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찬란한 5천년 신전문화의 천고영웅인물 연구팀
제3장 유불도법을 흉금에 두니 선가황원이 따르네
유불도법을 흉금에 두다
신선・불(佛)・도(道)에 대한 신앙은 이백의 일생 중에 몹시 중요한 지위를 차지한다. 현존하는 9백여 편의 이백 시 중에서 1백여 수가 신선・불・도와 관련이 있다. 이백의 호는 청년거사(青蓮居士)로 자신이 쓴 시 《답호주가섭사마문백시하인(答湖州迦葉司馬問白是何人)–호주 사마 가섭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묻는 질문에 답하다》에서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답호주가섭사마문백시하인(答湖州迦葉司馬問白是何人)–호주 사마 가섭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묻는 질문에 답하다》
청련거사는 하늘에서 귀양 온 신선으로 술에 빠져 이름 감춘 세월 30년인데 호주 사마는 어찌하여 묻는 게요 금속여래가 바로 나의 후신이라오.青蓮居士謫仙人(청년거사적선인)酒肆藏名三十春(주사장명삼십춘)湖州司馬何須問(호주사마하수문)金粟如來是後身(금소여래시후신)
이는 자신의 내력을 드러낼 뿐만 아니라 불가와의 연원을 가장 잘 보여주는 증거이다. “술에 빠려 이름 감춘 세월 30년”이란 구절에서 감춘다는 글자는 이백이 왜 술을 마시고 시를 지으며 술에 취한 가운데 무수한 천기(天機)를 드러냈으며 천고에 유전되는 수많은 명구들이 나오게 된 이유를 말해준다. 이백은 사실 진짜 술에 취한 게 아니라 취함에 ‘숨어(藏)’ 세인들을 일깨우면서도 속인사회의 ‘미혹(迷)’을 타파하지 않은 것이다.
불가와의 인연을 투철히 깨닫다
《증승애공(贈僧崖公)–도애(道崖) 스님에게 주다》이란 시에서 이백은 자신이 부처 수련을 한 경력에 대해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증승애공(贈僧崖公)–도애(道崖) 스님에게 주다》
전에 낭릉산 동쪽에 있을 때 백미공(白眉空 승려 이름)에게 참선을 배웠네.대지를 거울처럼 분명히 깨달으니 풍륜에 의지해 빙빙 도는 것을 알았네.저 조화력을 붙잡아 내 신통으로 삼아 지녔네.만년에 태산군(泰山君 태산 신령 또는 승려)을 찾아가 해지는 구름 속에서 직접 뵈었네.한밤중 산의 달 아래 누워 옷을 털고 사람 무리 피했네.내게 금선(金仙)의 도[불법(佛法)을 의미]를 주시니 억겁에도 들어보지 못한 것이네.오묘한 기미가 하늘에 빛을 발하니 홀로 밝아 더러운 기운 떨쳐내네.빈 배처럼 매이지 않는 존재가 되어 조화를 관찰하며 강가를 노닐었네.
昔在朗陵東(석재낭릉동) 學禪白眉空(학선백미공)大地了鏡徹(대지료경철) 回旋寄輪風(회선기륜풍)攬彼造化力(남피조화력) 持爲我神通(지위아신통)晚謁泰山君(만알태산군) 親見日沒雲(친견일몰운)中夜臥山月(중야와산월) 拂衣逃人群(불의도인군)授余金仙道(수여금선도) 曠劫未始聞(광겁미시문)冥機發天光(명기발천광) 獨朗謝垢氛(독랑사구분)虛舟不系物(허주불계물) 觀化遊江濆(관화유강분)
이백은 평생 벗들과의 교우를 좋아했고 그와 사귄 벗들 중에는 승려가 많았다. 그중 후세에 이름이 전해진 승려만 30명이 넘는다. 또 이백의 시에서 자신이 유람하거나 묵은 사찰에 대해 쓴 것만도 20여 곳에 달한다. 이백은 일찍이 《증선주영원사중준공(贈宣州靈源寺仲浚公)–선주 영원사의 중준 스님에게 주다》에서 준공 스님과 나눈 담화를 시로 표현했다.
《증선주영원사중준공(贈宣州靈源寺仲浚公)–선주 영원사의 중준 스님에게 주다》
경정산 흰 구름 기운 빼어난 빛 창오산까지 이어졌네.아래로 쌍계의 물에 비치니 마치 하늘이 경호(鏡湖 거울 같은 호수)에 떨어진 것 같구나.이 속에 용과 코끼리 같은 고승이 모여 있으나 유독 준공이 빼어나다고 인정받는구나.풍치는 강동에서 뛰어나고 문장은 천하를 뒤흔들었네.마음보기를 물속의 달과 같이 하니 핵심을 깨달아 밝은 구슬 얻었네.오늘 지둔(支遁 동진의 고승)과 같은 고승을 만났으니 높은 담론 유무(有無)를 벗어나네.
敬亭白雲氣(경정백운기) 秀色連蒼梧(수색연창오)下映雙溪水(하영쌍계수) 如天落鏡湖(여천락경호)此中積龍象(차중적용상) 獨許浚公殊(독허준공수)風韻逸江左(풍운일강좌) 文章動海隅(문장동해우)觀心同水月(관심동수월) 解領得明珠(해령득명주)今日逢支遁(금일봉지둔) 高談出有無(고담출유무)
그는 준공의 ‘문장이 천하를 흔들었다’고 찬양하면서 동진(東晉)의 고승 지도림(支道林 지둔)에 비유했다. 지도림은 문인들과 밀접한 관계를 지녔던 동진의 고승으로 많은 시 작품을 남겨 후세에 전해졌다. 이백이 준공을 지둔에 비유한 것은 두 사람 사이에 단지 고담한 불교이론만 논했을 뿐 아니라 문학에서도 공통의 언어가 있었기 때문이다.
《승가가(僧伽歌)–승가의 노래》
참 스님 법호를 승가(僧伽)라 하는데 이따금 나와 더불어 삼거(三車 성문 연각 보살 3승)를 논했네.주문을 몇 천 번이나 외웠는지 묻자 항하의 모래가 다시 모래가 될 만큼이라 하시네.이 스님 본디 남천축에 살았는데 법을 위해 두타행으로 이 나라에 오셨네.계율은 높은 하늘 가을 달처럼 밝고 마음은 세상 위 푸른 연꽃 빛일세.뜻은 청정하고 풍채에 위엄 있으니닳아질 것도 없고더할 것도 없어라.병 속엔 천 년된 사리골 손에는 만 년 된 등나무 지팡이 있네.내 오래도록 장강과 회수의 나그네임을 탄식하다가 공유(空有) 설법 하시는 참 스님을 어렵사리 만났구나.한 말씀에 바라이(波羅夷 승단에서 쫓겨나는 무거운 죄) 흩어지고다시 예를 드리니 가벼운 죄도 다 없어지네.
真僧法號號僧伽(진승법호호승가) 有時與我論三車(유시여아론삼거)問言誦咒幾千徧(문언송주기천편) 口道恆河沙復沙(구도항하사부사)此僧本住南天竺(차승본주남천축) 爲法頭陀來此國(위법두타래차국)戒得長天秋月明(계득장천추월명) 心如世上青蓮色(심여세상청련색)意清淨(의청정) 貌稜稜(모릉릉)亦不減(역불감) 亦不增(역부증)瓶裏千年舍利骨(병리천년사리골) 手中萬歲胡孫藤(수중만세호손등)嗟予落魄江淮久(차여락백강회구) 罕遇真僧說空有(한우진승설공유)一言散盡波羅夷(일언산진바라이)再禮渾除犯輕垢(재례혼제범경구)
이백은 종종 시가에서 불법의 이치[佛理] 및 이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표현하곤 했다.
《여원단구방성사담현(與元丹丘方城寺談玄)–원단구와 방성사에서 현담하며》
망망한 큰 꿈속에서 오직 나만이 먼저 깨어나바람과 불이 솟아올라 돌다가임시로 모여 모습 이룸 알았네.혼미와 의심을 모조리 없애버리고 깨달음을 얻어 정밀한 요체에 들어갔네.맑은 생각으로 이 몸을 관(觀)하니 적조(寂照 고요하고 깨끗한 상태)에 통해서과거와 미래를 환히 깨우쳐 금선(金仙 부처)의 오묘함 비로소 알았네.운 좋게 선(禪) 수행자를 만나 옥액(玉液 차)을 따르며 서로 부르네.저도 나도 모두 몸을 잊은 듯하니 아마도 구름 산의 격조가 달라서겠지.시원한 바람 허공에 불어와 밝은 달이 담소하는 모습을 보니즐거운 청련궁(青蓮宮 방성사)에서 마음껏 노닐기를 길이 바라노라.
茫茫大夢中(망망대몽중) 惟我獨先覺(유아독선각)騰轉風火來(등전풍화래) 假合作容貌(가합작용모)滅除昏疑盡(멸제혼의진) 領略入精要(영략입정요)澄慮觀此身(징려관차신) 因得通寂照(인득통적조)朗悟前後際(낭오전후제) 始知金仙妙(시지금선묘)幸逢禪居人(행봉선거인) 酌玉坐相召(작옥좌상소)彼我俱若喪(피아구약상) 雲山豈殊調(운산기수조)清風生虛空(청풍생허공) 明月見談笑(명월견담소)怡然青蓮宮(이연청련궁) 永願恣遊眺(영원자유조)
인생은 꿈과 같고 사대(四大 지수화풍)가 임시로 모인 몸은 겨우 찰나의 존재에 불과하다. 오직 마음속의 무명번뇌를 모조리 없애고 고요한 마음으로 관조해야만 윤회와 해탈의 도를 깨달을 수 있다. 또 이를 통해 마음대로 소요하며 즐겁게 스스로 얻는 신불(神佛)의 경계에 도달할 수 있다.
《별산승(別山僧)–산승과 이별하며》
어느 곳의 명승인지 수서(水西 안휘 경현의 산 이름)에 와서배를 타고 달을 희롱하며 경계(涇溪 경현의 강 이름)에 머물었네.날 밝자 나와 헤어져 산으로 올라가는데선장(禪杖)을 손에 짚고 구름사다리 걸어가네.몸을 솟구치니 점점 삼천(三天 욕계 색계 무색계)이 가까워지고발을 들어 돌아보니 수많은 봉우리 아래에 있네.해학은 분명 지둔(支遁 진나라 고승) 아래 있지 않고풍류 또한 원공(遠公 진나라 고승 혜원)과 견줄 만하네.이제 헤어지면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그대 그리는 한밤 내내 원숭이만 울어대네.
何處名僧到水西(하처명승도수서)乘舟弄月宿涇溪(승주농월숙경계)平明別我上山去(평명별아상산거)手攜金策踏雲梯(수휴금책답운제)騰身轉覺三天近(등신전각삼천근)舉足回看萬嶺低(거족회간만령저)謔浪肯居支遁下(학랑긍거지둔하)風流還與遠公齊(풍류환여원공제)此度別離何日見(차도별리하일견)相思一夜暝猿啼(상사일야명원제)
이 시는 산승의 표연한 행적을 묘사하는 가운데 그지없이 맑고 뛰어난 풍모를 보여준다. 배를 타고 물 속의 달을 감상하면서 한밤에 경계에서 노숙하다 날이 밝자 또 선장을 들고 구름 밖 산을 오른다. 대천세계(大千世界)와 천지 사이가 마치 몸을 날리는 것 밖에 있는 듯하며 끝없이 이어진 많은 산들이 우뚝우뚝 솟아 스님의 신발이 감당하지 못할 것 같다. 하지만 스님은 호탕하게 웃으면서 풍류를 즐기는 모습이 마치 동진(東晉)의 저명한 고승 지둔(支遁)이나 혜원(慧遠)대사와 비길 수 있다. 비록 이 시에서 스님의 명호를 기록하진 않았지만 시에 쓴 것만 봐도 득도한 고승임을 짐작할 수 있다.
아래 몇 편의 시 역시 이백이 승려들과 교류하면서 쓴 작품들로 불가(佛家)와 이백의 연원을 보여준다.
《증승행융(贈僧行融)–행융 스님에게 드림》
양(梁)나라에 탕혜휴(湯惠休 스님) 있어늘 포조(鮑照 남조의 유명한 시인) 따라 노닐었고,아미산의 사회일(史懷一 스님)은 유독 진공(陳公 초당 시인 진자앙)을 비춰 드러냈네.탁월하고 걸출한 두 도인(道人) 봉황과 기린처럼 사귀었네.행융(行融) 또한 준수하고 뛰어난데 나는 그의 빼어난 기골 알고 있네.해약(海若 북해의 신)이 구슬을 숨기지 않고,검은 용이 명월주를 토해냈네.큰 바다에서 빈 배에 올라물결 따라 흐르는 대로 편안히 맡기네.단향목 누각에서 시를 짓고 앵무주에서 흠뻑 마셨네.내가 동쪽 월 땅에 가면서로 손잡고 백루정(白樓亭)에 오르세.
梁有湯惠休(양유탕혜휴) 常從鮑照遊(상종포조유)峨眉史懷一(아미사회일) 獨映陳公出(독영진공출)卓絕二道人(탁절이도인) 結交鳳與麟(결교봉여린)行融亦俊發(행융역준발) 吾知有英骨(오지유영골)海若不隱珠(해약불은주) 驪龍吐明月(여룡토명월)大海乘虛舟(대해승허주) 隨波任安流(수파임안류)賦詩旃檀閣(부시전단각) 縱酒鸚鵡洲(종주앵무주)待我適東越(대아적동월) 相攜上白樓(상휴상백루)
《등파릉개원사서각증형악승방외(登巴陵開元寺西閣贈衡嶽僧方外)–파릉 개원사 서쪽 누각에 올라 형산의 방외 스님에게 주다》
형악에 뛰어난 스님 있으니 다섯 봉우리 진골(眞骨)이 빼어나네.그대의 만리심(萬里心 스님의 법력)을 보니 바닷물에 가을 달 빛나는 듯하네.큰 스님 남쪽 바다로 가시니 도를 묻고자 모두 뵙기를 청하네.감로 같은 말씀 뿌려 맑고 시원하게 피부와 모발 적셨네.맑은 호수는 하늘거울 떨어진 듯하고 향각(개원사 서각)은 은궐(銀闕 신선의 궁궐)을 능가하네.높이 올라 바라보며 온화한 바람 들이마시니 새 꽃이 피어나길 기약하노라.
衡嶽有開士(형악유개사) 五峰秀真骨(오봉수진골)見君萬里心(견군만리심) 海水照秋月(해수조추월)大臣南溟去(대신남명거) 問道皆請謁(문도개청알)灑以甘露言(쇄이감로언) 清涼潤肌髮(청량윤기발)明湖落天鏡(명호낙천경) 香閣淩銀闕(향각능은궐)登眺餐惠風(등조찬혜풍) 新花期啟發(신화기계발)
역주: 五峰秀真骨(오봉수진골)은 혜가(慧可) 스님이 향산(香山)으로 돌아와 참선한 지 8년이 되었을 때 신인이 나타나 “장차 과위를 얻고자 하는 왜 이곳에 지체되어 있는가?”라고 했다. 그 다음날 머리가 찌르듯이 아파와 스승이 치료하려 하자 공중에서 “이는 뼈를 바꾸는 것이니 일반적인 통증이 아니다.”라는 말이 들려왔다. 나중에 스승이 정수리 뼈를 살펴보니 다섯 봉우리처럼 튀어나와 있었다. 여기서는 스님이 깨달음을 얻은 모습을 의미한다. 즉 방외 스님이 깨달음을 얻어 법력이 높은 것을 표현 한 것.
《청촉승준탄금(聽蜀僧濬彈琴)–촉승 준이 연주하는 거문고 소리를 듣고》
촉 땅 스님 녹기(綠綺 사마상여의 거문고)를 안고서쪽 아미산에서 내려왔네.날 위해 한번 연주하니만 골짜기의 소나무 소리 듣는 듯.나그네 마음 흐르는 물에 씻기고은은한 울림이 상종(霜鐘 산해경에 나오는 서리를 맞으면 울리는 종)에 들어가네.어느 새 푸른 산엔 날이 저물고가을 구름 겹겹이 어둑해졌네.
蜀僧抱綠綺(촉승포록기) 西下峨眉峰(서하아미봉)爲我一揮手(위아일휘수) 如聽萬壑松(여청만학송)客心洗流水(객심세류수) 餘響入霜鍾(여향입상종)不覺碧山暮(불각벽산모) 秋雲暗幾重(추운암기중)
《영선사방관산해도(塋禪師房觀山海圖)–영스님 방에서 산해도를 보다》
참 스님 정사(精舍)를 닫은 채 종적 감추고 달관(達觀)에 들었네.봉우리 늘어선 그림 속 구름 산 빽빽한 봉우리 하늘로 들어가네.붉은 절벽 눈에 가득하니 맑은 낮에 휘장을 걷은 듯하구나.봉래산이 창문에 다가온 듯 큰 바다가 책상으로 들어온 듯.뿌연 파도 다투듯 출렁대고 섬들은 어지러이 섞여있네.배의 돛 공중에 나부끼고 폭포는 하늘에서 떨어지네.높이 솟은 봉우리 오를 것 같지만 상상일 뿐 그저 감탄만 가득.아득히 참된 마음과 맞으니 마침내 고요한 자(영 스님)의 감상에 적합하구나!마치 적성(赤城 신선이 노니는 곳)을 오르는 듯 옷 걷고 푸른 물가 거니는 듯.이런 일(병풍 감상) 사람을 즐겁게 하니 이를 따라 자유롭고 노닌다네.
真僧閉精宇(진승폐정우) 滅跡含達觀(멸적함달관)列嶂圖雲山(열장도운산) 攢峰入霄漢(찬봉입소한)丹崖森在目(단애삼재목) 清晝疑卷幔(청주의권만)蓬壺來軒窗(봉호래헌창) 瀛海入几案(영해입궤안)煙濤爭噴薄(연도쟁분박) 島嶼相淩亂(도서상능란)征帆飄空中(정범표공중) 瀑水灑天半(폭수쇄천반)崢嶸若可陟(쟁영약가척) 想像徒盈歎(상상도영탄)杳與真心冥(묘여진심명) 遂諧靜者翫(수해정자완)如登赤城裏(엳으적성리) 揭涉滄洲畔(게섭창주반)即事能娛人(즉사능오인) 從茲得蕭散(종자득소산)
이백의 평소 사상 및 시가 중에는 모두 불가(佛家)의 흔적이 남아 있고 불법경전(佛法經典)을 늘 가까이 했다. 그 자신 청련거사(青蓮居士), 금속여래(金粟如來)를 자칭했다. 인간 세상에서 인류가 알수 있는 불가의 각자는 여래(如來)가 가장 높다. 그런데 이백은 금속여래를 자칭했으니 자신이 불가와의 연원이 있음을 설명하는 동시에 또 자신이 내원한 층차를 암시한다. 이는 다음 편에 나오는 도가의 “자황께서 흰 토끼가 찧은 약처방을 내리시니(紫皇乃賜白兔所搗之藥方)”와 마찬가지로 모두 이백의 내원을 드러낸다. 또 나중에 인간세상에서 수련해 도달할 층차가 불도(佛道) 양가의 사람들이 알 수 있는 층차를 훨씬 뛰어넘음을 설명하는데 왜냐하면 자황(紫皇)이란 바로 도가에서 가장 높은 신이기 때문이다.
원문위치: http://www.zhengjian.org/node/1545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