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가 제위를 잇다
(8) 계가 제위를 잇다
우임금이 붕어한 후 아들인 계(啓)가 제위를 이었다. 천자의 지위를 전하는 제도가 선양제(禪讓制)에서 세습제(世襲制)로 변한 이것은 중국 역사상 큰 사건이었다. 가천하(家天下)의 시대가 이로부터 열린 것이다.
원래 우임금은 고요에게 제위를 선양하고자 했으나 고요는 천하에 군림하는 천명(天命)이 없었기 때문에 우임금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 이에 우는 또 백익에게 선양하고자 했다. 하지만 백익 역시 마찬가지로 제왕이 될 천명이 없었다.
《사기》에서는 백익이 우임금을 보좌한 시간이 길지 않아 우임금이 붕어한 후 기산(箕山)의 남쪽으로 은거하고 제위를 우의 아들인 계에게 양보했다. 제후들이 모두 계를 찾아가 알현하면서 “우리 주군인 우임금의 아들이시다”라고 했다. 이에 인심이 향하고 천명을 받아 천자의 지위를 계승하니 이가 바로 하후(夏后) 제계(帝啓)였다.
천자의 지위가 선양에서 세습으로 바뀐 것은 단순히 인심의 향배에 따른 제도의 변화만은 아니며 고인(古人)의 눈으로 보자면 이 역시 천명(天命)이 옮여간 것이다. 당시로부터 대략 1600년 후 대유학자 맹자(孟子 맹가)와 그의 제자 만장(萬章) 사이에 이에 관한 유명한 토론이 있다.
만장이 맹자에게 물었다.
“어떤 사람은 우임금의 시대가 되자 도덕이 쇠락했기 때문에 천자의 지위가 어진 이가 아닌 아들에게 전해졌다고 말하는데 그렇습니까?”
맹자가 대답했다.
“그런 것이 아니다. 하늘이 어진 이에게 전하는 걸 선택했다면 제위는 어진 이에게 전해졌을 것이다. 하늘이 아들에게 전하는 것을 선택했다면 제위는 곧 아들에게 전해질 것이다.”
맹자는 순임금이 붕어한 후 우가 순의 아들을 피해 은거했지만 천하 제후들이 모두 우를 찾아와 조현했지만 우임금이 붕어한 후 익이 우의 아들인 계를 피해 은거했을 때는 천하 제후들이 모두 계를 찾아와 조현했다고 했다.
즉, 맹자는 인심이 바른 곳으로 돌아가고 천명을 체현한 것으로 보았다. 물론 제위를 어진 이에게 전하든 아들에게 전하든 이는 모두 천명에 따른 것이다. 맹자는 또 “요순의 선양과 하은주(夏殷周) 삼대가 세습으로 대를 이은 것은 그 뜻이 서로 같다”는 공자의 말을 인용해 이는 모두 천명에 따른 것이며 사람들은 단지 하늘의 뜻을 존중하고 따랐을 뿐이라고 했다.
공자는 또 삼대(三代)에 대해 일찍이 “하나라의 도는 명령(命)을 중시하고 귀신을 섬기고 공경하되 멀리했다”고 말했다. 이 말은 하나라 사람들이 질박해서 천명에 순응하고 천지신명에 대대 경외했으며 천자의 자리를 전하는 이런 큰일에서는 하나라 사람들이 하늘의 뜻을 더욱 존중했다는 뜻이다. 중국은 이때부터 가천하의 시대로 들어간다.
유호씨를 정벌한 계
하계(夏啟)가 즉위한 후 대우의 후손 중에서 유호씨(有扈氏)가 질투하고 불복하면서 반란을 일으켰다. 이에 계가 출전해 반란을 평정하고 “천벌을 실행”하기 위해 유호씨와 감(甘) 땅에서 크게 싸웠다. 여기서 감은 유호씨 도읍 남쪽에 있는 교외 지역이다.
계는 전투에 앞서 전투 마에 올라타고 위엄 있게 말했다.
“내가 너희들에게 선고하겠다. 유호씨가 오행(五行)의 덕(德)을 위배하고 삼정(三正)의 도(道)를 포기했노라. 나는 지금 하늘의 명을 받들어 저들을 징벌하고자 한다. 전차 왼쪽의 병사들이 만약 활과 화살로 좌측에 있는 적들을 쏘아죽이지 않는다면 이는 내 명령을 따르지 않는 것이다. 전차 오른쪽의 병사들이 만약 모과(矛戈 창과 가지 달린 창)로 오른쪽의 적들을 죽이지 않는다면 이는 내 명령을 따르지 않는 것이다. 중간에서 말을 모는 병사들이 말을 잘 몰지 못하면 이 역시 내 명령을 따르지 않는 것이다. 명령에 따르는 사람에게는 조상의 신위(神位) 앞에서 상을 줄 것이고 명령에 따르지 않는 사람은 사직(社稷)의 신위 앞에서 처벌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너희는 죽임을 당할 것이고 후손들 역시 이 때문에 치욕을 짊어질 것이다.”
그렇다면 계는 왜 유호씨가 오행의 덕을 위배하고 삼정(三正)의) 도를 포기했다고 비난했을까? 여기서 소위 오행이란 금목수화토(金木水火土)를 말하는데 우주 중의 만사만물(萬事萬物)을 구성한다. 《홍범》에서는 임금이 따라야 할 첫 번째 일을 바로 오행 즉 만물의 본성으로 꼽았다.
삼정(三正)에 관해서는 역대로 두 가지 견해가 존재한다. 하나는 삼정을 천지인(天地人)의 바른 도로 보는 것이고 또 다른 견해는 삼정을 역법(曆法)의 농사철 즉 천시(天時)와 관련이 있다고 본다. 하지만 천지인이든 천시 또는 역법이든 모두 하늘이 정한 대자연의 운행법칙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행을 업신여기고 삼정을 태만히 한 것(威侮五行,怠棄三正)”은 바로 사람이 천지의 법칙을 저버린 것이며 이렇게 되면 사람 역시 천지 사이에서 설 땅을 잃게 된다.

계가 덕을 닦다
하지만 하계는 감 땅에서 유호씨와의 대전에서 승리하지 못했다. 이에 육경(六卿 역주: 여기서는 육군六軍의 지휘관을 의미)들이 앞 다퉈 다시 싸울 것을 청했으나 하계가 이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는 “나의 땅 역시 작지 않고 나의 백성 역시 적지 않지만 지금 전투에서 승리하지 못했노라. 이는 짐의 덕이 얇고 교화(敎化)를 넓리 펴지 못한 것이 원인이다.”
이에 하계는 싸우는 대신 자신의 덕(德)을 닦는데 전력을 다했다. 평소 생활에서 아름다운 의자에는 앉지 않았고, 음식을 먹을 때도 풍성한 요리를 중시하지 않았으며, 궁중에서 음악을 연주하지 않았다. 자녀들도 화려한 장식으로 치장하지 못하게 했고 장유유서(長幼有序)를 중시했으며 현인(賢人)을 예로 존중했다. 이렇게 1년이 지난 후 유호씨가 찾아와 복종했으며 천하 제후들 중에 내조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하계는 역사상 최초로 부친의 뒤를 계승한 군주이자 또한 현군(賢君)이었다. 《초사》에서는 “계 임금이 구변과 구가를 노래함이여(啟九辨與九歌兮)”라 했다. 여기서 〈구변(九辯)〉은 대우가 치수에 성공해 천자의 지위에 오른 후 하계가 이를 계승해 대우의 공업(功業)을 수호하고 천하를 다스려 구주(九州) 만물의 수(數)를 분별할 수 있었다는 의미다. 또 대우가 다져놓은 육부(六府) 삼사(三事)의 구공(九功) 역시 조리가 정연해 노래로 찬양할 가치가 있었으니 이것이 〈구가〉에 담긴 뜻이다. 즉 하계 시기 〈구변〉과 〈구가〉란 음악을 연주해 만 천하에 하나라의 공을 분명히 알렸다.
하계는 나중에 유호씨를 제거한 후 양적(陽翟)의 땅인 균대(鈞台)에서 제후들과 큰 모임을 갖고 신명(神明)에게 제사를 지내는 대전(大典)을 거행하는데 역사에서는 이를 ‘균대의 향’(鈞台之享)이라 한다. 균대의 위치는 지금의 하남성 우주(禹州) 남쪽의 삼봉산 동쪽 봉우리로 영수(潁水)와 가깝다. 이곳은 이전부터 상제(上帝)와 여러 신들에게 제사를 올리던 곳이다.
방위상으로 상제가 천지를 운행하는 곳의 중앙인 균천(鈞天 역주: 아홉 하늘 중에서 상제의 도성이 있는 중앙을 말한다)과 대응하기 때문에 균대라 한 것이다. 또한 향(享)이란은 신령에게 제사를 바치고 향(香)으로 신령을 받드는 것을 말한다.
계는 이처럼 균대에서 신령에게 제사를 올리고 제후들을 불러 모아 천하를 호령했다. 이때부처 ‘가천하(家天下)’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참고문헌:
1. 《사기삼가주》
2. 《설문해자》
3. 《맹자》
4. 《여씨춘추》
원문위치: https://www.epochtimes.com/gb/17/3/18/n8939386.htm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