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탄진(撣塵)
【정견망】
4. 《서유기》에 담긴 우의와 의미
《서유기》의 구조배치는 홍대(洪大)하면서도 근엄하다. 개편(1회 첫부분)은 반고(盤古)가 천지를 개벽하고 삼황오제(三皇五帝)가 세상을 다스린 데서 시작한다. 주체는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하나는 손오공을 주체로 한 앞 7개의 장이고 다른 하나는 취경(取經)이 주체가 된다. 결론은 당승 사도 다섯이 각각 과위를 얻고 제천(諸天)과 부처 및 보살을 공경하고 찬송하는 것으로 끝난다.
《서유기》 중의 일부 단어에 담긴 우의는 상당히 깊다. 하지만 오직 수련의 각도에서 봐야만 그 단서를 볼 수 있을 뿐 일부는 아주 깊이 감춰져 있다. 예를 들어, 보리조사는 손오공에게 삼재(三災)를 피하는 변화법을 가르쳐주면서 3개의 오백년을 말한다. 다시 말해 1천 5백 년이다. 여기에 손오공의 변화수가 72를 곱하면 바로 10만 8천이 되는데 당승이 취경한 거리가 된다. 만약 가장 큰 양수인 9(사물이 극에 달하면 변화하기 때문에 9가 가장 큰 양수가 된다.)를 곱하면 1만 3천 5백이 되며 바로 여의봉의 무게가 된다. 이것은 또 ‘난경(難經)’에서 말하는 사람이 하루에 호흡하는 수가 1만 3천 5백 번이라는 내용과 암암리에 부합한다.
당승은 취경 도중 81난을 만나는데 영산(靈山)에 이르러 난(難)이 하나 부족했기 때문에 보충해야 했다. 또 취경 기간은 총 14년이 걸렸는데 1년을 360(주천 도수)일로 계산하면 5040일이 된다. 이것은 당승이 가져가는 불경의 수 5048보다 8이 부족하기 때문에 8일을 보충해야 했다. 그런데 이 경전의 수는 또 저팔계와 사오정이 지닌 무기의 무게(5048근)와 일치한다.
말이 나온 김에 당승이 나중에 보충한 이 하나의 난에 대해 작가는 일찍부터 복선을 깔아놓았다. 겉으로 보면 늙은 자라가 당승에게 자신이 언제쯤 껍질을 벗고 사람 몸을 얻을 수 있게 되는지 물어보지만 사실 당승은 이미 사람 몸(人身)을 벗고 불체(佛體)를 얻은 것을 표현한 것이다.
또 이 난은 바로 당승이 겪은 10만 8천리의 절반에 해당하는데 다시 말해 사람의 백회혈이 있는 곳이자 사람의 니환궁이 있는 곳이다. 니환은 수련계에서 사람의 원신이 머무는 곳으로 간주된다.
그들이 이곳에서 진관보(陳關保)와 일칭금(一秤金)을 구하는데 여기에 담긴 우의는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마을 사람의 성씨가 진(陳)씨로 당승과 동성인 것은 반본귀진(返本歸真)으로 볼 수 있고 당시 노정의 절반을 지났기 때문에 차녀와 영아로 대표되는 음양이 바로 화합할 시기가 된다. 남자인 진관보는 7세이고 여아인 일칭금은 8세이니 둘을 합하면 15가 되고 1칭(30근)의 절반이 된다.
여기서 관보란 니환을 닫고 보호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누구를 보호하는가? 당연히 일칭금이다. 불교에서는 ‘장육금신(丈六金身)’을 부처님의 삼신(三身) 중 하나로 보는데 부처님의 변화한 몸 중에서 작은 몸이다. 또 전진도(全真道 중국 도교의 일파) 수련 중에 이런 금단구결이 있다.
안에 금단 16냥이 있으니서남방 곤(坤)의 지역으로 보낸다.누가 이 물건이 환단인 줄 알리오오직 니환궁 안에서 기를 뿐이라네.
內有金丹十六兩送在西南坤地上誰知此物是還丹只在泥丸宮裏養
여기서 1냥을 한 자(尺)로 계산하면 금단이 바로 금신(金身)을 가리킨다. 여기서 일칭금이 가리키는 것은 당승이 수련성취된 후의 금신이다.
당승이 애초 경을 얻으러 가면서 통천하(通天河)를 지날 때 요마(妖魔)가 통천하를 얼리고 당승을 사로잡는다. 팔계는 당승에게 “삼장이라 부르지 마시고 진도저(陳到底 강바닥으로 가라앉았다는 뜻. 陳은 沈과 발음이 비슷하다)로 바꿔 불러주시오.”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당승이 대체 어디로 가라앉았다는 말일까? 책에서 ‘자라저택(水黿之第)’이라 한 것은 사실 바로 사람의 니환이다.
니환의 위치는 백회혈 아래 대뇌 속으로 조규(祖竅)라고도 하며 현대의학에서는 송과체로 인식한다. 이번에 늙은 자라가 당승을 물속에 떨어뜨렸을 때 당승은 이미 도를 얻은 몸이기 때문에 공중으로 떠오를 수 있었다.
이외에도 우리는 자라의 수명을 통해서도 당승과의 관계를 엿볼 수 있다. 자라가 당승에게 자신의 신세를 말하면서 “1천 3백여 년을 수행했다”고 한다. 여기서 1천 3백여 년은 당승이 취경 할 때부터 석가모니가 법을 전하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 시간이 되며 당연히 수보리 또는 금선자가 세상에 있던 시대다.
그렇다면 이 늙은 자라는 누구일까? 그것은 사람 육신의 일부분으로 오행으로 구성된 물질에 불과하며 다시 말해 인간세상에서 금선자를 싣는 몸이다. 책에서는 늙은 자라를 이용해 당승의 본래 면목을 말하는데 다시 말해 환원(還元)이란 뜻이다. 이것은 또 책에 나오는 시와도 뜻이 통한다.
불이법문 중의 법은 오묘하고 현묘하니온갖 마귀 싸워 물리치고 사람과 하늘을 알게 되었네.본래 면목이 이제야 드러나니일체의 원인이 비로소 완전해졌구나.삼승을 받들어 증명하고 마음대로 드나드니구전단을 이루어 내키는 대로 대응할 수 있게 되었네.봇짐 지고 지팡이 날린 이야길랑 모두 그만 두어라다행히 근원으로 돌아가 늙은 자라를 만났네.
不二門中法奧玄諸魔戰退識人天本來面目今方見一體原因始得全秉證三乘隨出入丹成九轉任周旋挑包飛杖通休講
幸喜還元遇老黿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은 흔히 《심경(心經 또는 반야심경)》 불교 수련 중의 경전이다. 당초 오소(烏巢)선사가 당승에게 전수해줄 때는 오히려 《다심경(多心經 역주: 집착심이 남아 사람의 마음이 너무 많다는 의미)》이었는데 나중에 당승이 마난을 만나 자신의 마음속에 집착이 있을 때 외운 것을 비록 《심경》이라 하지만 작가가 쓸 때는 오히려 모두 《다심경》이라 했다.
가령 20회 황풍령에서 난을 당할 때 삼장은 전전긍긍하면서 입으로 《다심경》을 외울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마음이 이렇게 두려우니 당승이 외운 것 역시 《다심경》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나중에 천축에 도착한 후 당승의 집착심이 이미 기본적으로 깨끗해지자 작가는 이때서야 비로소 당승이 외운 것을 《심경》이라 했다.
이를 통해 《서유기》를 창작할 때 몹시 근엄했으며 절대 아무런 근거 없이 멋대로 지어낸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줄거리의 배치와 사용한 용어는 물론이고 인물의 형상을 만들어낸 것도 마찬가지다. 당승 사도의 이미지는 많은 이들이 아주 좋아하는데 크게 인심을 얻었다. 사실 작가가 써낸 것은 사람의 공통성인데 다시 말해 사람의 순결한 심리와 성정이다.
손오공의 몸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총명, 활발, 기지, 장난기가 넘치면서도 아무런 구속도 받지 않는 심리 및 동경을 볼 수 있다. 또 팔계의 몸에서는 나태, 질투, 탐욕, 우둔하면서도 귀여운 일면을 보며 사오정의 몸에서는 착실하고 원망하지 않으며 인내하는 깨끗한 일면을 볼 수 있다. 당승으로부터는 진리를 찾기 위해 영원히 포기하지 않는 견정함을 볼 수 있다.
한 부의 장편소설로서 작가가 묘사한 주요인물은 비록 많지 않지만 오히려 사람의 공통성을 표현해 심리적인 공명을 얻고 있다. 물론 신선의 특징에 대한 작가의 묘사와 각양각색의 요마귀괴(妖魔鬼怪)에 대한 묘사 역시 모두 독창적이며, 천궁(天宮)의 아름답고 수승하며 장려함 및 지옥와 요마 동부(洞府)의 묘사 역시 사람들에게 진실로 믿을 수 있게 한다.
이런 것들은 모두 쉽지 않은 것으로 사람들에게 무한한 상상력의 공간과 감수를 주면서 천국세계의 존재를 확실히 느낄 수 있게 해준다. 물론 이 역시 작가가 다른 공간의 진실한 체현을 써냈기 때문에 비로소 이런 작용을 일으킬 수 있었다.
책에 나오는 매 하나의 형상에는 모두 수련의 내함이 담겨져 있다. 설사 작은 요괴일지라도 수련자의 염두를 체현하지 않음이 없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서유기》를 보게 되면, 원작을 변화시킨 영화, 드라마, 평론, 이야기 등을 포함해서 모두 이런 수련의 요소가 자신의 사상의식 깊은 곳에 녹아 들어가게 된다. 그러므로 중국인에 대해 말하자면 수련, 신불(神佛), 신통, 법신, 법기, 천국, 용궁, 지옥, 요마 등을 언급하게 되면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모두 대응하는 내함이 있는데 이런 것들은 또 모두 긍정적인 이미지를 갖는다.
이는 백사(白蛇) 이야기에서 등장하는 법해(法海)와는 다르다. 백사전 이야기는 본래 수련의 내함을 지닌 정면적인 전설이지만 일부 사람들에 의해 완전히 시비가 전도되어 일종의 멜로극으로 변해버렸다.
반면, 세인들이 흥미진진하게 《서유기》를 보거나 듣거나 또는 말할 때면 수련의 요소가 이미 암암리에 사람들의 사상인식 속에 주입된다. 그러므로 이런 각도에서 보자면 수련문화를 보급하는 방면에서 《서유기》는 정말로 막대한 기여를 한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에는 또 어떤 좋은 점이 있는가? 진정한 수련인이라면 다 알다시피 사람이 세상에 온 것은 사람이 되기 위함이 아니며 반본귀진하기 위함이다. 이는 세계의 각종 종교에서도 모두 이렇게 말한다. 특히 중국전통 문화 속에서 수련의 요소는 없는 곳이 없다고 할 수 있다. 사람의 진정한 고향은 인간 세상에 있지 않으며 각기 다른 천국에 있다. 사람이 세간에 존재함은 바로 정법(正法)을 얻어 돌아가고 이를 통해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나려는 것이다.
이 점은 《서유기》에도 체현되어 있다. 예를 들면 64회에서 당승은 “사람 몸은 얻기 어렵고 중토에서 태어나기 어려우며 정법을 만나기란 정말 어렵다. 이 세 가지를 다 갖출 수 있다면 정말 말할 수 없는 큰 행운이라 할 수 있다.”라고 말한다.
또 91회에서는 천축의 한 화상이 당승이 중화에서 왔다는 말을 듣자 곧장 몸을 엎드려 절을 올리고는 합장하며 말한다. “선을 따르는 이곳 사람들은 모두 불경을 읽고 염불하면서 도를 닦아 다음 생에 중화 땅에 태어나기만을 바라고 있습니다.”
아주 오래고 먼 역사의 전설 속에서 동토(東土)는 세인들이 동경하던 곳이다. 당시 동토의 문명은 세계 각지의 사람을 흡인했을 뿐만 아니라 “인류가 말법(末法)말겁(末劫) 시기에 처할 때 전륜성왕이 미륵불(彌勒佛)의 형상으로 동토에서 정법을 전해 세인을 구하실 것이다.”라는 예언이 전해졌다.
《서유기》에도 이런 내용이 비유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책에서 미륵불은 동쪽에서 오신 부처님(東來佛祖)으로 불린다. 또한 미륵불이 황미요괴를 거둘 때 손오공에게 요정이 사용하는 탑포와 보패가 바로 자신의 ‘인종대(人種袋)’라고 말한다. 이 내용은 이미 앞에서 언급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 인종대란 또 어떤 문제를 설명하는가? 미륵불이 인간세상에 내려와 사람을 구도하기 때문에 반드시 인류와 이런저런 연계를 맺어야 한다. 불가에서는 이런 연계를 가리켜 연분(緣份)이라 한다.
만약 이런 연분이 없다면 말법말겁 시기에 연분이 없는 사람은 구도 받을 수 없다. 수련계의 사람이 말하기를 미륵불이 세간에 오신 역사는 이미 아득히 먼 몇 기 인류문명의 역사를 거쳤다고 한다. 이번 기의 인류문명이 시작될 초기에 그는 이미 인간 세상에 오셨다. 그 후 다양한 신분으로 각기 다른 지역 다른 시기에 전생해 세인들과 이런저런 연분을 맺으셨다. 목적은 바로 정법이 전해지는 시기에 연분이 있는 사람들이 정법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미륵불은 중국 역사 속에서 또 미래불(未來佛)로 불리는데 바로 미래에 인류를 구원하는 부처님이란 뜻이다. 심지어 어떤 미륵불 조각에는 18명의 어린아이들을 조각해 넣었는데 미래불이 장차 인간 세상에 오실 때 ‘이(李 역주: 十八子를 더하면 李가 된다)’씨 성으로 오시는 것을 암시한다.
사실 많은 종교계와 수련계 인사들 역시 현재 인류가 말법말법 시기에 처해 있음을 알고 있다. 인류의 도덕은 전례가 없을 정도로 패괴(敗壞)되었고 인심도 완전히 패괴되어 내려왔으며 아울러 중국은 또 무신론 정당이 집권하는 시기다. 이 당은 세인들을 잔혹하게 해치고 수련계 인사들에 대해 온갖 박해를 가하고 있다. 때문에 정법이 전해져 나온 후 필연적으로 이 정당의 박해를 받게 되었다. 물론 이는 모두 역사의 안배이다. 누가 이 역사시가에 정법을 얻고 이 시기를 지나갈 수 있다면 그는 진정으로 비할 바 없는 행운이다. 이에 대해 《서유기》에는 비록 명확히 드러내진 않았지만 은연 중에 이 점을 암시하고 있다.
사실 《서유기》 중에는 사람들이 드러내지 않은 또 다른 천기(天機)가 숨어 있다. 손오공이 도를 배울 때 조사는 이미 도(道)를 말하고 또 선(禪)을 말하는데 이 불(佛)과 도(道)는 함께 섞어서 닦을 수 없는 것이다. 한 사람에 대해 말하자면 그가 부처를 닦으면 부처를 닦는 것이고, 도를 닦으면 도를 닦는 것으로 절대 섞어서 수련할 수 없다. 왜냐하면 도가와 불가를 수련할 때 신체의 공능은 모두 자신만의 수련연화방식이 있기 때문인데 이런 것들은 모두 사부의 도움을 받아 연화하는 것이다.
가령 도가 수련에서는 대주천과 소주천을 강조하고 임독(任督) 두 맥과 손의 삼음삼양 및 다리의 삼음삼양을 가리킨다. 반면 불가에는 오히려 이렇게 가지 않는다. 밀종(密宗)의 중맥(中脈)을 말하자면 도가에서는 근본적으로 이런 설명이 없고 또 이 방면의 근거도 찾을 수 없는데 어떻게 이를 수련하겠는가? 하물며 석가모니불은 공(功)의 이런 부분을 아예 설명조차 하지 않았고 수련자는 심지어 신체마저 포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 역사상 확실히 일부 사람들은 유석도(儒釋道) 수련을 결합시키려 했다. 일부 사람은 무슨 도관(道冠)을 쓰고 불가의 가사를 입으며 유가의 신발을 신었지만 모두 성과를 이루지 못했으니 성불(成佛) 또는 도를 성취하지 못한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이는 다만 사람의 공리심(功利心)이 표현된 것에 불과하다. 유석도 삼가의 문화는 역사 발전 중에서 불가피하게 일부 융합될 수밖에 없었지만 진정으로 수련하는 사람은 한데 섞어 수련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서유기》에서는 어떻게 이 삼자(三者 유석도) 특히 불과 도를 융합해 하나로 창작할 수 있었을까? 이는 단순히 줄거리를 배치할 때 줄거리를 고려한 것만이 아니며 상당 부분 장래 전해질 우주대법(宇宙大法) 중에 불과 도가 포함됨을 예언한 것이다. 필자는 파룬궁을 수련하고 난 후에야 비로소 진정으로 《서유기》에서 말한 수련이야기가 파룬궁을 위해 아주 좋은 기초를 다져준 것임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문장 서두에서 수보리, 손오공, 당승이 사실은 한 몸이라고 했다. 우리가 은연중에 책에 감춰진 내용에 따라 검토해보면 손오공이 명심견성(明心見性)할 때 수보리는 그에게 도가의 수련내용을 가르쳐주었다. 이는 수보리가 불법(佛法)을 수련한 후 시종 도가의 것을 내려놓지 않았음을 설명한다. 그러므로 석가모니불이 설법할 때 소홀히 했고 바로 이것 때문에 하계로 떨어져 내려와 다시 수련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수보리는 왜 손오공에게 자신을 언급하지 말라고 했을까? 이는 그가 불제자(佛弟子)의 몸임에도 내심으로 여전히 도가의 것을 내려놓지 못하고 깊이 숨겨 드러내지 않으려 한 것이다.
여기서 또 하나의 문제가 나타나는데 석가모니불이 책임지는 것은 진정으로 수련하는 그 한 문의 불제자이며 수도하는 사람은 근본적으로 관할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왜 《서유기》의 당승 사도는 수련 성취할 수 있었을까? 도가에선 음양오행을 말하는데 금, 목, 수, 화, 토는 우주만물을 구성하는 기본요소이다. 불교에서는 사대(四大)를 말하는데 바로 지(地), 수(水), 화(火), 풍(風)으로 만사만물을 구성한다. 이처럼 불가와 도가는 수련 이론이 근본적으로 같지 않다.
이는 다만 한 가지 문제를 설명할 수 있는데 당승 사도의 수련과정을 안배한 것은 석가모니보다 더 높은 부처님이 이 모든 것을 배치하신 것이다. 다만 그분은 역사적으로 그 어떤 영향도 조성하지 않았기 때문에 말을 해도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에 석가모니불의 이름을 빌려 그들의 수련을 배치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각도에서 말하자면 수보리 조사가 자신이 수도한 신분을 은폐한 것은 다만 꺼리는 문제만이 아니다. 그는 기다리고 있는데 바로 진정한 우주대법이 전해질 때를 기다리면서 사람들이 그를 인식할 수 있도록 각별히 마음을 쓴 것이다. 그는 진정한 우주대법은 불도 양가의 수련을 포용할 수 있음을 알고 있었다. 속세에서 그의 수련과정은 바로 장래 정법을 위한 하나의 견증이 될 것이다. 그것은 바로 수도(修道)라도 좋고 수불(修佛)이라고 해도 좋은데 우주대법의 수련 중에서 모두 자신의 본질상 원래 지니고 있던 것을 남겨두고 진일보로 수련하여 자신의 생명본질의 선천(先天) 중으로 갈 수 있고 아울러 보다 높은 층차로 제고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당승이 마지막 한 난을 보충할 때 “다행히 근원으로 돌아가 늙은 자라를 만났네(幸喜還元遇老黿).”라고 한다. 이 속에 담긴 뜻은 바로 당승이 수련을 거쳐 그의 본원 중으로 돌아간 것을 말한다. 이 환원(還元)의 원(元)은 늙은 자라와 나이가 같고 단지 1천 3백여 년의 역사에 불과한데 다시 말해 금선자가 인간 세상에 내려올 때의 본원이다. 왜냐하면 그가 처음 인간 세상에 왔을 때의 본성의 상태로 돌아갔기 때문에 당연히 수련원만한 것으로 다시 말해 불교 중에서 말하는 견성성불(見性成佛)을 한 것이다.
리훙쯔 선생님은 《2007년 뉴욕법회 설법》에서 말씀하셨다.
“당신이 사람 이곳에 오기만 하면 누구도 하늘로 올라갈 수 없었다. 이것은 절대적인 것으로 하늘로 올라갈 수 있는 사람이 없다.”
“다시 말해서 누가 삼계로 진입했고 누가 사람 여기로 왔다면, 바로 떨어져 내려온 것으로 다시는 올라갈 수 없었다. 왜냐하면 과거 인류에게는 사람으로 하여금 하늘로 되돌아갈 수 있게 하는 진법(眞法)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높은 층차의 생명이 인간 세상에 와야 했을까? 그는 기다리는 것으로 우주대법이 전해질 때를 기다려 다시 인간 세상에 와서 우주대법에 따라 다시 수련하려는 것이다. 오직 이렇게 해야만 그는 비로소 삼계를 벗어나 그의 세계로 돌아갈 수 있다. 이것은 바로 당승이 “사람 몸은 얻기 어렵고 중토에서 태어나기 어려우며 정법을 만나기란 정말 어렵다. 이 세 가지를 다 갖출 수 있다면 정말 말할 수 없는 큰 행운이라 할 수 있다.”는 말과 부합한다.
당승은 사람 몸을 얻었고 또 중토에 태어났는데 왜 다시 서천에 경을 얻으러 가야 했을까? 분명한 것은 그때는 우주정법이 아직 전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당승 사도는 현재 어디에 있을까? 천목 층차가 아주 높은 한 수련인에 따르면 이들은 현재 모두 파룬따파 속에 있다.
사람들은 단번에 이런 설명을 받아들이기는 힘들 것이다. 사실 우리가 각도를 바꿔 생각해보면 곧 분명해지는데 석가모니불도 말한 적이 있다시피 수련계에는 팔만 사천 법문이 있다. 중국에서는 많은 불가대법이 역대로 민간에서 단독으로 전해져왔고 당연히 석가모니보다 높은 부처님도 셀 수 없이 많다. 이 역시 《서유기》에 감춰져 있지만 함부로 드러낼 수 없는 또 하나의 비밀이다.
《서유기》의 구조는 아주 홍대하며 개막편에서 하늘, 땅과 사람의 유래를 말한다. 또 “천지의 수는 12만 9천 6백년을 일원(一元)으로 한다”고 말한다. 천지인의 형성과 출현 역시 몇 만 년의 역사에 불과하다. 그러나 책에서 옥황상제를 말할 때 1천 7백 50겁을 지내왔다고 한다. 또 한 겁은 바로 12만 9천 6백년이라고 말한다. 분명한 것은 옥황상제는 천지에 앞서 존재했다는 것이다.
《서유기》에서는 보리 조사 역시 “역겁(歷劫)에 마음을 밝힌 대법사”라고 칭한다. 또한 그가 몇 겁을 지나왔는지 말하지 않았으니 그가 여러 차례 천지인(天地人)의 생성과 훼멸을 거쳐 왔다는 의미가 된다. 다시 말해서 이는 보리조사가 천지에 앞서 존재했음을 말한다. 사실 세계의 수많은 정교에서도 신이 세상을 개창했다고 하는데 사람은 신이 만든 것이다. 사람을 만든 목적은 상계(上界)의 신이 인간 세상에 내려와 그의 죄업을 갚는 동시에 우주대법이 우주의 가장 낮은 층인 인간세상에서 전해질 때를 기다려 정법에 동화할 수 있는 기연(機緣)을 얻어 그가 대표하는 천체의 중생이 우주 정법 중에서 구도 받게 하려는 것이다.
세간에서 사람은 부모에 의지해 태어나지만 이것은 다만 신이 사람에게 설정한 하나의 존재와그것이 번식하는 방식에 불과하다. 신이 인간 세상에 온다 해도 단지 이런 방식으로만 존재할 수 있을 뿐이다. 손오공이 돌 원숭이가 화생(化生)하는 방식으로 태어남은 세인들에게 사람은 선천적으로 영통하며 사람의 선천본성은 우주와 일치함을 알려주려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의 선천(先天)은 무엇일까? 어떻게 묘사해도 똑똑히 묘사할 수 없다. 수보리 조사를 말하자면 그는 여러 겁을 거친 대법사로 인간 세상에 오기 전부터 이미 존재해왔다. 그러나 이런 고급 생명이 인간 세상에 올 때도 마찬가지로 사람의 모습으로 출현하는 것이다.
《서유기》를 창작할 때 필요한 사람의 선천본성은 또 반드시 사람이 받아들일 수 있는 생명의 형식이 있어야 하며 또한 사람이 받아들일 수 있는 출세(出世)방법으로 세간에 나타나야만 했다. 이것이 바로 손오공이 선석(仙石)에서 생겨난 유래이다.
우리 오늘날 세인에 대해 말하자면 많은 이들이 몇 차례나 윤회 전생했는 지 알 수 없다. 어쩌면 당신의 생명내원 역시 보다 높은 층차에서 온 생명일 것이며 인간 세상에 내려온 목적은 당초 오직 하나였을 텐데 바로 우주대법을 얻기 위함이다. 그러나 인간세상에서 아득히 긴 윤회 중에서 이미 길을 잃어버렸다. 인류가 길을 잃지 않게 하려는 이것이 바로 《서유기》가 세상에 나온 한 가지 목적이다. 그것은 세인에게 우주대법이 세간에서 전해질 때 사람의 본성을 열 수 있는 기회를 남겨주었고 우주대법이 세간에서 널리 전해지는데 기초를 다지는 작용을 했다.
《전법륜(轉法輪)》에서는 “사람들은 말한다. “나는 여기 속인사회에 와서, 마치 여관에 투숙하듯이 며칠 좀 묵었다가 총총히 간다.” 일부 사람들은 바로 이곳에 미련을 두고 자신의 집을 잊어버렸다.”라고 말한다.
《서유기》에서 보리조사에 대한 묘사는 사실 사람의 본성을 재현한 것이다.
텅 빈 자연스러움으로 변화를 따르고진여의 본성을 마음대로 나타내 보이네.하늘과 수명을 나란히 하는 장엄한 몸역겁의 시간을 겪으며 마음 밝힌 대법사로다.
空寂自然隨變化真如本性任爲之與天同壽莊嚴體曆劫明心大法師
진정으로 도를 얻은 사람은 본성과 신체가 완전히 합일(合一)한 것이다.
여기까지 말하고 나니 또 하나의 문제가 아주 분명해지는데 그것은 바로 옥황상제와 손오공, 보리조사, 당승의 관계다. 자기 몸의 수련이란 각도에서 말하자면 그들은 일체(一體)이다. 왜냐하면 옥황상제는 일신(一身)을 주재하는데 그것이 당승과 또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이렇게 본다면 보리조사가 겪은 겁수 역시 옥황상제와 마찬가지로 1천 7백 50겁이 된다. 이것은 우리가 개인수련의 각도에서 말한 것이다.
그러나 전체 인류에 대해 말하자면 삼계는 존재하는 것이며 천궁 역시 존재하고 삼계 내의 옥황상제와 손오공 개인수련 중의 옥황상제는 같이 볼 수 없다. 개인수련 중의 옥황상제는 실제라도 좋고 허구라도 좋은데 많은 것은 형상화된 비유이다.
《서유기》의 이런 처리는 예술로 도(道)를 표현하고 교화하는 각도에서 고려한 것이다. 그러나 삼계의 천궁과 옥황상제 및 여러 신들은 진실로 존재하는 것이며 《서유기》에서는 개인수련의 각도에서 이를 차용한 것이다. 그러나 만약 개인수련의 각도에서 보지 않는다면 천국의 빼어난 경치와 여러 신, 불, 보살 등 역시 모두 독립적으로 존재한다.
중국문화는 신전문화(神傳文化)라 겉으로 보면 역사처럼 보이는 안배 속에도 수많은 하늘의 뜻이 담겨져 있다! 가령 우리 중국은 남섬부주에 속하는데 남방은 오행에서 화(火)에 대응한다. 오행이론에 따르면 화는 목(木)의 소생으로 다시 말하면 목(木)의 아들(子)이 된다. 이를 합하면 木+子=李가 된다. 앞에서 우리가 언급했던 미륵불이 세상에서 정법을 전할 때의 성씨와 완전히 일치한다. 또한 당조(唐朝)에서 당승이 경을 가져다 바친 인물인 당태종 이세민(李世民)의 이름에도 이런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
세인들이 《서유기》를 받아들이는 데는 그 어떤 장애도 없다. 필자가 파룬궁이란 이 수련 단체을 생각해보면 안에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다 있는데 대학교수에서부터 정부 고위관리, 사업가, 노동자, 농민, 목동 및 심지어 글을 모르는 노인에 이르기까지 모두 리훙쯔 선생님이 말씀하신 법리를 받아들이는데 아무런 장애도 없었다. 파룬따파 중에는 확실히 도가(道家)의 것이 있는데 도가의 경맥, 음양, 오행 등은 모두 긍정적이다. 파룬따파는 불가를 위주로 하는 공법이지만 안에는 근본적으로 불교의 사대를 언급하지 않는다. 이점은 《서유기》와 일치한다.
아울러 파룬따파 수련자들이 만든 션윈예술단(神韻藝術團)은 ‘세계 제일의 쇼’로 불리는데 연속 몇 년간 《서유기》에서 소재를 가져왔다. 2012년 ‘금후출세(金猴出世)’에서 손오공을 잡은 손바닥의 부처님 형상이 바로 파룬궁 창시인 리훙쯔 선생님의 모습이었다. 이속에 담긴 함의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2014년 션윈공연의 개막작은 더욱 큰 감동을 주며 사람 생명 본성에 대해 보다 큰 계발을 주었다. 천국 중에서 창세주(創世主)께서 대궁의 정상에서 말씀하시길 “누가 나를 따라 세상에 내려가 정법 하고자 하는가?(誰願隨我下世正法?)”라고 한다. 아울러 궁우(穹宇)의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낮은 곳에 이르기까지 층층에 하늘사다리가 깔리고 세간에 가장 가까운 한 층에는 바로 4개의 글자 지수화풍(地水火風)이 있었다. 이는 창세주께서 인간 세상에 내려오실 때 이미 장차 법을 얻을 수 있는 기초를 다져 놓으셨으며 역사의 일체는 모두 창세주께서 세상에 내려와 인류가 장래 회귀하기 위한 준비를 위한 것임을 설명한다.
지수화풍은 불교에서 말하는 세계를 구성하는 기본물질이다. 불교가 중국에 전해진 것은 바로 동한(東漢) 초기였다. 션윈 무대에서는 신불이 세상에 내려와 사람으로 전생하는데 사람들이 노래와 춤을 출 때 환영하는 깃발 위에 적힌 글자가 바로 ‘한(漢)’인데 이는 한조(漢朝)를 설명한다.
‘이 노래는 진실이라네(這是真音)’를 완창한 후 이어지는 무용은 ‘한풍기려(漢風綺麗 아름다운 한나라 풍)’이었다. 《서유기》에 대한 우리의 해석과 대조해보고 불교가 중국에 전래된 역사와 결합해보면 10세 전생한 금선자의 최초 전생은 바로 불교가 중국에 전입할 때였다.
이처럼 《서유기》의 오묘함은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다. 얼마나 많은 천국의 중생이 오늘날 대법이 널리 전해지게 하기 위해 아득히 멀고 오래 전부터 기초를 다져왔겠는가!
여기서 다시 한 번 ‘이 노래는 진실이라네’의 가사를 음미해보자.
“나는 모른다네 당신이 누구인지를당신이 어느 곳에 있든지나는 안다네 세상 사람 다수가 천상에서 왔음을창세주(創世主)를 기다리기 위해서라네죄업을 없애야만 다시 천당으로 돌아갈 수 있나니신불(神佛)이 세상에 오면 필히 마(魔)가 날뛰리라붉은 마귀의 거짓말 믿지 말지니당신이 신성한 인연을 잇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라네어서 빨리 대법제자를 찾아 진상(眞相)을 알아보시라그것은 당신이 천만년을 기다린 것그것은 당신의 마지막 희망”
이 가사는 바로 사람의 심령 깊은 곳에 묻힌 불성(佛性)을 열어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리훙쯔 선생님의 저서 《전법륜》의 한 단락 법이 당신의 미혹을 타파해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공을 연마(煉)함은 무척 커서 전체 우주를 연마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여러분, 생각해 보라. 이 우주 중에는 양 대가(兩大家), 불(佛)ㆍ도(道) 양 대가가 있는데, 어느 한 가(家)를 배제해도 완정(完整)한 우주를 구성할 수 없으며, 모두 완정한 우주라고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 여기에 도가의 것이 있다.”
(전체 문장 완결)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1281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