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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이야기: 사리가 신위(神威)를 드러내니 동오에 불법이 전해지다

글/ 태평(太平) 정리

【정견망】

역사적으로 일부 고승들은 원적한 후 화장하면 사리를 남기는데 사리는 아주 단단하면서도 빛이 나는 것으로 불가에서는 지극한 보배로 여긴다. 다음은 삼국시대 오나라에 있었던 사리에 관한 역사 기록이다.

강승회(康僧會)의 선조는 강거(康居 역주: 현재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 남부 인근 지역에 있었던 고대 국가) 사람으로 대대로 천축(天竺 인도)에 살았다. 그의 아버지는 장사꾼이었기 때문에 교지(交趾 역주: 지금의 베트남 북부로 한 무제 때 한나라에 편입)로 옮겨갔다. 강승회가 십대 때 부모님이 모두 세상을 떠났다. 그는 지극한 효자라서 상복을 벗고 나서야 출가하여 매우 엄격하게 수행했다.

사람됨이 관대하고 올바르며 학식과 도량이 있었다. 뜻을 돈독히 하여 배우기를 좋아했고 삼장(三藏)을 두루 이해했다. 널리 유가의 육경(六經)을 보고, 천문(天文)과 도위(圖緯)에 대해서도 두루 섭렵했다. 그는 문장 실력도 뛰어나서 글을 잘 지었다.

당시 동오(東吳)의 손권(孫權)이 이미 강남을 지배하고 있었지만 불법(佛法)은 아직 성행하지 못했다.

그보다 앞서 지겸(支謙)이란 승려가 있었다. 자는 공명(恭明)이고, 일명 월(越)이라 했다. 본래 월지(月支) 사람인데 중국에 들어와 강남 지방에 불법을 전파하시 시작했다. 하지만 그리 큰 영향력은 없었다.

강승회가 이 지역에 불법을 떨치고 탑과 사찰[圖寺]을 성대하게 일으킬 생각을 품고 지팡이를 짚고 동쪽을 유랑했다.

오나라 적오(赤烏) 10년(248) 처음 건업(建鄴 오나라 수도로 지금의 남경)에 들어와 초가집을 짓고 불법을 전하기 시작했다. 당시 오나라 사람들은 사문(沙門 승려)을 처음 보았기 때문에 그 외모만 보고 이치를 몰라 이단이 아닌가 의심했다.

이에 담당 관리가 손권(孫權)에게 상주했다.

“어떤 오랑캐가 국경 안으로 들어와 자칭 사문이라 합니다. 얼굴이나 복장이 보통과는 다릅니다. 이 일을 조사해봐야 하겠습니다.”

손권이 말했다.

“옛날 한나라 명제(明帝)가 꿈에 한 신(神)을 보고 부처라 불렀다고 한다. 그들이 섬기는 바가 어찌 옛날의 그것이 아니겠는가?”

즉시 강승회를 불러 물었다.

“너는 어떤 영험(靈驗)이 있느냐?”

강승회가 말했다.

“여래께서 이 세상을 떠나신 지가 이미 천 년이 흘렀지만 그 사리는 신비하게 빛을 발하여 사방을 비춥니다. 옛날 아육왕(阿育王 아소카왕)이 팔만 사천 개의 탑을 세웠습니다. 대개 탑과 절을 일으키는 것은 부처님께서 남기신 교화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손권은 이 말을 듣고 과장되고 허황하다고 여겨서 강승회에게 말했다.

“만약 사리를 얻을 수 있다면 마땅히 탑사를 세울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이 헛되고 망령된 것이라면 나라에서 정한 형벌대로 하리라.”

이에 강승회는 7일간 기일을 청했고 그를 따르는 무리들에게 말하였다.

“법(法)이 흥하느냐 망하느냐가 이 한 번에 달려 있다. 지금 지극한 정성으로 하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해도 늦을 것이다.”

그리고는 모두 고요한 방에서 깨끗하게 재계하면서, 구리 병을 탁자 위에 놓고 향을 피우며 간절하게 소원을 빌었다. 7일의 기한이 끝났지만 고요할 뿐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이에 다시 7일의 기간을 더 얻었으나 역시 전과 같았다.

그러자 손권이 말했다.

“너 이것은 사람을 속이는 짓이니 내 너에게 죄를 줄 것이다.”

강승회가 다시 간청해 세 번째로 7일의 기간을 청했다. 손권은 특별히 한번 더 그 청을 들어 주었다.

강승회가 그의 무리들에게 말했다.

“공자께서는 ‘문왕이 이미 돌아가셨으나 그 분이 남기신 문(文)은 여기에 있지 않는가?’라고 하셨다. 법의 영험함이야 반드시 나타나겠지만 우리가 해내지 못한다면 마땅히 목숨으로 약속한 기한을 지켜야 한다.”

약속한 21일째 저녁 무렵에도 아무것도 보이는 게 없자, 모두들 두려움에 떨었다. 그런데 5경(更 새벽 3~5시)이 되자 문득 병 속에서 달그랑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강승회가 가서 살펴보니 과연 사리가 들어 있었다.

다음날 아침 강승회는 사리를 가져다가 손권에게 바쳤다. 조정에 모인 신하들이 모두 모여 바라보았다. 오색의 찬란한 광채가 사리병 위로 뻗쳐 나왔다. 손권이 직접 손으로 구리 쟁반 위에 병을 기울이자, 사리가 부딪쳐 쟁반이 곧 깨어지고 말았다. 손권은 몹시 두려워서 놀라 일어나 말했다.

“참으로 보기 드문 상서로다.”

강승회가 앞으로 나아가 말했다.

“사리의 신비로운 위엄이 어찌 다만 광채를 발하는 일에만 그치겠습니까? 세상의 종말을 사르는 불로도 태울 수 없고, 금강(金剛)의 방망이로도 깨뜨릴 수 없습니다.”

그러자 손권이 명령을 내려 시험해보게 했다.

강승회가 다시 맹서하며 말했다.

“불법(佛法)이 사방을 덮으면, 모든 백성들이 그 은택에 우러러 젖게 됩니다. 원하건대 다시 신비로운 자취를 드리우시어, 널리 위엄 서린 영험을 보여 주소서.”

이에 사리를 쇠로 된 다듬잇돌 위에 올려놓고, 힘이 센 자에게 내려치도록 하였다. 쇠로 된 다듬잇돌은 움푹 패이고, 사리는 아무런 흠집도 생기지 않았다.

손권은 크게 탄복했고 즉시 탑사(塔寺)를 세우게 했다. 처음으로 절을 세웠기 때문에 건초사(建初寺)라고 부른다. 그곳의 땅 이름은 불타리(佛陀里)라고 한다. 이로 말미암아 강남에서 불법이 마침내 일어났다.

나중에 손권의 손자인 손호(孫皓)가 제위를 잇자 법령이 가혹해졌다. 그는 명령을 내려 부정(不正)한 제사를 모두 없애 버렸으며, 절도 함께 헐어 없애려 했다.

손호가 말했다.

“이런 절들이 어찌하여 존재하느냐? 만약 그 가르침이 참되고 올곧아서 성스러운 가르침과 서로 맞는 것이 있다면 마땅히 그 도를 받들겠다. 하지만 만약 그것이 진실하지 못하다면 모두 다 불태워 버리리라.”

여러 신하들이 모두 아뢰었다.

“부처의 위엄 서린 힘은 여타의 다른 신(神)과는 다릅니다. 강승회의 상서로운 감응 때문에 대황(大皇 손권)께서 절을 창건하였습니다. 이제 만약 가볍게 여겨서 훼손한다면 후회할 일이 있을까 두렵습니다.”

손호는 장욱(張昱)을 절로 보내어 강승회를 힐난하게 했다.

장욱은 본래 재치 있게 말을 잘하는지라, 종횡무진으로 어려운 질문을 퍼부었다. 강승회는 임기응변으로 대답했는데 말의 이치가 창날처럼 날카롭고 빼어나 막힘이 없었다. 아침 일찍부터 저녁에 이르기까지 장욱은 강승회를 굴복시킬 수 없었다.

장욱이 그곳에서 물러나 돌아갈 때 강승회가 문까지 배웅했다. 마침 절 옆에 부정한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음사(淫祀)가 있었다.

이를 보고 장욱이 말했다.

“부처의 신묘한 가르침이 그렇게 훌륭하다면, 어떤 까닭으로 이러한 무리들이 가까이에 있는데도 고치지 못하는가?”

강승회가 말했다.

“뇌성벽력이 산을 부술 정도로 요란하다 할지라도, 귀머거리가 듣지 못하는 것은 그 소리가 작아서가 아닙니다. 참으로 이치가 통하면 만 리 밖에서도 응하게 마련입니다. 만약 그것이 막혀 있다면, 간장과 쓸개처럼 아무리 가까이 붙어 있다 하더라도, 초(楚)나라나 월(越)나라처럼 멀리 떨어져 있는 것[肝膽楚越]이나 다름없습니다.”

장욱이 돌아와서 칭찬했다.

“강승회의 재주와 명석함은 제가 헤아릴 수 있는 바가 아닙니다. 원컨대 왕께서 친히 살펴보소서.”

손호는 크게 조정의 인재를 모아 놓고, 마차를 보내 강승회를 맞이하였다.

강승회가 자리에 앉자 손호가 물었다.

“부처의 가르침에서 밝히는 선악보응(善惡報應)이란 무슨 뜻인가?”

강승회가 대답하였다.

“무릇 훌륭한 임금이 효성과 자애로써 세상을 가르치면, 붉은 까마귀가 날고 노인성(老人星)이 나타납니다. 어진 덕으로 만물을 기르면, 예천(醴泉)이 솟아오르고 아름다운 곡식이 납니다. 이와 같이 선한 행위를 하면 상서로운 일이 있습니다. 악한 행위를 하면 또한 그와 같이 거기에 상응하는 일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악한 일을 하면 귀신이 그에 대한 벌을 줍니다. 드러난 곳에서 악한 일을 하면 사람들이 그에 대한 벌을 줍니다. 『주역(周易)』에서도 ‘착한 일을 많이 한 집에 반드시 좋은 일들이 많다[積善餘慶]’고 했습니다. 『시경(詩經)』에서도 ‘복을 구하는 데 도리에 어긋나는 일을 하지 않네[求福不回]’라고 했습니다. 비록 유가 경전의 바른 말씀이라고는 하지만, 또한 부처님의 분명한 가르침입니다.”

손호가 다시 물었다.

“만약 그렇다면 주공(周公)이나 공자께서 이미 밝히신 것인데 불교는 또 어디에 쓴다는 말이냐?”

강승회가 대답하였다.

“공자 말씀은 대략 우리와 가까운 자취만을 보여 주었습니다. 하지만 부처의 가르침에 있어서는 그윽함과 미묘함이 몹시 갖추어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악한 일을 행하면 오랜 세월 동안 지옥에서 고통을 겪어야 하고, 선한 일을 하면 길이 극락세계의 즐거움이 있을 것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러니 어찌 그 가르침이 크다고 하지 않겠습니까?”

손호는 당시에 그의 말을 꺾을 만한 방법이 없었다. 그렇지만 손호가 불교의 바른 법을 들었다고는 하나, 어리석고 포악한 성질 때문에 그 잔학함을 누를 수가 없었다.

어느 날 숙위병(宿衛兵)들을 후궁(後宮)에 보내어 정원을 수리하던 중 땅 속에서 크기가 몇 자 정도 되는 금불상을 발견해 손호에게 바쳤다.

손호는 불상의 깨끗하지 않은 부분을 드러내어 더러운 오물을 끼얹고, 여러 신하들과 함께 웃으면서 즐거워하였다. 그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온몸에 큰 종기가 생겼다. 특히 음부(陰部) 부분이 더욱 아파서 울부짖는 소리가 하늘을 찌르는 듯하였다.

태사(太史)가 점을 쳐서 말하였다.

“위대한 신을 범했기 때문이옵니다.”

즉시 여러 사당에 기도를 드렸으나, 끝내 아무런 차도가 없었다. 궁녀 중에 이전부터 불법을 받드는 자가 있었는데 손호에게 물었다.

“폐하께서는 절에 나아가 복을 빌어 보시지 않을는지요?”

손호는 머리를 쳐들고 말하였다.

“부처라는 신(神)이 그렇게 위대한가?”

그러자 궁녀가 말하였다.

“부처는 위대한 신이십니다.”

드디어 손호는 마음속으로 궁녀가 말한 뜻을 깨달았다. 그래서 궁녀는 즉시 불상을 가져다가 전(殿) 위에 모셔 두었다. 향기로운 더운물로 수십 번을 씻고 나서, 향을 사르고 참회하였다.

손호는 정성스럽게 베갯머리에서 머리를 조아리며 자신의 죄상을 스스로 고백하였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통증이 차차 나아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사신을 절로 보내 도인(道人)을 찾아, 그에게 설법해 주기를 청하였다.

강승회가 그를 따라 궁으로 들어갔다. 손호는 예를 갖추어 죄와 복을 얻는 연유에 대하여 물었다. 강승회는 그를 위하여 상세하게 풀어 설명하였다. 그 말이 매우 정밀하고 요점이 있었다. 손호는 원래 뛰어난 이해력이 있기 때문에 매우 기뻐하였다. 이로 인해서 사문의 계율이 어떠한 것인지 알고자 하였다.

손호는 자비의 원력이 크고도 넓다는 것을 깨닫고, 더욱 착한 마음을 더하고자 하였다. 그래서 곧장 강승회에게 나아갔다. 5계(戒)를 받고 나서 열흘 만에 질병이 깨끗이 나았다. 이에 강승회가 머무는 절을 더욱 잘 꾸몄다. 종실(宗室)에도 반드시 받들지 않으면 안 된다고 널리 알렸다.

승회는 오나라 조정에서 자주 불법을 설하였다. 그렇지만 손호의 성품이 흉악하고 거칠어서 오묘한 뜻에는 미치지 못하였다. 오직 응보(應報)와 같이 알기 쉬운 일들을 이야기하여, 그의 마음을 열어 주었다.

오나라 천기(天紀) 4년(280) 4월 손호가 진(晋)나라에 항복했다. 9월 강승회가 병에 걸려 원적했다. 이때가 진나라 무제(武帝) 태강(太康) 원년(280)이다.

동진의 성제(成帝, 326~335) 함화(咸和) 연간에 소준(蘇峻)이 난을 일으켜 강승회가 세운 탑이 불타자 사공(司空)인 하충(何充)이 이를 수리하여 다시 지었다.

평서장군(平西將軍) 조유(趙誘)는 대대로 불법을 받들지 않았으므로 삼보(三寶)를 업신여겼다. 이 절에 들어가서 여러 승려들에게 말했다.

“오래 전부터 이 탑이 자주 빛을 발한다고 들었다. 헛되고 괴이하여 있을 수 없는 일이라서 믿을 수 없다. 만약 내가 직접 보게 된다면 더 따질 일이야 없겠지만.”

말을 마치자마자 탑에서 즉시 오색 빛이 뿜어져 나왔다. 법당과 당간까지 비추었다. 조유는 두려워 털끝이 바짝 곤두섰다. 이로 말미암아 조유는 불법을 믿고 공경하여, 절의 동쪽에 다시 작은 탑을 세웠다.

손호는 삼국시기 동오의 마지막 군주이자 혼군이다. 그는 불상을 모독했다가 악보를 받았지만 다행히 늦게나마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수많은 중국인들은 선악에 응보가 있다는 것을 믿지 않고 심지어 불법을 비방하는데 그렇다면 그들은 장차 어떤 보응을 받게 될 것인가? 하늘은 공정하고 무사하다. 이들도 손호처럼 언젠가는 각성할 날이 오기를 바란다.

자료출처: 《고승전》)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1231