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찬란한 5천년 신전문화의 천고영웅인물 연구팀
적선의 귀진(歸真)
이백은 단지 불가와의 연원이 극히 깊을 뿐만 아니라 또 정식으로 도(道)에 입문해 도사목록에도 이름을 올렸다. 그는 또 연단(煉丹)과 복식(服食)에 대해서도 아주 엄숙하고 진지했다. 그는 산수를 두루 유람하며 신선을 찾고 도(道)를 방문했으며 각고의 수련을 했다. 초연하게 얽매이지 않는 그의 성격과 탈속하고 소탈한 기질은 모두 여기에서 내원한 것이다. 때문에 ‘적선인(謫仙人 귀양 온 신선)’으로 불린 것이다.
서촉(西蜀)은 아주 특별한 땅이다. 이곳은 상대적으로 독립적인 지역인 동시에 도교와 불교의 분위기가 농후해 이곳에서는 대대로 문인(文人)과 묵객(墨客)이 끊이지 않고 나왔다. 당시 이백의 집 근처에 있던 자운산(紫雲山)은 도교의 승지(勝地)였고 청성산(青城山)은 도교 10대 동천(洞天)의 하나다. 청성과 아미의 저명한 도사들은 모두 일찍이 현종 개원(開元) 연간에 조정에서 몹시 중시되었다. 이백은 산림에 은거하며 신선을 찾고 도를 배우길 좋아했다. 그는 다섯 살 때부터 육갑(六甲)을 외웠는데 육갑은 도교 서적이다. “열 살 때 제자백가를 두루 보았고 황제 이후의 일에 대해 자못 식견이 있었다(十歲觀百家,軒轅以來,頗得聞矣).”
이백은 일찍이 《감흥(感興)–흥취를 느끼다》 8수 중 제5수에서 “열다섯 때 신선과 노닐었고 선유를 그만 둔 적이 없었다(十五遊神仙,仙遊未曾歇)”고 했다.
“또 예전에 은자 동암자(東岩子)와 함께 민산(岷山) 남쪽에서 숨어 지낼 때 이백은 나무 위에 집을 짓고 여러 해를 살면서 도시로는 발길 내지 않았습니다. 키우던 기이한 새 천을 헤아렸는데 부르면 모두 손바닥에 올라와 먹이를 먹어도 놀라거나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광한태수가 듣고는 기이하게 여겨 오두막에 와서 친히 보고는 두 사람을 거론하며 도가 있고 대단하다고 했었지요(又昔與逸人東岩子隱於岷山之陽,白巢居數年,不跡城市. 養奇禽千計, 呼皆就掌取食,了無驚猜. 廣漢太守聞而異之,詣廬親睹,因舉二以有道,並不起.)”
(이백이 자술한 《상안주배장사서(上安州裴長史書)–안주 배 장사께 올리는 글》)
개원 13년(725년) 이백의 나이 약 25세 때 촉중(蜀中)을 유람한 후 검을 차고 멀리 운유에 나서기 시작했다. 강릉(江陵)에서 우연히 단구생(丹丘生)이란 좋은 벗을 만났고 그를 통해 또 당시의 저명한 도사 사마승정(司馬承禎)과 알게 되었다. 이백에게는 도우(道友 도반)가 아주 많았는데 예를 들면 원연(元演), 자양(紫陽)선생, 개환(蓋寰), 고존사(高尊師)와 참료자(參寥子) 등이다. 지역을 말하자면 이백이 도를 배운 곳은 민산, 숭산(嵩山) 외에도 또 호북 수주(隨州) 및 산동(山東) 등이다.
‘방도(訪道 도인을 찾아가 가르침을 청하는 것)’란 도가 수련에서 중요한 생활단련의 하나로 이백은 도처로 다니며 심방(尋訪 방문)했다. 그는 일찍이 “뼛속 깊이 새겨 반드시 서로 배우리(銘骨誓相學)”라고 했다. 40대 때 자신이 도를 배운 지 대략 30여 년이 된다고 했으니 부처를 배우고 도를 배우며 신선 방문과 수련이 그와 평생을 같이한 중요한 내용임을 알 수 있다.
원단구는 바로 단구생(丹丘生)인데 평생 이백을 따르던 가장 친밀한 벗이자 도반이었다. 두 사람은 대략 이백이 20대 때 촉중을 유람하다 만난 것으로 보인다. 《제숭산일인원단구산거(題嵩山逸人元丹丘山居)–숭산 은자 원단구의 산속 거처에 쓰다》에서 이백은 단구생과 함께 숭산에서 수도하던 일을 회상하며 동경했다. 시에서 원단구는 숭산에서 수련하고 자신은 원단구와 같은 뜻을 지녔다면서 도교를 애호하는 아내가 함께 도를 배우고 연단하기를 소망했다. 도를 향한 뜻과 표현이 곡진하다.
《제숭산일인원단구산거(題嵩山逸人元丹丘山居)–숭산 은자 원단구의 산속 거처에 쓰다》
우리 집은 본래 자운산(紫雲山 이백의 고향 산)인데 도풍(道風)이 아직 사라지지 않았네.단구(丹丘 도가 수련)에 대한 뜻 깊이 품어 마음 비워 감상하면 적막으로 돌아갔네.오고 가며 민(閩) 땅에서 노닐고 산 넘고 물 건너 우혈(禹穴)까지 갔네.출렁이는 바다를 연이어 떠다니며 우뚝 솟은 여산과 곽산을 올랐네.우레에 기대 하늘 창을 밟고 햇빛과 노닐다 노을누각에서 쉬네.높이 올라 조망하는 아름다움 잠시 즐기니 은일하려는 지향 자못 만족시켰네.삼신산(三神山) 그윽한 기약은 아득한데 사방 높은 산에 아쉬우나마 맡겨보네.친구는 숭산 및 영수와 마음이 맞아 높은 뜻 붉은 단청처럼 밝게 빛나네.종적 지우고 속세의 시끄러움 버려 마침내 봉우리와 골짜기에 기반 정했네.숲 여울 좋다고 스스로 자랑하며 조정과 저자의 즐거움 부러워않네.우연히 참된 뜻과 합하니 세상물정 각박함을 문득 깨닫네.자네는 향기로운 계수나무 자르고 나는 난초와 두약(杜若)을 캐리.내 아내는 난새 타길 좋아하고 귀여운 딸아이는 학을 사랑하니,같이 손잡고 신선을 방문해 이로부터 금약(禁約)을 연마하리라.
家本紫雲山(가본자운산) 道風未淪落(도풍미윤락)沉懷丹丘志(심회단구지) 沖賞歸寂寞(충상귀적막)朅來遊閩荒(걸래유민황) 捫涉窮禹鑿(문섭궁우착)夤緣泛潮海(인연범조해) 偃蹇陟廬霍(언건척려곽)憑雷躡天窗(빙뢰섭천창) 弄景憩霞閣(농경게하각)且欣登眺美(차흔등조미) 頗愜隱淪諾(파협은륜락)三山曠幽期(삼산광유기) 四嶽聊所托(사악료소탁)故人契嵩穎(고인계숭영) 高義炳丹雘(고의병단확)滅跡遺紛囂(멸적유분효) 終言本峰壑(종언본봉학)自矜林湍好(자긍임단호) 不羨市朝樂(불선시조락)偶與真意並(우여진의병) 頓覺世情薄(돈각세정박)爾能折芳桂(이능절방계) 吾亦采蘭若(오역채란약)拙妻好乘鸞(졸처호승란) 嬌女愛飛鶴(교녀애비학)提攜訪神仙(제휴방신선) 從此煉金藥(종차연금약)
이백이 단구와 숭산에 은거해 수도하면서 숭산(崇山), 안륙(安陸) 및 강하(江夏)를 왕래하던 기간에 이백은 단구의 사촌 형 원연(元演)을 알게 되어 곧 막역한 사이가 되었다. 개원 23년(735년) 이들은 함께 수주(隨州)를 찾아가 은거 중이던 저명한 도사 사마숭정의 재전(再傳) 제자 호자양(胡紫陽)을 방문했다. 이들은 도반이 되어 함께 수련하면서 시로 기록을 남겼다.
이백은 《동야어수주자양선생찬하루송연자원연은선성산서(冬夜於隨州紫陽先生餐霞樓送煙子元演隱仙城山序)–겨울밤 수주 자양선생 찬하루에서 연자 원연(元演)을 보내고 선성산에 은거하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하자(霞子) 원단구 및 연자(煙子) 원연과 기운 세차고 도(道)가 맞아 신선의 교제를 맺었다.몸은 달라도 한마음으로 늙어 운해에서 지내자고 한 맹세 빼앗을 수 없네.두루 천하를 다니며 명산 두루 구하다신농씨 고향으로 들어가 호자양의 정묘한 술을 얻었네.”
이 문장에서 이백은 원단구, 원연 등 세 사람이 호자양과 함께 도를 닦았는데 모두의 뜻이 같고 도에 부합했다고 말했다.
이백은 또 일찍이 단구선생에게 주는 《원단구가(元丹丘歌)–원단구의 노래》를 지었다.
원단구는 신선을 사랑하여아침엔 영천의 맑은 물 마시고저녁엔 숭산 자줏빛 안개 속으로 돌아오네.서른여섯 봉우리를 돌고 돌면서돌고 또 돌아 별과 무지개까지 가나니몸은 비룡(飛龍)을 타고 귀에는 바람 이누나.황하를 가로질러 바다 건너 하늘과 통하니나는 안다네, 그대 노니는 마음 무궁함을.
元丹丘(원단구) 愛神仙(애신선)朝飲穎川之清流(조음영천지청류)暮還嵩岑之紫煙(모환숭잠지자연)三十六峰長周旋(삼십육봉장주선)長周旋(장주선) 躡星虹(섭성홍)身騎飛龍耳生風(신기비룡이생풍)橫河跨海與天通(횡하과해여천통)我知爾遊心無窮(아지이유심무궁)
《증숭산초련사병서(贈嵩山焦煉師並序)-숭산의 초 연사에게 주다 및 서문》
숭산에 초련사(焦煉師 초씨 성을 가진 도인)란 도사가 있는데 어디서 온 부인인지 알 수 없다. 또 남조 제(齊)⋅양(梁) 시기에 태어났다고 하는데 나이와 외모는 오륙십 세쯤 되어 보인다. 늘 태식(胎息)을 하고 곡식도 끊었다. 소실산 움막에 사는데 다닐 때는 날아가듯 순식간에 만 리를 간다. 세간에 그녀가 동해로 들어가 봉래산에 올랐다고 하는데 끝내 간 곳을 모른다. 내가 소실산에서 도를 구하고자 서른여섯 봉우리를 모두 올랐지만 그녀의 소문만 듣고 부치려는 뜻이 있어 붓을 들어 시를 짓고는 멀리 드린다.
태실산 소실산이 푸른 하늘에 솟아있고 삼화(三花)는 자줏빛 안개 머금었네. 그곳에 봉래의 도인 있어 마고(麻姑) 신선을 닮았다 하네. 속세의 시끄러움에 더럽혀지지 않은 도(道)를 지녀 행적은 드높고 생각은 이미 아득하네. 때때로 계수나무 꽃술을 먹고 자주 도가 경전을 읽다가 우주 끝까지 마음껏 노닐다 쉬고 구해(九垓 하늘)를 오래도록 돌아다녔네. 표주박을 버리고 영수 물을 뜨고 춤추는 학을 타고 이수에 이르네. 빈산 위로 다시 돌아와 가을노을 덮고 홀로 잔다네. 등나무 사이의 달은 아침거울을 걸어놓은 듯 밤이면 솔바람에 거문고 소리 울리네. 빛을 감추고 숭산에 숨어백(魄)을 연마하며 구름휘장 속에 머무는데, 무지개 치마는 하늘거리며 봉황울음 같은 생황소리 아득히 퍼지네. 바라건대 서왕모처럼 동방삭을 굽어보시어, 혹시라도 자서(紫書 도가 경전)를 전하신다면 뼈에 새겨 배울 것을 맹세하리라.
二室淩青天(이실능청천) 三花含紫煙(삼화함자연)中有蓬海客(중유봉래객) 宛疑麻姑仙(완의마고선)道在喧莫染(도재훤막염) 跡高想已綿(적고상이면)時餐金鵝蕊(시찬금아예) 屢讀青苔篇(누독청태편)八極恣遊憩(팔극자유게) 九垓長周旋(구해장주선)下瓢酌穎水(하표작영수) 舞鶴來伊川(무학래이천)還歸空山上(환귀공산상) 獨拂秋霞眠(독불추하면)蘿月掛朝鏡(나월괘조경) 松風鳴夜弦(송풍명야현)潛光隱嵩嶽(잠광은숭악) 煉魄棲雲幄(연백서운악)霓裳何飄搖(예상하표요) 鳳吹轉綿邈(봉취전면막)願同西王母(원동서왕모) 下顧東方朔(하고동방삭)紫書儻可傳(자서당가전) 銘骨誓相學(명골서상학)
당 현종 천보(天寶) 원년(742년) 이백이 태산에 올라 《유태산(遊泰山)–태산을 노닐다 6수》를 지었다.
《유태산(遊泰山)–태산을 노닐다 6수》
[어떤 판본에는 제목이 ‘천보원년 4월 옛 어도를 따라 태산에 오르다’(天寶元年四月從故禦道上泰山)로 되어 있다.]
제1수
사월에 태산을 오르노라니 평평한 돌길에 어도(御道 임금이 다니는 길)가 열려 있네.육룡(六龍 황제수레)이 만 개 골짜기를 지날 때 계곡도 이를 따라 휘돌았네.말발굽 흔적 푸른 봉우리를 휘감았지만 지금은 푸른 이끼만 가득하구나.깎아지른 산봉우리에 폭포가 날리니 물살이 급해 소나무 소리 애달픈데,북쪽을 바라보니 기묘한 봉우리들 기울어진 절벽은 동으로 치우쳐있네.동굴입구는 부채바위로 막혀 있고 땅 아래에는 구름과 우레 일어나네.높이 올라 봉래와 영주를 바라보며 금은대(金銀臺 신선의 누대)를 상상해본다.남천문에서 긴 휘파람 부니 만 리에 맑은 바람 불어오네.선녀 네댓 명이 높은 하늘에서 훨훨 내려와미소를 머금고 흰 손 내밀어 내게 유하(流霞 신선의 음료)잔을 건네주었네.머리 조아리고 두 번 절하고 받았지만 선재(仙才 신선 재목)가 아님에 절로 부끄럽구나.내 마음 넓어지니 우주도 작아지고 세상을 버리니 얼마나 한가로운가?
四月上泰山(사월상태산) 石平禦道開(석병어도개)六龍過萬壑(육룡과만학) 澗谷隨縈回(간곡수영회)馬跡繞碧峰(마적요벽봉) 於今滿青苔(어금만청태)飛流灑絕巘(비류쇄절헌) 水急松聲哀(수급송성애)北眺崿嶂奇(북조악장기) 傾崖向東摧(경애향동최)洞門閉石扇(동문폐석선) 地底興雲雷(지저흥운뢰)登高望蓬瀛(등고망봉영) 想像金銀臺(상상금은대)天門一長嘯(천문일장소) 萬里清風來(만리청풍래)玉女四五人(옥녀사오인) 飄颻下九垓(표요하구해)含笑引素手(함소인소수) 遺我流霞杯(유아류하배)稽首再拜之(계수재배지) 自愧非仙才(자기비선재)曠然小宇宙(광연소우주) 棄世何悠哉(기세하유재)
제2수
맑은 새벽 흰 사슴을 타고 천문산(天門山 하늘 문이 열리는 산)에 곧장 올랐네.산 속에서 신선을 만나니 네모난 눈동자에 용모가 수려하네.여라를 붙들고 다가가 말하려는데 되레 청운의 문을 닫아걸고는새 발자국 같은 글을 주고는 표연히 바위 사이로 사라졌다네.상고시기 글자다보니 읽어도 도통 알 수가 없어이에 탄식하나니 스승을 따라가서 끝내 돌아오지 않으리라.
清曉騎白鹿(청효기백록) 直上天門山(직상천문산)山際逢羽人(산제봉우인) 方瞳好容顏(방동호용안)捫蘿欲就語(문라욕취어) 卻掩青雲關(각엄청운관)遺我鳥跡書(유아조적서) 飄然落岩間(표연낙암간)其字乃上古(기자내상고) 讀之了不閑(독지료불한)感此三歎息(감차삼탄식) 從師方未還(종사방미환)
제3수
동 틀 무렵 일관봉에 올라 손 들어 구름관문 젖히니,정신이 사방으로 날아올라 마치 천지간을 벗어난 듯하네.황하는 서쪽에서 와서아득히 먼 산으로 들어가는데,절벽에 기대 팔극(八極 천하)을 둘러보니 눈길 다한 곳에 광활한 너른 하늘.우연히 선동을 만나니 검푸른 머리카락 쌍으로 구름같이 올렸는네신선 배움 늦었다고 나를 비웃으며 공연히 시간만 허비해 붉던 얼굴 시들었다 하네.머뭇거리는 새 홀연 뵈지 않으니 넓고 아득해 좇아가기 어렵구나.
平明登日觀(평명등일관) 舉手開雲關(거수개운관)精神四飛揚(정신사비양) 如出天地間(여출천지간)黃河從西來(황하종서래) 窈窕入遠山(요조입원산)憑崖覽八極(빙애람팔극) 目盡長空閑(목진장공한)偶然值青童(우연치청동) 綠髮雙雲鬟(녹발쌍운환)笑我晚學仙(소아만학선) 蹉跎凋朱顏(차타조주안)躊躇忽不見(주저홀불견) 浩蕩難追攀(호탕난추반)
제4수
삼천 일을 깨끗이 재계하고 흰 비단에 도경(道經)을 썼네.읊조리다보면 얻음이 있으니 뭇신들 내 몸을 보위하시네.긴 바람에 맡겨 구름을 타고 날개 돋친 듯 날아가네.벼랑을 붙잡고 일관봉에 올라 난간에 엎드려 동쪽 바다를 바라보니,바다 빛이 먼 산에 일렁이는데 하늘 닭은 이미 먼저 울었네.은대(銀臺 서왕모가 산다는 신선의 누대) 그림자 물에 비쳐 드러나고 흰 파도에 큰 고래 헤엄치는데어떻게 하면 불사약을 얻어 봉래와 영주 향해 높이 날아갈 수 있을까?
清齋三千日(청재삼천일) 裂素寫道經(열소사도경)吟誦有所得(음송유소득) 眾神衛我形(중신위아형)雲行信長風(운행신장풍) 颯若羽翼生(삽약우익생)攀崖上日觀(반애상일관) 伏檻窺東溟(복함규동명)海色動遠山(해색동원산) 天雞已先鳴(천계이선명)銀臺出倒景(은대출도경) 白浪翻長鯨(백랑번장경)安得不死藥(안득불사약) 高飛向蓬瀛(고비향봉영)
제5수
일관봉은 북동으로 기울어져 양쪽 벼랑으로 두 암석 끼고 있는데,바닷물이 눈앞에 떨어지니 저 멀리 하늘빛이 푸르구나.천개 봉우리 다투어 모이고 만개 골짜기는 웅장하기 그지없는데,학을 탄 저 신선을 생각하니 떠나버려 구름 속 종적도 없네.은하수에 닿을 만큼 큰 소나무도 멀리서 바라보니 한 자도 되지 않고,산꽃은 속세의 것과 달라 한여름 오월에도 눈 속에 희구나.끝내 안기생을 만나 이곳에서 옥액을 단련하리라!
日觀東北傾(일관동북경) 兩崖夾雙石(양안협쌍석)海水落眼前(해수낙안전) 天光遙空碧(천광용공벽)千峰爭攢聚(천봉쟁찬취) 萬壑絕淩歷(만학절릉력)緬彼鶴上仙(면피학상선) 去無雲中跡(거무운중적)長松入雲漢(장송입운한) 遠望不盈尺(원망불영척)山花異人間(산화이인간) 五月雪中白(오월설중백)終當遇安期(종당우안기) 於此煉玉液(어차련옥액)
제6수
아침엔 요지의 물을 마시고 어둑하면 천문관에 머무는데,홀로 녹기금(綠綺琴 사마상여의 금) 안고 밤에는 청산 사이를 지나가네.산은 밝고 달빛에 이슬은 흰데 밤이 조용하니 솔바람도 쉬는구나!신선이 푸른 봉에서 노닐다가 곳곳에서 생(笙)을 불고 노래하면서,정적 속에 맑은 달빛 즐기는데 산중턱엔 도관이 이어져있네.난새와 봉황이 춤을 추고 신선의 옷 나부낌을 상상하면서하늘을 만져 포과별을 따니 황홀하여 돌아갈 생각 잊어버렸네!손을 들어 은하수를 희롱하다가 실수로 직녀의 베틀을 잡았는데,내일 새벽이면 다 사라지고오색구름 나는 것만 보이겠지.
朝飲王母池(조음왕모지) 暝投天門關(명투천문관)獨抱綠綺琴(독포녹기금) 夜行青山間(야행청산간)山明月露白(산명월로백) 夜靜松風歇(야정송풍헐)仙人遊碧峰(선인유벽봉) 處處笙歌發(처처생가발)寂靜娛清暉(적정오청휘) 玉真連翠微(옥진련취미)想像鸞鳳舞(상상난봉무) 飄颻龍虎衣(표요용호의)捫天摘匏瓜(문천적포과) 恍惚不憶歸(황홀불억귀)舉手弄清淺(거수농청천) 誤攀織女機(오반직녀기)明晨坐相失(명신좌상실) 但見五雲飛(단견오운비)
《태산을 노닐다 제1수》에서 “선녀 네댓 명이 높은 하늘에서 훨훨 내려와 미소를 머금고 흰 손 내밀어 내게 유하(流霞 신선의 음료)잔을 건네주었네(玉女四五人,飄搖下九垓. 含笑引素手,遺我流霞杯.)”는 하늘의 신선이 속세로 내려와 잔을 건네며 이백의 근기가 좋고 선연(仙緣)이 있어 제때 수련할 수 있음을 암시한다. 하지만 시인은 도리어 “머리 조아리고 두 번 절하고 받았지만 선재(仙才)가 아님에 절로 부끄럽구나.”라고 말한다.
《태산을 노닐다 제2수》에서는 뭇 신선들이 의연히 포기하지 않고 이백을 쫓아가 천서(天書)를 주며 천기를 보여준다. “산 속에서 신선을 만나니 네모난 눈동자에 용모가 수려하네. 여라를 붙들고 다가가 말하려는데 되레 청운의 문을 닫아걸고는 새 발자국 같은 글을 주고는 표연히 바위 사이로 사라졌다네.” 하지만 또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성취할 수 없음을 암시하면서 뭇신들이 또 온갖 방법을 강구해 이백을 수련으로 초대한다.
《태산을 노닐다 제3수》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백이 높은 곳에 올라 일출을 본 것을 묘사한다. 가는 곳마다 마치 손을 들면 구름관문을 열 것만 같은데 단번에 정신이 비양되어 마치 신체가 천지 사이에 우뚝 선 것 같다. 갑자기 또 검푸른 머리를 쌍으로 말아 올린 도동(道童)이 나타나더니 웃으면서 그에게 “신선 배움 늦었다고 나를 비웃으며 공연히 시간만 허비해 붉던 얼굴 시들었다 하네.” 이백이 막 머뭇거릴 때 도동이 홀연히 아무런 자취도 없이 사라지더니 넓고 아득한 천지 사이에서 좇을 수도 없었다.
이상 7편의 시는 선계(仙界)에 대한 시인의 동경과 수련에 대한 엄숙성과 경건한 태도 및 확고하게 수련하려는 마음을 남김없이 보여준다. 또 수많은 세상 밖 고인(高人)들이 줄곧 이백을 따르고 주시하고 있고 아울러 수시로 분명히 알려주거나 또는 암시를 통해 그더러 빨리 수련하게 했음을 보여준다.
이백은 천보 3년(744년) 장안을 떠나 산동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의 수도(修道)는 이 이후가 더 중요하다. 그는 북해(北海 지금의 산동성 청주) 고존사(高尊師)의 도제 개환(蓋寰)과 사귀었고 개환은 그에게 ‘진록(真籙)’을 만들어준다. 이것은 도교 수련인에게 있어 무시할 수 없는 큰일이었다. 나중에 이백은 또 고존사로부터 직접 ‘도록(道籙 일종의 도사 자격증)’을 받고 제주(齊州 지금의 산동성 제남)의 도교사찰 자극궁(紫極宮)에서 정식으로 도사가 되었다.
고존사는 이백에서 도록을 전달한 후 곧 북해로 돌아갔다. 이백은 그에게 감사드리기 위해 특별히 《봉전고존사여귀도사전도록필귀북해(奉餞高尊師如貴道士傳道籙畢歸北海)–도록 전달을 마치고 북해로 돌아가는 고여귀 존사를 받들어 보내며》라는 시를 적어 보낸다. 《동현영보삼동봉도과계영시(洞玄靈寶三洞奉道科戒營始)》의 기록을 보면 당시 도록의 전수는 상당히 엄격했으며 그중에 또 18개 등급이 있었는데 등급에 따라 전수하는 경록(經籙)이나 수여하는 호칭이 각각 달라졌다. 의식은 정해진 절차에 따라 진행되며 도록을 수여받아야만 비로소 정식으로 입도했다고 볼 수 있다.
《봉전고존사여귀도사전도록필귀북해(奉餞高尊師如貴道士傳道籙畢歸北海)–도록 전달을 마치고 북해로 돌아가는 고여귀 존사를 받들어 보내며》
도는 감추어져 보이지 않으니 신령한 책은 동천(洞天 신선이 사는 곳)에 감춰져 있는데,우리 스승님 사만 겁을 대대로 이어 전해내려 오셨네.이별할 때 지팡이로 푸른 대나무 남기시고 노래하며 가시는데 자줏빛 안개 밟으시네.이별하는 마음이야 멀고 가까움이 없으니 늘 옥경(玉京)을 그리워할 겁니다.
道隱不可見(도은불가견) 靈書藏洞天(영서장동천)吾師四萬劫(오사사만겁) 歷世遞相傳(역세체상전)別杖留青竹(별장류청죽) 行歌躡紫煙(행가섭자연)離心無遠近(이심무원근) 長在玉京懸(장재옥경현)
고여귀 도사의 내력과 그의 행적에 대해서는 사료에 그다지 기록이 없다. 그는 이백에게 도록을 전한 후 곧장 북해로 돌아가 선유(仙遊)하러 갔다. 하지만 이백은 시에서 “우리 스승님 사만 겁을 대대로 이어 전해내려 오셨네.”라고 했으니 그의 수행 내력이 일반적인 소도(小道)와는 결코 비교할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이백이 마음을 다해 수련하자 큰 성취가 있었다. 이후 수많은 시문(詩文) 중에서 이백은 이미 단순히 항심(恒心)으로 수련할 생각만 품은 게 아니라 아주 높은 층차로 수련되었다. 수련인의 용어로 말하면 천목(天目)이 이미 열려 다른 고층공간의 수많은 수승(殊勝)한 광경들을 볼 수 있었고 또 뭇신들과 소통하고 교류할 수 있었으며 다른 공간을 오고갈 수 있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장에서 상세히 언급한다.
만년에 이백은 경정산(敬亭山), 추포(秋浦), 청계(清溪), 대루산(大樓山) 등에서 도를 닦았다. 《추송종질단유여산서(秋送從侄耑遊廬山序)–가을 여산에 놀러 가는 종질 이단을 보내며 서문》에서는 그가 경정산에서 단을 연마했던 내용을 간략하게나마 알 수 있다.
《추송종질단유여산서(秋送從侄耑遊廬山序)–가을 여산에 놀러가는 종질 이단을 보내면 서문》
내가 어렸을 때 어른이 《자허부(子虛賦)》를 외우게 했다. 마음속으로 사모했기에 남쪽으로 운몽을 노닐고 일곱 소택의 장관을 두루 보았다. 술로 안륙에 은거하며 10년 허송세월을 보냈다. 처음에 가흥의 작은 아버지께서 장사로 폄적되었다 서쪽에서 돌아오셨을 때 내가 찾아뵙고 함께 숲에서 술을 마셨다. 단은 당시 어린아이였고 옆에서 즐겁게 놀았는데 지금 보니 성취가 있고 빼어난 기운을 많이 갖고 있구나. 내가 노쇠해진 지 오래되었는데 너를 보니 마음에 위안이 된다. 슬픔을 펼치다 옛일을 끄집어내고는 눈물을 멈추고 웃음을 짓는다. 너는 멀리 떠나 서쪽 향로봉에 오를 거라고 내게 말해지. 긴 산이 가로로 구불구불하고 아홉 강물이 돌아가다 선회하며 폭포가 하늘에서 떨어진단다. 중간쯤에서 은하수와 흐름을 다투니 무지개가 뛰어오르고 번개가 내달려 만개 골짜기를 세차게 쏘아댄다. 이는 우주의 기이함이다. 그 위에는 방호와 석정이 있지만 엿볼 수 없다. 네가 이번 여행에서 학을 어루만지며 길게 휘파람 불 게 부럽구나. 나는 단액(丹液)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아 백룡(白龍)이 늦게 오는 것이 한스럽다. 진(秦)나라 사람의 채찍을 들고 먼저 도화원에 가게 했지만 나 홀로 오랜 바람을 저버리고 명산으로 돌아가기 부끄럽구나. 언젠가 나중에 와서 손을 잡고 오악에 오르길 기약한다. 정(情)으로 멀리 보내니 시가 어찌 빠질 수 있겠느냐?
余小時,大人令誦《子虛賦》,私心慕之.及長,南遊雲夢,覽七澤之壯觀. 酒隱安陸,蹉跎十年.初,嘉興季父謫長沙西還時,余拜見,預飲林下. 耑乃稚子,嬉遊在傍. 今來有成,鬱負秀氣. 吾衰久矣,見爾慰心. 申悲道舊,破涕爲笑. 方告我遠涉,西登香爐.長山橫蹙,九江卻轉.瀑布天落,半與銀河爭流;騰虹奔電,激射萬壑,此宇宙之奇詭也.其上有方湖、石井,不可得而窺焉.羨君此行,撫鶴長嘯.恨丹液未就,白龍來遲.使秦人著鞭,先往桃花之水.孤負夙願,慚歸名山. 終期後來,攜手五嶽.情以送遠,詩寧闕乎?
이 글에서 이백이 종질 이단을 따라 여산에 놀러가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화로속의 단액이 아직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손을 뗄 수 없고 잠시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원문위치: http://www.zhengjian.org/node/1545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