일곱 천장(天將)을 속세에 내려보내 문명의 치수를 돕게 했다. 이외에도 운화부인은 또 우에게 치수를 위한 3가지 대책을 전수해주었다. 나중에 운화부인은 문명에게 자신과 서왕모 모두 필요시 치수를 도와주겠노라고 했다.
《산해경‧해내경》에는 “홍수가 하늘에 닿자 곤은 천제(天帝)의 명령을 기다지리 않고 식양(息壤)을 훔쳐 홍수를 메웠다.”는 기록이 있다. 여기서 식양이란 끊임없이 자라는 토양으로 땅에 조금만 던져도 곧장 크게 성장해 산을 이루고 둑을 이뤘다. 곤은 천제의 식양을 훔쳐 둑을 쌓았지만 천제의 뜻을 어겼으니 그 결과는 뻔했다. 결국 큰 둑이 무너지고 홍수가 터져 수습할 수 없게 되었고 수많은 백성들이 죽거나 다쳤다. 9년에 걸친 곤의 치수는 ‘성공하지 못했고’ 순은 요임금에게 곤을 우산에 유배 보낼 것을 건의했다. 어떤 기록에서는 축융이 명을 받아 우산에서 곤을 주살하자 곤이 물에 뛰어들었다고도 한다. 곽주는 《귀장(歸藏)‧계서(啟筮)》를 인용해 “곤이 사망한 후 3년간 썩지 않았는데 칼로 베자 황룡으로 변했다.”고 한다.
3. 물을 다스리라는 명을 받은 우
곤이 치수에 실패한 후 순은 요임금에게 홍수를 다스릴 인물로 우를 추천했다.
문명은 어느 날 꿈에 자신이 망망대해에서 목욕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붉은 태양이 높이 비추는 것을 보았다. 파도가 태양을 따라 오르내렸는데 꿈에서 깨어난 후 “붉은 태양은 천자의 상(像)인데 붉은 태양이 물에서 솟아올라 직접 내 몸을 비췄으니 천자가 내게 치수를 맡기시려는 게 아닐까?”라고 해몽했다.
문명은 모친의 가르침과 부친의 유명에 따라 도성으로 가서 치수의 직책을 맡았다.
이때부터 대우는 치수 및 구주의 평정과 밀접하게 하나로 연계되었다. 이는 또 대우 일생의 주요 공적이기도 하다. 오랫동안 대우가 물을 다스린 이야기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깊이 들어와 인구에 널리 회자되곤 했다. 대우가 자기 집 앞을 3차례나 지나가면서도 들어가지 않았다는 것은 천하백성의 공(公)을 위해 사(私)를 잊은 커다란 흉금을 더욱 분명히 드러낸다.
요임금이 문명을 불러 만났을 때 문명은 요임금에게 말했다. “신은 물을 다스림은 반드시 물의 성질을 따라야한다고 봅니다.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르니 물을 바다로 들어가게 이끌어야 합니다. 그러자면 높은 곳은 뚫어서 통하게 해야 하고 낮은 곳은 소통시켜야 합니다.” 요임금은 그의 말을 크게 칭찬했다.
여기서 인력과 시간의 문제가 나왔으니 문명이 만난 기적과 치수를 돕겠다고 한 운화부인의 약속을 한번 말해보자. 요임금은 서왕모가 한 말이 영험하며 큰 공을 이룰 수 있음을 알고 아주 기뻐했다. 요는 문명에게 ‘우(禹)’라는 이름을 내리고 숭백(崇伯)이란 직책을 맡겨 홍수를 다스리게 했다.
이에 중화문명역사상 휘황한 한 페이지가 펼쳐졌다.
우가 명을 받은 후 순은 후직(后稷)과 익(益)을 우의 조수로 삼아 치수에 협조하게 했다.
치수 공정이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도록 고요(皐陶)는 “백성들이 모두 우의 명령에 따르게 했고 만약 약속을 어기면 형벌로 다스리게 했다.” 즉 행정적으로 전력을 다해 치수계획이 실시되도록 보장함과 아울러 수십만 명의 일꾼을 동원하며 여러 제후들과 백관이 협조하게 했다.
우는 경중과 완급에 따라 치수공정을 6단계로 나눴다.
첫 번째는 기주(冀州) 전체와 옹주(雍州), 예주(豫州), 연주(兗州)의 일부로 다시 말해 황하 중류와 하류지역이었다. 기주는 단지 제왕의 도성이 존재할 뿐만 아니라 피해를 입은 사람이 많았기 때문에 가장 우선적으로 다스려야 했다.
두 번째는 연주와 청주(靑州) 전체였다. 청주는 해안에 가깝고 지세가 낮아서 수재 역시 심했다. 이곳은 황하 하류에 해당한다.
세 번째는 서주(徐州) 전체와 예주의 일부였다. 이곳은 장강과 회수의 범람으로 수년간 재난을 당한 곳으로 역시 신속히 처리해야 했다.
네 번째는 양주(揚州), 형주(荊州), 양주(梁州) 전체였다. 장강이 천리를 돌아 동해로 통하는데 지세가 낮다. 서쪽의 양주(梁州)는 지세로 보면 마치 별개의 지역처럼 보이지만 이미 변화가 많아서 함께 다스려야 했다.
다섯째는 구주의 변경이다.
여섯째는 해외다. 왕은 경계가 없고 온 천하를 평등하게 본다. 때문에 중국을 다스린 후에는 해외 각국도 두루 시찰하면서 다스렸다.
약 10년간 물과 땅을 대략 다스릴 수 있었지만 그물처럼 망을 이루고 수리를 일으키는데 또 2~3년이 걸렸다.
여기에 이르러 우가 신주를 만든 서막이 열렸다.
대우가 물을 다스릴 때 하도, 낙서를 얻어 치수에 도움을 주었다.
《죽서기년》에 따르면 “우가 황하를 바라보는데 흰 얼굴에 물고기 몸을 한 사람이 나타나 ‘나는 황하의 정령입니다.’ 우에게 ‘문명이 물을 다스릴 것이다.’라고 했다. 말을 마치고는 우에게 하도를 주고 치수에 관한 일을 말하고는 곧 물속으로 물러났다.”고 한다.
대우가 하도를 펼쳐보니 구주의 중앙과 산천의 형세 및 맥락이 분명하고 자세했다. 원래 하도는 치수를 위한 한 장의 지도였다.
우가 도중에 낙수에 이르니 큰 거북이 한 마리가 등에 책을 한부 지고 와서 우에게 바쳤다. 보니 위에 각 주의 산천형세, 야수와 맹금류, 요괴의 이름과 모양 및 기호와 꺼리는 것이 적혀 있었다. 대우는 낙수의 신에게 몇 차례 절을 올리고 낙서와 하도를 함께 거뒀다.
호구(壺口) 부근에서는 하백(河伯)이 또 대우에게 하도를 증정했다.
(계속)
원문위치: http://www.zhengjian.org/node/1520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