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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고영웅인물】 이백(2): 대붕부(大鵬賦)로 천하에 이름을 날리다

글/ 찬란한 5천년 신전문화의 천고영웅인물 연구팀

제1장 장경성과 금속여래[長庚星精青蓮始 金粟如來主佛歸]

이백은 당나라 중종(中宗) 시기인 701년 사천 광한(廣漢 지금의 창명彰明) 청련향(青蓮鄉)에서 태어났다. 이곳의 원래 지명은 청렴향(清廉鄉)인데 나중에 이백의 호인 ‘청련거사(青蓮居士)’를 따서 청련향으로 개명되었다. 그의 모친이 장경성(長庚星 태백성)이 떨어져 품에 들어오는 꿈을 꾸었기 때문에 이백의 자(字)를 태백(太白)이라 했다. 여기서 장경성은 태백금성(太白金星)을 말한다. 이양빙(李陽冰)은 《초당집서(草堂集序)》에서 이백을 ‘태백성정(太白星精 태백성의 정화)’이라 칭했고 범전정(範傳正)도 나중에 이백의 비문을 지을 때 “그의 모친이 장경성이 상서로움을 알리는 꿈을 꾸었기 때문에 이름과 자에 모두 그 상을 취했다.”고 했다.

청련거사 이백은 《답족질승중부증옥천선인장다(答族侄僧中孚贈玉泉仙人掌茶)‧ 서(序)–집안 조카 중부 스님이 옥천사 선인장차를 주어 답하다》에서 자신의 신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청련거사는 귀양 온 신선인데술집에 이름 깔은 지 어언 30년호주거사여 어찌 꼭 물어봐야 하오금속여래가 후신이라네

青蓮居士謫仙人(청련거사적선인)酒肆藏名三十春(주사장명삼십춘)湖州居士何須問(호주거사하수문)金粟如來是後身(금속여래시후신)

청련(靑蓮)은 본래 서역에서 나는데 산스크리트어로는 우발라화(優缽羅花 또는 우담바라화優曇婆羅花라 한다)라고 한다. 청색과 흰색이 분명하고 진흙에 물들지 않는다. 불경(佛經)에서는 우발라화가 필 때 ‘만왕의 왕(萬王之王)’인 전륜성왕(轉輪聖王)이 장차 세간에 내려와 중생을 널리 제도한다고 한다. 이백은 자신을 청련이라 자칭했고 또 ‘금속여래가 후신’이라 했으니 이는 장차 우발라화가 피면 전륜성왕이 여의진리(如意真理)를 지니고 세간에 내려온다는 뜻을 담은 것이다.

이외에도 극히 높은 대각자(大覺者)는 층층 우주 중에서 아래로 내려와 인간 세상에 진입한 후 늘 전생(轉生)하며 인류문명과 역사의 새로운 장을 개창하는 중요한 인물이 되곤 한다. 다음과 같은 이백의 시편(詩篇) 속에서 우리는 이백의 전생 일부를 엿볼 수 있다.

《수왕보궐익혜장묘송승체송별(酬王補闕翼惠莊廟宋丞泚贈別)–보궐 왕익과 혜장태자묘승 왕체가 헤어지면서 준 시에 답하다》란 시에서 “도를 배운 지 30년에 스스로 희황(羲皇)때 사람이라 말하네. 수레 타던 지난날은 꿈만 같고 구름과 소나무와 길이 친하네.(學道三十年 自言羲皇人 軒蓋宛若夢 雲松長相親)”라고 했다.

또 《희정율양(戲鄭溧陽)–정율양에게 장난삼아》에서는 “시원한 바람 부는 북창아래 스스로 희황인이라 하네 언제나 율리에 가서 평생의 친구를 만나게 될까?(清風北窗小 自謂羲皇人 何時到溧里 一見平生親)”라고 했다.

이백이 시에서 언급한 ‘희황(羲皇)’은 바로 중국 역사상 ‘삼황(三皇)’의 최초로 존경받는 복희(伏羲)를 말한다.

이백은 어려서부터 책을 읽고 글자를 연습했으며 다섯 살 때 이미 초인적이며 천부적인 자질을 드러냈다. 그는 《상안주배장사서(上安州裴長史書)–안주 배 장사님께 드리는 글》에서 “다섯 살 때 육갑을 다 외웠고 열 살 때 제자백가를 두루 섭렵했으며(五歲誦六甲,十歲觀百家)”, “늘 경서를 두루 읽고 창작에 나태하지 않았다(常橫經籍書,制作不倦)”라고 했다. 여기서 육갑(六甲)이란 간지(干支)로 연월일을 계산하는 역학(曆學)을 말한다.

이백이 다섯 살 때 부친이 사마상여(司馬相如 한 무제 때의 유명한 문인)의 《자허부(子虛賦)》를 읽게 했다. 그가 15세 때 지은 《명당부(明堂賦)》는 사마상여와 우열을 다툴 만했다. 그래서 《증장상호(贈張相鎬)–재상 장호께 드림》에서 이백은 “15세 때 기이한 책들을 읽었고 부(賦)를 지으면 사마상여를 능가했다(十五觀奇書,作賦淩相如)”고 했다.

이백의 부친은 일찍이 그를 미주(眉州) 상이산(象耳山)으로 보내 책을 읽게 했다. 이백은 처음에 책을 읽어도 전념하지 않았고 또 싫증을 내어 도망칠 때도 있었다. 송나라 때 축목(祝穆)이 편찬한 명승고적과 각 지방의 연혁을 소개한 《방여승람(方輿勝覽)‧미주(眉州)‧마침계(磨針溪)》에 따르면 이태백이 상이산에서 공부할 때 일화가 기록되어 있다. 이백이 아직 공부를 마치지 않았는데 중간에 놀러간 적이 있었다. 작은 계곡을 지나는데 한 노파가 계곡 옆 바위 위에서 철공이를 가는 것을 보았다. 이백이 이상하게 여겨 이유를 묻자 노파는 “갈아서 자수바늘을 만든다(磨成繡花針)”고 대답했다. 이백이 “철공이를 갈아서 자수바늘을 만드는 게 정말 가능한가요?”라고 묻자 노파는 “오직 깊이 공력을 들인다면 가능하다.”고 했다.

이백은 이 말을 듣고 큰 감동을 받아 다시 산위로 올라가 열심히 공부했고 학업에 큰 진전을 이뤘다. 노파가 자신의 성을 무(武)씨라고 했기 때문에 지금도 시냇가 옆에 무씨암(武氏岩)이 남아 있다. 후세에 이 이야기에서 ‘철봉마성침(鐵棒磨成針 철봉을 갈아서 바늘을 만든다)’는 고사성어가 생겼다.

당나라 현종 개원(開元) 6년(718년) 이백은 상이산을 떠나 대광산(大匡山)에 은거해 책을 읽었고 또 조유(趙蕤)를 따르며 종횡술(縱橫術)을 배웠다. 이 몇년 동안 그는 인근의 여러 군(郡)을 다니며 검각(劍閣), 재주(梓州) 등을 유람하기도 했다. 20세 때 조정에서 예부상서를 지낸 소정(蘇頲)이 익주장사(益州長史)로 부임하자 성도(成都)로 찾아가 그를 알현했다. 당시 당나라 문단에서는 허국공(許國公) 소정과 병부상서를 지낸 연국공(燕國公) 장열(張說)을 최고로 쳤는데 두 사람을 합해 연허대수필(燕許大手筆)이라 했다. 때문에 이백이 자신의 시와 문장을 들고 찾아가 가르침을 청한 것이다. 소정이 그의 글을 읽은 후 “이 젊은이는 천부적인 재질이 있어 한번 붓을 들면 그치지 않고 완성하니 비록 문장의 풍력(風力 풍골이라고도 하는데 힘찬 기운)은 아직 완성되진 않았지만 웅대한 기백이 보인다. 만약 널리 배우기만 한다면 사마상여와 어깨를 나란히 할 것이다.”(《상안주배장사서(上安州裴長史書)》)라고 평가했다.

《천보유사(天寶遺事)》에서는 이태백이 어릴 때 꿈에 붓끝에서 꽃이 피어나는 것을 본 후 다음날부터 재능이 만개해 천하에 이름을 얻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 이야기가 후세에 흔히 쓰는 ‘묘필생화(妙筆生花)’란 고사성어의 출처다.

개원 13년(725년) 25세의 이백은 촉중(蜀中)을 유람한 후 검을 메고 장거리 유람에 나서기 시작했다. 강릉(江陵)에서 원구생(丹丘生)을 만났는데 그는 천태산 도사로 천하에 이름을 날리던 사마승정(司馬承禎)과 안면이 있었다. 사마승정은 자가 자미(子微), 호는 백운자(白雲子)로 당나라 때의 유명한 도사다. 그는 일찍이 측천무후, 예종, 현종 3대에 걸쳐 여러 차례 황제의 부름을 받은 적이 있었고 현종을 알현한 적도 있었다. 사마승정은 단순히 유명한 도사로 도술에 조예가 깊었을 뿐만 아니라 전서(篆書)를 잘 썼고 시(詩)에도 조예가 있어 신선처럼 유유자적했다. 현종은 그를 몹시 존경했으며 일찍이 대궐로 초빙해 도법(道法)에 관한 가르침을 청한 적도 있다. 또 그를 위해 양태관(陽台觀)이란 도관을 지어주기도 했으며 현종의 누이 옥진공주(玉真公主)는 그를 사부로 모셨다.

이백을 만나본 후 사마승정은 그의 뛰어난 외모와 비범하고 천부적인 재능에 대해 경탄을 금치 못하며 “선풍도골(仙風道骨)을 지녀 팔극의 밖에서 함께 정신적으로 사귈만하다(有仙風道骨,可與神遊八極之表)”고 평가했다. 이는 사마승정이 수십 년간 조정과 재야에서 그와 같은 인재를 만나본 적이 없다는 의미였다. 때문에 그는 도가에서 할 수 있는 가장 뛰어난 말로 이백을 찬미한 것이다. 또 이백에서 ‘선근(仙根 신선이 될 수 있는 선천적인 요소)’가 있다고 했으니 이는 나중에 하지장(賀知章)이 이백을 ‘귀양 온 신선(謫仙人)’이라고 찬미한 것과 비슷하다. 두 사람 다 이백을 비범한 인물로 보았다.

사마승정을 만난 후 이백은 《대붕우희유조부(大鵬遇希有鳥賦)–대붕이 희유조를 만난 부》를 지었다. 이는 이백이 최초로 천하에 이름을 날린 문장이다. 흔히 《대붕부(大鵬賦)》라 한다.

《대붕이 희유조를 만난 부 및 서문(大鵬遇希有鳥賦及序)》

내가 예전에 강릉에서 천태산 도사 사마승정(司馬承禎)을 만났는데, 나에게 선풍도골이 있어 팔극의 밖에서 함께 정신적으로 사귈만하다 했다. 그래서 나는 《대붕이 희유조를 만나다(大鵬遇希有鳥賦)》를 지어 스스로 위안을 삼았다. 이 부(賦)가 이미 세상에 전해진 후 세상에서 종종 볼 수 있었다. 젊을 때 작품이라 웅대한 뜻을 다 드러내지 못함을 후회하다가 중년에 이를 폐기했다. 《진서(晉書)》를 읽다가 완수(阮脩)가 지은 《대붕찬(大鵬讚)》을 보는데 내 어리석은 마음에도 비루해보였다. 마침내 기억을 되살려 지으니 옛것과 많이 달라졌다. 지금 손으로 적어 만든 문집에 다시 수록하니 어찌 감히 여러 작자들에게 전하려는 것이겠는가? 그저 자제들에게 보이고자 할 따름이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남화의 노신선(장자를 말함)이 칠원(漆园)에서 하늘의 영감을 발휘해, 산처럼 드높은 담론을 토해내고 호탕하고 기이한 말을 펼쳤다. 《제해(齊諧)》로부터 괴이한 일을 인용하여, 북쪽 바다에 물고기가 있다고 말했다. 나는 그 크기가 몇 천리나 되는지 알지 못하는데 이름을 곤(鯤)이라 했다. 대붕(大鵬)으로 변할 때 바탕이 형성되었으나 배아는 아직 혼돈 상태더니, 바닷가 섬에서 등지느러미를 벗고 천문(天門)에서 날개를 펼쳤다. 발해의 봄물에서 깃털을 씻고, 부상(扶桑) 나무 위에서 떠오르는 태양에 몸을 말렸다. 우주에서 빛을 내며 곤륜산을 넘어가는데, 한 번 치고 한 번 춤추면 안개로 흐릿하고 모래로 어두워진다. 오악이 이 때문에 흔들리다 무너지고 모든 강물이 이 때문에 치솟는다.

其辭曰:南華老仙,發天機於漆園,吐崢嶸之高論,開浩蕩之奇言. 徵至怪於齊諧,談北溟之有魚. 吾不知其幾千里,其名曰鯤. 化成大鵬,質凝胚渾. 脫鬐鬣於海島,張羽毛於天門. 刷渤澥之春流,晞扶桑之朝暾. 燀赫乎宇宙,憑陵乎昆侖. 一鼓一舞,煙朦沙昏. 五嶽爲之震蕩,百川爲之崩奔.

이에 두터운 대지를 차고 올라, 태청(太淸)을 짊어지고, 층층의 하늘을 가로 질러, 겹겹의 바다와 부딪쳤다. 날개로 삼천리의 바다를 쳐서 일어나고, 구만 리 하늘을 향해 빠르게 날아갔다. 등은 솟아오름은 저 높은 태산과 같고, 날개를 들면 긴 구름이 종횡으로 펼쳐진 듯했다. 왼쪽으로 선회하고 오른쪽으로 꺾어 날아가니, 홀연 어두워졌다가 다시 밝아졌다. 광대무변[汗漫]한 허공을 휘돌아 오르니 드높은 창합(閶闔 하늘의 문)에 이르렀다. 태고의 혼돈의 기운을 휘젓고 우레와 천둥을 부채질하니, 별들이 돌아가고 하늘이 뒤뚱거리고, 산이 흔들리고 바다가 기울었다. 떨쳐 일어나면 마주할 상대가 없고, 웅대한 기력을 뻗치면 맞서 다툴 상대가 없었다. 본디 그 기세를 상상할 수 있을 뿐이고, 또한 그 형태를 어렴풋이 형용할 수 있을 뿐이다.

爾乃蹶厚地,揭太清. 亙層霄,突重溟. 激三千以崛起,向九萬而迅征. 背嶪太山之崔嵬,翼舉長雲之縱橫. 左回右旋,倏陰忽明. 曆汗漫以夭矯,羾閶闔之崢嶸. 簸鴻蒙,扇雷霆. 斗轉而天動,山搖而海傾. 怒無所搏,雄無所爭. 固可想像其勢,髣拂其形.

발에는 무지개가 감기고, 눈은 해와 달처럼 빛나는데, 훨훨 유연히 비행하다가 경쾌하고 빠르게 날아갔다. 입김을 내뿜으니 천지 사방에 구름과 안개가 일어나고, 깃털을 터니 천 리 땅에 눈발이 날렸다. 아득한 저 북방의 황막한 지역을 날고, 장차 남방의 끝까지 가려고 하였다. 빼어난 날개를 휘저어 양편을 치고, 폭풍을 일으키며 멀리 내달았다. 촉룡(燭龍)이 불을 물어 만물을 비추고, 번개가 하늘을 갈라 채찍을 휘두르며 길을 열었다. 삼산(三山 3곳의 신산)을 한 덩이 흙으로 여기고 오호(五湖)를 한 잔의 물로 여겼다. 그 움직임은 또 신(神)과 응하고, 그 운행은 또 도(道)를 구비했다. 이를 본 임공자(任公子 역주: 소를 미끼로 동해에서 거대한 고기를 낚은 인물)는 낚시를 그만 두고, 유궁국의 후예(后羿)는 활을 당기지 못하였다. 낚싯대를 내던지고 화살을 떨어뜨리지 않은 자가 없으니 그저 대붕을 올려다보며 길게 탄식하였다.

若乃足縈虹蜺,目耀日月,軒遝拖,揮霍翕忽. 噴氣則六合生雲,灑毛則千里飛雪. 邈彼北荒,將窮南圖. 運逸翰以傍擊,鼓奔飆而長驅. 燭龍銜光以照物,列缺施鞭而啟途. 塊視三山,杯觀五湖. 其動也神應,其行也道俱. 任公見之而罷釣,有窮不敢以彎弧. 莫不投竿失鏃,仰之長籲.

그 웅대하고 장관의 모습이 드넓은 은하수에 있는데, 위로는 푸른 하늘을 스쳐 지나고 아래로는 넓은 대지를 뒤덮었다. 반고(盤古)가 하늘을 열다가 바라보고, 희화(羲和)가 해에 기대어 감탄하였다. 팔방의 끝과 끝을 사이를 훨훨 날아가니 사해(四海)의 절반이 가리어졌다. 가슴으로 대낮을 가리자 마치 태초의 혼돈이 아직 갈라지지 않은 듯했다. 문득 치솟아 뒤집은 후 몸을 비틀면 노을도 사라지고 안개도 걷혔다.

爾其雄姿壯觀,坱軋河漢. 上摩蒼蒼,下覆漫漫. 盤古開天而直視,羲和倚日以旁歎. 繽紛乎八荒之間,掩映乎四海之半. 當胸臆之掩畫,若混茫之未判. 忽騰覆以回轉,則霞廓而霧散.

그런 다음에 여섯 달에 숨을 한 번 마시고 내뱉으며 바닷가에 이르렀다. 갑자기 해를 가리고 가로질러 날더니, 높은 하늘을 등지고 아래로 내려갔다. 광대무변한 들에서 쉬다가 광활한 못 속으로 들어갔다. 맹렬한 기세로 쏘는 곳과 남은 바람이 부는 곳에는 넓은 바다가 거세게 솟구치고, 바위산이 어지러이 흔들렸다. 천오(天吳 바다의 신)가 이 때문에 벌벌 떨고 해약(海若 바다의 신)이 이 때문에 꿈틀거렸다. 거대한 자라도 산을 머리에 인 채 거꾸로 달아나고, 큰 고래도 바닷속으로 뛰어들어 해저로 숨어들었다. 자라는 껍질 속으로 움츠리고 고래는 지느러미가 부러졌으니, 누구 하나 감히 직시하지 못했다. 나 또한 신령스럽고 괴이함이 이와 같은 줄 생각지도 못했으니 이는 아마도 조물주가 만들었기 때문이리라.

然後六月一息,至於海湄. 欻翳景以橫翥,逆高天而下垂. 憩乎泱漭之野,入乎汪湟之池. 猛勢所射,餘風所吹. 溟漲沸渭,巖巒紛披. 天吳爲之怵栗,海若爲之躨跜. 巨鼇冠山而卻走,長鯨騰海而下馳. 縮殼挫鬣,莫之敢窺. 吾亦不測其神怪之若此,蓋乃造化之所爲.

어찌 저 봉래산의 황곡(黃鵠)이 금빛 옷과 국화 치마를 자랑하는 것과 비교할 수 있으랴? 채색 비단 같은 체질과 수놓인 비단 같은 깃털을 뽐내는 창오산의 검은 봉황(玄鳳)마저 부끄럽게 하더라. 저들은 신선에게 부림을 당하고 오랫동안 세속에 길들여졌으니, 정위(精衛 신화속의 새)는 바다를 메우기 위해 나뭇가지를 물어 옮기느라 힘들었고, 원거(鶢鶋 봉황과 비슷한 새)는 종묘에서 술을 받았기에 슬퍼했으며, 천계(天鷄 천계의 닭)는 복숭아나무 위에서 새벽을 알리고, 삼족오(三足烏)는 태양 속에서 빛을 발했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자유롭게 마음껏 다니지도 못하니, 어찌하여 구속되어 정해진 규칙만 지키고 있는가? 정위와 원거, 천계와 삼족오 같은 무리들은 소요하는 대붕만 못하니, 대붕과 나란히 짝할 자가 없었다. 대붕은 자신을 위대하다고 자랑하지도 않고 용맹을 드러내지도 않으면서 매번 때에 순응해 모습을 나타내고 감추었다. 현근(玄根 가장 근원적인 도)이 생길 때부터 존재해 왔으며, 원기(元氣 우주 근원의 기)를 마시며 배를 채웠다. 해가 떠오르는 양곡(暘谷)에서 놀며 배회하고, 남해에 있는 염주(炎洲)에 기대 오르락내리락한다.

豈比夫蓬萊之黃鵠,誇金衣與菊裳? 恥蒼梧之玄鳳,耀彩質與錦章. 既服禦於靈仙,久馴擾於池隍. 精衛殷勤於銜木,鶢鶋悲愁乎薦觴. 天雞警曉於蟠桃,踆烏晰耀於太陽.不曠蕩而縱適,何拘攣而守常?未若茲鵬之逍遙,無厥類乎比方. 不矜大而暴猛,每順時而行藏. 參玄根以比壽,飲元氣以充腸. 戲暘谷而徘徊,馮炎洲而抑揚.

얼마 후 희유조가 이를 보고는 말하였다. “위대하구나, 대붕이여! 이것이 바로 즐거움이로구나! 나는 오른쪽 날개로 서쪽 끝을 덮고 왼쪽 날개로 동쪽의 황막한 변방을 덮는다. 대지의 줄기를 가로질러 함께 밟고 하늘의 축을 두루 돌아다니며, 황홀(恍惚)을 둥지로 삼고 허무(虛無)를 마당으로 삼는다네. 내 너를 불러 노닐 테니 너는 나와 함께 날아보자.” 이에 대붕이 허락하니 서로 기쁘게 따랐다. 이들 두 마리 새가 광활한 천공을 뛰어오르니 울타리에 앉아있던 메추라기 무리들이 공연히 이를 보고 비웃었다.

원문위치: http://www.zhengjian.org/node/1543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