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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천상의 전생이야기 (하)

글/ 앙악(仰嶽)

1140년 봄날이 지나자 금나라 군사들이 전면적인 남침을 개시했다. 악비(岳飛)는 십만 악가군(岳家軍)을 이끌고 황하를 건너 파죽지세로 진격했다. 금군 사령관 금올출(金兀朮 역주: 원래 이름은 완안종필完颜宗弼이며 금나라를 개국한 아골타의 넷째아들이자 개국공신이다)은 최강 전력을 자랑하던 기병부대 괴자마(拐子馬)와 철부도(鐵浮圖)를 필두로 언성(郾城)을 침범했다. 하지만 악가군의 공격을 받고 훼멸적인 타격을 받았다.

이 전투에서 패배한 후 금올출은 다시 각 지역의 병력을 총동원해 영창부(潁昌府)에서 악가군과 다시 결전을 벌였다. 이때 악가군의 용장(勇將) 양재흥(楊再興 양연소의 현손)은 악비의 명령을 받아 약 3백의 경기병(輕騎兵)을 이끌고 적정을 정찰하고 있었다. 그러다 소상교(小商橋 언성 외곽 소상하小商河에 놓인 다리) 부근에서 금올출 휘하의 10만이 넘는 대군을 발견했다. 양장군은 두 부하에게 즉시 돌아가 적정을 알리라고 했다.

하지만 두 부하가 동료들을 남겨둔 채 자신들만 떠나려 하지 않자 양재흥이 말했다.

“왕원(王元)! 자네는 나를 따른 지 가장 오래되었으니 내 결심에 대해 잘 알걸세! 나의 선조였던 양연소(楊延昭) 장군은 양가장(楊家將) 병사들을 이끌고 국경의 관문을 지키면서 백년간 강산을 지키셨고 인간 세상에 ‘충(忠)’이란 한 글자를 남기셨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조정의 기강이 어지러워자 숙부 양지(楊志)는 불행히도 초적(草賊)으로 전락해 살아갔고 나 역시 일시적인 어리석음에 도적과 한패가 되어 난을 일으켰으니 선조들의 위명(威名)을 대할 면목이 없었네. 다행히 악(岳) 원수께서 내게 다시 태어날 기회를 주셨으니 나는 이번 전투에서 다시 살아서 돌아갈 생각이 없네. 오직 내 손에 쥔 이 양가(楊家)의 보도(寶刀)로 금올출의 머리를 베어 양가장의 위명에 부끄럽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네. 다만 한가지 두려운 게 있다면 죽은 후 미래에 어느 곳에 떨어질지 모른다는 것일세. 왕원! 나는 그대가 수도인임을 알고 있네. 그대는 내가 죽은 후 반드시 나를 찾아내어 내가 일찍이 영광스런 양가장과 악가군의 일원이었음을 잊지 않도록 해주게나.”

양재흥은 이 말을 마친 후 곧 남은 부대를 이끌고 금올출을 향해 곧장 돌격했다. 그는 마치 산을 내려온 사나운 호랑이처럼 십만 금군의 진영을 어지럽히며 닥치는 대로 적의 수급을 베었다. 금군 장령(將領)들은 양재흥이 곧장 금올출을 향해 돌진하는 것을 보고는 곧 여러 장수들을 불러 겹겹이 양재흥을 포위하게 했다.

그러나 양재흥의 기개는 하늘을 찌를 듯이 드높아 전혀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금군의 만부장(萬夫長) 살팔(撒八)이 큰 도끼를 치켜들고 양재흥을 쪼개려다 도리어 그의 창에 맞아 낙마했다. 천부장 발근(孛堇)은 두터운 갑옷에 무거운 철퇴를 들고 양재흥을 습격했는데 갑옷을 믿고 창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하지만 양재흥이 보도(寶刀)를 들어 내리치자 말과 함께 몸이 두 동강이 나고 말았다. 깜짝 놀란 금군 장수들은 양재흥과 한 장의 거리를 유지한 채 감히 다가서지 못했다.

이렇게 반나절이 지나는 사이 백여 명의 장수와 만여 명의 병사들이 창에 맞아 죽어나갔고 양재흥과 금올출의 거리는 점점 더 가까워졌다. 이 상황은 전쟁터에서 잔뼈가 굵은 사령관 금올출마저 간담이 서늘하게 했다. 이에 그는 다급히 궁수들을 불러 모아 적과 아군을 가리지 말고 동시에 화살을 발사하라고 명령했다. 양재흥은 여전히 조금의 두려운 기색도 없이 몸에 맞은 화살들을 손으로 부러뜨리면서 계속해서 돌진해왔다. 잠시 후 그의 몸에는 이미 수백발의 화살이 박혔고 그를 따르던 부하들도 거의 다 전사했다.

양재흥의 목숨은 이미 경각에 달했지만 오직 한 가닥 의념(意念)만이 그를 지탱해주고 있었다. 그는 금올출이 소상하 옆에서 불과 몇 장의 거리에 있는 것을 보았고 말에 채찍을 가해 앞으로 달려나갔다. 하지만 불행히도 말과 함께 강물에 떨어져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양재흥이 뒤를 바라다보니 이미 모든 부하들이 사라졌고 자기 혼자만 남아 있었다! 온갖 생각이 모두 사라지는 가운데 그는 한마디 큰 소리만을 남겼다.

“악 원수님, 말장(末將 말단 장수란 뜻으로 스스로 겸양한 말)은 더는 당신을 따르며 나라를 지킬 수 없게 되었습니다(岳元帥,末將不能再追隨您保疆衛國了)!”

마음속으로 무한한 서글픔이 올라오는 가운데 그는 두 줄의 피눈물을 흘리며 기가 끊어져 죽었다. 하지만 강 속에 우뚝 선 채 넘어지지 않았다. 금나라 병사들은 그제야 정신이 돌아왔지만 그 누구도 양재흥에게 접근하지 못했다. 다만 다시 한 번 일제히 화살을 발사할 뿐이었다. 양재흥과 그가 탄 말은 수많은 화살이 관통했고 그는 이 전투에서 장렬히 죽어 살신성인(殺身成仁)을 이뤘다.

한편 악비는 소식을 듣자마자 악운(岳雲)에게 오천의 정예병력을 주어 양재흥의 시신을 되찾아오게 했다. 한밤 중에 악비가 직접 양재흥의 몸에서 화살을 일일이 뽑아냈는데 화살을 한발 뽑을 때마다 통곡하며 슬피 울었다. 화장 후에 남은 화살촉만 두 곡(斛 1곡은 10말)이나 되었다. 악가군 장사들이 이를 보고는 모두들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나중에 악운은 양재흥의 유지를 받들어 직접 오백의 배외군(背嵬軍 악비가 이끌던 최정예 기병부대)을 이끌고 주선진(朱仙鎮)에서 50만 금군(金軍)을 격파해 동서고금의 전쟁 역사상 가장 현격한 차이로 승리를 거뒀다. 이제 곧 적의 황룡부(黃龍府) 진격이 멀지 않은 상황에서 악비는 12차례나 회군하라는 조정의 명령을 받았다.

악비는 조정에서 이미 금나라와 화의했으니 만약 명령을 따르지 않는다면 악가군 장사들이 반드시 진회에게 해침을 당하게 될 것이고 반대로 명령에 따라 조정으로 돌아가면 한 사람(악비)이 반드시 죽게 될 것임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악비는 끝내 조정의 명령을 따랐다. 이때 현지 백성들과 여러 장수들이 악비의 회군에 반대해 앞 다퉈 길을 막고 고삐를 잡아당겼다.

하지만 악비는 하늘의 뜻이 이와 같음을 알기에 여러 사람들에게 조서를 보여주며 “내 마음대로 머물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자 많은 백성들과 악가군 장사들이 목을 놓아 통곡했고 그 소리가 산과 들을 진동시켰다. 뭇신들마저 슬피 우는 지 하늘에서 갑자기 큰 폭우가 쏟아졌다.

악비는 결국 군사를 돌이켜 조정으로 돌아갔고 이듬해 간신 진회(秦檜)로부터 ‘애매모호한(莫須有)’ 죄명으로 모함을 받았고 아들 악운 및 부장 장헌(張憲)과 함께 살해당했다. 이때 악가군 장사들은 악비가 남긴 유지를 지켜 갑옷을 버리고 밭으로 돌아가 평소에는 농사에 힘쓰다 전시에는 참전하며 대송(大宋)의 강산을 백여 년간 지켜냈다.

한편, 왕원(王元)은 산림에 은거해 계속해서 도를 닦았고 죽기 전에 양재흥 장군이 문천상으로 태어날 것을 알고 마침내 좌화(坐化 도인이 앉은 채 사망하는 것)한 후 학자 집안에 태어나 전생의 연을 이어갔다.

다시 현실로 돌아와 왕원량의 아득한 거문고 소리는 이미 마지막 소절에 도달했다. 이때 입정(入定)에서 나온 문천상은 얼굴 가득 눈물을 흘리며 “모든 게 명백해졌네! 인연 따라 일어나고 인연 따라 사라지니 시비(是非)와 성패(成敗) 고개 돌리면 공(空)이로구나. 정도(正道)대법(大法)을 이미 얻어 생사는 단지 일념의 차이에 불과하니 이제 더는 미망에 빠지지 않겠네.”라고 했다. 이렇게 말을 마친 후 붓을 들어 미처 쓰지 못한 ‘정기가(正氣歌)’를 완성했다.

천지에는 올바른 기운이 있어엇섞여 유동적인 형체에 부여되더니땅에서는 강과 산이 되고하늘에서는 해와 별이 됐구나.사람에게 있어서는 호연지기(浩然之氣)라고 불리고아주 많아지면 푸른 하늘을 가득 메운다……

天地有正氣雜然賦流形下則爲河嶽上則爲日星於人曰浩然沛乎塞蒼冥……

두 사람은 다음날 아침이 밝을 때까지 계속해서 노래하며 거문고를 연주했다.

대전 위에 앉은 원 세조 쿠빌라이가 문천상을 불러 직접 항복을 권유했다. 하지만 문천상은 흔들림이 없었고 원 세조에게 길게 읍만 하고 무릎을 꿇지 않았다.

“유일한 바람이라면 한번의 죽음이면 족합니다!”

원 세조는 아무 말도 못하고 그의 뜻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형장에서도 문천상은 태연자했다. 남쪽을 향해 무릎을 꿇고 절을 올린 후 편안히 삶을 버리고 의(義)로 나아갔으니 향년 47세였다. 사후에 그의 옷 속에서 한편의 시가 발견되었다.

공자는 살신성인하라 하셨고 맹자는 사생취의하라 하셨네.오직 의를 다해야만 인이 지극해지기 때문이로다.성현의 글을 배웠으니 어떤 일을 하라고 배웠는가?오늘 이후로 거의 부끄러움이 없으리라.

孔曰成仁 孟云取義惟其義盡 所以仁至讀聖賢書 所學何事而今而後 庶幾無愧

문천상은 남송의 ‘충(忠)’문화를 위한 마지막 연기를 마쳤다.

몇 년의 시간이 흘러 과거 송의 공제(恭帝)였던 조습(趙㬎 1271-1323년)은 이제 성년이 되었다. 그는 서역으로 들어가 불문(佛門)에 귀의했고 전(全) 태후도 사찰에 들어가 비구니가 되었다. 왕원량은 상서를 올려 사해를 운유하며 새로운 수련형식을 전개할 것을 청하자 원세조가 그의 청을 허락했다.

왕원량은 세조 및 궁인들과 작별한 후 운유의 길에 오른 후 이름을 ‘수운자(水雲子)’로 고쳤다. 이때부터 행운유수하며 강남과 강북을 다니니 당시 사람들은 그를 ‘신선(神仙)’이라 불렀다. 운유의 길에서 그는 또 여러 편의 감동적인 시사(詩詞)와 가부(歌賦)를 창작했다.

하루는 그가 항주의 서호에서 산보하다가 몇 그루 붉은 매화나무 그림자가 푸른 호수면에 비치는 모습이 유난히 청신하고 아름다운 것을 발견했다. 마치 과거 궁중에 있던 붉은 매화와 같은데 차이면 더 붉어서 마치 피와 같았다.

궁궐 내에서 밤늦게까지 연주와 노래를 이어가던 때를 회상하니 비단처럼 화려했다. 또 밝고 맑은 달빛을 마주하니 아름답기 그지없는 것이 마치 당나라 명황(明皇 현종)이 월궁(月宮)에 노닐 때와 같았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풍경을 이제 다시 볼 순 없지만 전란 후 강남의 생명력은 더욱 끈질겨 과거 서호에 유람 갔을 때와는 완연히 달라졌다. 이에 사(詞)를 한 수 지었다.

《암향(暗香)》

館娃豔骨。見數枝雪裏,爭開時節。底事化工,著衣陽和暗偷泄。偏把紅膏染質,都點綴,枝頭如血。最好是,院落黃昏,壓欄照水清絕。風韻自迥別。謾記省故家,玉手曾折。翠條嫋娜,猶學宮妝舞殘月。腸斷江南倦客,歌未了,瓊壺敲缺。更忍見,吹萬點,滿庭絳雪。

호남의 조가(趙家) 대원에 와서 과거 노래하고 춤추던 태평성대는 더 이상 볼 없고 눈앞에는 밀교의 사찰만 있는 것을 보고 사를 한 수 지었다.

《동선가(洞仙歌)》

늦은 봄 조가의 정원은 잡초 우거져 길 찾기 어려워라.부는 바람에 붉은 꽃비 떨어져 내리네.전에 살던 제비를 생각해보니 지금은 어느 집으로 날아갔을까?황혼녘 예나 지금이나 한 가닥 피리소리 들리네.번영은 물 따라 흘러가고춤과 노래 멈추니 남겨진 꽃 비녀만 아련히 옛날의 번화함을 생각하게 하누나.점점 귤나무 피어나고 뽕나무 길게 자라나지만모두 승려들 차지로구나.방비가 엄해 속세 사람 함부로 들어갈 수 없으니또 높이 솟은 누각은 사찰의 불당이 되었구나.

西園春暮。亂草迷行路。風卷殘花墮紅雨。念舊巢燕子,飛傍誰家,斜陽外、長笛一聲今古。繁華流水去。舞歇歌沉,忍見遺鈿種香土。漸橘樹方生,桑枝才長,都付與、沙門爲主。便關防、不放貴遊來,又突兀梯空,梵王宮宇。

다른 악기에 비할 때 피리는 함축성과 몽롱한 미감(美感)이 있다. 때문에 왕원량은 피리를 길게 불며 옛날과 지금의 시공을 연결한다. 그는 또 귤나무와 뽕나무가 강인한 생명력으로 시공과 전란을 초월해 새로운 정원에서 계속 자라는 것에 대해 찬사를 보냈다.

어느 날 큰 눈이 날리는 가운데 그는 송죽림(松竹林) 속에서 거문고를 연주했다. 거문고 소리는 밝은 달빛을 따라 멀리 높은 산을 비춰주니 이에 감동해 새로운 곡을 남겼다.

《장상사(長相思)》

오나라 산은 깊고 월나라 산도 깊네텅 빈 골짜기에 가인의 악기소리누가 있어 이 마음을 알아주랴!밤은 깊고 시간은 깊어가네한가하게 물러나 매화 한곡 연주하니달은 높이 송죽림에 걸렸어라.

吳山深 越山深空谷佳人金玉音有誰知此心夜沉沉 漏沉沉閑卻梅花一曲琴月高松竹林

왕원량은 생명과 윤회의 무상함에 탄식했다. 주선진의 수많은 장사들과 백성들의 슬픔 및 애산(崖山)의 참혹함, 이 모든 것들은 이미 눈앞을 스쳐가는 연기처럼 사라져버렸다. 그는 다시 거문고를 들고 연주했다. 끊어질 듯 이어지는 거문고 소리에 따라 밤은 점점 깊어가고 달빛이 높이 비춘다. 이 작품에서 왕원량은 남송 특유의 부드러운 아름다움과 그러면서도 굳센 감동을 표현했는데 여음(餘音)이 끝이 없어 천고에 이름을 남겼다.

아마도 과거 십만 악가군 장사들과 순국했던 남송의 신민(臣民)들이 지금 세계 어느 곳에선가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덧붙이는 말:

《지남후록(指南後錄)–문천상의 시집》에 따르면 문천상은 감옥에서 “이인(異人)을 만나 대광명한 정법을 받았고 이에 생사에 초탈해 연연하지 않게 되었다!”

누가 진짜 환난을 알랴홀연히 대광명을 깨달았네.구름에 해가 뜨니 모든 것이 조용한데바람이 잦아드니 물은 절로 평평하다.공명이 어찌 본성을 없애랴만충효로 큰 고생 겪었구나.천하에 오로지 호걸만이신선의 입지 이루었구나.

誰知真患難 수지진환난忽悟大光明 홀오대광명日出雲俱靜 일출운구정風消水自平 풍소수자평功名幾滅性 공명기멸성忠孝大勞生 충효대로생天下惟豪傑 천하유호걸神仙立地成 신선입지성

(전문 완결)

(대기원에서 전재)

원문위치: https://www.epochtimes.com/gb/17/8/22/n95547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