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신전문화 중국역사연구모임
【정견망】
탕이 이윤을 얻다
하조(夏朝) 말년의 왕은 이계(履癸)로 이가 바로 폭군의 대명사 걸왕(桀王)이다. 그는 휘황했던 하조가 장차 영원히 천명을 상실한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걸왕은 “나는 백성들에게 있어 하늘에 뜬 태양과 같다. 태양이 사라질 수 있겠는가? 저 태양이 사라져야지만 나도 사라질 것이다.”라고 말하곤 했다. 즉 저 태양이 사라지지 않으면 자신의 왕조도 사라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자 천하 백성들이 그를 미워하며 이렇게 반문했다.
“이 태양이 언제쯤이면 사라질 것인가? 내 너와 더불어 함께 망하련다.”
사실 하늘은 이미 모든 것을 배치해놓았다. 단지 당시에는 그 누구도 태양이 산 아래로 지고 내일 다시 떠오를 때 원래 그 태양이 아닐 수 있음을 몰랐을 따름이다.
여기에는 장차 하조를 끝장낼 상의 제후 성탕(成湯)도 포함하는데 아직 아무도 몰랐다. 물론 그는 곧 아주 빨리 알게 될 것이다.
성탕은 사이가 좋은 인근 제후국 유신씨(有莘氏)와 혼인을 맺어 유신씨의 공주를 아내로 맞이했다. 나중에 성탕은 아내를 따라온 잉신(媵臣)들 중에 훌륭한 요리사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 요리사는 음식 요리를 잘했을 뿐만 아니라 나라를 요리하는 능력도 지녔다.
그의 이름이 바로 이지(伊摯)였다. 이지는 음식을 맛있게 요리했을 뿐만 아니라 그와 대화를 나누는 자체가 아주 재미있었다. 그는 오미(五味)를 조화롭게 하는 것에서부터 각종 양념의 배합은 물론이고 사계절 식물과 어떻게 나라를 다스려야 하는지 등에 이르기까지 그가 하는 말에는 모두 도리가 있었다. 이렇게 그와 대화를 나누던 성탕은 자신에게 큰 도움이 됨을 느꼈다.
《사기・은본기》에서는 “이윤의 이름은 아형(阿衡)이다. 아형은 탕을 만나려 했으나 길이 없자 유신씨의 잉신이 되어 솥과 도마를 지고 탕에게 음식의 맛을 예로 들며 설득해 왕도(王道)에 이르게 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즉 이윤이 성탕을 만나고 싶었지만 다른 방법이 없자 유신씨의 딸이 시집갈 때 딸려가는 잉신을 자청해 음식 맛을 예로 들어 성탕에게 나라를 다스리는 도리에 대해 설명했다는 의미다. 성탕은 그를 우선 작은 관직에 임명해 정무에 참여하게 한 후 그가 업무처리에 뛰어난 능력을 보이자 나중에 “국정을 위임한다.”
이지란 이 이름은 나중에 세인들에게 거의 잊히고 상조(商朝)가 건립된 후 상탕은 이지를 곧 윤(尹)에 봉했다. 여기서 윤이란 정(正)이다.
이후 사람들은 모두 그를 이윤(伊尹)이라 불렀다. 《사기》에서는 이윤을 아형이라 했고 금문(金文)에서 이윤을 ‘윤소신(伊小臣)’이라 불렀다. 갑골문에서는 그를 부르는 호칭이 또 다른데 상조 시기 문자가 아직 완전히 다 해석되지 않았고 관제(官制) 역시 그리 명확하지 않다. 어쨌든 후세에는 모두 그를 이윤이라 불렀고 각종 문서에서도 지금까지 다 이윤이라 부른다.
《사기・은본기》에는 또 이런 기록이 있다.
“이윤은 벼슬을 하지 않은 은사(隱士)였는데 탕이 사람을 시켜 맞아들이고자 했다. 다섯 번이나 거절한 뒤에야 탕에게 가서 따르며 고대 제왕(帝王)과 아홉 종류의 군주에 관한 일을 이야기했다. 탕이 이윤을 등용해 나라의 정사를 맡겼다.”
하지만 현대에 출토된 《청화간(清華簡)》에서는 오히려 앞의 주장을 지지한다.
2008년 청화대학을 졸업한 한 중국인이 홍콩에서 고대 죽간 한 무더기를 구매해 모교인 청화대학에 기증했고 이를 간단히 《청화간》이라 한다. 상고 시기 많은 역사가 이를 계기로 풀렸는데 이 자료에 따르면 성탕이 아내를 맞을 때 요리도구를 지닌 국사(國師)를 얻었다고 한다.
하늘에서 온 이윤
상고 삼대(三代)의 역사는 대단히 흥미롭고 이후 조대와 비교하면 하늘의 배치 역시 더욱 쉽게 보아낼 수 있다. 필경 대도(大道)가 행해지던 시대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모(國母) 또는 제왕의 후(后)나 비(妃)의 출생지 역시 준비되어 있었으니 이곳이 바로 유신국(有莘國)이다.
대우(大禹)의 모친이 유신이었고 하걸이 총애한 말희(妺喜) 역시 유신이었으며 상탕의 아내도 유신이었고 주나라 문왕(文王)의 아내 역시 유신의 딸이었으니 그녀가 바로 저 유명한 태사(太姒)다. 문왕의 아들로 주조(周朝)를 건립한 무왕(武王)의 아내 역시 유신씨였다.
당시 중국에 몇 천 개 내지 만개가 넘는 수많은 방국(邦國)들이 병존하고 있었는데 특이하게도 삼조(三朝)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지닌 여인들이 모두 같은 지역 출신이었으니 상생상극의 큰 이치 속에서 이 작은 지방이 맡은 역할 역시 아주 드라마틱하다.
하지만 역사는 종종 아주 오묘해서 우연처럼 보이지만 사실 보다 많은 것들이 필연이다.
그 결과는 여인천하(母儀天下)지만 조대(朝代)마다 다르고 세대마다 차이가 난다. 하지만 군왕(君王)이나 귀족이 모두 유신씨의 외손, 딸의 외손, 딸의 딸의 외손, 딸의 딸의 딸의 외손이 아닌가? 중화민족의 혈맥을 거슬러 올라가면 근원으로 가면 갈수록 모두 다 한 핏줄임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윤 역시 유신국 출신이다.
어느 날 한 여인이 뽕나무 숲 속에서 뽕잎을 채취하다가 한 그루 속이 빈 뽕나무 속에서 아기를 하나 발견했다. 뽕을 따던 여인이 이 아이를 안고 돌아가 국왕에게 바쳤다. 유신국 국왕은 주방장에게 이 아이를 맡겼다. 아울러 사람을 파견해 이 아이의 내력을 조사해보게 했는데 결론은 아기 모친이 원래 이수(伊水) 상류에 살다 임신했는데 꿈에 신(神)이 나타나 ‘절구에서 물이 나오면 동쪽으로 가거라! 절대 돌아보지 말라.’고 지시했다. 이튿날 절구에서 물이 나오는 것을 본 그녀는 이웃들에게 알리고 동쪽으로 십리를 갔는데 마을이 물에 잠겼는지 돌아보다가 몸이 속이 빈 뽕나무로 변했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여씨춘추》에 기록되어 있으며 지금까지 알려진 이윤의 출생에 대한 유일한 기록이다. 비범한 내력을 지닌 이 아이는 바로 이렇게 인간 세상에 왔다.
이윤은 성인이 된 후 유신국 귀족 자제의 집에서 가정교사를 지냈는데 당연히 요리 실력이 아주 뛰어났다.
성탕이 유신국의 공주를 비(妃)로 맞이하자 이윤은 성탕에게 접근하기 위해 교사 직업을 포기하고 요리도구를 짊어지고 공주를 수행하는 요리사가 되어 상나라로 온 것이다.
하지만 이윤은 요리사가 되기 위해 온 게 아니라 국사가 되려고 온 것이다. 성탕이 이윤을 모르는 건 문제가 아니었고 이윤은 성탕을 알았다. 다른 말로 하자면 “사부가 도제를 찾지 도제가 사부를 찾는 것이 아니었다.”
일찍이 주공(周公)은 “내가 들으니 옛날 성탕이 천명을 받자 때마침 이윤과 같은 인물을 얻으니 이는 황천(皇天)이 배치하신 것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하늘은 하걸(夏桀)에게 재앙을 내려 경고하는 동시에 또 이윤을 하계(下界)에 내려 보냈으니 이윤은 사명을 지니고 온 것이다. 때문에 그는 방법을 생각해내어 성탕 곁으로 온 것이다.
이윤은 “하늘이 이 백성을 내심에 먼저 아는 이로 하여금 뒤에 아는 이를 깨우치게 하며, 먼저 깨닫는 사람으로 하여금 뒤에 깨닫는 사람을 깨우치게 하셨다. 나는 하늘이 낸 백성 중에서 먼저 깨달은 사람이므로 나는 장차 이 도를 가지고 이 백성을 깨우치겠다. 내가 깨우치지 않는다면 또 누가 있어 (이 일을) 하겠는가?”라고 말했다.
참고문헌
1. 《상서정의》
2. 《사기》
3. 《청화간(清華簡)》
4. 《여씨춘추》
5. 《묵자》
6. 《맹자‧만장》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379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