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简体 | 正體 | English | Vietnamese

운명이야기: 아미산 노승과 주훈

글/ 덕혜

【정견망】

청나라 중기에 주훈(朱勳)이란 관원이 있었다. 그는 자가 ‘진재(晉齋)’ 호는 ‘허주(虛舟)’이며 강소(江蘇)사람이다. 관직은 섬서순무(陝西巡撫)에 이르렀다. 청나라 때 《이원총화(履園叢話)》 기록에 따르면 신기한 아미산 노승이 그의 미래를 예언했다고 한다.

주훈이 막 출생했을 때 마침 한 노승이 그의 집 대문 앞에 와서 탁발을 하면서 주 씨에게 말했다. “오늘 이 집에서 귀한 아들을 얻었으니 장차 큰 귀인(貴人)이 될 겁니다. 어쩌면 60년 후 노승이 그와 장안에서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나중에 도광 초년(1821년) 주훈이 섬서 순무가 되었는데 종2품 관원이었다. 섬서의 어느 하급관리가 사천 아미산에 공무가 있어서 찾아갔다 우연히 한 노승을 만났는데 그가 말했다.

“편지를 하나 줄 테니 순무인 주 대인께 전해주시오. 내가 그가 태어날 때의 일을 알고 있다고 말하시오.”

그 관리가 편지를 받아 섬서로 돌아온 후 감히 순무를 뵙자고 청하지 못하고 이 일을 서안성(西安城)의 관원에게만 말했다. 그 관원이 편지를 열어보니 다른 말이 없었고 주훈이 모년 모월 모일 짐을 챙겨 북쪽으로 갈 거라고만 씌어 있었다. 나중에 주훈은 과연 편지에서 말한 시간에 성지(聖旨)를 받았는데 직위가 깎여 경성으로 불려갔고 4품 경당후보(京堂候補)가 되었다.

이상이 《이원총화》에 나온 기록이다. 그러나 문장에서 노승이 사람에게 편지를 전해줄 때 주훈이 60세인지는 말하지 않았다. 노승이 말한 60년 후 장안에서 만나는 일이 영험했다고 할 수 있는가? 그래서 나는 계속해서 주훈에 관해 찾아보았다.

광서(光緒) 때 《정강현지靖江縣志》 등 기록에 따르면 “주훈의 부친 주무덕은 건륭 29년 (1764년) 세상을 떠났고 모친 고씨는 재취였다.” 《강소통지. 정강》중에 마침 《고태부인 묘표》라는 글이 있는데 “고태부인”이 바로 주훈의 모친이다. 이 묘표에 따르면 “방백은 어려서 부친을 잃었는데…. 5살 때 돌아가시고…” 다시 말해 주훈이 다섯 살 때 주무덕이 세상을 떠났고 이렇게 추산해보면 주훈은 1760년 무렵 출생했다. 그러면 도광초년 (1821년) 그는 대략 60세였다.

노승이 부탁하여 편지를 주었으니 대략 “글을 보면 만난 것과 같다”로 칠 수 있다. 그러니 그의 약속을 실현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 밖에 주훈은 탐관오리였다. 《소정속록(嘯亭續錄)》이란 책에는 주훈을 묘사했다. “오직 뇌물로 유명했으며 백성들이 그를 미워하여 이를 갈았다.”

이것이 아마 노승이 그를 직접 만나지 않은 원인일 것이다. 주훈의 결말에 관해서는 그는 비록 많은 돈을 먹었지만 위인됨이 사치하여 뇌물로 받은 돈을 다 써버렸고 만년에 고향에서 처량하게 보내야 했다.

이 아미산 노승은 진정 도가 높은 노승이어서 신통으로 미래를 예지할 수 있었다. 주훈은 아마 그와 연분이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노승은 그가 탄생할 때 일부러 그의 집에 찾아가 탁발하고 그가 장차 큰 귀인이 될 것을 예언한 것이다. 바로 그에게 만사는 정해진 바가 있음을 알려준 것이다. 그가 대관원이 될 수 있는 것도 생명에 큰 복이 있기 때문인데 인간의 득실에 지나치게 미혹되지 말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주훈은 노승의 충고를 깨닫지 못하고 명리(名利)에 빠져 탐관오리가 되었다. 노승의 희망을 저버렸고 만년에 처량하게 일부 악보(惡報)를 받았다. 후인들이 주훈의 교훈을 기억하도록 희망하며 인간의 이익 때문에 나쁜 짓을 하지 않기를 바란다. 관리가 된 사람이 뇌물을 받고 법을 어기는 일은 절대 있어서는 안 됨을 기억하고 백성을 해친 자는 반드시 응보를 받음을 기억해야 한다.

원문위치: http://www.zhengjian.org/node/2565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