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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수련이야기: 공원정(龔元正)

글/ 덕혜(德惠)

【정견망】

북송(北宋)의 도사 공원정(龔元正)은 자(字)가 ‘단본(端本)’이며 본관은 무릉[武陵, 호남 상덕(常德)시 무릉(武陵)구]이다. 공원정은 집이 가난했지만 도를 좋아해 젊어서 출가하기 전에도 매일 시간을 내서 도를 배웠다. 밭을 경작할 때 도경을 들고 다니며 쉬는 시간에 경서를 보았고 나중에 마침내 원하던 대로 도사가 되었다. 그는 천성이 순박하고 도에 정진해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

당시 황제였던 휘종(徽宗)은 도교에 깊이 빠져 전국 각지에 도관(道觀)을 짓고 있었다. 공원정도 황명을 받들어 도원현(桃源縣)에 도궁(道宮)을 지었다. 그는 진지하게 책임지고 고생을 마다하지 않으며 산 아래 도궁을 지었다. 상중하 3궁으로 나누어 총 1천3백30칸을 건설했다. 다음해 휘종이 친필로 ‘도천만수궁(桃川萬壽宮)’이란 편액을 하사했다. 또 공원정에게 ‘충일대사(沖逸大師)’란 호를 내려주었는데 이 도궁이 아직까지 남아 있다.

공원정은 도교에서 주지를 맡은 40년간 종교적인 지위를 이용해 이익을 취하지 않았다. 또 자신의 음식을 특별히 준비하지 않았으며 모두 대중이 먹는 음식을 함께 먹었다. 송 휘종 선화 연간 (1119-1125년) 어느 날 그는 제자들을 불러서는 말했다. “5일간 나오지 않으면 내가 떠난 것이다.” 제 4일 째 그는 단정히 앉아 끊임없이 《도덕경》을 외우기 시작했고 5일 째 해가 뜰 무렵 그는 편안히 떠나갔다.

공원정은 후세를 위해 진정한 출가인의 형상을 남겨놓았다. 송 휘종은 북송을 멸망으로 이끈 혼군(昏君)이다. 하지만 기록으로부터 보면 휘종이 도를 향한 마음이 목적이 순정하든 아니든 그 행위를 보면 모두 도교를 존중하고 신령을 존경하였으며 종교에서 그가 임명하고 상을 준 것도 공원정처럼 이렇게 도가 높은 사람이었다.

오늘날 중공을 되돌아보면 처음부터 무신론을 기초로 하여 발전한 것으로 강제로 당단(黨團) 조직 내부인들에게 신을 믿지 못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무신론을 교과서에 집어넣어 전 국민을 세뇌하고 끊임없이 종교를 파괴했다. 문화혁명 시기에는 직접 거칠고 폭력적인 방식으로 종교장소를 부수고 출가인들을 축출했다. 문화혁명 이후에는 종교 쓰레기들이 권력을 장악한 후 한 무리 색과 재물을 탐하는 자들을 주지로 삼아 종교 내부에서 신앙을 파괴했다.

중공을 전통 왕조나 전통 왕조 말기의 혼군과 비교하면 모두 완전히 다르며 근본적인 대립 상태가 있다. 과거의 사람은 아무리 나빠도 사람이 나쁜 것이며 각종 수단으로 자기 탐욕을 만족할 뿐인데 중공은 사악한 마가 나쁜 짓을 하는 것으로 사람의 탐욕, 두려움 내지 단순하고 경솔함을 이용해 불, 도, 신에 대항했다. 중공은 중국문화의 산물이 아니며 그것은 서방 공산주의라는 사설(邪說)이 중국에 침투한 산물이다. 중공은 중국이 아니며 애국은 애당이 아니다. 공산당이 사라져야만 중국은 비로소 좋아질 것이다.

자료출처:《역세진선체도통감(曆世真仙體道通鑒)》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539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