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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역사정술】 하(夏) 7

만국의 공주(萬國共主)

(3) 만국의 공주(共主)

대우(大禹)는 천자의 자리에 오른 후 옛 제도를 좇고 존중해 천하를 순수(巡狩)하는 긴 여정에 나섰다. 소위 순수란 천자가 정기적으로 사방 제후들이 진수(鎭守)하는 지역을 순시하는 것을 말한다. 우임금은 최초 순수에서 남쪽으로 내려가 회수(淮水) 근처에 있는 당도산(當塗山)에 이르렀다. 우임금이 이곳에서 천하 제후들과 성대한 모임을 가졌기 때문에 역사에서는 이를 도산대회(塗山大會)라 칭한다.

사서에는 도산대회의 성대한 상황이 기록되어 있는데 만국(萬國)이 내조하고 옥(玉)과 백(帛 비단)을 바쳤다. 제후들은 나라의 크기에 따라 공(公), 후(侯), 백(伯), 자(子), 남(男) 5등급으로 분류되었고 또 등급의 차이에 따라 손에 드는 옥과 백도 달랐다. 옥에는 5가지가 있어서 이를 오서(五瑞)라 했고 백에는 세 가지 색이 있어서 이것으로 옥의 아랫면을 감쌌다.

정교하고 아름다운 옥기(玉器)는 가장 귀중한 것으로 신명(神明)과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는데 사용한 예기(禮器)고, 비단 역시 수많은 직물 중에서 가장 고귀한 것이다. 크고 작은 나라의 군주들은 옥백(玉帛)을 들고 대우를 조현(朝見)했으며 그들 몸 뒤에는 바람에 펄럭이는 거북과 뱀 그림이 장식된 깃발과 곰과 호랑이가 그려진 깃털 장식 깃발이 있었다.

이렇게 성대한 대전(大典)에서 하나라 사람들은 또 《대하(大夏)》 음악을 연주했다. 64명의 무용수가 동종(銅鐘)과 석경(石磬) 및 대나무로 만든 피리의 합주 아래 춤을 추었다. 이들은 머리에 흰 사슴가죽으로 만든 정교한 관을 썼고 흰색으로 재단한 상의(上衣)와 치마를 입었는데 상의가 약간 열려 화려하고 아름다운 비단옷을 드러냈다. 한 손에는 깃털을 들고 한 손에는 피리를 들었으며 춤으로 천지(天地)에 경배하고 팔방에서 온 내빈(來賓)들에게 예를 올렸다.

몹시 장중(莊重)하고 상화하면서도 질박한 악무(樂舞)는 보는 이들의 눈과 마음을 즐겁게 했다. 중원에 흩어져 살던 여러 제후국 군주들과 부락 추장들에게 있어 《대하》의 악무는 바로 또 다른 문명의 계몽이었다. 이는 동경하고 기념할만한 가치가 있는 순간이었다. 화하(華夏)의 정성(正聲)과 아악(雅樂)은 또 새로운 장을 더했고 화하문화 역시 완전히 새로운 내함(內涵)을 지니게 되었다.

도산(塗山)대회,《흠정경서도설(欽定書經圖說)‧대우도(大禹圖)》

당나라 때 마호(馬縞)가 편찬한 《중화고금주(中華古今注)》에는 또 한 가지 신기한 장면이 기록되어 있다. 도산대회에서 갑자기 큰 바람이 불고 벼락이 치더니 구름 속에서 수만에 달하는 천병천장(天兵天將)이 등장했다. 어떤 이들은 금갑(金甲)을 입었고 어떤 이들은 철갑(鐵甲)을 입었는데 또 투구와 갑옷을 입지 않은 무사들도 있었지만 붉은 비단 띠를 이마에 묶고 있었다. 원래 해신(海神)이 자신의 무리를 이끌고 우임금을 조현하러 왔던 것이다. 훗날 진시황이 해변을 순수할 때도 해신이 찾아와 조현한 적이 있다.

또 일찍이 대우가 물을 다스릴 때도 황룡(黃龍)이 찾아와 대우를 조현한 적이 있는데 이때 해신도 와서 우임금을 알현하러 온 적이 있다. 왜냐하면 사람과 신이 함께 한 상고(上古) 세상에 우임금은 단순히 만국의 공주(公主)였을 뿐만 아니라 산천(山川)의 신주(神主)이자 천하의 공주(共主)였기 때문이다.

우임금이 천하를 다스린 것은 물을 다스린 것과 마찬가지로 고생스러웠다. 사서의 기록에 따르면 우임금은 마지막 순수에서 강남 대월(大越)까지 이르렀다. 이 순수 도중 우임금은 봉선대전(封禪大典) 거행했다. 여기서 봉(封)이란 태산에서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것이고, 선(禪)이란 회계에서 땅에 제사를 지낸 것이다.

대월 땅에 있던 회계산(會稽山)은 당시 우임금의 순수할 때 종점이었는데 본래 명칭은 모산(茅山)이었다. 우임금이 이곳에서 크게 제후들을 소집한 후 제후와 여러 신하들의 공(功)을 심사해 덕(德)이 있는 사람에겐 작위를 하사했고 공(功)이 있는 사람에겐 봉지를 주었다.

“악(惡)이 작다고 해서 처벌하지 않음이 없었고 공(功)이 미미하다고 해서 상을 주지 않음이 없었다.” 이것이 바로 우임금이 회계에서 나라를 다스린 도(道)다. 또한 이 때문에 우임금은 모산의 명칭을 회계산으로 바꿨다. 이외에도 우임금은 이곳에서 연세가 많고 덕이 큰 노인들을 접견해 이들의 의견을 받아들였고 서적을 수집하게 했으며 중량과 용량 등의 계량형 통일을 새롭게 확정했다. 또 백성들에게 농사를 가르치는 등 수많은 훌륭한 정사와 법도를 정해 후세에 전해주었다.

앞장에서 서술한 것처럼 음악으로 천하를 다스리던 상고시대에는 동시에 예정형(禮政刑)을 치국의 보조로 삼았다. 우임금이 정한 공부(貢賦)제도, 오복(五服)제도, 회계와 심사 등 여러 가지 아름다운 정치와 법도를 정한 동시에 또 상응하는 형정을 정해 이런 훌륭한 정사와 법도(法度)의 실시를 보장했다. 법도를 파괴하는 사람은 마땅히 형벌의 처리를 받아야 했다.

하지만 남방의 거인족 수령 방풍씨(防風氏)는 포악하고 고집이 세서 명령이나 교화에 따르지 않고 항명하면서 도산대회에도 참가하지지 않았다. 종주국과 종속국 사이의 관계는 천도(天道)가 상응한 인간세상의 질서로 펼쳐진 것으로 단지 인위적인 규율로 만든 것만은 아니다. 때문에 방풍씨의 이런 망동은 작은 일이 아니었다. 인간세상의 질서와 예법을 확립하기 위해 대우는 명령을 내려 방풍씨를 극형에 처해 천하제후들의 경계로 삼게 했다. 방풍씨는 다리만 3장이 넘어 형벌을 집행하는 사람이 처리할 수 없었다. 이에 높고 큰 토대(土臺)를 쌓은 후에야 겨우 형벌을 집행할 수 있었다. 이 토대를 형당(刑塘)이라 하는데 어떤 책에서는 그 유적이 산음현(山陰縣) 북쪽 15리에 남아있다고 한다.

그로부터 천년 후 춘추전국 시기 오(吳)나라가 월(越)나라를 공격하던 도중 회계산 위에서 거인의 뼈를 발견했는데 대퇴골 하나만으로도 수레 한 대가 가득 찼다. 이 뼈의 유래가 궁금했던 오나라 왕은 노나라에 사신을 파견해 박학다식하기로 유명한 공자(孔子)에게 뼈를 보여주면서 문의하게 했다. “이게 대체 어떤 뼈이기에 이렇게 큽니까?” 그러자 공자는 도산대회에서 있었던 일을 설명하면서 이렇게 대답했다. “이것은 분명 당시 방풍씨의 대퇴골입니다.”

거인(巨人)을 말하자면 고서에는 또 적지 않은 거인국 관련 기록이 있다. 가령 《산해경》〈대황동경(大荒東經)〉에는 “동해 밖 대황(大荒)의 가운데 대언산(大言山)이 있는데 해와 달이 드나드는 곳이다. 파곡산(波谷山) 근처에 대인(大人)의 나라가 있다.” “대진국(大秦國) 사람은 키가 10장에 달한다”는 기록이 있다. 이외에도 해를 쫓아간 과보(誇父)와 방패와 도끼를 들고 춤을 춘 형천(刑天), 황제와 탁록에서 대전을 벌인 치우(蚩尤) 등은 모두 키가 여러 장에 달하는 상고시대 거인들이었다.

방풍씨의 대퇴골은 전쟁 중 뜻하지 않게 발견되어 상고시대 전설 속 거인족이 지구상에 확실히 실존했음을 입증했다.

청나라 오임신(吳任臣)의 《산해경광주(山海經廣注)》에 나오는 소인국 삽화

사실 동서고금에 걸쳐 거인 및 ‘소인국’ 등과 유사한 놀랄만한 발견과 기록의 역사는 줄곧 끊이지 않았다. 대체로 설명하기 쉽지 않은 이런 수수께끼들을 흥미로운 사색의 실마리로 삼는다면 인류・지구 내지는 우주의 역사를 새롭고 보다 이성적인 입장에서 되돌아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우임금은 천하를 순수하면서 훌륭한 정사를 정하고 후세에 전달했고 그의 성스런 덕이 천지만물에 혜택을 주었다. 때문에 우임금 시대에 봉황이 날아와 나무위에 서식하고, 난새(鸞鳥)가 날아와 민가에 터전을 잡았으며, 기린이 궁궐 뜰을 산보하고 온갖 새들이 밭 사이로 날아와 경작을 도와주었던 것이다. 역사책에 기록된 이런 신기하고 상서로운 현상들은 후세를 사는 우리에게 무한한 동경을 지니게 한다.

참고문헌:

1. 《강감이지록》
2. 《통전(通典)》
3. 《예기정의(禮記正義)》
4. 《중화고금주(中華古今注)》
5. 《사기삼가주(史記三家注)》
6. 《오월춘추》
7. 《월절서(越絕書)》
8. 《한비자》

 

원문위치: https://www.epochtimes.com/gb/17/3/11/n889901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