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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고영웅인물】 이백(13): 선계에서 마음껏 노닐다(遨遊仙界)

글/ 찬란한 5천년 신전문화의 천고영웅인물 연구팀

선계에서 마음껏 노닐다[遨遊仙界]

《고풍 7수》에서 이백은 ‘천세옹(千歲翁)’으로 유명한 신선 안기공(安期公)과 만나는 장면을 시로 표현했다. 또 《기왕옥산인맹대융(寄王屋山人孟大融)–왕옥산에 사는 맹대융에게 부치는 글》에서는 노산(嶗山) 동해에서 안기공이 준 대추를 직접 맛보았다고 노래했다. 약 1천 년 전 천고일제(千古一帝) 진시황은 낭야로 순행을 나섰다 노산에서 팽조(彭祖)보다 200년을 더 살았다는 안기공을 만나 3일 밤낮을 지내며 밀담을 나눈 적이 있다. 안기공은 하상공을 스승으로 모셨다. 옛날에 안기공이 진시황과 헤어질 때 “천년 후 봉래산 아래에서 나를 찾아오시오.”라는 편지와 말을 남겼다. 이 이야기는 유향의 《열선전(列仙傳)》과 황보밀(皇甫謐)의 《고사전(高士傳)》에 기록이 있다. 하지만 천년이 지난 후 진시황 대신 오히려 이백이 안기공이 직접 준 대추를 맛보고 또 그와 함께 천정(天庭)에서 마음껏 노닐었다. 이는 역사의 심오한 시공 속에 더 깊은 수수께끼를 감춰놓은 것은 아닐까?

《고풍》 7수

객 중에 학을 탄 신선이 있어 훨훨 날아 태청 위로 솟구치더니,푸른 구름 속에서 소리치기를 자기 이름이 안기(安期)라 하더라.쌍쌍 옥동자 둘이 자줏빛 난새 피리 부네.떠나는 그림자 문득 뵈지 않더니 회오리바람만 하늘소리 보낸다.머리 들어 먼 곳을 바라보니 유성처럼 순식간에 사라지누나.원컨대 금광초(金光草)를 먹어 하늘만큼 오래 살았으면.

客有鶴上仙(객유학상선) 飛飛凌太淸(비비능태청)揚言碧雲裏(양언벽운리) 自言安期名(자언안기명)兩兩白玉童(양양백옥동) 雙吹紫鸞笙(쌍취자란생)去影忽不見(거영홀불견) 回風送天聲(회풍송천성)擧首遠望之(거수원망지) 飄然若流星(표연약류성) 願飡金光草(원손금광초) 壽與天齊傾(수여천제경

《기왕옥산인맹대융(寄王屋山人孟大融)–왕옥산에 사는 맹대융에게 부치는 글》

예전에 내가 동해 노산에서 신선 노을 먹었었지.친히 안기생을 뵈고 참외만한 대추를 먹었네.중년에 황제를 뵈었지만 마음이 맞지 않아 집으로 돌아갔네.붉던 얼굴 봄날 광채 가시고 흰 머리에 생애가 보이네.금액(金液 금단)을 얻어 구름수레에 날아오르길 기약하네.그대를 따라 천단에 올라 신선과 함께 한가로이 떨어진 꽃이나 쓸고 싶어라.

我昔東海上(아석동해상) 勞山餐紫霞(노산찬자하)親見安期公(친견안기공) 食棗大如瓜(식조대여과)中年謁漢主(중년알한주) 不愜還歸家(불협환귀가)朱顏謝春暉(주안사춘휘) 白發見生涯(백발견생애)所期就金液(소기취금액) 飛步登雲車(비보등운거)願隨夫子天壇上(원수부자천단상) 閑與仙人掃落花(한여선인소락화)

한편 당 현종은 비록 이백을 산으로 돌려보내긴 했지만 여전히 다양한 통로를 통해 이백에 관한 소식 및 그의 시부(詩賦)에 대해 듣고 있었다. 노산에 관련된 이 두 편의 시는 현종에게 노산에 대해 큰 흥취를 일게 했다. 천보 7년(748년) 현종은 몇몇 도사를 노산에 파견해 약초를 채취하는 한편 노산의 이름을 ‘보당산(輔唐山 역주: 당나라를 도와주는 산이란 의미)’이라 부르게 했다. 노산은 이 때문에 더욱 유명해졌다.

이백은 또 “다행히 왕자진을 만났다(幸遇王子晉).” 여기서 왕자진은 왕자교(王子喬)라고도 하는데 주(周)나라 영왕(靈王)의 태자 진(晉)을 말한다. 그는 생황(笙) 연주에 능했는데 생황을 불면 봉황의 울음소리가 났다. 언젠가 이수(伊水)와 낙수(洛水) 사이를 여행하다 우연히 부구공(浮丘公)이란 도사를 만나 숭고산(嵩高山)에 올라가 수련성취 했고 신선이 되어 하늘로 날아올라갔다. 이 이야기는 이백의 연작시 《고풍》 59수 중 제40수에 나온다. 시인은 우연히 선인 왕자진을 만나 선경에서 친구가 되었고 아쉬움 속에서 작별했다.

《고풍》 제40수

봉황은 주려도 곡식을 쪼지 않고먹는 것은 오로지 옥돌뿐이라.어찌 뭇 닭과 뒤섞여한 줌 모이 놓고 다투며 쪼아대랴.아침엔 곤륜산(崑崙山) 나무에서 울고저녁엔 지주산(砥柱)의 여울을 마신다네.날아 돌아가는 바닷길 아득하고홀로 지새는 하늘 서리 차가워라.다행히 왕자진(王子晉)을 만나푸른 구름 가에서 사귀었네.고마운 은혜 보답도 못한 채이별이 아쉬워 장탄식만 하누나.

鳳饑不啄粟(봉기불탁속) 所食唯琅玕(소식유랑간)焉能與群雞(언능여군계) 刺蹙爭一餐(자축쟁일찬)朝鳴崑丘樹(조명곤구수) 夕飲砥柱湍(석음지주단)歸飛海路遠(귀비해로원) 獨宿天霜寒(독숙천상한)幸遇王子晉(행우왕자진) 結交青雲端(결교청운단)懷恩未得報(회은미득보) 感別空長歎(감별공장탄)

이번에는 이백이 ‘동박삭’과 함께 천당(天堂)에 놀러가서 상황(上皇)을 뵙고 선계에서 노닌 시를 보자.

《고풍》 제41수

아침엔 자니해(紫泥海)를 헤적이고 저녁엔 노을치마 걸쳐본다.손 휘둘러 약목(若木)을 꺾어 이 저녁 햇빛 가려보리라.구름에 누워 팔극을 누비나니 옥 같은 얼굴엔 어느덧 천 번의 서리 내렸네.훨훨 날아올라 끝없는 데 들어가 머리 조아려 상황(上皇)께 빌었더니나를 불러 태소(太素)에서 놀게 하고 옥잔에 경장(瓊漿 신선의 음료)을 내리시네.한 번 마시면 만년을 사나니 고향에 돌아간들 무엇 하랴.영원히 긴 바람 따르며 하늘 밖에서 마음껏 나부끼련다.

朝弄紫泥海(조롱자니해) 夕披丹霞裳(석피난하상)揮手折若木(휘수절약목),拂此西日光(불차서일광)雲臥遊八極(운와유팔극) 玉顏已千霜(옥안이천상)飄飄入無倪(표표입무예) 稽首祈上皇(계수기상황)呼我遊太素(호아유태소) 玉杯賜瓊漿(옥배사경장)一餐曆萬歲(일찬역만세) 何用還故鄉(하용환고향)永隨長風去(영수장풍거) 天外恣飄揚(천외자표양)

여기서 자니해(紫泥海)는 동박삭이 신선이 된 이야기와 관련이 있다. 《한무동명기(漢武洞冥記)》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동박삭이 나가서 1년이 지나서야 돌아왔다. 어머니가 ‘너는 떠난 지 1년이 되어서야 돌아오다니 어떻게 나를 위로할 거냐?’라고 물었다. 동방삭은 ‘제가 자니해에 가서 자줏빛 물에 옷을 더럽혀 우연(虞淵 해가 들어가는 곳)에서 빨았습니다. 아침에 길을 떠나 낮에 돌아왔는데 어찌하여 1년이 지났다고 하십니까?’라고 대답했다.”

이백의 《고풍》 41수에서 시인은 바로 동박삭의 초대를 받아 옥잔에 든 귀한 음료인 경장을 마시고 신선 세계를 마음껏 노닌 것을 묘사했다.

옛날 진시황 때 박사를 지낸 노오(盧敖)가 관직에서 물러나 은거하다가 우연히 진인(真人)을 만나 신선의 구결을 전수받았다. 마침내 심산에 깊이 은둔해 수련해 도를 이루고 하늘로 날아올라갔다. 한 무제 원정(元鼎) 4년(기원전 113년) 노오를 기념하기 위해 하남에 노씨현(盧氏縣)을 설치했다. 이백은 《여산요기노시어허주(廬山謠寄盧侍禦虛舟)–여산을 노래하여 시어사 노허주에게 부치다》에서 “일찍이 환단을 복용해 세속 정 사라지고 마음이 거문고 소리처럼 조화를 이뤄 처음으로 도를 이뤘네(早服還丹無世情,琴心三疊道初成)”라고 노래했다. 즉 이때 금단을 복용하고 대도가 처음으로 이뤄졌으며 신선들과 구천에 올라갈 약속을 하고 원시천존(元始天尊)이 계시는 옥경(玉京)에 가서 노오(여기서는 성이 같은 노허주를 가리킨다)를 만나 함께 태청의 천계에서 마음껏 노닐었다.

《여산요기노시어허주(廬山謠寄盧侍禦虛舟)–여산을 노래하여 시어사 노허주에게 부치다》

나는 본래 초나라 미치광이라 봉황노래 부르며 공자를 비웃었지.푸른 옥 장식 지팡이 손에 들고 이른 아침 황학루와 작별하고는,오악도 멀다 않고 신선 찾아서 한평생 명산에 들어가 노닐기를 좋아했네.여산은 남두성 부근에서 빼어나게 솟아 구첩 병풍에 비단구름 펼쳐져 있는데,그 그림자 명호에 비쳐 검푸른 빛이나네,금궐 앞에는 두 봉우리 펼쳐져있고 은하수는 삼석량에 거꾸로 걸렸구나.향로봉 폭포와 멀리 서로 마주 보는데 굽어 도는 절벽과 겹겹의 봉우리 하늘로 치솟았네.

我本楚狂人(아본초광인) 鳳歌笑孔丘(봉가소공구)手持綠玉杖(수지녹옥장) 朝別黃鶴樓(조별황학루)五嶽尋仙不辭遠(오악심선불사원) 一生好入名山遊(일생호입명산유)廬山秀出南斗傍(여산수출남두방) 屏風九疊雲錦張(병풍구첩운금장)影落明湖青黛光(영락명호청대광) 金闕前開二峰長(금궐전개이봉장) 銀河倒掛三石梁(은하도괘삼석량)香爐瀑布遙相望(향로폭로요상망) 迥崖遝障淩蒼蒼(형애답장능창창)

푸른 산 빛과 붉은 노을 아침 해에 비치는데 나는 새도 드넓은 오나라 하늘엔 이르지 못하네.높이 올라 천지 장관 둘러보니 장강은 망망한데 흘러가선 오지 않네.만 리 누런 구름 바람에 움직이고 아홉 줄기 흰 물결은 설산에서 흘러오네.여산 노래 짓기를 좋아하는 이유는 흥이 여산으로 일어나기 때문이라.한가로이 석경(石鏡 거울처럼 모습을 비춰주는 바위) 보니 마음이 맑아지는데 사령운 다니던 곳 푸른 이끼로 덮였네.일찍이 환단을 복용해 세속 정 사라지고 마음이 거문고 소리처럼 조화로워 처음으로 도를 이뤘네.멀리 비단 구름 속 신선을 보니 부용을 손에 들고 옥경에서 조회하네.한만(汗漫)과 구해(九垓) 위에서 만나기로 먼저 약속했으나노오를 맞이해 태청에서 마음껏 노닐고 싶어라.

翠影紅霞映朝日(취영홍하영조일) 鳥飛不到吳天長(조비부도오천장)登高壯觀天地間(등고장관천지간) 大江茫茫去不還(대강망망거불환)黃雲萬里動風色(황운만리동풍색) 白波九道流雪山(백파구도류설산)好爲廬山謠(호위여산요) 興因廬山發(흥인여산발)閑窺石鏡清我心(한규석경청아심) 謝公行處蒼苔沒(사공행처창태몰)早服還丹無世情(조복환단무세정)琴心三疊道初成(금심삼첩도초성)遙見仙人彩雲裏(요견선인채운리) 手把芙蓉朝玉京(수파부용조옥경)先期汗漫九垓上(선기한만구해상) 願接盧敖遊太清(원접노오유태청)

역주: 1) 초나라 미치광이는 춘추시대 초나라의 육통(陸通)을 가리키는데 자(字)가 접여(接輿)다. 미치광이로 불렸다. 《논어》〈미자〉에 따르면 공자가 초나라에 갔을 때 접여가 그 앞을 지나며 “봉황아, 봉황아, 어찌하여 덕이 쇠했는가! 지난 일을 어쩔 수 없지만 앞날은 좇을 수 있으리라. 그만 두어라, 그만 두어라. 지금 위정자들이 위태롭도다.”라면서 공자를 비웃은 적이 있다.

2) 남두성 부근[南斗傍]: 남두성은 별자리의 하나인데 중국 각 지역을 하늘의 별자리와 대응시키면 남두성과 대응되는 곳이 바로 여산이 위치한 강서성 심양 지역이다. 여기서는 여산이 인근에서 가장 빼어나다는 뜻으로 쓰였다.

3) 나는 새도 드넓은 오나라 하늘엔 이르지 못하네: 오나라 하늘이(吳天)란 삼국시대 이 지역이 오나라에 속해 있었기 때문이다. 옛날 오나라 땅이 하도 넓어서 새가 날아가도 끝까지 갈 수 없다는 의미. 여기서는 여산이 광활하게 넓다는 뜻으로 쓰였다.

4) 사령운(謝靈運) : 사공(謝公)은 동진의 저명한 시인이자 정치가인 사령운을 가리킨다. 이백이 몹시 존경했던 인물인데 일찍이 여산에서 노닐며 《여산 정상에 올라 여러 봉우리를 바라보다(登廬山絶頂望諸嶠)》라는 시를 지었다.

5) 금심삼첩(琴心三疊): 도가 수련용어. 보통 삼첩을 삼단전(三丹田)으로 본다. 또 금심(琴心)은 거문고 연주 소리처럼 마음이 조화롭다는 뜻이다. 즉 마음이 조화를 이뤄 삼단전을 고르게 쌓은 것으로 풀이한다. 여기서는 마음이 조화롭게 되면 온몸의 기가 충실해지는 것으로 이해하고 풀이했다.

6) 한만(汗漫)과 구해(九垓) 위에서 만나기로 먼저 약속했으니 노오를 맞아 태청에서 마음껏 노닐고 싶어라 : 이 구절은 《회남자(淮南子)》 〈도응훈(道應訓)〉의 일화를 인용한 것이다. 진시황 때 박사를 지낸 노오가 신선을 만나 두루 세상을 돌아다니다 우연히 한 신선을 만났다. 그가 자신보다 훨씬 더 크고 넓은 세상을 다닌 것을 알게 된 노오가 그와 사귀려했지만 그는 구해(九垓 아주 높은 하늘 九天) 밖에서 한만(汗漫 신선)을 만나기로 선약이 되어 있다면서 순식간에 노오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노오는 그와 비교하면 자신은 하늘을 나는 고니와 땅에서 기는 벌레라면서 자신의 견문이 좁았음을 자책한다.

이제 또 다음 두 편의 시를 보자.

첫 번째 시는 시인이 신선 한중(韓眾 한종韓終이라고도 하는데 진시황이 바다로 나가 선약을 구해오라고 파견한 인물)로부터 비결을 전수받고 천여 명의 선녀를 따라 과거 황제 및 부구공(浮丘公)이 단을 만들던 곳으로 찾아가 우연히 부구공을 만난다. 또 왕자교(王子喬)가 함께 해 “생황을 불며 솔바람에 춤을 춘다.” 두 번째 시는 신선과 선녀가 화려한 봉황을 타고 이르러 시인에게 옥배(玉杯 옥으로 만든 잔)와 자경금(紫瓊琴 자줏빛 옥으로 만든 금)을 주는데 이 둘은 신선의 물건으로 세간에는 없는 것이다.

《지능양산등천주석수한시어견초은황산(至陵陽山登天柱石酬韓侍禦見招隱黃山)–능양산에 도착해 천주석에 올라 황산에 은거하자고 나를 초대한 한시어에게 답하다》

한중(韓衆)이 흰 사슴을 타고 서쪽 화산(華山)에 갔는데선녀 천여 명이 구름 하늘에서 그를 따랐네.나를 보고는 비결을 전하니 정성이 하늘과 통하였구나.어찌 생각했으랴 능양산(陵陽山)에 와서 날아가는 기러기를 내 눈으로 보내게 될 줄.천자가 예전에 오랑캐를 피하실 때 그대에게 총마(驄馬)를 타게 했으니오릉(五陵 한나라 다섯 황제들의 무덤) 아래에서 병사들을 거느리고 긴 채찍으로 오랑캐를 다스렸네.시국이 태평해지자 수놓은 옷을 벗고 관직에서 벗어나니 날아다니는 쑥과 같았네.난새와 봉새가 날개를 접고 곡식을 쪼며 새장에 앉아 있으니바닷가 학이 비웃고는 요동으로 돌아갈 생각을 했네.황산(黃山)은 천주석을 능가해 날카로운 봉우리들 위에 모여 있구나.비취색 옥 나무에 머무는데 문득 부구공(浮丘公 신선)이 보이네.또 왕자교(王子喬)를 이끌어 생(笙)을 불며 솔바람에 춤을 추고는〈자하편(紫霞篇)〉을 낭랑히 읊으며 예주궁(蕊珠宮 신선들의 궁궐)을 열도록 청했네.북두칠성을 밟으며 푸른 하늘을 돌아다니다 나무에 기대어 청동(靑童)을 부르니언제나 그대 손을 잡고서 육체를 초탈해 무궁의 경지로 들어갈까?

韓眾騎白鹿(한중기백록) 西往華山中(서왕화산중)玉女千餘人(옥녀천여인) 相隨在雲空(상수재운공)見我傳秘訣(견아전비결) 精誠與天通(정성여천통)何意到陵陽(하의도능양) 遊目送飛鴻(유목송비홍)天子昔避狄(천자석피적) 與君亦乘驄(여군역승총)擁兵五陵下(옹병오릉하) 長策遏胡戎(장책알호융)時泰解繡衣(시태해수의) 脫身若飛蓬(탈신약비봉)鸞鳳翻羽翼(난봉번우익) 啄粟坐樊籠(탁속좌번롱)海鶴一笑之(해학일소지) 思歸向遼東(사귀향요동)黃山過石柱(황산과석주) 巘崿上攢叢(헌악상찬총)因巢翠玉樹(인소취옥수) 忽見浮丘公(홀견부구공)又引王子喬(우인왕자교) 吹笙舞松風(취생무송풍)朗詠紫霞篇(낭영자하편) 請開蕊珠宮(청개예주궁)步綱繞碧落(보강요벽락) 倚樹招青童(의수초청동)何日可攜手(하일가휴수) 遺形入無窮(유형입무궁)

역주: 1) 한중이 흰 사슴을 타고 : 《신선전》〈유근(劉根)〉에 보면 유근이 신선이 된 계기가 화산에서 흰 사슴이 끄는 수레를 타고 선녀들의 시중을 받는 한중을 만나 비결을 전수받았다고 한다. 여기서는 시어사(侍御史 어사대 종오품 관직)로 있다가 물러나 여기저기를 떠돌던 한운경(韓雲卿)의 신선다운 풍모를 찬양한 것. 한운경이 이백에게 황산에 함께 은거하자는 시에 대한 이백의 답변이다.

2) 능양산(陵陽山): 지금의 안휘성 지주(池州)시 남쪽에 있는 산. 두자명(杜子明)이 이곳에서 승선했다고 한다.

3) 총마를 타다: 후한 때 시어사를 지낸 환전(桓典)이 총마를 타고 다니며 법집행을 엄격히 해서 모두들 두려워했다는 고사에서 유래. 이후 총마를 탄다는 말은 곧 시어사를 뜻한다.

4) 바닷가 학이 비웃고는 요동으로 돌아갈 생각을 했네 : 요동 사람이었던 정령위(丁令威)가 영허산(靈虛山)에서 도를 배우고 다시 학이 되어 고향에 돌아오니 이미 천년이 지나 자신이 알던 사람들은 다 죽고 없었다고 한다. 여기서 바닷가 학은 바로 신선 정령위를 상징하며 한시어가 신선술을 배우기 위해 떠나는 것을 의미.

5) 부구공(浮丘公): 중국 고대의 전설적인 신선. 왕자진(王子晉 왕자교)이 생(笙) 불기를 좋아해 이락(伊洛) 일대를 떠돌다 그를 만나 왕자진을 이끌고 숭산(嵩山)으로 올라가 도를 닦았다고 한다. 신선 왕자교의 스승.

6) 〈자하편(紫霞篇)〉: 도가 경전 《황정내경경(黃庭內景經)》을 의미한다.

7) 청동(靑童) : 동해의 신선 선동군(仙童君). 여기서는 이백 자신을 가리킨다.

《의고(擬古) 12수—고시를 본뜨다》 제10수

신선이 오색 봉황을 타고 어제 낭풍잠(閬風岑 신선의 산)에서 내려왔네.바닷물이 세 번 얕아졌다면서 무릉도원으로 나를 찾아왔네.내게 푸른 옥잔을 주고 자줏빛 옥장식 금(琴)도 주었네.술잔으로는 좋은 술 기울이고 금으로는 소박한 마음 한가롭게 하는데,두 물건은 세상의 것이 아니니 어찌 구슬과 황금으로 논하리오.금으로 솔숲의 바람을 타고 술잔으로 하늘의 달에 권하니,바람과 달은 오래 알고 지내왔지만 세인은 어찌 그리 빨리 사라지는가?

仙人騎彩鳳(선인기채봉) 昨下閬風岑(작하낭풍잠)海水三清淺(해수삼청천) 桃源一見尋(도원일견심)遺我綠玉杯(유아녹옥배) 兼之紫瓊琴(겸지자경금)杯以傾美酒(배이경미주) 琴以閑素心(금이한소심)二物非世有(이물비세유) 何論珠與金(하론주여금)琴彈松裏風(금탄송리풍) 杯勸天上月(배권천상월)風月長相知(풍월장상지) 世人何倏忽(세인하숙홀)

역주: 1) 海水三清淺(해수삼청천) : 《신선전》 〈왕원(王遠)편〉에서 마고(麻姑)와 왕원의 대화 중에서 동해바다가 3차례나 뽕밭으로 변하고 물이 얕아져서 예전의 절반으로 줄어들었다고 한다. 즉 그만큼 오랫동안 살았다는 의미. 여기서는 낭풍산에서 내려온 신선이 마고처럼 오래 살았음을 뜻한다.

여기까지 감상하고 나면 우리는 이백이 천보(天寶) 연간에 궁궐에 들어가기 전에 도를 찾고 신선을 방문하며 수련해왔음을 보아낼 수 있다. 그의 내력이 평범하지 않았기 때문에 여러 불(佛)도(道)신(神)들이 모두 그와 아주 깊은 연원을 가졌고 또 거듭 그를 초대해 수련하게 했다. 또 그의 수련에 성취가 있었기 때문에 많은 속인들이 볼 수 없는 수많은 광경들을 볼 수 있었다. 예를 들어 태산을 방문하거나 도동이 수련을 권하거나 득도한 고승과 불법(佛法)을 담론하고 가부좌하고 조용히 수련하는 것에 대해 담론하는 등이다. 또 이백이 황궁을 떠난 후의 시와 문장에서는 그가 신불(神佛)과 모임을 갖고 다양한 공간을 왕래하면서 선산(仙山 신선의 산)과 신원(神苑 신의 정원)을 마음대로 다니며 세간의 일에는 초연했음을 볼 수 있다.

또 이백이 자신의 시사(詩詞)에서 품평한 역사인물은 이백 명이 넘으며 수많은 풍류인물에 대해 좋은 평을 남겼다.

《공무도하(公無渡河)–강 건너지 말아요》에서 이백은 대우(大禹)가 하늘에 닿는 큰 홍수를 사심 없이 다스린 위대한 업적에 대해 감탄한다.

《공무도하(公無渡河)–강 건너지 말아요》(일부분)

서쪽에서 온 황하 곤륜을 끊고만리를 포효하며 용문(龍門)에 부딪네.물결이 하늘에 닿자 요임금은 한숨짓고우임금 뭇 강물 다스릴 적에아이가 울어도 집에 들르지 않았네.여울을 없애고 넘치는 물 막으시니구주(九州)에 비로소 누에 치고 삼도 심었네.

黃河西來決昆侖(황하서래결곤륜)咆哮萬里觸龍門(포효만리촉용문)波滔天(파도천) 堯咨嗟(요자차)大禹理百川(대우리백천) 兒啼不窺家(아제불규가)殺湍湮洪水(쇄단인홍수)九州始蠶麻(구주시잠마)

《고풍 제3수》에서 시선은 또 천고일제(千古一帝) 진시황에게 탄복한다.

《고풍 제3수》 (일부분)

진왕(秦王 진시황)이 육합(六合 천하)을 쓸어내고범처럼 노려보니 어이 그리 용맹한가.칼 휘둘러 뜬 구름 가르니제후들 모두 서쪽으로 와서 조아렸네.뛰어난 결단력은 하늘이 내렸고큰 지략으로 많은 인재 부렸노라.무기를 거둬 녹여 사람 동상 만들자함곡관은 아예 동쪽으로 열렸구나.

秦王掃六合(진왕소육합) 虎視何雄哉(호시하웅재)揮劍決浮雲(휘검결부운) 諸侯盡西來(제후진서래)明斷自天啟(명단자천계)大略駕群才(대략가군재)收兵鑄金人(수병주금인)函穀正東開(함곡정동개)

《증신평소년(贈新平少年)–신평 젊은이에게 주며》에서 이백은 또 병선(兵仙) 한신에 대해 논평한다.

《증신평소년(贈新平少年)–신평 젊은이에게 주며》(일부분)

한신이 회음에 있을 때젊은이들 서로 업신여겼지.몸을 굽혀 줏대 없어 보였지만씩씩한 마음은 믿는 구석 있었네.한번 용안의 임금(한고조 유방)을 만나자이로부터 일어나 큰 소리로 호령했네.빨래하던 아낙에게 천금으로 보답하니만고의 모든 이들 칭찬하였네.

韓信在淮陰(한신재회음) 少年相欺淩(소년상기릉)屈體若無骨(굴체약무골) 壯心有所憑(장심유소빙)一遭龍顏君(일종용안군) 嘯吒從此興(질타종차흥)千金答漂母(천금답표모)萬古共嗟稱(만고공차칭)

역주: 신평(新平)은 당나라 때 빈주(邠州)로 현재 섬서성 빈현(彬縣)이다. 이 시는 앞부분에 한신이 젊었을 때 동네 부랑배들에게 모욕을 당했지만 결국 황제의 인정을 받고 큰 뜻을 펼친 이야기를 썼고 뒷부분에서는 한신과 달리 재능을 펼치지 못한 자신의 신세를 한탄했다.

이백은 또 항우(項羽)의 빼어난 용기와 무위에 대해서도 크게 감탄했다.

《등광무고전장회고(登廣武古戰場懷古)–광무산 옛 전쟁터에 올라 옛일을 회상》(일부분)

진나라 사슴 들판을 내달리니 그것을 쫓음이 쑥대 날리는 듯했네.항왕(項王)의 기개 세상을 뒤덮고자줏빛 번개 쌍눈동자에 빛났네.팔천 군사와 호흡하며강동에서 일어나 거칠 것 없었네.

秦鹿奔野草(진록분야초)逐之若飛蓬(축지약비봉)項王氣蓋世(항왕기개세) 紫電明雙瞳(자전명쌍동)呼吸八千人(호흡팔천인)橫行起江東(횡행기강동)

적벽에 와서는 과거 주유가 제갈량과 손잡고 손권과 유비가 연합해 적은 병력으로 대군을 이기고 조조의 군대를 크게 깨뜨린 것을 생각하며 천고의 미담을 남겼다. 시선은 붓을 들어 이렇게 찬탄했다.

《적벽가송별(赤壁歌送別)–적벽가 송별》(일부분)

두 용이 전쟁으로 자웅을 겨룰 때적벽의 누선들을 모조리 쓸어버렸네.거센 불길 하늘에 닿아 운해를 비추니주유(周瑜)가 이곳에서 조공(曹公 조조)을 물리쳤네.

二龍爭戰決雌雄(이룡쟁전결자웅)赤壁樓船掃地空(적벽누선소지공)烈火張天照雲海(열화장천조운해) 周瑜於此破曹公(주유어차파조공)

사막북쪽 요새는 일찍부터 수많은 시인들이 필묵을 남겼다. 시선은 《새상곡(塞上曲)–요새 위에서》에서 과거 당태종이 흉노를 대파했던 일을 묘사했다.

《새상곡(塞上曲)–요새 위에서》(일부분)

이 큰 한(漢)나라에 중간의 대책도 없어흉노가 위교(渭橋 장안)를 침범하누나.오원(五原)지역에 가을 풀 푸를 적에오랑캐 말은 어이 그리 당당한가!(당태종이) 장수에게 명해 서쪽 끝 치게 하니음산(陰山) 옆에서 활약이 눈부시네.연지산이 한나라에 함락되자그곳 아낙들 낯빛이 어둡구나.말머리 돌려 황하를 건너니전쟁을 마치니 좋은 일 많구나.

大漢無中策(대한무중책)匈奴犯渭橋(흉노범위교)五原秋草綠(오원추초록)胡馬一何驕(호마일하교)命將征西極(명장정서극)橫行陰山側(횡행음산측)燕支落漢家(연지낙한가)婦女無華色(부녀무화색)轉戰渡黃河(전전도황하)休兵樂事多(휴병낙사다)

시선 이태백이 남긴 시는 천 수(首)가 넘는데다 스케일이 방대하고 횡으로는 동서를 넘고 종으로는 고금을 넘나들기 때문에 한두 편의 문장으로 전부 개괄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족하나마 이 글을 바치는 것은 오직 인구에 널리 회자되는 시선(詩仙)의 대작 중 몇 편 및 고금에 세인들의 평론은 드물지만 오히려 신전문화(神傳文化)와 수련의 바른 이치[正理]를 풍부하게 보여주는 진귀한 작품들을 일부 재현하려 했을 뿐이다. 하지만 필자의 지혜가 얕고 재주가 부족한 관계로 시선의 진정한 뜻 중 만분의 일도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다만 이 글이 앞으로 더 훌륭한 문장들이 나오게 하는 디딤돌이 되길 바랄뿐이다.

결론: 천고에 빛나는 시풍(詩風) 신전문명 보배 중의 보배

아주 오랜 옛날부터 대궁(大穹)은 무수한 시간을 지나오면서 무한한 휘황함을 창조해왔다. ‘성(成)・주(住)・괴(壞)・멸(滅)’의 법칙은 대궁 및 다양한 천체체계의 숙명을 지배해왔다. 창세주(創世主)께선 대궁의 영원을 위해 원융불멸(圓融不滅)의 기제(機制)를 창조하셨고 아울러 오천년 중화역사라는 큰 무대 속에서 천고영웅인물을 배치해 세간에 와서 중생과 인연을 맺고 풀어내, 인류가 법을 얻고 수련하는데 필요한 문화・사상 및 내포를 다지게 하셨다.

이백은 시인으로 세간(世間)에 와서 정통의 문풍(文風)과 시풍(詩風)을 개창해 문학예술의 영역에서 시경이나 이소처럼 고상한 시문을 이끌어냈다. 또 문인(文人)이 마땅히 가야할 길은 어떤 것이며, 무엇이 정통 신전문화예술인지 보여주었다. 특히 그의 고귀한 인품과 인격은 후세에 천고의 모범을 수립해주었다.

시선 이백의 시사(詩詞)・가부(歌賦)와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힘든 꿈속의 말이나 술에 취한 말 또는 유선시(遊仙詩)는 작자의 처지, 언어, 문풍(文風), 시의(詩意), 인격, 심성, 도덕, 정서, 경계, 수련층차, 선계(仙界)에서 본 것, 출세입범(出世入凡) 등과 자연스럽게 완벽한 일체가 되어 중화 신전문화와 문학예술에서 누구도 따를 수 없는 우뚝한 봉우리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작품을 읽는 독자들에게 무궁한 이익을 주며 또한 사회도덕이 제고되어 되돌아 올라오게 했다. 그는 정도수련(正道修煉)을 시(詩), 사(詞), 가(歌), 부(賦)에 주입하고 신전문화와 수련의 바른 이치로 창작을 주도해 불(佛)도(道)신(神)을 찬양했다. 그의 위대한 인격, 정통적인 시풍과 문풍 등 이 일체는 창세주 및 신(神)이 인류문명과 중화문명이 마땅히 지녀야 할 내포를 펼쳐준 것이다. 바로 이 때문에 그의 작품이 백세(百世)에 전해지며 천고(千古)의 절창으로 남게 된 것이다!

오천년 중화문명의 역사 중에서 한 장 한 장 경심동백(驚心動魄)할 큰 연극, 한 막 한 막 각골명심(刻骨銘心)할 줄거리가 인류역사의 휘황을 빚어냈고 항고(恆古)한 대궁(大穹) 속에서 찬란한 빛을 만들었고 영원한 빛이 되었다. 시선 이백은 대당성세(大唐盛世) 중에서도 찬란하고 우뚝하며 고원(高遠)하고 시대를 뛰어넘는 공헌을 했으며 더욱이 중화 오천년 문명의 보배 중의 보배이자 휘황 중의 휘황이다.

아름답구나! 위대하구나! 우뚝하구나! 시선(詩仙) 이태백이여!

주요참고문헌

《草堂集序》(唐,李陽冰)

《方輿勝覽‧眉州‧磨針溪》(宋,祝穆)

《天寶遺事》(五代,王仁裕)

《本事詩、高逸》(唐,孟棨)

《詩境淺說》(清,俞陛雲)

《雜言寄李白》(唐,任華)

《而庵說唐詩》(清,徐增)

《唐詩百話、將進酒》(近代,施蟄存)

《唐詩別裁》(清,沈德潛)

《唐詩箋注》:(清,黃叔燦)

《新唐書‧李白傳》(北宋,歐陽修等)

《全唐詩》(清,曹寅)

《唐詩品彙》(明,高柄)

《唐詩三百首》(清,孫洙)

《詩藪》(明,胡應麟)

《詩源辨體》(明,許學夷)

《韻語陽秋》(宋,葛立方)

《景定建康志》(宋,周應合)

《唐故翰林學士李君碣記》(唐,劉全白)

《李翰林集序》(唐,魏顥)

《李白別集序》(宋,樂史)

《集異記》(唐,薛用弱)

《原化記》(唐,皇甫氏)

《侯鯖錄》(宋,趙令畤)

《合璧事類》(宋,謝維新等)

역주: 이백 시의 한글 번역은 주로 다음 두 서적을 참고했으며 문맥이나 독자의 필요에 따라 역자가 일부 수정했음.

1) 이태백 시집 1~7, 학고방 이영주 임도현 신하윤 역주

2) 이백 시의 정화 고풍 악부 가음, 역락, 진옥경 노경희

원문위치: http://www.zhengjian.org/node/1545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