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위엄(偉嚴)
【정견망】
무거우면 아래로 가라앉고 가벼우면 떠오르듯
선과 악 일념의 차이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라
불타(佛陀)의 공력 비록 광대하다해도
자비는 오직 덕이 있는 사람만 구도하노라.
重沉水底輕浮面
善惡一念兩重天
縱然佛陀功廣大
慈悲只能度德還
옛날에 세상일을 논하는데 인생이 깨어있을 때를 본다고 했다.
여기서는 불타에 관한 이야기를 하나 하고자 한다.
어느 날 불타(佛陀)가 길을 가는데 갑자기 처량한 울음소리를 들었다.
“자비로운 부처님이시여, 부디 저를 다시 구해주십시오.”
그런데 이 음성이 매우 익숙했다. 불타가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찾아가 보니 그 음성은 지옥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불타가 보니 그 익숙한 호소는 바로 한때 그의 제자였던 제달다(提達多)였다. 제달다는 위에서 불타가 자신을 바라보시는 것을 발견하고는 정말 구원의 별을 만난 것 같았다.
그는 더는 기다릴 수 없다는 듯이 부처님께 말했다.
“자비하신 부처님, 부디 저를 구해주세요. 저는 반드시 이전의 잘못을 고치고 다시는 가르침을 위배하지 않겠습니다. 성심껏 당신을 따라 수지(修持)하겠습니다.”
불타는 자비의 눈물을 흘리며 잠시 침묵하다가 그에게 말했다.
“제달다여, 너는 나더러 무엇을 가지고 너를 구원해달라고 하는 것이냐!”
불타는 자신이 비록 신통이 광대해 손을 내밀어 제달다를 지옥에서 끌어낼 수 있고 또한 제달다의 모든 죄업을 소멸시켜줄 수 있지만 그렇게 해서는 안 되며 또 아무 소용이 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무량(無量)한 우주 중에는 지고무상(至高無上)한 우주대법(宇宙大法)이 일체 중생의 행동을 제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누구든 무엇을 했든 반드시 다 자신이 후과(後果)를 책임져야 한다. 다시 말해 만일 제달다 스스로 실질적으로 고통스럽게 참회하고 상환하지 않았다면 그럼 진정하게 본질적으로 바뀐 것이 아니다. 그렇게 하면 제달다를 구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불타 자신도 우주 법(法)의 징벌을 받을 수 있다.
불타는 자비롭게 탄식하면서 제달다에게 말했다.
“내가 다시 너를 위해 방법을 찾아보마.”
여기서 불타가 찾아본다고 한 것은 바로 지금 사람들이 휴대폰 화면을 보는 것처럼 제달다가 걸어온 생생세세 역사 과정을 한 막 한 막 펼쳐본 것이다. 화면에 나타나는 영상은 이랬다.
제달다가 황량한 길을 걸어가는데 한 마리 큰 거미가 그의 발아래로 기어왔고 마침 제달다에게 발견되었다. 이때 만일 제달다가 발을 내디디면 거미는 즉시 목숨을 잃게 된다. 제달다는 다리를 들고 선량하게 거미가 기어가는 것을 보았다.
불타는 “좋구나, 내가 이 거미를 이용해 너를 구해주마.”라고 했다.
이때 지옥 아래에 있던 제달다는 줄곧 부처님께 살려달라고 가련하게 부탁하고 있었다.
불타는 그 거미가 토해낸 거미줄을 이용해 아주 긴 밧줄을 연화해내었다.
지옥 아래에 있던 제달다는 갑자기 위에서 밝은 밧줄 하나가 내려오는 것을 보고 그는 다른 사람의 몸을 짓밟는 것도 마다하지 않고 미친 듯이 기뻐하며 밧줄을 잡았다. 그는 죽어라 이 구원의 밧줄을 붙잡았고 자신이 지옥을 벗어났다고 생각했다. 지옥 안에 있던 다른 사람들도 밧줄을 보자 역시 일체를 돌보지 않고 목숨을 걸고 밧줄을 빼앗으려고 달려들었다.
한참을 올라가고 있던 제달다는 아래쪽 사람들 역시 필사적으로 자기를 따라 밧줄을 잡고 위로 기어오르는 모습을 보고는 큰소리를 질렀다.
“이것은 내거야, 이건 부처님께서 나를 구하기 위해 보내신 밧줄이니 너희들은 꺼져라!”
이렇게 소리를 지르면서 발로 아래 사람을 힘껏 밀쳐냈다. 불타는 이 장면을 보고 또 자비의 눈물을 흘렸다. 바로 이 순간 밧줄이 끊어졌고 불타는 또 탄식하며 떠나갔다.
이것은 불타가 직접 겪은 일화다.
석가모니 부처에 관해 역사상 확실히 그런 사람이 있었다. 이 역시 현대 실증과학이 다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이런 고사(故事)와 전설에 대해 말하자면 아마도 진실할 것이다. 물론 길고 긴 시간이 지나는 와중에 일부 고사들 중 구체적인 내용은 전해지는 과정에 변화가 생겼을 수 있다. 하지만 고사의 본질이 담고 있는 내함(內涵)의 주제는 변할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역사상 지금까지 전해내려 올 수 있는 전설과 고사는 그 어떤 것이든 모두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말겁 시기인 오늘까지 유전해 올 수 있는 것은 그 속에 모두 창세주(創世主)의 홍대한 자비와 의도적인 배치가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무신론의 세뇌교육을 받은 세인들은 이런 전통적인 고사와 전설 특히 신불(神佛)에 관한 고사와 전설에 대해 생각해보지도 않고 일률적으로 미신이란 딱지를 붙인다. 이 고사 속에 담긴 자비로운 경고와 구도의 내함에 대해서는 더욱 시간을 들여 생각해보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 사회 속에도 향을 피우고 부처에게 절을 하는 사람은 많이 있다. 사찰이나 묘당에 가보면 정말 향불 연기가 진동하며 향을 태워 부처에게 절하는 사람이 끊이지 않는다. 더욱이 특정한 날짜가 되면 가히 인산인해가 된다.
민간에서 수많은 상점이나 장사하는 사람들 또는 평범한 가정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향안(香案 역주: 향을 올리는 탁자)이나 불감(佛龕 역주: 불상을 모시는 불단)을 설치해 재물신이나 불상을 모신다. 하지만 사찰이든 집을 막론하고 부처에게 향을 피우고 절하는 사람들의 목적은 모두 한 가지인데, 즉 신불의 보우(保佑)를 바라는 것이다. 돈을 벌고 승진하거나 좋은 일이 있도록 보우해달라는 것이다.
전세(前世)의 인과를 알고 싶다면 지금 받는 것이 그것이고 후세(後世)의 과보를 알고 싶다면 현재 짓는 것이 그것이다.
사실 신불(神佛)의 자비는 사람에게 어떻게 선을 향하도록 교화하고, 중생에게 어떻게 해야 고층 경계의 표준에 도달할 수 있는지 알려주어, 사람을 아름다운 세계로 인도해 영원히 고해를 벗어나게 하는 것이다.
반대로 사람의 탐욕심을 만족시키고 사람의 더러운 욕망을 확대하는 것을 보우하는 이런 것은 신불이 사람더러 버리게 하려는 마음이다.
선악은 사람이 스스로 짓는 것이며 화, 복은 스스로 초래하는 것이다. 부처는 사람을 제도하지 사람이 희망하는 것을 보우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이런 탐욕스런 마음을 지니고 향을 피우며 부처에게 절을 한다면 그건 사실 신불에 대한 모독이다. 왜냐하면 사람이 진심으로 부처를 존경하거나 진정으로 자기를 참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물며 오늘날 인류의 도덕표준은 이미 지옥 이하로 떨어졌으니 사람이 향을 피우고 절하는 불상에는 아마 사람의 기도를 들어줄 진정한 신불이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오늘날 중생들은 모두 근기가 그리 얕지 않아서 큰 인연과 큰 복이 있다. 왜냐하면 말겁의 오늘날 우주대법이 인간세상에서 널리 전해져 중생을 널리 구도하는 때를 만났기 때문이다. 대법제자는 창세주와 맺은 중생구도의 약정을 완성하기 위해 붉은 마귀 사악한 정권의 잔혹한 박해와 탄압을 무릅쓰고 있다. 그들 중 많은 이들이 감옥에 감금당하거나 학살당했고 심지어 산채로 장기를 적출 당했으며 수많은 가정이 박해로 파괴되어 온가족이 뿔뿔이 흩어졌다. 이 모든 박해는 바로 대법제자들이 사람들에게 선을 권하고 사람을 이끌어 전통도덕으로 회귀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대법이 널리 전해지는 오늘날 세인이 아무리 나쁘다 해도 오직 대법제자가 말하는 복음의 진상을 듣고 알기만 하면 곧 아름다운 미래가 있을 수 있다. 다시 말해 우주의 대겁난 중에 살아남을 수 있다. 만약 세인들이 우주에서 여태껏 있어본 적이 없는 이런 홍대한 은혜와 창세주의 대자대비(大慈大悲)를 끝까지 깨닫지 못한다면 그럼 그 후과는 18층 지옥보다 더 비참할 것이다.
원문위치: http://www.zhengjian.org/node/2689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