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찬란한 5천년 신전문화의 천고영웅인물 연구팀
【정견망】
제6절 제범만세(帝範萬世) 만세 제왕의 모범
세상 다른 나라들의 역사와는 달리 화하(華夏)무대는 조대(朝代)가 교체되는 독특한 방식으로 ‘한 왕조의 천자에 한 왕조의 신하 한 왕조의 문화(一朝天子,一朝臣,一朝文化)’라는 특색을 지녀왔다. 중원 황제는 하늘의 아들인 천자(天子)라는 존귀한 지위에서 황조(皇朝)를 총괄하며 세간을 주관한다. 대당(大唐) 태종은 본래 아득히 먼 창궁(蒼穹) 깊은 곳에서 내원한 ‘금륜성왕(金輪聖王)’이었다. 그는 수나라 말엽 세상에 내려와 천하를 평정하고 대당의 강산을 다졌으며 창생(蒼生)을 교화해 빛나는 ‘정관의 치’를 이룩했다. 이는 원 세조 쿠빌라이, 명 성조(成祖) 주체(朱棣 영락제), 청 성조(聖祖) 강희제 등 후세 성황(聖皇)‧명군(明君)들로부터 극도의 찬사를 받았다.
정관 22년 태종은 친히 《제범(帝範)》이란 책을 군체(君體), 건친(建親), 구현(求賢), 심관(審官), 납간(納諫), 거참(去讒), 계영(誡盈), 숭검(崇儉), 상벌(賞罰), 무농(務農), 열무(閱武), 숭문(崇文) 등 12편으로 나눠 저술했다. 그는 제왕의 도를 밝혀 만세(萬世)의 모범이 되는 이 책을 황태자 이치(李治 나중의 당 고종)에게 하사했다.
제범서(帝範序)
서문에 이르길 “짐이 들으니 대덕(大德)을 생(生)이라 하고 대보(大寶)를 위(位)라 하나니 위와 아래를 분별하고 임금과 신하를 수립함은 백성을 어루만지고 양육하며 서민(庶民)을 교화하기 위함이로다. 만약 지극히 총명하고 지극히 지혜로우며 문무(文武)를 겸비하고 황천(皇天)이 돌보시는 천명을 받아 임금이 된 게 아니라면 어찌 신령한 그림을 잡고 제위(神器)에 오늘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취규(翠媯 역주: 전설에 따르면 황제가 취규에서 용이 지고 나온 하도를 받았다)로 요임금의 덕을 드러냈고 원규(元圭 우임금 때 그의 공을 기리기 위해 하늘이 내린 보배)를 하사해 우임금의 공을 드러내셨다. (문왕이 태어날 때)붉은 새가 단서(丹書)를 물고와 상서로움을 보여 주나라 8백년의 복을 여셨고 백사(白蛇)의 정령이 상서로움을 표현한 후 24대에 걸친 한나라 왕업의 기초를 여셨다. 이를 통해 보건대 제왕의 업(業)은 힘으로 다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옛날 수나라 말년에 나라가 혼란에 빠지고 천하가 분열되자 선황(先皇 당 고조)께서 신묘한 무용의 자태로 경륜을 펼칠 기회를 맞아 (한고조처럼) 신령한 뱀을 자르고 왕업을 다지셨고 금경(金鏡 밝고 바른 도)을 열고 천추(天樞 정권)를 장악하셨다. 그러나 오악이 기운을 머금고 삼광(三光)이 빛을 거두자 승냥이와 이리가 여전히 강경해 풍진(風塵)이 편안치 못했다. 짐이 약관의 나이에 강개한 뜻을 품고 대난(大難)을 평정해 창생(蒼生)을 구제할 생각으로 몸소 갑옷을 입고 화살과 돌에 맞섰다. 저녁이면 어린진(魚鱗陳)을 마주하고 아침이면 학익진(鶴翼陣)의 포위에 맞섰다. 적이 아무리 강해도 꺾지 않음이 없었고 적병이 아무리 굳세도 분쇄하지 않음이 없었으며 큰 적을 물리쳐 사해를 깨끗하게 한 후에는 잔당을 소탕해 팔방을 평정했노라. 다행히 황상의 후계자가 되어 천자를 빛내고 아버님의 뒤를 이어 보위에 올랐도다. 전전긍긍(戰戰兢兢)하면서 마치 깊은 물에 이른 듯 썩은 수레를 모는 듯 했으며 매일 삼가 하면서 시작을 잘하고 마무리를 잘할 것을 생각했노라.”
“너(태자 이치)는 어려서부터 자애로운 총애를 받아왔으나 의리에 부족함이 많고 집안의 훈계에도 어긋남이 있구나. 너를 발탁해 구중궁궐에서 지내게 하고 동궁의 임무를 맡겼음에도 군신의 예절을 가리지 못하고 농사의 어려움을 모른다. 매번 이런 생각을 할 때마다 근심이 되어 침식(寢食)을 잊지 않은 적이 없다. 위로는 황제(黃帝) 소호(少昊 황제의 아들)로부터 주(周)나라와 수(隋)나라에 이르기까지 천지를 경영한 군주에서 나라를 창업하고 후세에 전한 주인들의 흥망과 치란은 그 도가 환히 빛난다. 때문에 거울을 열어 과거의 자취를 비추고 널리 역사 서적을 열람해 그 요지를 모아 가까운 사람에게 경계로 삼고자 할 따름이로다.”
《군체(君體)》에서 태종은 임금은 인간세상의 주인으로써 마땅히 중생을 자비롭게 대해야 하며 멀리까지 위덕을 펼쳐 그 백성들을 교화해야 한다고 보았다.
“무릇 사람이 나라에 앞서며 나라는 군주의 근본이다. 임금의 몸은 산악과 같아서 높고 험하지만 움직이지 않고, 해와 달과 같아서 곧고 밝으며 널리 비춘다. 억만 백성(兆庶)이 우러러보며 천하가 따르며 의지한다. 그 뜻을 넓고 크게 하면 족히 포용할 수 있고 그 마음을 평온하고 바르게 하면 족히 제어하고 결단할 수 있다. 위엄 있는 덕이 아니면 멀리 이를 수 없고, 인자함이 두텁지 않으면 사람을 품을 수 없다. 구족(九族)을 어루만지되 인(仁)으로 하고, 대신을 접대하되 예(禮)로써 하라. 선조를 받들되 효(孝)로 하며, (높은) 위치에 있어도 공경함을 생각하고, 몸을 기울여 근면히 애쓰며 덕의(德義)를 실천하는 이것이 바로 군주의 체(體)이다.”
《건친(建親)》에서는 번왕을 분봉해 국가의 기틀을 튼튼히 하는 중요성에 대해 논술했다.
“무릇 육합(六合 천하)의 대도(大道)에서 제위를 유지하는 것은 막중한 임무다. 대도는 혼자서는 다스릴 수 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 함께 다스려야 하며 막중한 임무는 홀로 거처할 수 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 함께 지켜야 한다. 그러므로 친척을 봉건(封建)해 울타리로 삼아 지키게 하고 편안함과 위태로움을 함께 힘쓰며 번성하고 쇠퇴함을 한마음으로 하여 원근(遠近)이 서로 지지하며 친인과 소원한 사람을 둘 다 써야만 겸병의 길을 막아 반역이 생기지 않게 할 수 있다.”
“대개 책봉이 너무 강하면 배꼽을 무는 환란이 닥치고 너무 약하면 근본을 공고히 할 기초가 없다. 이로부터 말한다면 여러 종친을 세우되 세력을 줄여야 하고 경중에 따라 서로 억누르게 하여 걱정과 즐거움을 함께 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위로는 시기하는 마음이 사라지고 아래로는 침로하고 원망할 근심이 없을 것이다.”
《구현(求賢)》과 《심관(審官)》 두 편에서는 제왕은 마땅히 넓은 흉금으로 어진 인재를 구해 충직하고 선량하게 보좌하게 함으로써 천하를 다스려야 하며 관리를 선발해 임용할 때는 그의 그릇과 재능을 제대로 파악하여 교화를 베풀어야 함을 말했다.
“무릇 나라를 보필함에는 반드시 충성스럽고 어진 이를 기다려야 한다. 인재를 얻어 책임을 맡기면 천하는 저절로 다스려진다. 그러므로 요임금은 사악(四嶽)에게 명령해 (인재를 추천받았고) 순임금은 팔원(八元)을 천거해 함께 나라를 다스리는 성대함을 이루고 밝은 도(道)를 돕게 했다. 선비가 세상에 살고 어진 이가 입신(立身)함에 날개를 접거나 비늘을 숨기지 않고 풍운의 모임을 기다리며 기이한 재주를 품고 만날 기회를 생각할 것이다. 밝은 임금은 뛰어난 인재를 두루 구하고 영현(英賢)한 인재를 널리 찾되 신분이 천하다고 하여 등용하지 않아서는 안 되며 전에 치욕을 겪었다고 하여 존중하지 않아서는 안 된다.”
“무릇 관직을 설치하고 직무를 나누는 것은 교화를 드러내고 덕을 선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밝은 군주가 사람을 임용함은 마치 뛰어난 목공이 나무를 만드는 것과 같다. 곧은 것은 수레의 채장을 만들고 굽은 것은 바퀴를 만들며 긴 것은 들보(棟梁)를 만들고 짧은 것은 기각(栱角)을 만든다. 굽건 곧건 길건 짧건 모두 각각 쓸 곳이 있으니 밝은 군주가 사람을 임용하는 것 역시 이와 같다. 지혜로운 자는 그 지모(智謀)를 취하고 어리석은 자는 그 힘을 취하며 용감한 자는 그 위엄을 취하고 겁이 많은 자는 그 신중함을 취하니 지혜롭건 어리석건 용감하건 겁이 많건 모두 쓸 곳이 있다. 그러므로 훌륭한 목수는 버리는 재목이 없고 밝은 군주는 버리는 인재가 없다. 한 가지 악(惡) 때문에 그 선(善)을 잊지 않으며 작은 흠 때문에 그 공(功)을 가리지 말아야 한다.”
“임금이 아랫사람을 제어해 극(極)을 통괄하고 때를 다스림에 홀로 방촌(方寸)의 마음만을 움직여 구주(九州)를 포괄하려 하면서 여러 사람의 힘에 의지하지 않는다면 어찌 성공할 수 있겠는가? 반드시 직무를 명확히 하고 능력을 가려 인재를 선택해 복록을 나눠야 한다. 제대로 된 사람을 얻으면 풍속이 행해져 교화가 널리 퍼질 것이며 그 쓰임을 잃으면 교화를 망치고 사람을 해칠 것이다. 그러므로 즉철(則哲 사람을 알아보는 것)이 오직 어렵다고 하는 것이니 진실로 신중해야 한다!”
《납간(納諫)》과 《거참(去讒)》 두 편에서는 군왕이 마땅히 마음을 비우고 간언을 받아들여야 함을 말했다. 신하들이 진실한 말을 하도록 격려하고 충신을 가까이 하며 아첨꾼을 멀리해 충정(忠正)한 기풍을 선양함으로써 충성스런 자는 그 마음을 다하게 하고 지혜로운 자는 그 꾀를 다하게 해야 한다.
“무릇 왕(王)은 (구중궁궐) 깊은 곳에서 높이 살기 때문에 (일반 백성들과 단절되어) 듣는 것이 부족하고 보는 것이 막혀 있다. 허물이 있어도 듣지 못할까 두렵고 빠뜨린 게 있어도 보충하지 못할까 두렵다. 때문에 우임금은 도(鞀 작은 북)를 두고 순임금은 방목(謗木)을 설치해 백성들이 소송하거나 비판할 수 있게 하여 올바른 의견과 계책을 낼 수 있게 했으며, 마음을 비우고 귀를 기울여 충성스럽고 바른 말을 기다렸다. 만약 그 말이 옳으면 비록 노복이나 나무꾼처럼 천한 자라도 오히려 버려서는 안 되며, 말이 그르다면 비록 왕후(王侯)나 경상(卿相)과 같은 귀한 자라도 절대 용납해서는 안 된다. 그 뜻이 볼만하다면 그 말을 잘하지 못한다고 탓하지 말며 그 이치가 쓸만하다면 그 글에 문채가 나지 않는다고 탓하지 말아야 한다.”
“무릇 참소하고 아첨하는 무리들은 나라의 해충이자 적이다.”
“임금이 밝아지고자 해도 아첨하는 자들이 가린다.”
“몸을 닦고 행실을 연마함에 충언(忠言)보다 나은 게 없고, 덕을 망치고 바름을 잃음에 참언과 아첨보다 더한 게 없다.”
“밝은 왕이 간언을 받아들임은 병에 걸려 쓴 약을 먹으면 병을 없앨 수 있는 것과 같고, 어리석은 군주가 아첨을 따름은 짐독의 단맛이 목숨을 앗아가는 것과 같다. 어찌 경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어찌 경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계영(誡盈)》과 《숭검(崇儉)》 두 편에서는 군왕은 마땅히 수신양성(修身養性)하고 사치를 경계하고 검소해야 하며 그 덕화를 두텁게 하여 백성들의 풍속이 순박한 세상을 만들어야 함을 논술했다.
“무릇 임금된 자는 검약으로 성(性)을 기르고 고요함으로 몸을 닦아야 한다. 검약하면 백성을 힘들게 하지 않고 고요하면 아랫사람을 어지럽히지 않는다. 백성이 힘들면 원망이 일어나고 아랫사람이 어지러우면 정사(政事)가 괴리된다.”
“무릇 성세(聖世)의 군주는 절약과 검소함에서 존립한다. 부귀의 광대함은 검약으로 지키고 예지와 총명은 우직함으로 지킨다. 나의 신분이 존귀하다 하여 남에게 교만해선 안 되며 나의 덕이 두텁다 하여 남에게 오만해선 안 된다.”
“사치와 검약은 사람이 스스로 정하니 편안함과 위태로움은 자신에게 달렸다. 다섯 관문(오관)을 닫아 욕심을 줄이면 아름다운 운명이 오랫동안 지속되고, 온갖 욕심이 안을 공격하면 재앙의 근원이 밖으로 드러난다.”
《상벌(賞罰)》과 《무농(務農)》 두 편에서는 군왕은 마땅히 자비와 위엄을 동시에 갖추고 상벌을 분명히 해서 선(善)을 발양하고 악(惡)을 억눌러야 함을 말했다. 또 농업과 방직을 권장해 백성들이 근본으로 돌아가게 하여 풍속이 순박한 곳으로 돌아가게 해야함을 말했다.
“무릇 하늘이 물건을 기름은 군주가 무리를 제어하는 것과 같다. 하늘은 추위더위를 덕으로 삼고 군주는 어진 사랑을 마음으로 한다.”
“형벌을 드러내 위엄을 보이고 상을 분명히 하여 교화한다. 위엄이 서면 악한 사람이 두려워하고 교화가 행해지면 선한 사람이 격려 받는다.”
“대저 사람은 음식을 하늘로 삼으니 농업은 정치의 근본이 된다. 창고가 충실하면 예절을 알고 옷과 음식이 풍족하면 염치를 안다.”
“이는 겉치레를 엄금하고 농사와 방직을 권장해 사람들을 기본으로 돌아가게 하고 순박한 풍속을 되돌리는 것만 못하다. 이렇게 하면 사람들이 앞을 다퉈 인의(仁義)의 마음을 품고 영원히 탐욕의 길을 끊을 것이니 이것이 농사에 힘쓰게 하는 근본이다.”
《열무(閱武)》와 《숭문(崇文)》 두 편은 문무(文武) 두 도(道)의 공은 어느 하나도 폐지할 수 없음을 말했다.
“무릇 병기와 갑옷은 나라의 흉기(凶器)다. 땅이 비록 넓더라도 전쟁을 좋아하면 백성이 지치게 되며 나라가 비록 편안하더라도 전쟁을 자주 하면 백성이 위태롭게 된다.”
“대체로 공이 이뤄지면 음악(樂)을 만들고 정치가 안정되면 예(禮)를 제정한다. 예악(禮樂)의 흥성은 유가(儒家)를 근본으로 삼는다. 풍속을 넓히고 이끎에 문(文)보다 나은 게 없고 가르침을 넓히고 사람을 이끎에 학문보다 좋은 게 없다.”
“만약 땅 끝까지 한숨이 날 정도에 이르면 성패는 기세에서 정해지고, 거대한 파도가 하늘에 닿을 정도에 이르면 흥망은 한차례 전투에서 결정된다. 이때에 이르면 무기를 귀하게 여리고 학교를 천시하게 마련이다. 또 천하가 이미 편안해지고 파도와 먼지가 가라앉으면 무덕의 나남은 위엄을 버리고 문치(九功)의 큰 교화를 펼치게 된다. 이때에 이르면 무력을 경시하고 시서(詩書)를 중시한다. 그러므로 문과 무 두 길은 어느 것도 버릴 수 없으며 시기에 따라 우열이 있고 각자 마땅함이 있는 것이다. 그러니 무사(武士)와 유자를 어찌 폐기할 수 있겠는가?”
《제범후서(帝範後序)》에서 당태종은 거듭해서 이 12가지는 제왕의 대강(大綱)이며 선을 닦고 덕을 기르는 것이 근본임을 강조했다.
“이상 열두 가지는 제왕의 대강이다. 나라의 안위와 흥폐가 모두 여기에 달려 있다.”
“나는 창생을 구제하고 양육했으니 이로운 일을 많이 했고 천하를 평정하는 큰 공을 세웠다. 이익은 많고 손실이 적으니 사람들이 원망하지 않았고, 공은 크고 허물이 적어서 덕이 다 손상되진 않았다. 하지만 진선진미(盡善盡美)한 자취 및 도(道)와 비교해 돌아본다면 실로 부끄러울 따름이다. 하물며 너는 작은 공조차 세우지 못했으면서 조상의 인연으로 제위에 오르지 않았느냐? 만약 선(善)을 숭상하고 덕을 넓힌다면 나라는 태평하고 몸이 편안하겠지만, 정욕을 멋대로 하고 잘못을 따른다면 나라는 기울고 몸이 망가질 것이다. 이루기는 느려도 패망하긴 빠른 것이 나라의 기업이요, 잃기는 쉽지만 얻기는 어려운 것이 천자의 지위이니 두렵고 조심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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