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주월명(朱月明) 정리
【정견망】
주은요(周隱遙)는 동정산(洞庭山) 도사로 자칭 한(漢)나라 초기 ‘상산사호(商山四皓)’의 일원인 녹리(甪裡)선생의 손자라 한다. 또 동정산 위에 조상을 모시는 사당과 조상이 살았던 녹리촌이 있다고 했다. 또 대대로 여러 세(世)에 걸쳐 늘 도를 닦고 도를 얻었다고 했다.
그는 일찍이 강소(江蘇) 진강(鎭江)의 초산(焦山)에 살았는데 태음연형술(太陰煉形術)이란 육신을 해탈하는 도술을 배웠으며 절벽 동굴 속에서 살다가 죽었다. 그는 죽기 전에 제자에게 이렇게 당부했다.
“내가 죽거든 시신을 잘 보살펴 그 어떤 것도 다치지 못하게 해라. 6년 후 만약 내가 다시 살아나면 내게 의상을 입혀 주거라.”
그의 제자들은 스승의 분부에 따라 정성을 다해 시신을 보호했다. 오래지 않아 시체가 점점 썩기 시작하더니 냄새가 나면서 벌레가 자라났지만 그의 오장육부만은 오히려 아무런 손상이 없었다. 이에 제자들은 계속해서 생전 스승의 당부대로 세심하게 시신을 보살폈다. 이렇게 6년이 지난 후 제자들이 다시 가서 보니 주은요가 과연 되살아났다.
제자들이 그를 목욕시키고 옷을 갈아입혔는데 원래 모습에서 머리카락이 다시 많아지고 검어졌으며 수염도 더 거칠고 뻣뻣하게 자라 마치 야수의 갈기털 같았다.
16년 후 주은요는 또 지난 번처럼 죽었는데 이번에는 7년이 지난 후 다시 살아났다. 그는 이렇게 반복적으로 죽었다가 살아나길 3번이나 했는데 모두 합하면 40여 년이었다. 주은요는 나이가 80이 넘었지만 외모는 30대 젊은이와 같았다.
수양제(隋煬帝)가 이 소문을 듣고는 그를 낙양으로 불러 성대한 예의로 영접하고 두터운 예물을 내리며 궁궐에 남기를 원했다. 하지만 주은요는 고마워하기는커녕 오히려 산속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갈망했다. 나중에 양제는 어쩔 수 없이 그의 청을 들어주었고 고향으로 돌아가게 했다.
당나라 정관 연간 태종이 다시 그를 장안으로 불러 내궁에 머물게 하고 수시로 찾아가 수도의 비결에 대해 묻곤 했다. 그러자 그는 태종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제가 수련한 그런 도는 그저 자신의 마음을 닦고 성을 기르는 것으로 수익을 보는 것도 저 혼자뿐입니다. 제 주변 사람들과 사물은 절반의 장점도 얻지 못합니다. 하지만 제왕께서 닦으실 도는 만백성에게 은혜를 내려 천하 모든 나라가 복을 얻게 하실 수 있습니다. 아울러 제왕께서 도를 닦으신다면 신하와 백성들보다 더 빨리 도를 얻으실 수 있을 겁니다. 제가 배운 고만한 도술은 만승(萬乘)의 지존인 황상께서 배우실 가치가 없습니다.”
주은요는 거듭해서 자신을 산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달라고 간청했다. 태종은 결국 그의 청을 받아들여 돌아갈 수 있게 했다.
자료출처: 《태평광기(太平廣記)》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1887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