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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고영웅인물】 요‧순‧우(9): 화하(華夏)의 신기원을 열다

제7장 화하의 신기원을 개창하다

1. 홍범구주(洪範九疇)

순이 하늘로 돌아간 후 삼년상을 마친 우는 제위를 순의 아들 상균(商均)에게 양보하고 양성(陽城)으로 몸을 피했다. 하지만 천하 제후들은 모두 상균을 찾지 않고 우를 찾아왔다. 마침내 우가 천자의 지위를 계승하니 국호를 하(夏)라 했다.

우는 제위를 이은 후 가장 먼저 천지와 신령에게 제사를 지냈다. 대우가 머리를 조아리며 하늘에 묻자 하늘은 ‘홍범구주(洪範九疇)’를 내려주었다.

어느 날 대우 일행이 낙수의 발원지인 웅이산(熊耳山)에 갔는데 신령한 거북이 나타나 우에게 다가왔다. 등에 그림과 글이 있어서 우가 붓을 들어 그 방식대로 그렸다. 한쪽으로는 수를 세는데 1부터 9까지 가지런히 배열되었고 종횡으로 추산해보니 성수(成數)가 아닌 것이 없었다. 한쪽으로는 문자가 있었는데 즉 오행인데 경건함에는 오사(五事)로 하고, 농사에는 팔정(八政)으로 하고 조화에는 오기(五紀)로 하고 세움에는 황극(皇極)으로 하고, 다스림에는 삼덕(三德)으로 하고, 밝힘에는 의심나는 것을 살피는 것으로 하고, 헤아림에는 여러 조짐으로 하고 응함에는 오복으로 하고 위엄에는 육극으로 한다.

우는 한가할 때 늘 이 낙서(洛書)를 연구했다. 그것을 차례대로 배열해 9가지로 분류하고 완벽한 해석을 붙였으니 이것이 바로 ‘홍범구주(洪範九疇)’다.

홍범구주는 바로 천자의 9가지 책임으로 다시 말해 세상을 다스리는 훌륭한 9가지 정책이다. 첫 번째는 오행이고 둘째는 경건함을 유지하는 것이니 오사로 하고, 세 번째는 농사를 짓는 것이니 팔정으로 하고, 네 번째는 조화를 이루는 것이니 오기로 하고, 다섯째는 세우는 것이니 황극으로 하고, 여섯째는 다스리는 것이니 삼덕으로 하고, 일곱째는 밝히는 것이니 계의(稽疑, 의심나는 것을 살핌)로 하고, 여덟째는 헤아림이니 여러 조짐으로 하고, 아홉째는 응하는 것은 오복으로 하고 위엄은 육극으로 한다.

(初一曰五行,次二曰敬用五事,次三曰農用八政,次四曰協用五紀,次五曰建用皇極,次六曰乂用三德,次七曰明用稽疑,次八曰念用庶征,次九曰向用五福,威用六極.)

2. 구정(九鼎)을 만들어 화하를 통일

대우는 즉위 후 천하 제후들을 도산(塗山)에 모았다. 이 성대한 모임을 기념하기 위해 대우는 각지에서 헌상한 청동으로 아홉 개의 정(九鼎)을 만들기로 결정했다. 즉, 그 주(州)에서 바친 금속으로 그 주의 정을 만들되 해당 주에 있는 산천의 형세를 모두 그려 넣게 했다. 또 전에 치수하면서 우가 만났던 각종 기이한 금수(禽獸)와 물건들도 모두 함께 정에 그려 주조하게 했다. 즉 하나의 정은 한 주를 상징하고 구정은 구주를 상징한다. 그중 예주(豫州)의 정이 중앙의 대정(大鼎)이 되었다. 구정을 하나라의 도성에 모아 대우가 구주의 주인으로 천하를 통일했음을 드러냈다. 구정은 또 ‘천명(天命)’과 관련된 상징이 되었고 나라를 지키는 보배가 되었으며 신에게 부여받은 황권(皇權)의 상징이 되었다. 하나라가 망한 후 정은 상(商)나라로 옮겨졌고 상나라가 망한 후에는 주(周)나라로 옮겨졌으며 이렇게 삼대(三代)를 이었다.

도산 집회에서 우가 오만하고 고분고분하지 않았던 방풍씨(防風氏)를 죽이자 제후들이 공물을 바치며 복종했다.

대우가 남쪽을 순시하면서 제강(濟江)에 갔을 때의 일이다. 강 중류를 지나는데 2마리 황룡이 배를 등에 지자 선원들이 모두 두려워했다. 우는 웃으면서 “나는 천명을 받아 힘써 사람을 기르고 있다. 삶이란 성(性)이고 죽음이란 명(命)이다. 어찌 용을 두려워하겠는가!”라고 말하자 용이 꼬리를 끌고 사라졌다.

3. 통일적인 천하 관리방식

요순 시기를 포함해 우임금 이전에는 부락연맹의 시기로 일종의 느슨하고 분산된 통일이었다. 각 씨족이나 부락의 추장은 각자 독자적으로 생산하고 업무를 사용했다. 하나라가 건립된 후 정령(政令)을 통일하고 사회질서를 안정시키며 상호 침범을 방지하기 위해 많은 조치들이 취해졌다.

1) 주를 나눠 통치. 원래 각 씨족과 부락은 모두 씨족에 의해 관리되었고 이들 사이에는 우열관계가 없었다. 다만 통혼이나 연맹관계만 존재했을 뿐이다. 황제에서 요임금 시기까지 소위 ‘천하공주(天下公主)’에는 강력한 예속관계나 의무가 없었다. 하왕조가 건립된 후 씨족 방식은 지역방식으로 변했다. 즉 각 주(州)의 장이나 봉국(封國)의 국군 혹은 방국(方國)의 국군은 모두 우가 직접 임명했고 조정의 통제와 지도를 받았다.

2) 오복공부법(五服貢賦法). 전에는 각 씨족이나 부락이 ‘연맹의 주군’에게 물품을 헌상했다. 하지만 이는 공경하고 헌납하며 이에 대해 보답하는 성격일 뿐 의무나 법적인 성격은 아니었다. 하나라가 건립된 후 각 주의 특산물 상황에 근거해 각 주에서 조공할 물품과 종류 및 수량은 물론 공물을 바칠 시간과 노선까지 모두 규정을 정했다. 이는 각 봉국이 마땅히 해야 할 책임이자 의무로 일종 법적인 규정이 되어 가격을 흥정할 수 없게 되었다.

《상서‧우공(禹貢)》에는 우가 ‘오복공부’법을 시행했다고 한다. 여기서 부(賦)란 조정에서 강제적으로 백성으로부터 수취한다는 뜻이다. 공(貢)이란 제후가 자발적으로 조정에 바치는 것이다.

《우공》에서는 도성 밖 5백리를 전복(甸服)이라 하는데 천자가 곡물을 세금으로 받는 지역이다. 왕성에서 백리 이내의 지역은 볏단, 백리에서 2백리 사이는 곡식의 이삭, 2백리에서 3백리 사이는 곡식의 낟알, 3백리에서 4백리 사이는 현미, 4백리에서 5백리 사이는 곱게 찧은 쌀(백미)을 부세로 바치게 했다.

전복 바깥 5백 리가 후복(侯服)인데 나라와 천자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에게 노역을 바치는 지역이다. 전복에 가까운 백리는 경대부(卿大夫)의 채읍(采邑)이고 2백리는 작은 봉국(남작의 나라), 3백리부터 제후의 봉지로 삼았다. 또 전복에서 가장 가까운 백리는 천자를 위해 노역하고 2백리는 국가에서 일하는 관리를 위해 노역하며 3백리는 정찰업무를 맡는다.

또 후복 바깥 5백 리를 수복(綏服)이라 하는데 천자가 어루만지며 교화하는 지역이다. 이중 후복에 가까운 3백 리는 예악과 법도, 교육 등을 실시하고 그 바깥 2백 리는 무위(武威)를 떨쳐 천자를 지킨다.

수복 바깥 5백 리 지역을 요복(要服)이라 하는데 천자에게 복종하는 지역이다. 수복에서 가까운 3백 리는 교화를 준수하고 평화롭게 지내며 그 바깥 2백 리는 왕법과 조약을 준수한다.

요복 바깥 5백리 지역을 황복(荒服)이라 하는데 천자를 위해 변경을 지키는 지역이다. 요복과 가까운 3백 리는 예속관계를 유지하며 그 바깥 2백리는 조공 여부가 정해지지 않아 유동적인 곳이다.

3) 역법의 통일. 역법은 천문(天文)과 천상(天象)에 대한 관측에서 기원하며 복희 이래 요, 순, 우는 모두 천상을 관측하고 천지와 일월성신의 운행규칙을 파악해 음양과 사시를 조화롭게 하는 것을 가장 중시했다. 전통 간지의 기년(紀年), 기월(紀月), 기일(紀日)법은 모두 일찍이 요순시기부터 기원하는데 이 시기에 역법에 대한 혁신과 통일이 있었다. 고대에는 한 왕조가 흥성하면 반드시 정삭(正朔)을 고치고 역법을 통일했다. 하나라가 건립된 후 각국에 하력(夏曆)을 배포했는데 바로 하소정(夏小正)이다.

북두칠성의 두병(斗柄)이 가리키는 방위에 근거해 달을 정했는데 두병이 정동에서 북방으로 치우친 방향을 ‘건인(建寅)이라’ 해서 한해의 시작으로 삼았다. 또 12달을 1년으로 삼았다. 하력은 12개월의 순서에 따라 매 달의 성상, 기상, 물상 및 이에 상응하는 농사와 정사를 서술해 농업생산에 아주 편리했다. 또 3년마다 윤달을 한차례 두어 윤년(閏年)이라 했다. 윤년이 되면 1년이 13달이 되어 태양주기와 천문주기의 관계를 조율했다. 하력은 기본적으로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

4) 성과 해자를 만들다. 고대에는 성(城)이 바로 나라였다. 하나라의 성곽에는 일정한 제도가 있었다. 성문, 마을, 주택에도 모두 일정한 배치가 있었다.

5) 형벌 제정. 기록에 따르면 하나라 법률제도는 주로 형법과 군법을 포함한다. 후대인의 진술에 따르면 하나라 때 이미 3천조에 달하는 형법이 존재했다고 한다.

4. 공성원만해 하늘로 돌아간 대우

대우는 구주를 다스리고 물과 땅을 다스려 신주(神州)를 창립했고 구정을 주조해 화하를 통일했다. 또한 조공과 부세 제조를 확립하고 관리체제를 만들어 왕도(王道)를 크게 갖췄다. 대우는 수련에서도 큰 진전이 있었으며 스스로 3부의 책을 썼다. 즉 《진영보요집(真靈寶要集)》, 《천관보서(天官寶書)》와 《영보장생법(靈寶長生法)》이다.

또 아직 끝내지 못한 일부 일들이 있었다. 바로 대우가 물을 다스리는 과정에 수집한 수많은 보물들인데 어떤 것은 원래 위치로 돌려놓아야 했고 또 어떤 것들은 잘 수장해서 세상에서 흩어지지 않게 해야 했다. 마지막으로 대우는 전에 서성왕군(西城王君)이 준 보서를 원래 위치인 왕옥산 동굴에 돌려놓았고 앞서 언급한 3권의 책을 포함해 다른 것들은 모두 각 지역 산속에 분산해 감춰놓아 인연 있는 사람을 기다리게 했다.

우는 천자의 자리를 계승한 후 고요(皋陶)를 후계자로 세워 하늘에 추천도 하고 아울러 그에게 국정을 맡기기도 했다. 하지만 고요는 요순 때부터 있던 원로라 나이가 우보다 많았기 때문에 제위를 잇지 못하고 그 전에 사망했다. 우는 이에 익(益)을 등용했다. 익은 우의 치수를 돕는 공을 세우긴 했지만 백관을 총괄한 경험은 없었다.

7년이 지나자 우임금은 동방으로 시찰을 나갔다 회계에 이르렀다. 그곳에서 하늘에서 용을 타고 온 천신(天神)을 파견해 대우를 영접해 하늘로 돌아가게 했다.

우가 승천하자 삼년상을 마친 익은 우나 순과 마찬가지로 제위를 우의 아들 계(啓)에게 양보하고 자신은 기산 남쪽으로 들어가 은거했다. 그런데 우의 아들 계는 어질고 덕이 있어 천하의 인심이 그에게 향했다. 우가 비록 천하를 익에게 주었지만 익이 우를 보좌한 시간이 짧았기 때문에 제후들 역시 익을 떠나 계를 찾아갔다. 그러면서 “이는 우리 군주이신 우임금의 아드님이 아닌가!”라고 했다. 이에 계가 천자의 지위를 이으니 그가 바로 하왕조를 만든 계다.

* * *

요, 순, 우 세 성군(聖君)이 공동으로 풀어낸 것은 바로 인간세상에서 도덕이 고상할 때 도달할 수 있는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즉 사람들이 하늘을 공경하고 덕을 중시하니 인간세상에 신적(神跡)이 늘 나타났다. 제왕은 선양으로 제위를 이었고 오직 덕이 있는 사람을 등용해 다방면으로 시험한 후에야 하늘에 천거했고 하늘의 상서로운 응답이 있은 후에야 성대한 의식을 치러 제위를 잇게 했다. 사람들은 수신양성하며 늘 득도한 고인에게 기도하거나 요청했으며 심지어 직접 신선들의 지도를 받을 수 있었다. 또 사람들은 신의 직접적인 지도와 도움 하에 난관을 지나갈 수 있었고 심지어 오늘날에는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기적을 완성하기도 했다.

이에 사람들은 확실히 알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사람과 신이 함께 존재하는 시대였으며 신주(神州)는 정말로 신이 출몰하는 곳이고 중화문화는 신이 사람에게 전해준 문화였다.

맺음말

요는 천명을 받들어 인자하고 박애함으로 천하에 진심을 펼쳤고 창생에게 덕을 주었다. 그의 감화와 교화 아래 백성들은 구족이 대를 이어가며 서로 화목하게 지냈고 백관은 한마음으로 뛰어난 정치적 업적을 쌓았으며 만방(萬邦)이 화목해서 천하가 태평했다. 만국의 만민(萬民)이 일체가 되어 천하의 인심이 돌아왔고 공동으로 중원부락대연맹(中原部落大聯盟)을 만들어 천하통일을 위한 기초를 다졌다. 요는 사시를 다지고 역법을 만들었으며 천지사시에 질서가 있으며 음양이 조화롭게 했다. 예(羿)는 9개의 태양을 쏘고 요마(妖魔)를 제거했으며 인류가 생존하는 환경을 정화시켰다. 하늘은 요에게 하도와 낙서를 주어 우(虞, 순임금), 하(夏), 은(殷), 주, 진, 한의 흥망의 수를 알려주었다. 성스런 덕이 하늘을 감동시키자 하늘은 요임금에게 10가지 상서로운 길상을 내려주었다. 경성(景星)이 상서로움을 보인 것은 요임금이 바로 신이 세간에 내려와 새로운 세상을 창립하고 오천년 신전문화를 창립했음을 분명히 보여준 것이다.

순임금은 요와 우를 잇는 시기에 고상한 도덕과 어질고 효성스러움을 펼쳐보였고 붉은 새가 길상을 드리워 후세의 모범이 되었다. 그가 주창하고 추진한 윤리도덕은 사람들의 행위준칙이자 도덕규범이 되었다. 그가 다져놓은 도덕을 핵심으로 하는 전통문화는 마치 햇빛처럼 만대에 은택을 주었다. 그는 관리와 제후를 심사하고 평가하는 제도를 확립해 조정과 제후의 연계 및 종속관계를 강화시켰고 한 세트의 완벽한 도덕, 법도, 교육, 인사고과와 상벌제도를 만들어 천하통일을 위한 틀과 구조를 확립시켰다. 또 오전(五典)을 널리 보급해 만백성이 기꺼이 따르게 하고 교육을 창립한 공은 만세에 드리운다. 또 형법을 만들어 믿고 따를 규정이 있게 했다. 마지막에는 수련하여 정과를 얻었고 도를 얻어 승천했다.

우임금은 물과 땅을 다스리고 구주를 정했으니 이로부터 천지에 정해진 수가 있고 우주에 질서가 생겨 천지운행의 새로운 질서를 만들었고 최종적으로 신주(神州)를 창립하는 과정을 완성했다. 천하 만민이 모두 평탄한 땅에서 살 수 있게 되었고 위덕과 교화가 아주 먼 변방까지 미쳤으니 그 공이 해와 달처럼 높았다. 조공과 부세제도를 확립하고 완벽한 관리체제를 만들어 제도(帝道)를 크게 정비했다. 구주를 다스린 공은 천지와 같고 구정을 주조해 팔방을 진무(鎭撫)하니 제도(帝道)가 흥하고 사해가 복종해 만방이 하나로 통일된 새로운 세상을 열었다. 우임금 역시 마지막에 원만해서 하늘로 돌아갔다.

요, 순, 우 세 성군은 서로 제위를 이어받으며 천명을 받들어 인간세상을 다스리며 새로운 세상을 창립했다. 우주자연에 부합하도록 참여해 천지와 사시운행의 질서를 규정했다. 물과 땅을 다스리고 음양을 조화롭게 했으며 요마를 제거해 환우(寰宇)를 정화해 인류가 생활하는 환경을 창립하고 다져놓았으며 만물의 생존공간을 정화해 화하를 통일했다. 천하에 도가 행해지고 덕의 혜택이 널리 퍼져 거대한 덕으로 천하를 다스렸으며 천지인(天地人)이 자연과 조화롭고 도덕을 핵심으로 하는 천인합일의 문화체계를 창조해 공동으로 신주라는 큰 무대를 창립하는 과정을 완성했으니 그 찬란한 빛이 우주를 비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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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위치: http://www.zhengjian.org/node/152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