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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동빈이 삿갓을 남기다”

글/ 감로(甘露)

【정견망】

중국 고대에 사천 성도(成都)에 있는 청성산(青城山)에서는 매년 2월 15일 도회(道會)를 거행했는데 상당히 떠들썩했다. 현지의 양대 부자인 장(張)씨와 당(唐)씨가 번갈아가면서 성대한 모임을 개최해 사람들을 초청해서는 먹고 마시게 했다.

이날 천하의 도사들이 이곳에 다 모였다. 정오가 되어 식사할 때가 되자 한 도인이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문지기가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통상적으로 식사 시간에는 도관(道觀)의 문을 닫는 것이 관행이었기 때문이다. 밥을 다 먹고 나서 다시 문을 열었더니 도사가 크게 화를 냈다.

문지기가 이 일을 주인 장 씨에게 알리자 장 씨는 그가 혹여 다른 도사들을 교란할 수 있다고 여겨서 아예 문을 열지 말라고 했다. 도사는 장 씨 집을 떠난 후 산 아래로 내려가서 어느 찻집에서 쉬어갔다. 도사는 주인더러 붓을 가져오게 한 다음 벽에 글을 쓰고는 머리에 썼던 삿갓을 벽에 걸어놓아 글자를 가렸다.

그리고는 주점 주인에게 말했다:

“잠시 날 좀 도와주시오, 잠시 후 다시 올 테니.”

도인이 간 후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았다. 이때 벽에 걸려 있던 삿갓이 빙빙 돌기 시작했다. 이것을 본 사람들이 매우 놀라 얼른 도관에 통보했다. 많은 사람들이 삿갓을 벗겨보니 벽에 시가 한 수 적혀 있었다.

우연히 청룡(靑龍)을 타고 봉래산을 나오니
천하는 온통 분쟁으로 가득하구나.
짚신에 황관을 쓰니 모두들 알아보지 못하니
이 일이 묻히지 않도록 삿갓 하나를 남기노라.

偶乘青帝出蓬萊
劍戟崢嶸遍九垓
綠履黃冠俱不識
爲留一笠不沉埋

이 시는 원래 전진파(全真派) 조사로 유명한 신선인 여동빈(呂洞賓)이 쓴 것이다. 그는 인간 세상에 분쟁과 전쟁의 참화로 가득 찬 것을 보고 청룡을 타고 봉래선산을 나와 청성산에 도착했다. 하지만 이곳의 사람들은 여동빈이 온 것을 몰라보므로 여동빈은 삿갓을 남겨 사람들이 보도록 한 것이었다.

도를 구하는 마음은 사람마다 모두 있다. 청성산의 도회(道會)나 모산(茅山)의 학회(鶴會 역주: 도사들이 학을 타고 다니는 경우가 많기에 도인들의 모임을 학의 모임이라 비유한 것)에 천하의 도인들이 운집할 때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 이유는 고인(高人)을 찾아뵙고 점화를 받아 자기의 도행(道行)이 승화되길 바란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세간의 먹고 마시며 떠들썩한 것에 머물러 있다면 진인(真人)이 와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다.

정말로 다음과 같다.

여산의 참모습을 알지 못함은
단지 이 몸이 산 속에 있기 때문이라네

不識廬山真面目
只緣身在此山中

역주: 이 시는 원래 소동파의 《제서림벽(題西林壁)》이란 시의 일부이다.

참고로 이 시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앞에서 보면 산줄기 옆에서 보면 봉우리(橫看成嶺側成峰),
멀리서 가까이서 높은 데서 낮은 데서 그 모습 제각각일세(遠近高低各不同).
여산의 참모습을 알지 못함은(不識廬山眞面目),
단지 이 몸이 산 속에 있기 때문이라네(只緣身在此山中).

 

원문위치: http://www.zhengjian.org/node/2640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